마치 단편소설집 같은,

1970년 2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신문을 읽고 있었다. 화가 테오도로스 스테이모스였는데 마크 로스코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마크 로스코 편의 시작입니다. 꼭 카버나 챈들러 같지 않나요? 이 회고록은 그 다양한 캐릭터들에 힘입어 마치 단편 소설집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천재 예술가들의 에피소드를 엿본다는 가십스러운 관심보다는 '인간들'의 삶을 비추는 에세이집. 세심한 관찰력과 효과적인 문장을 조화시키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큐레이터들의 여왕답게 캐서린 쿠는 자신이 접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담담하게 옮겨 놓았습니다. 현란한 문장 대신에 심도 있는 관찰을 그대로 옮겨내는 걸 장기로 삼는거죠. 네, 말하자면 이건 에세이, 예술-에세이라고 보는 쪽이 좋습니다. 이론과 사조에 대한 논박은 서문 이후로는 만나기 힘드실 거예요.
 

지난 번에 코언 형제의 인터뷰집에서 말씀드린 바 있었죠. 서문만 봐도 괜찮은 책일거라는 느낌이 오는 것 말입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도 그런 경우입니다. 이 책은 서문의 질량부터 남다른데요. 두 단계로 나뉘어진 서문이 무려 백 페이지에 가깝습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지휘관, 그야말로 전설적인 큐레이터의 이 회고록 서문은 큐레이터라는 직업 이야기, 그리고 그 직업을 가진 자신의 인생 이야기, 그리고 근대에서 현대로 옮겨가는 시기의 미술계를 요약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회한이나 감상 같은 건 거의 없습니다. 그녀 자신의 인생조차 '서문'에 기술했을 뿐인, 목적의식이 명확한 책의 시작은 본문을 읽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훌륭합니다. 그야말로 쓸모있는 서문이죠. '개념있는' 책은 자신의 개념을 직접 서술하지 않아도 그 태도에서 느낄 수 있는 법입니다.

이어 등장하는 본문, 16인의 예술 종사자들의 면모는 가지각색입니다. (아, 말씀드리자면 다들 예술가인 건 아녜요. 비평가도 있고, '반 고흐의 조카'도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인물을 다룬 단편들은 서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죠.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아메리카라는 파도를 타넘기를 즐기는 천재의 여유를 보이며, 저 유명한 에드워드 호퍼는 역시 충만한 자신감을 뽐내지만 그 모양새가 종교적 후광처럼 범접할 수 없는 형태를 띕니다. 너무 조용하고 착실해서 엔지니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반 고흐의 조카'는 삼촌에 대한 열정과 민족에 대한 사랑만큼은 더없이 뜨거운 남자입니다. 예술가적 열성과 기묘한 정적이 공존하는 괴공간(?) 프로빈스타운의 터줏대감 한스 호프만도 있고, '그다지 예술가답지 않게' 충실히 또 착실히 작품들을 만들어간 생활 예술인 프란츠 클라인도 있습니다. 그 모두는 다른 인간이며 다른 캐릭터이고 다른 이야기지요. (캐서린 쿠는 이미 서문에서 천재 예술가들의 어떤 전형을 뽑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작업 같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유명 예술가들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고 기술함으로써 불필요한 아우라를 제거한 책은 보기 힘들 뿐더러, 이렇게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 경우는 더욱 보기 힘듭니다. 담담한 문장이 안겨주는 차분함도 매력적입니다. 책 뒷면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터뷰어&에세이스트인 스터즈 터클의 추천사가 있습니다. 논픽션/인터뷰집에 대해 스터즈 터클이 눈여겨 본 책은 거진 믿으셔도 됩니다. 

(...여담인데요. 스터즈 터클의 책 좀 더 나와주면 안될까요... T_T) 

  

 

드디어 등장한 진정한 오디오 입문서! 

 

-이 책도 소개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드디어 국내의 오디오 덕후 팬들을 위한 멋진 입문서가 나왔거든요. ^^ 우선 각종 장비의 상품별 소개가 깔끔하게 이루어져 있어 실질적인 오디오 시스템 구성에 도움이 됩니다. 오디오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기초적인 부분을 그림까지 곁들여 소개한 뒤에 부담없이 넘겨 주고요. 마치 이야기처럼 써져 있는데다가 일러스트도 공들인 흔적이 보여서 읽기가 상당히 편합니다. 무엇보다 50만원으로 스피커 사러 가기 같은 실전 트레이닝이 많은 점이 도움이 될 걸로 보입니다. 

기본적인 이론과 오디오 시스템에 대한 설명, 실제로 각 분야의 제품을 구입할 때의 '이상과 현실', 기기간의 매치업과 공간의 중요성 등 각 파트의 차례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부담없이 술술 잘 읽힌다는 점을 감안하면, 책 내용은 가능한 만큼의 정보량을 꽉꽉 눌러 담아 놓은 알짜 느낌이 딱 옵니다. 게다가 부록으로 들어있는 CD도 오디오의 채널 테스트, 밸런스 테스트 등 각종 기초 테스트를 포함하는 알짜배기입니다. 편집자 추천은 이런 책에는 그냥 걸어주죠.

제품 소개가 꽤 있는 책이니 시간이 지나면 개정판도 내 주겠지요? (물론 어느 이상은 팔려야겠지만요;;) 

이 책을 피하셔야 할 분들은 딱 두 부류가 있겠습니다. 

1. 오디오 상급 경력자. (다 아는 얘기일 겁니다) 혹은 상급이라고 자신만만해하는 중급자. 

2. '충동은 만악의 근원'이라는 책 초반의 문구에 반감을 가진 자. 

 그 외에는 즐기셔도 무방합니다. 저처럼 손가락 빨면서 저 기기들을 상상하는 것도 물론 재밌겠지만(T_T) 원하신다면 저 세계로 풍덩... 

 

 

P.S. <굿모닝 오디오>의 뒷날개에는 이 책부터 시작되는 '내 인생 두 번째 취미' 시리즈 소개글이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자기자신의 삶을 한번쯤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쫓겨 뒤돌아 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당신에게 '왜 사냐'는 질문에 '웃지요!' 하던 시대는 끝났다. (중략) 첫 번째 취미를 잊은 사람들에게 두 번째 취미는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동반자로 남을 것이다. 

자, 이제 지르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하여' 행복하시길. ^^ 다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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