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고, 더 놓고, 더 놓아라.

 

심지어 아름다운 주기도문 설교집,

헬무트 틸리케의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

 

 

-나치 독일이 패망해가던 1940년대 중반,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 슈투트가르트의 무너진 교회 터에서 설교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신에 대한 설교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잔악했던 나치 정부도, 또한 나치에 대항한다는 이유로 민간인 구역을 폭격한 연합군도, 그 누구도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던 시민들에게 과연 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니, 신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모두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신도들에게 어떤 위로를 주어야 했을까요. 안식과 평화를 약속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틸리케는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그는 신도들에게 손가락을 향합니다.

"우리는 벌거벗고 있습니다. 그런데 옷을 구하는 대신 과자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44쪽

모두 내려놓음 

-이 책의 주제를 압축하면 모두 놓는 것입니다. 내가 신과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당장의 욕심과 감각을 좇아 신에게 과자를 달라는 기도를 멈추는 것입니다.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신이 우리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늘 모자랍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달라, 무엇을 원한다고 하는 기도는 늘 어리석습니다. 미래도 볼 수 없고, 지금에 대한 판단도 곧잘 틀리니까요. 그저 "아버지여!" 라고 외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멀리 내다보는 신 앞에서는 우리가 판단하는 선과 악은 어리석은 구분에 불과하며(독일 기독교는 나치에 협력했고, 카톨릭은 모른 척 외면했습니다), 전도서에 나타난 바, 욕망과 영욕 역시 헛된 것이 됩니다. 무한의 진리 이외에는 모든 것이 부서지고 사라집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시겠습니까? 복권 당첨을 위해서? 내일 시험치는 우리 아들 점수를 좀 더 높이기 위해서? 동료를 제치고 승진하기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바로 여기가 어떠한 욕망도 다 사라져버린 자리, 모든 종교와 철학이 비틀거리며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 이름이 모두 다를 뿐, 서로가 같은 것을 외쳐 부릅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신념, 그 단 한 가지만 빼고, 혹은 그것까지 모든 것을 의심했고 부정하고 분석했다. 무엇이 남았는가?"

완전한 텅 빔이 신과 함께 거기에 서 있습니다.

천국에 비해 초라한 지상이란, 영생이나 축복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과 영욕에 집착하는 지상의 삶에 대한 은유입니다. 천국은 텅 빈 곳이며, 해탈과 열반의 장소이며, 초끈 이론이 통용되는 곳이며, 존재가 자신의 실존을 납득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여!" 라고 부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지상의 우리는 그 곳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니까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기도도 없을 겁니다. 하물며 사탕발림에 가까운 안식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많은 수의 기도 책들을 믿지 않습니다. 응답받는 기도는 욕망과는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좀 더 열린 인간으로 살게 해 달라는 기도조차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이미 그렇게 살게 될 테니까요. 기도는 온갖 한계에 부딪히고 사소한 욕망에 시달리는 인간이 더 넓은 곳을 향해 던지는 작은 돌멩이일 뿐입니다. 돌멩이는 물 속에 가라앉고, 기적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을 던지는 우리의 근육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돌멩이를 삼킨 바다를 잠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 바다의 찬연함, 그 거대함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곳은 아름답고 광활합니다. 그 앞에서 좀 더 겸손해지고 기꺼이 작아집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기도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소리로 응답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자신을 알고, 세계를 더 가까이 느끼게 됩니다. 더 많은 것들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더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기도문 안에 있습니다. 그 짧은 기도 안에.

누군가 제게 기도에 관한 책을 추천하라면 어쩌면 단 한 권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전쟁통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절망조차 하나의 과정이라고 일깨우는 주기도문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핵심적인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마음껏 슬퍼하시기를. 또한 마음껏 기뻐하시기를. 그리고 그 순간을 깊게 느끼고, 그 모두를 바람처럼 떠나 보내시기를.

 

그렇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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