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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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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한국이 언제는 좋았나 싶다. 한국인이라 좋았던 순간,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던 순간, 한국에 태어난 게 축복이라 여겨졌던 순간을 기억 속에서 아무리 찾아내려 해도 찾아지지가 않는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며 한국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를 같은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응원하지도 않는다.


그래, 나한테는 애국심 같은 거 없다. 있다 해도 아마 엄청 조그마할 거다. 평소에 잘 인지되지 않는 걸 보면. 이 나라에 태어난 건 내 선택이 아니었으니, 이 나라에 태어났음을 감사하면서 이 나라를 사랑해야 할 의무 따위도 없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저 생존의 조건 혹은 환경으로 받아들이며 나라가 내게 요구하는 의무만을 이행할 뿐이다. 나라와의 관계에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으려고는 한다. 좋은 감정이 나쁜 감정보다 훨씬 적으니까.


한국이 왜 싫냐고? 오래 고민해 대답할 것도 없다. 크롬의 주소창에 포털사이트의 이름을 넣는 것만으로도 수십개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오늘은 7월 26일 일요일,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포털사이트의 메인에는 뻘과 녹조, 큰빗이끼벌레로 뒤덮여 썩어가는 낙동강에 관한 기사와 새누리당이 법인세 증대는 포퓰리즘이라며 악악댔다는 기사가 함께 떠 있다.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학부모가 여성 교사를 폭행했다는 뉴스와 공군 준위가 회식 도중 20대 여성 하사의 턱을 잡고 강제로 술을 먹였다는 뉴스가 보인다. 슬슬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혈압을 좀 낮춰볼까 하고 연예 섹션을 클릭했다가 바로 후회한다. 언제나처럼 나열되어 있는 '누군가의 몸매' '누군가의 미모' '누군가의 뒷태' '누군가의 다리' '누군가의 가슴' '누군가의 엉덩이' 사진들…하아. 어린애부터 노인네까지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이런 사진들로 장식되어 있는 게 당연한 일인 이 나라, 정말이지 싫다, 싫다, 싫다.


언제부터 그렇게 싫었냐고? 글쎄다, 생각이란 걸 하고 살게 된 이후로부터는 쭉 그랬던 것 같은데. 애국가를 4절까지 외워 써야 하는 시험에 '우리나라 만세'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따위를 줄줄 적어내고 100점을 맞던 어린이 시절이 지난 후, 나라가 국민을 위해 한다는 수많은 일들 중 나를 위한 건 거의 없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면서부터 쭉 이모양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당연히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았다 ; "야, 아프리카 같은 데 안 태어난 게 어디냐." "너 인도에서 수드라 같은 걸로 태어났으면 어쩌려고 그래." "조선 시대 같은 때 태어나서 죽어라 고생해 봐야 그런 말을 안 하지." "북한에서만 태어났어도 이미 굶어 죽었어!" 운운. 아오, 내가 내 나라 싫다는데 왜이렇게 꼰대질이세요. 다른 나라나 사회나 시대에서 태어났으면 여기서 태어난 것보다 백퍼센트 불행하게 살았을 거라는 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오는 건가요. 존나 짜증나니까 그만 닥쳐주세요.


그러고 보면 계나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꽤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런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10-11쪽)


어차피 난 여기서도 2등 시민이야. 강남 출신이고 집도 잘 살고 남자인 너는 결코 이해 못해. (61쪽)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서울이 옛날이랑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는데,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야. 나아지는 게 없어. 내가 그냥 여기 가만히 있는다고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어. (103쪽)


게다가 애국가 얘기까지 한다. 계나 역시 어렸을 때 애국가 가사를 외워 적으며, '대한으로 길이 보전한다는 게 무슨 뜻이지?'라고 고민해봤나 보다. 나이를 좀 먹은 후엔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아 무슨 노래로 충성을 요구해-_-'라고 투덜대봤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느님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만세를 누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그리고 "우리는 빛나는 남십자성 아래서 마음과 손을 모아 일한다."고, "끝없는 땅을 나눠 가진다."고 해. 가사가 비교가 안 돼. (171쪽)



하지만 나는 계나처럼 한국을 떠나지 못한다. 떠나려는 생각도 안 한다. 외국 시민권을 딴다고? 외국에서 직업을 구해 먹고 산다고? 꿈도 꿔 본 적 없다. 그래서 꼰대들의 참견질을 불러일으키고야 만다. "그렇게 이 나라가 싫으면 딴 데 가서 살아. 누가 너 붙잡냐?" "딴 나라 갈 거 아니면 좋게 좋게 생각하고 살아. 어차피 살 나라인데 좋아하고 살아야지, 싫어해서 좋을 게 뭐 있어?" 남의 삶에 자신의 오지랖을 한 번이라도 펼쳐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걸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그리하여 귀를 막고 생각해 본다. 왜 나는 이곳을 못 떠나는가. 1차적으로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겠고-_- 2차적으로는 한국어 이외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보다 본질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릴 수 없어서인가-비록 엄청나게 대단한 걸 갖고 있진 않지만, 어쨌든간 내가 쓰는 책상이 놓여져 있는 직장과 부양해야 할 가족,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 어떤 의미로든 만족하고 있는 건가. 비록 이런 나라에서의 삶일지언정, 긍정하고 있는 걸까. 흠.


힌트는, 이번에도 계나의 말 속에 숨어 있었다.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중략)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151쪽)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중략)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중략)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실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 거야.(153쪽)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출신 무시하고 그러겠지. 그런데, 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 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 (186-187쪽)


나도 계나처럼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다. 내가 뭘 하고 있는가보다 뭘 하고 싶으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뭘 하고 싶으냐의 '뭘'은 직업이 아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빠짐없이 가고, 좋아하는 음악 듣고 싶을 때 듣고 싶다. 많이 읽고, 많이 걷고, 많이 웃고,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눈치 덜 보면서 최대한 당당하게 하고 싶다. 그 정도다. 그래서 '어떤 직업을 갖고 사는가'가 '장래희망'과 동일어로 여겨지는 이 나라가 싫다. 직업은 직업이고 미래는 미래고 삶은 삶이고 희망은 희망이니까. 그 넷이 다 같은 게 절대로 아니니까.


그렇지만 이 나라를 떠난다고 내가 행복해지나? 이 나라만 아니라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나? 아니다. 그렇지 않다.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언어라고는 한국어 하나 뿐인 내가 외국에 가면 뭘 해서 먹고 살겠는가? 덩치도 작고 물리적 힘도 세지 않은데다가 아시안이고 여자인데, 범죄(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강간이나 절도)의 표적이 되기 딱 좋지 않나? 인종 차별은 또 얼마나 당하겠는가? 여기서의 삶이 녹록치 않은 내게, 그 어디에서의 삶이 녹록하겠는가? 더 힘들면 더 힘들지, 안 힘들 리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을 떠나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말은 대통령이 바뀌면/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뀌면/재벌이 해체되면 나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정치가 갑자기 깨끗해지고 경제가 확 살아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만큼이나 대책 없는 소리다. 나를 괴롭히는 환경적 요인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특성에서 기인함은 사실이지만, 내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계나만큼이나 현금 흐름성 행복을 충분히 누리지 않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인 거다. 계나처럼 나 역시 자산성 행복보다 현금 흐름성 행복을 중시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삶이란 원래 고통이라 여기는 인간이다보니 '이 나라에서 얻는 현금 흐름성 행복'으로도 삶을 지속하는 데 (아직까지는) 지독한 불편을 겪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나는, 한국 때문에 시시때때로 불행해져도, 너로 인해 내 행복을 저당잡히지는 않겠다고 의지를 다지며! 네가 나를 아무리 괴롭혀도 나는 별일 없이, 별다른 걱정 없이, 이렇다 할 걱정 없이 산다고 장기하처럼 목청을 높여 신나게 노래하는 수밖에 없다. 네가 싫어도 나는 꿋꿋이 잘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신나게 웃으며 탕탕탕 배를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사람대접 안 해 주는 이 나라를 저주하며 떠나는 대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람대접을 해 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여기서 SKY 나왔다고 인서울, 수도권, 지방대 애들을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벌레에 불과하다면 어느 나라를 가서 어느 직업을 갖든 간에 남을 무시하는 것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 벌레일 뿐이니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계나의 말이 자꾸 생각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찬 내 현재가 조금은 가엾고 안쓰럽지만, 지금은 여기에서 벌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아직은 이럴 수밖에 없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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