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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1. 3월에 친한 선배의 생일이 있었다. 선물을 챙기다가 알라딘 메인에 뜬 정여울의 신간을 보았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이라는 제목에 프라하 성의 야경 사진. 표지만 보면 누가 봐도 사진과 여행 정보가 그득그득 실려 있을 것만 같은 책. 으엥, 정여울이 썼을 것 같은 책이 아닌데. 동명이인인가? 싶었지만 얼마 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선배가 좋아하겠다 싶어 카트에 넣었다. 받아본 책은 비닐로 싸여 있었고, 한 장도 들춰보지 않은 채로 선물했다. 그리고 한동안 잊었다. 올해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이 책이며, 후속편인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이 이어 출간됐다는 뉴스를 읽기 전까지, 까맣게.


정여울과 베스트셀러라니 엄청 안어울리네, 그래도 베스트셀러가 좋긴 좋다, 이렇게 2권도 나오고…라 중얼거리며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취향 탓이기도 하고, 여행에 별 관심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별히 가고 싶지도 않은 외국 땅 정보가 빽빽이 들어있을 거라 상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던 탓이기도 하고…뭐 그랬다. 처음엔 설렁설렁 표지를 넘기고 대충 건성으로 읽다가 아이고, 이거 이럴 책이 아니네, 싶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마음도 바로잡았다. 집중해서 마지막까지 읽었다.



2.『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은 다행히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다-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정여울의 글들이 흥미로웠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유한한 시간을 가치 있게 살려 노력하는 사람의 그림자가 구석구석 묻어 있어 좋았다.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책-그러니까 여행 정보를 사전처럼 토해놓고 있는 책도 아니었고 어디어디는 꼭 가야 되고 무엇무엇은 반드시 봐야 된다고 명령하는 책도 아니라 더욱 좋았다. 외국의 유명한 관광지를 번듯하게 찍어 놓은 사진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동안 온몸을 자유로 흠뻑 적신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책이라 더더욱 좋았다. 누군가는 내가 이 책을 맘에 들어했던 이유 때문에 이 책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지만(이 부분에서 기획 출판이란 참, 베스트셀러란 참, 대중도서란 참…하고 혼자서 중얼거려본다ㅋ) 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오히려 나는 정여울의 흥미로운 글을 더 읽고 싶어 아쉬웠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열 곳의 지명이 소개된다. 예를 들어 제1장인 '특별한 하루를 부탁해'에서는 파리, 마드리드, 몬세라트, 헬싱키, 쾰른, 시나이아, 암스테르담, 런던, 보드룸, 아레초가 순서대로 나오는데 이 중 파리, 마드리드, 몬세라트 부분에만 정여울의 글이 실려 있다. 파리 부분에서는 뒤마 파스의 춘희가, 마드리드 부분에서는 박노해의 다른 길이, 몬세라트 부분에서는 댄 핸콕스의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가 정여울의 경험과 감상과 기억 속에 녹아든다. 이렇게 흥미로운 글 세 편을 읽은 후에는, 헬싱키와 쾰른과 시나이아와 암스테르담…에 대해 '정보 전달을 위한 글'이 붙어 있는 페이지가 한 쪽씩 이어진다. 아아 뭔가 시원하지 않아…하는 기분으로 나머지 일곱 지역을 대충 훑고-이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글보다 사진을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밖에.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를 염두에 둔 기획 출판이라니 이것 역시 뭐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 정여울의 또다른 여행기가 나온다면, 그땐 이 책보다 많은 글이 실려있으면 좋겠다. 그녀의 폭넓은 독서가 여행과 함께 어우러져 '당장 그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면 이 책이라도 읽겠어!!!!'하고 마음먹게 하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쩌구저쩌구한 유럽 TOP10'이라는 제목 대신 좀더 마음에 여운을 남기는 제목이었으면 좋겠고. 물론 이 희망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판매량은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의 반도 안 되겠지만 허허허허;



3. 특히 좋았던 부분은 제 8장, 작가처럼 영화 주인공처럼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 글이었던 헤르만 헤세 부분이 참 좋았다. 작년 이맘 떄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꽤 감명을 받았었는데, 그 책에 등장했던 헤세의 카사 카무치를 정여울의 책 속에서 만나니 무척 반가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어지는 정여울의 문장들과 루가노 호수의 사진들…한참을 바라보았다. 헤세의 문장들을 읽으며 그 아름다움에 전율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글의 맨 마지막 부분에 실린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을 때는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만년설이 뒤덮인 몬타뇰라의 산들과 계절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루가노 호수, 손수 가꾸던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작가 스스로 그린 자신의 알터에고로 보인다. 겉으로는 늘 비슷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시시각각 천변만화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몬타뇰라의 이미지는 헤세 자신의 격정적이면서도 고요한 성찰로 가득한 영혼의 풍경화이기도 했다.


- 카사 카무치에서 시작되는 헤세의 산책로를 걷다 보면, 루가노 호수를 넘어 아련하게 내다보이는 이탈리아 접경지대 마을들이 보인다. 매일 이곳을 산책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을 헤세를 상상하며, 비로소 그가 그리워 한 '예술의 어머니'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 것만 같았다. 


- 헤세가 손수 씨를 뿌리고, 흙을 파내고, 물을 주며 정성껏 가꾸었을 정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원에서 손녀의 재롱을 보며 미소 짓는 헤세의 행복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헤세의 집 카사 카무치에서 겨울 속에 숨어 움을 틔울 틈새를 엿보고 있는 봄의 기대에 찬 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가지는 헐벗었지만 벌써 바지런히 꽃망울을 터뜨린 꽃도 있었다.

(265-267쪽)



4. 여전히 나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데다가 방구들을 딩구르르하며 베개에 얼굴 묻고 있는 게 가장 편한 인간이므로,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유럽행 티켓을 예약하거나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여행 루트를 그릴 리는 없을 것이다. 대신 정여울이 알려준 여행자로서의 자세를 기억하려 한다. 세상의 떠들썩한 소리에 신경쓰면서 손익을 계산하는 '일상적 삶'을 좀더 느긋하게 살아보고 싶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 마음에 귀 기울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와 주위를 대하고 싶다.



그 때문일까, 반드시 이번 겨울에는 여행을 가야겠다는 다짐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가 있는 장소를 내 마음이 머물고, 쉬고, 사랑할 수 있는 장소로 가꾸는 일이 여행보다 훨씬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여행을 수많이 다녀 온 그녀도 말했으니까. 떠나고 싶다는 충동으로 현재 머물러 있는 곳을 증오하고 지금의 시간을 괴로워하며 보내는 사람이나 언젠가 가게 될 미지의 장소에 대한 동경으로 팍팍한 현실을 버티는 사람 대신,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5.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을 떠올려 본다. 혼자 고속버스 타고 찾아갔던 겨울 바다. 다음에 갈 여행도 혼자 가야지. 분명 찬 바람이 몰아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포근했던 그때처럼 다음 여행도 외롭지 않길. 여행에서의 나도, 일상에서의 나도, 모두 자유롭길.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우려고 치열하게 살아가길, 부디.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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