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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사랑은,

자신이 쓴 모든 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단 한 명의 사람을 가진 작가가 있다. 행복한 사람일까.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였다면 질문이 끝나자 마자 고개를 끄덕였을 테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몇 개의 조건을 덧붙인 후에야 대답할 수 있겠다. 행복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한 명과 한 날 한 시에 한 곳에서 같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래서 그 단 한 명과의 사별을 이 땅에서 겪지 않아도 된다면, 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불운하게도 사별을 겪어낸 사람의 이야기다. 아니, 겪어냈다는 표현은 불완전하다. 그럼 뭐라고 해야하지? 통과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이 책을 읽어 보아도, 사별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걸. 그렇다면 어떤 표현이 적확할까. 줄리언 반스의 말처럼, 단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주체할 수 없게 흐르던 눈물이 멈출 때, 다시 집중력을 회복해 전처럼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게 될 때, 휴게실 공포증에서 벗어날 때, 유품을 처분할 수 있게 될 때를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사별 정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 해야 할까.


책 표지에 떠 있는 기구를 보며 생각했다. 왜 줄리언 반스는 기구에 대한 얘기를 해야 했을까. 왜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는 내용의 문장으로 각 장을 시작해야만 했을까. 왜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 앞에 나다르와 프레드, 사라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을까. 더 높은 하늘로 더 멀리 날아올라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하지만 결국은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기구의 운명에서 영원을 꿈꾸지만 결국은 헤어짐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운명을 연상한 걸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헤어진 후에는 처음부터 그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워지고 만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다르와 프레드, 사라의 비상과 죽음을 이야기한 후에야 기구를 타고 날아다니듯 아름다웠던 팻과의 사랑을,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온 격렬한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하긴 내가 뭘 알 수 있을까. 사별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내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본 적도 없는 내가. 팻을 만나본 적도 없는 내가. 줄리언 반스도 아닌 내가. 그러니 줄리언 반스의 말이 맞다. 이는 사별의 회귀선을 건너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선 대개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이 책까지도 줄리언 반스는 팻에게 바쳤다.




2. 그렇게,

다만 나는 힘겹게 짐작할 뿐이다. 에르네스틴이 떠난 세상을 오래 버티지 못했던 나다르의 비통함, 기구를 타고 있을 때조차 자신을 부르는 사라의 목소리를 듣곤 했던 프레드의 가슴 아림, 창으로 목을 찔린 듯한 괴로움을 느끼며 삶의 심장과 심장의 생명을 잃고 말았던 줄리언 반스의 울분을. 더듬어 예상해 본다. 몇 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내내 의식이 있는 상태였고, 장미 화단에 발로 착지해 무릎까지 파묻히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내장기관이 파열되어 몸 밖으로 다 터져 나온 것 같은 기분을 숨겨야만 할 때, 얼마나 세상이 끔찍하고 추악하게 느껴질 것인지.


그렇다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사라의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알게 된 후, 사라를 놓고 병원을 나설 때 그가 느꼈던 분노는 한때 나의 것이기도 했으니까. 줄리언 반스는 이렇게 말했다 : 그냥 하루 일과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내가 분한 마음으로 노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들은 어쩌면 저렇게 게으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기들의 무심한 옆얼굴을 여보란 듯 보여주고 있단 말인가. 세상이 이제 이렇게 변하려는 참인데.


쌕쌕거리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기계 소리와 기침 소리로 가득한 병동을 뒤로 하고 나왔던 밤, 이를 악물고 울분을 삼키다가 결국은 화를 내고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 울고 울며 걸었던 그 길. 다른 때와 똑같이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던 버스와 승용차들. 잇몸이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통화하던 사람들. 달콤한 냄새와 따뜻한 김을 뿜어내던 군고구마와 호떡과 군밤. 노랗고 빨갛게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온화하게 빛나던 교회의 십자가. 나의 세상이 내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바뀌는 그 순간에도 나 아닌 이들의 세상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것을 느꼈던, 내 목에 차오르던 분노와 억울함. 왜 지금이냐고, 왜 내 아버지냐고, 왜 내 아버지에게 하필 이런 일이 생기냐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결국 도달한 결론은 겨우 이것이었다-The world is changed. People may not notcie at the time, but that doesn't matter. THE WORLD HAS BEEN CHANGED NONETHELESS.


어떤 면에서 줄리언 반스는 나보다 운이 좋다. 말을 잃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손과 발의 움직임을 잃은 아버지의 마지막 의지를, 글 읽는 것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읽었던 글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씹어 삼킨 음식을, 웃었던 때를, 울었던 때를, 화냈던 때를, 알지 못하기에 기억할 수 없는 나와 달리 그는 다 알고 있으니까. 아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 함께 본 연극과 영화와 콘서트와 오페라와 미술전시회, 아내가 마지막으로 마신 와인, 마지막으로 산 옷, 마지막으로 읽고 마지막으로 웃은 그의 글, 마지막으로 쓴 글, 마지막으로 말한 온전한 문장,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가 부럽다.



3. 끝나지, 않는다.

아직 나는 아버지를 잃지 않았다. 아버지의 숨소리에 감사하고, 손발의 따뜻함에 안도감을 느낀다. 어쩌면 '그 때'가 곧 올 것이라는 공포감에 짓눌리지 않으려 스스로를 힘들게 곧추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은…내가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가 와도 덜 당황하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리언 반스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준비할 수 없다는 걸. 그 어떤 인간도 준비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죽음, 그 진부하면서도 유일무이한 현상에 대처하기엔 턱없이 미숙하다. 우리에겐 더 이상 죽음을 더 넓은 패턴의 일부로 삼을 능력이 없다. 그리고 E. M. 포스터가 말했듯, '하나의 죽음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죽음에는 한줄기 빛조차 비추지 못한다.' 그래서 사별 이후에 당연히 찾아오는 비탄의 감정도 우리에겐 상상 불가능한 영역이 되고 만다. (112쪽)


아내를 잃게 되면, 갑자기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전까지 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다른 운전자들, 배우자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114쪽)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 보라. 그녀는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육신, 그녀의 영혼, 그녀가 인생에 대해 품었던 빛나는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때로는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큰 상실자이며, 진정 사별을 겪은 쪽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인생은 더 이상 그녀의 빛나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129쪽)


또다시, 줄리언 반스의 말이 맞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렇게는 더더욱 끝나지 않는다. 때문에 인간은 애도해야만 한다. 애도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자신을 부조리하게 느끼며, 그는 죽었는데 나는 살아있음이 기이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의 가슴을 파먹는 비탄이 시간을 바꾸고 공간을 바꾸고 영토를 새로 발견하게 한다고 느낄 것이다. 원래 알던 것과 전혀 달라진 세상에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내려 하다가, 비탄은 패턴이 존재한다는 믿음마저도 파괴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패턴을 찾거나 재정립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애쓸 것이다. 사별의 고통과 무관한 사람이든, 아니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을 구원해주는 것이 바로 이것일 테니까.


사별 정리가 얼마나 이어질지, 사별의 발전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건 사별로부터 얼마나 지난 후일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완전히 사별의 고통에서 헤어나오게 될지, 지금의 나는 짐작도 못하겠고 예상도 못하겠다. 대신 기억하겠다고 되뇌인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이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팻을 잃은 후에도 팻을 기억하는 줄리언 반스처럼, 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아버지의 숨소리를, 따뜻한 발과 손의 느낌을.


입술을 깨문다. 미리 울진 않을 것이다. 사랑은 끝나지 않으니까. '그 때'가 지난 후에도, 그렇게,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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