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종모의 책을 읽는 건 처음이다. 원래 여행기를 잘 안 읽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에세이 분야'에서 유명한 필자인 것 같던데 어떻게 한 권도 안 읽었을까 생각하며 책 표지를 넘기다가 책 날개에서 곧바로 이유(라고 할 만한 것)를 찾아냈다. 이제까지 그가 쓴 책 제목들 덕분이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까지…전부 다 감성터지는(;;) 제목들. 솔직히 내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내 취향에 잘 맞는 '제목'은 오히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같은…허허;;;;;)


'길 위에서 배운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인데, 사실은 길 위에서 만난 말들, 내 안의 말들, 길 위에 두고 온 말들이라는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걸 '배운 말들'로 묶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변종모씨가 여행을 하면서 느낀 생각의 편린들이 70여개의 단어들로 정리되어 있다. 하나의 단어와 그 단어에 관한 아포리즘, 그 단어와 관련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여행지에서의 감상이 차례대로 나온다. 중간중간 그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을 보면서 쉬어갈 수 있는 책. 처음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는 것도 좋겠지만, 촤라락 넘기다가 '어 이거 괜찮다' 싶은 부분을 먼저 읽어도 될 것 같고, 사진을 먼저 본 후 글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1장을 읽을 때는 이 사람 참 외롭구나, 외로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구름을 헤치고 구름을 밟고 걷다 여기 돌아왔으니 예서 못 지날 길이 내게 무슨 문제인가(24쪽)라고 말하다가도 계속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의 모든 허상보다 조금 더 진짜인 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세상 어디로든 나서고 싶었다…(중략) 나도 나의 진짜를 만나야겠기에, 나만이 나를 보듬을 수 있기에, 당신을 용서해야겠기에,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겠기에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야겠기에(41쪽)라는 문장은 반어처럼 읽히기도 했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너를 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그만큼 너를 잊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는 깊은 탄식 같았달까. 도대체 얼마나 괴로운 이별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그리워하나 싶었다. 조금은 지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뒤로 갈수록 편안히 읽을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신에게 선물해 준 소중한 순간들, 귀중한 깨달음들은 읽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 기억을 혼잣말로 남겨놓지 않고 독자에게 대화처럼 전송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앞부분에서의 '너'가 작가만의 너, 작가가 사랑했던 너, 작가와 이별했던 너, 그런 개인적인 '너'라면, 뒷부분에서의 '너'는 작가가 걸었던 길을 언젠가 걸을 수도 있고 지금 걷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영원히 안 걸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쨌던 작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듯 스스로의 삶을 뚜벅뚜벅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 같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쿠바에서의 만남을 묘사한 '나눔'이었다.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중년 남성에게 눈인사를 건네자 그가 자신에게 시가를 권하며 대화를 시작했던 일. 시가를 받은 작가가 드릴 게 없다고 말하자 "당신은 이미 귀한 시간을 내게 나눠주고 있질 않소? 시간이란 꽤 귀중한 거죠. 특히 나 같은 낯선 자에게 선뜻 내 주는 이런 시간 말이오! 이 시가보다 더! 그러니 나와 시가나 한 대 피웁시다."라고 말한 그 중년 남성은 인간과 인간이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듯 했다. 작가가 이어 쓴 이 문장들도 마음에 들었다.


나산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쌓은 빚을 하나하나 도로 갚아나가는 것.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사는 일이므로. 더구나 사람이 가진 것 중 가장 협소한 것인 마음은 또 거기 사랑은 이상하게도 마음먹기에 따라 아무리 줘도 전부를 퍼내도 바닥나지 않는다.  (313쪽)


책을 읽고 나서 작가에 대해 검색해 보다가, 출간 기념 북토크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http://ch.yes24.com/Article/View/25329). 여행작가로서 10년을 맞아 즐겁고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는 말을 읽고, 앞으로의 그의 책은 이 책보다 더 좋을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행을 가기 전이나 갔다온 뒤나 변하는 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굳이 없어도 될 때'면 여행을 가는 그가, 자신이 '한국에 굳이 없어도' 된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지도 궁금해졌다. 더 좋은 글로, 더 마음을 울리는 책으로 다시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6-24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16:49   수정 | 삭제 |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