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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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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합니다!


삶에 찾아온 큰 변화를 예상보다 쉽게 받아들이고는 계획보다 많이 아파하던 작년 2월 즈음. 조원희 씨가 진행하던 EBS 북카페를 팟캐스트로 듣고 있는데 시인 김소연 씨가 '마스다 미리'라는 만화가를 추천했다(그때의 방송 주소는 http://bit.ly/1qM3uWA). 김소연 씨가 읊어준 책 제목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하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였고,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그냥 그러고 살아도 별 불편 없으면 괜찮은 거지 그런 걸 누구한테 뭐하러 물어봐-_-'였다ㅋ) 만화니까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었고, 김소연 씨가 추천하는 책들이 대부분 마음에 들었으므로 더 생각하지 않고 주to the 문.


처음으로 주문했던 알라딘의 '마스다 미리 여자공감 3종세트' 제 1차본ㅋㅋㅋ 이렇게 알라딘은 나를 삥뜯기 시작하고…


결과는 뭐…마스다 미리 언니의 노예가 되었다-_- '흠 제목도 별로였는데 그림도 크게 예쁘진 않군'하며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끝날 때 보니까 내가 울고 있는거다? 대단한 말도 아닌데 되게 위안이 되는 거다?? 특출난 데도 없고 롤모델로 삼을 구석도 전혀 없는데 수짱이 엄청 좋은거다??? 맨 마지막에 주말엔 숲으로를 읽을 때는 페이지 넘기는 게 너무 아까운 거다???? 그때부터 나는 미리 언니의 책을 여기저기 선물하기 시작했고 새 책이 나올 때마다 가을의 다람쥐처럼 사모으기 시작, 이봄에서 주시는 온갖 이벤트 물품을 획득하였다하하하. 당연히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도 나오자마자 수짱 파우치와 노트패드를 받고야 말겠어!!!!!!!!!라며 주to the문.


언젠가 세트로 쓰고 말리라, 수짱 에코백&파우치. 사실 틴케이스는 세 개, 노트패드는 두 개 있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이 먹는 이야기, 미래의 나에게…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제목을 잘붙임?ㅠㅠ'하며 감탄한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 '아, 난 어른 되기 싫어!' "에이, 제가 무슨 어른이에요?" "야, 어른 같이 그러지 마라!!" 등등의 말을 내뱉으며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면 낯선 어른 하나가 서 있는 걸 발견하게 되지 않나? 그렇게 어른이 되어 버렸고 심지어 지금은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담담하게, 때로는 부끄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아, 그래, 이렇게 어른이 되어 버린 거였어, 그리고 앞으로 더 어른이 되어야 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해 주었다. 내 것이기도 하고, 몇 년 안에 닥칠 상황이기도 하고, 수십 년 후에 만날 미래이기도 한 이야기들.


한 세대 정도 위인 여성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아 왜이렇게 뭔가 의미를 주려고 해…;;;' 싶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여성으로 살려면 이런 게 필요하니까 빈둥대지 말고 열심히 해!' 라든지, '교양 있는 여성이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라든지,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사로잡히지 말고 열심히 연애하고 즐겁게 친구 만나고 충분히 문화 생활 하고 직장에서 제 역할 해내고 자신만의 시간도 가지고 미주알고주알…' 같은 잔소리들-_- 하지만 미리 언니의 글은 그렇지 않다는 게 가장 좋았다.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귀여운(!) 아는 언니와 마주앉아, '어제 난 이랬고 저랬고 그랬는데 너도 그랬어? 이야 신기하다!!' 같은 얘기를 주고받는 기분?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사소하고 쓸데없는 얘기들로 꽉찬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사소하고 쓸데없는 것이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 없겠는가. 내 삶이 중요하고 쓸데 있는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으으으…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꾸밈 없음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있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려 하지도 않고, 교훈 같은 걸 마지막에 집어넣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큰 장점이라고. 그냥 '언젠가 43세가 될 여성'에게 '43세를 미리 살아 본,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하는 여성'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꾸밈 없이 들려주고 있다는 느낌. 작은 그릇에 소담하게 담은 하얀 쌀밥 같았달까. 몸에 좋으라고 이런저런 잡곡 많이 넣은 밥도, 기름친 볶음밥도, 밥알끼리 형태를 잃고 다 붙어버린 죽도 아닌.



애정을 담은 한마디가 잔뜩 쌓여 있다고!


엄마의 따뜻한 쌀밥 앞에서 '이건 너무 평범해서 싫어!'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쌀을 밥으로 만들기 위해 엄마가 기울인 사랑이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걸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소한 이야기로 가득찬 책 속에도, 삶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한마디들이 가득 들어 있다. 일상적이지만 유쾌하고 따듯한, 그래서 괜히 뭉클해지는.


"축하합니다! 많이 드세요, 물론 오늘의 메인은 40세 생일입니다! 결혼은 몇 번이고 할 수 있지만, 40대에 돌입하는 것은 단 한 번!"

이러고 화제는 다시 나이 먹는 얘기로.

"요즘 말이에요, 갑자기 흰머리가 늘었어요."

"어머나, 나도 안 보이는 데는 꽤 났을 지도 몰라요."

어째서 매번 만날 대마다 이런 얘기로 꽃을 피우는 걸까?

분명 나이 들어가는 자신이 새로워서라고 생각한다. 새로 나온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이제 젊은이가 아닌 '새로운 자신'을 얘기하며 노는 게 아닐까.

- p.129, <나이 먹는 이야기> 중


친척집에서 열이 났을 때 차가운 수건을 이마에 올려주던 아주머니의 파 냄새 나던 손, 자전거를 타다 굴러서 울고 있을 떄 도와준 마침 지나가던 언니의 다정한 목소리. 아버지나 엄마뿐만이 아니라 많은 바깥세상 사람들이 어린 내게 마음을 써주었다. 그런 많은 '애정이 담긴 한마디'의 힘이 어른이 된 내게는 가득차 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 뭐가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pp.148-149, <애정이 담긴 한마디> 중 


수짱 시리즈를 순서대로 늘어놓고 수짱이 나이 먹는 모습을 따라 읽으며, '삶이 계속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던 그 시간이, 이 책을 읽는 시간에도 이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한편으론 분명 부담스럽고 괴롭고 힘든 일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삶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감사한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게 한다. 


초등학교 때 쉬는 시간./ 여자아이들끼리 집에서 갖고 온 예쁜 색종이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런 짓을 하며 즐기고 있다.


20대 때는 건방진 소리를 하면 재미있어 해주는 어른들이 많았다. …나이가 한참 연상인 '업계 사람들이 빈정거리듯 말하면,/ "자신은 있습니다! 제 눈에는 미래라는 글자가 반짝반짝 빛나 보입니다!"

아이고, 뻔뻔스럽게 잘도 그런 소리를…….


새해가 되면 나는 또 무의미한 얘기를 할 테지. 하지만 내년에도 역시 누군가와 중요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일년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생각한다.


어른 역할이란 뭔가 시시하다. 그러나 내 차례이니 해야 한다.


중간중간 들어 있는 마스다 미리의 그림은 이 유쾌함과 따뜻함을 확 증폭시킨다. 내 몸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남들의' 애정을 담은 한마디'를 떠올리며 가슴벅차 하다가도, 나도 수짱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어!! 라고 부러워할 수 있게 한다.




눈을 뜨면 또 미지의 하루, 잔뜩 있습니다!


조금 걱정되는 건, 마스다 미리의 '신간'이 요즘 너무 자주 보인다는 거다. 이 출판사 저 출판사에서 쉬지 않고 와르르. 이번 책의 날개에 있는 지은이 소개의 내용처럼 '마스다 미리가 수많은 공감만화와 에세이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 3-40대 여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너무 흔하게 소비된다는 기분에 좀 찝찝하기도 하다. '3-40대 여성이나 좋아할 그렇고 그런 이야기'처럼 타입화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마스다 미리와 수짱을 아끼는 독자의 마음으로, 부디 마스다 미리의 책이 유행처럼 소비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한때 좀 팔리다 휙 사그라드는 책이 아니라, 오래 읽히고 깊이 남는 친구 같은 책이 되길 바란다. 아직 읽지 못한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잔뜩 쌓여 있는 미지의 하루처럼, 앞으로 만나게 될 미리 언니의 책들도 잔뜩 쌓여 있기를!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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