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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평점 :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김중혁소설가님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먼저 좋아했다. 먼저 읽은 건 소설이었다. 펭귄뉴스를 언제 읽어봐야 하는데…하다가 악기들의 도서관을 먼저 읽었고, 좀비들을 읽었고, 그리고 나서야 펭귄뉴스를 읽었다. 좀비들은 몇 개의 단편이 합쳐진 것 같은 장편이었고, 악기들의 도서관은 한 장편이 몇 개의 단편으로 나뉜 듯한 소설집이었다. 펭귄뉴스는 (죄송합니다) 다른 책들보다 덜 마음에 들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그랬다.
이렇게 세 작품을 다 읽고서 남은 건 아쉽게도 아쉬움이었다. 싫지는 않은데 막 좋지도 않은. 나쁘진 않은데 팍 꽂히지도 않는. 그런 기분으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을 읽었다. 처음엔 김연수소설가님을 연모하는 마음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의외로 김연수소설가님의 유머만큼 김중혁소설가님의 유머도 내 코드에 잘 맞는 거다(이거 참 호칭이 너무 길다. 김중혁소설가님을 따라 김연수소설가님=K2, 김중혁소설가님=K3으로 써야겠다. 약간 아웃도어 상품 얘기 같아지겠지만ㅋ). K2님이 유려하면서도 능청스럽게 유머를 구사한다면, K3님은 약간은 소심한 듯하면서도 엉뚱하게 툭툭 던지는 말로 독자를 웃긴달까. 여튼간 나는 육성으로 끼득끼득 낄낄낄 으하하하하하!!!!! 하고 웃으며 그 책을 읽었더랬고, 그 이후로 K3님에 대한 애정을 이전보다 더 깊이 가졌더랬다.
K3님의 에세이 3종세트 - 대책 없이 해피엔딩, 뭐라도 되겠지, 그리고 모든 게 노래!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이후 발간된 K3님의 소설들은 이전의 소설들보다 훨씬 더 좋았고-좀 우스운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으며 우와! 김중혁!! 김중혁!!! 김중혁!!!! 하고 기뻐했었다ㅋㅋㅋㅋ-심지어 책날개에서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진까지도 이전의 사진보다 마음에 들었다(이거 꼭 찍어야 한다니까 찍기는 찍는데 사실 별로 찍고 싶지는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찍으면서도 계속 찍고 싶지 않…투덜투덜…하는 듯한 느낌의 표정이랄까). 나는 K3님의 소설과 에세이를 모두 아끼고 기대하는 독자로 탈바꿈했다. 뭐라도 되겠지, F1/B1, 그리고 이번에 읽은 모든 게 노래까지.
대책 없이 해피엔딩에 수록된 K3님의 자화상 & 모든 게 노래 책날개에 실린 K3님의 (심드렁한 표정의) 사진ㅋ
노래를 잊는 순간, 우리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돼 있다.
뭐라도 되겠지를 읽기 전엔 '뭘로 날 웃겨주려나'라고 기대했다. 그 다음이 '이번엔 또 어떤 그림을 그렸으려나'였고ㅎ 이번엔 좀 달랐다. 모든 게 노래에 수록된 글이 씨네21에 연재될 때부터(아니다 한겨레21이었나? 둘 중 하나였는데 아오ㅠ) 듬성듬성 읽어왔기에 이번엔 재치보다 감성이 터지는 책일거라고 예측했기 때문. 내가 좋다고 생각한 음악을 칭찬하시는 글도 여러 번 읽은 터라 글의 소재가 된 음악들이 가장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몇 명이나 나올까? 모르는 뮤지션은 몇 명이나 나올까? 따위의, 1차원적인 호기심ㅎㅎ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경험과 K3님의 경험들을 비교하며 책을 읽게 됐다. 책에 실린 MD 플레이어의 그림을 보고 정말이지 오랜만에 책상 서랍 속에서 자고 있던 MD를 꺼내 보았다. CD 플레이어의 그림을 보고 '어 나도 디스크맨인데!!'하면서 즐거워했다.
CD플레이어든 MD플레이어든, 결국 남는 건 '기계'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K3님의 다른 에세이, 특히 뭐라도 되겠지에 실린 글들과 모든 게 노래에 실린 글들을 비교해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모든 게 노래만 읽고 아직 뭐라도 되겠지를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특히 강추할 만하다. 마음산책에서는 K3님의 책을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김중혁 에세이 세트'를 출간해 주시기 바랍니다ㅋㅋㅋㅋㅋㅋㅋ
모든 게 노래에 실린 라디오 그림. 그리고,
뭐라도 되겠지에 실린 라디오 그림. 위의 그림보다 좀더 투박하고 정겹다.
롤링스톤즈보다 비틀즈를 좋아한다는 말에 반가워하다가도 퀸의 노래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는 말에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꼈고(프레디머큐리도 서운해할거야ㅠㅠ) 한희정과 이아립과 오지은과 야광토끼와 루싸이트토끼가 이어 나올 때 괜히 싱글거리다가 클래식과 힙합과 아이돌 얘기에서 이유 없이 흠칫 했다. 다양한 장르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즐겁게 살자'는 삶의 모토를 실천하고 있는 K3님이 부럽기도 하고 멋져보였다. '어떤 노래 좋아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 뭐 그냥…되는 대로 들어요…'라고 대답한다만 사실은 힙합 안듣고 클래식 안듣고 아이돌 음악 안듣고 이른바 최신가요라 불리는 노래들은 거의 다 안듣는 편향적 리스너다보니ㅠㅠ (솔직히 남들이 '인디음악'이라 하는 그 음악들을 성실하게 챙겨 듣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다. 너무 많은 뮤지션들이 생겼다 없어지고 없어진 줄 알면 다시 나타나고…)
K3님이 언급하신 노래들만큼이나 K3님의 목소리가 더욱 익숙한 독자라 그런지(나는 예에에전에 문학라디오 '문장의 소리'를 진행하실 때부터 지금 빨간책방의 적임자 역할을 하고 계시는 때까지, 꾸준히 K3님의 방송을 청취하고 있다), 눈으로 활자를 따라읽어내려가는데 K3님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주머니에 접어 넣어 둔 탓에 꼬깃꼬깃해진 메모지를 주섬주섬 펼쳐 거기에 적혀 있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주는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
분명 K3님은 조용한 카페에서 시크한 표정으로 맥북을 펼쳐 놓고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셨을텐데 왜 눈앞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런 거지?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K3님의 글 때문이라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렸다. 트렌디한 소재를 세련되게 다루시는데도 묘하게 복고적이고 소박한 느낌이 묻어난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기 때문인 듯.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내시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K3님이 글 읽어 주시고, 글에 언급된 노래 나오고, 다음 글 읽어 주시고, 다음 노래 나오고…아 물론 음악 저작권법 때문에 절대 남는 장사가 되진 않을 것 같지만;;;;
닉 혼비의 글을 읽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내가 쓴 글 같아서 놀랄 떄도 많다.
K3님이 닉 혼비의 글을 읽으며 깜짝깜짝 놀라시듯, 나 역시 K3 님의 글을 읽으며 깜짝깜짝 놀랐다. '어 나랑 비슷해!'하고 혼잣말을 내질렀다. 좋아하는 보컬의 특성, 하와이의 '쎄라비'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이아립의 얼굴, 해가 지고 노을이 질 때 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만나던 순간들, 더이상 챙겨 듣고 챙겨 보지 않는 명작들/걸작들 이야기, 어찌 이렇게 모였을까 싶은 공연장의 관객들…에 대한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보컬은 대부분 '무심한 목소리'다. 이게 참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감정이 없다기보다는,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나쁜 것에 경계를 두지 않는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감정을 애써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던져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도무지 설명하기 힘들지만(게다가 이런 비교 위험하고 가끔 기준이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롤링 스톤즈보다 비틀스를 더 좋아하고, 재니스 조플린보다 니코를 더 좋아하는 것도 다 이런 취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P.38)
희한한 것은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아립의 얼굴이 허공에 보인다는 거다. 목소리가 어찌나 시각적인지, 조금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아립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P.101, '조금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 이아립의 표정!!!!!!!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아 나 그거 뭔지 알아!!!!'라고 누구나 말할 것 같은 그 표정!!!!!!!)
얼마 전부터는 '걸작 따위 지나갈 테면 지나가버려'라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므로, 수많은 명작들이 나 모르게 세월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모두들, 굿바이! 동시대 작품들을 부지런히 챙겨 읽고, 보고, 듣는 건 참 재미난 일이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 건져낼 수는 없다. 그랬다간 허리 부러진다. (P.213,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너와 내가 만나지 않은 것도 너와 나의 운명'이라 되뇌이며 수많은 동시대의 명작들을 술술 흘러넘겨버리고 있다하하하…'문화인이라면 이 정도는!' 따위의 태도는 버린 지 오래. 나도, 굿바이!)
홍대 거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면서 저렇게 많은 공연을 누가 다 보러 가나 싶었는데, 막상 공연장에 가보면 늘 사람들이 많았다. (P.226, 공연 갈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락페 갔을 땐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락큰롤을 외치는데 왜 tv에는 아이돌만 나오는 것이며 왜 인터넷에서는 이 밴드들을 듣보잡 취급하는 거야?!?!'하는 생각도 함께. )
우린 서로 다들 잘 아니까. 소설 속 시간을 함께 겪은 사람들이니까.
K3님이 2002년의 신촌에서 롤러코스터의 노래를 듣던 순간을 회고하는 글을 읽었을 때는 어, 이건 좀…하며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2002년이면 내가 김중혁이라는 소설가 및 에세이스트 및 방송진행자 및 카투니스트 및 전 기자이자 방송 프로듀서에 대해 전혀 몰랐을 때인데, 이 시기 내가 겪었던 일과 그가 겪었던 일이 그림자처럼 겹쳐진다는 게 신비로우면서도 놀라웠고 묘하게 싸한 느낌도 들었다. 비슷하지만 다르게, '나'가 누구인지에 따라 조금은 왜곡된 모습으로.
2002년의 어느 날, 나는 신촌을 걷고 있었다. 생각 없이 신촌을 걷던 내 귀에, 너무나 익숙한 조원선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비트는 강했지만 노래는 슬펐다.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곁을 지나갔고…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그 순간, 이상하게 나는 슬펐다. 사람들의 걸음걸음이 모두 슬펐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각자의 방향으로 정신없이 사라져가는 게 슬퍼 보였고, 절대 알 수 없을 그들의 삶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롤러코스터의 <Last Scene>이었는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신촌의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PP.148-149)
나도 그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이외의 다른 것을 이야기하지도 않던 2002년의 봄과 여름,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던 야구를 보고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들었다. 지금은 없어진 신나라레코드를 지날 때,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향뮤직 앞을 지날 때, Last Scene을 들었고, 그 처연한 목소리에 어쩔 줄 모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신나라레코드 앞 횡단보도의 불이 바뀌어도 보지 못하고. 향뮤직을 지나 학교로 가야 하는데도 멍하니.
그 해의 내겐 많은 게 복잡했고 어려웠고 잘 보이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안고 나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힘겨워서, 내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내가 남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 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웃어도 슬프고, 떠들어도 슬픈 때였다. 물론 이런 얘기,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감수성 과잉의 부산물이자 민망한 기억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다 거울인 셈이다.
그 민망한 감수성 과잉의 시기를 떠올려도 더이상 슬프지 않을 수 있는 건, 그때의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것보다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인 듯 싶다. K3님은 이해를 믿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나는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머리로 이해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어차피 난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며 애초부터 가능성을 거둬 버리는 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 두려움과 차가움에서 비롯할지도 모른다. 그래, 그 상황에선 그럴 수 밖에 없었어, 하고 그 때의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해할 수 없어도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른다만, '누군가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위로해 주는 것'과 '누군가를 이해하여 위로해 주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 않나.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위로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더 이해하고 싶어서,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도 더 이해하고, 나와 멀리 있는 사람들도 이해하고, 나와 평생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까지도 이해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읽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헤매면서, 내가 가진 주머니의 입구를 더욱 크게 열어놓는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도, 시도, 영화도, 연극도, 드라마도, 결국은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사람은 자기의 노래를 부르는 법이고, 결국은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노래니까, 노래를 듣는 거다, 나와 너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서.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해가 끝난 후에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위로를 하든지, 연대를 하든지, 어깨를 곁든지.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이해조차 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자기 멋대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도 다 이해했으니까 됐어, 라고 손을 놓아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몰라서 그렇지, 자세히 둘러보면, 모든 게 노래다.
책을 다 읽은 후 남은 욕심 두 가지 : 1. '가을과 겨울에 어울릴 만한 노래'와 대응되는 '봄과 여름에 어울릴 만한 노래'도 실어 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2. 주간지에 연재된 글을 묶은 책이다보니 연재 당시 새 노래를 발표하지 않았거나 공연을 하지 않은(또는 했지만 K3님이 그 공연에 가지 못한) 뮤지션들 상당수가 빠져 있어 아쉬웠다. K3님이 흥분해 상기된 얼굴로 좋아하는 노래들과 좋아하는 뮤지션들에 대해 써내려간 글을 읽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모든 게 노래 2탄이 나와야겠지? '김중혁이 추천하는 뮤지션 500명' 같은 부제를 달고ㅎ
노오란 은행잎을 떠올리게 하는 책 표지 때문인지 가을에 읽기 좋은 책이다 싶었고, 그 때문인지 자꾸 (책에도 언급된) 가을방학의 음악이 떠올랐다. 가을방학의 음악과 선명한 노랑이 은근히 잘 어울리는 듯. 계피의 담담하지만 사람을 울컥 하게 만드는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읽고 싶다. 완전한 겨울이 오기 전에.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