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다 읽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원숭이와 게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 본 것이다. 책날개에는 '일본 고전 민화'라고 되어 있는 그 이야기에 대해 알아야만 이 소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이타의 표현대로 후련해서 좋을 수도 있지만, 사와 할머니의 표현대로 독이 들어 있는 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다. 


옛날에 원숭이와 게가 각각 감 씨와 주먹밥을 주웠는데, 게의 주먹밥에 욕심이 난 원숭이가 게에게 둘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주먹밥을 얼른 먹었다. 게는 감 씨를 심었고, 싹이 나고 감나무가 쑥쑥쑥쑥 자라나더니(…아무래도 동화다 보니-_-)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그 광격을 본 원숭이는 감에 또 욕심이 나 감나무 위에 올라가서 잘 익은 감을 쳐묵쳐묵. 아래서 바라보던 게는 원숭이에게 감을 좀 달라고 했고(감을 너 혼자 다 먹으면 안된다고 했다고도 하고. 얘기마다 조금씩 디테일이 다르다) 원숭이는 여봐란 듯이 딱딱하고 덜 익은 감을 게에게 던졌다. 게는 그 감을 맞고 죽어버렸고, 죽은 게가 배고 있던 새끼들이 나와 어미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른 여러 약자들과 힘을 합쳐 결국은 원숭이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 이야기가 이 소설의 모티브라면, 결국 이 소설에서 원숭이는 누구인가. 그리고 게는 누구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 준페이라면 게는 준페이일텐데, 준페이를 게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진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준페이가 맞긴 한가…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찾아 가는 과정이, 내게는 이 리뷰를 쓰는 것일 테다.



모두에게 기분 전환이 되는 남자 & 장래에 누군가 한 사람을 거물 정치가로 키우게 될 여자

이 소설은 3막 4장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1막에서는 미나토 게이지의 뺑소니(를 가장한 살인) 사고를 목격한 준페이가 그를 협박해 한 탕 하기로 결심하고,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도모키와 손잡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국 술집에서 일하는 준페이와 호스트클럽에서 일하는 도모키 둘 다 '가게에서 촉망받을 만한' 직원은 영 아닌 상황이라 미나토 게이지에게 돈을 뜯으려 하지만, 둘다 영 어설프기 짝이 없다-_- 그 과정에서 미나토 게이지의 매니저인 유코가 등장하고, 준페이와 유코의 주변 사람들이 소개된다.


2막에서는 분명히 협박자와 협박당하는 자로 만난  준페이와 유코의 위치가 이상하게 역전된다. 뺑소니 사고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지면서, '어쩌다보니'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가 된다. 그러던 차에 도모키의 아내인 미쓰키가 TV에 출연하여 나름 유명세를 타게 되고, 매니저를 하겠다고 의욕에 불타던 도모키는 유코를 만나 조언을 듣기도 한다. 1막에서는 대립 관계였던 둘이 묘한 친분 관계를 맺게 되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 쓰잘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 그러다 준페이가 미나토 게이지의 사고와 관련해 괴한들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생기고, 준페이는 유코의 명령에 따라 고향인 아키타로 돌아간다.



바텐더 출신 꽃미남 VS 베테랑 후보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3막이다. 고향으로 돌아간 준페이는 지역에서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며 즐겁게 지내던 차에 유코를 만나, 자신이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늘 도쿠다라는 거물 정치인에게 패하던 민생당에서 아키타 2구의 후보로 자신을 공천하는 것. 1막과 2막에서 등장했던 준페이와 유코의 주변 사람들-준페이의 매니저가 되는 도모키, 그의 아내 미쓰키, 준페이가 일하던 한국 술집의 마담 미키, 미키의 남편 고사카, 유코가 매니저를 했었던 첼리스트 미나토 게이지, 그의 조카 도모카, 그의 할머니 사와 등등-이 총출동해 준페이의 승리를 돕는다. 그리고 준페이는, 놀랍게도, 당선되어, 홍백가요전이나 한일전 축구만큼이나 국회 중계가 시청률이 올라가는 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준페이를 위해 발벗고 나섰던 이들 모두 불행을 잘 극복하여 그야말로 '그래서 모두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결말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누구? 게는 누구?

앞부분에 언급했던 '원숭이와 게' 이야기를,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 혼자서는 미약한 존재들이 모여 서로를 도움으로써 불의한 강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라고. 여기서 '혼자서는 미약한 존재들'이 게와 그를 돕는 것들이라면, 원숭이와 게의 전쟁에서는 준페이와 유코를 비롯해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일테다. 용돈벌이로 3:2 그룹난교를 찍은 AV에 출연한 적도 있는 한국 술집 바텐더, 시골에서 올라온 술집 호스티스와 호스트 부부, 동생의 뺑소니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아버지를 둔 미대생, 거물 정치가를 키울 꿈을 꾸고 있지만 지금은 첼리스트의 매니저를 하고 있는 여자, 잘나가는 첼리스트지만 뺑소니(가 아닐 수도 있는) 사고를 낸 남자…하나하나만으론 대단치 않아 보이는 인물들 아닌가. 그러나 이들이 함께 힘을 합친다면,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역설하는 거겠지. 미키의 말마따나 딱히 누구한테 괴롭힘을 당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보복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속상한 일쯤은 있게 마련이고, 그게 자잘한 일이라며 참고 살아가는 게 세상이겠지만, 가끔씩은 그 속상한 일을 참지 않고 싶어지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함께 해보라고, 연대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희망을 찾아 보라고, 그것이 아주 조금이나마 삶의 숨통을 틔워줄 거라고, 얘기하고 싶은 거겠지.


그런데 말이다, '근데 원숭이는 누구지?'라는 물음이 자꾸 나를 붙잡는다. 처음에는 불법 정치헌금을 받은 사오토메 오사무가 원숭이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사오토메 역시 결국엔 준페이를 도와주었으니 원숭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숭이라 할 만한 사람으로 남는 건 도쿠다뿐이다. 사와 할머니가 몇 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못된 놈, 못난 놈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던 국회의원. 자신을 필사적으로 보필해 국회의원으로 만든 유코의 아버지에게 뇌물수수 죄를 뒤집어씌우고, 유코의 어머니와 유코를 지키기는 커녕 헌신짝처럼 버려 버린 자. 그가 유일한 원숭이 후보다. 그렇다면 준페이가 게인가? 유코가 게여야 하는 것 아닌가? 도쿠다와 직접 마주 싸울 순 없으니, 그에 대적할 만한 또다른 정치인을 아버지처럼 길러내는, 그래서 아버지의 복수를 갚는, 아기 게.


그렇다면 말이다, 준페이가 당선된 것은 결국 유코의 복수인데, 그것이 정말 약자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준페이 입장에서는 서른 살의 술집 직원에서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중의원으로, 천지개벽(!!!!)이라 할 만한 계층 이동을 한 셈이니 성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페이가 도쿠다를 이기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는 게 단순히 1:1로 능력을 겨루어 승자와 패자를 나눌 수 있는 문제인가. 어떻게 보면 준페이가 도쿠다의 세계에 입성할 수 있게 허락받은 것 아닌가. 즉 미약한 존재였던 게가, 원숭이 나라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음으로써, 또다른 원숭이가 된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이 이야기가 큐트&럭키한 준페이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시원시원한 사건 전개를 보여준다 할지라도, 준페이가 공천받은 방법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나는 주저하게 된다. 갖지도 않은 문서를 갖고 있다고 거짓말하여 공천권을 받은 계약이라니. 물론 '복수를 할 때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방법으로 공천권을 받고 준페이가 당선된 뒤에는 '결국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계속 있게 된 히로시'가 남지 않는가. 좋은 결과를 위한 히로시의 고귀한 희생인가? 아니면 준페이의 당선을 위해 히로시가 자신의 방식으로 도와준 것인가? 둘다 너무하는데-_-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옳은 것인가?

더 심각해지는 건 유코의 집념어린 자아를 맞닥뜨리는 장면에서다. 유코는 말한다 :  남을 속이는 인간에게도 그 인간 나름의 가치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남을 속일 수 있는 거라고. 결국 남을 속이는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속아 넘어간 쪽은 자기가 정말로 옳은지 늘 의심해 볼 수 있는 인간인 거죠. 본래는 그쪽이 인간으로서 더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세상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인간은 아주 쉽게 내동댕이쳐요. 금세 발목이 잡히는 거죠. 옳다고 주장하는 자만이 옳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결국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므로, 남을 속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인간에게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는 거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과 자기가 옳은지 의심하는 사람 중 인간으로서 더 나은 건 후자이지만, 후자는 금세 세상에 발목이 잡힌다는 거다. 자기가 옳다고, 자신의 행동이 맞다고 큰소리내는 사람의 말을 세상은 들어 주니까. 문제는 마지막 문장이다. '옳다고 주장하는 자만이 옳다고 착각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결국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옳다고 주장해서 세상이 나를 옳다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것'인가. 내가 옳지 않더라도 옳다고 주장하면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옳지 않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내가 하는 행동에 나름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는 틀리다고 말하지만 끝까지 자기는 옳다고 생각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해 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바로 생각나던 게 4대강 사업이었다!). 힘을 가진 자가 '자기가 옳다는 믿음'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세상을 망쳐버린 모습을 너무 자주 목격한 나로서는, 그런 유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그리고 그 믿음이란 게 게들이 게들의 정의를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게들이라면 응원해 줄 수 없겠는데…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잘됐다, 잘됐어!

반드시 준페이를 이기게 할 거야. (유코)

준페이 씨에게 정권을 잡게 해 주세요. (도모키)

이 젊은이를 키우는 일은 우리 몫일지도 모른다.

준페이 같은 사람이 정말로 국회의원이 된다면 왠지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지 않아? (미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비교적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사실 부러움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에 젊은 배우를 연상시키는 꽃미남 국회의원이 당선된다고 해도 부럽겠지만(-_-*) 그보다 더 부러운 건 술집 직원 출신의 서른 살 청년이 국회의원으로 뽑힐 수 있는 세상이다.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별 것도 아니어 보이는 인간들이 모이고 모여 이렇게 또 별 것도 아닌 인간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미쓰키나 미키가 준페이를 처음 만났을 때 별 이유도 없이 호감 내지는 친근감을 갖게 된 것 역시 본능적으로 사람을 끄는 준페이의 매력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인을 할 수 있는 거겠지. 도모키가 미쓰키의 매니저를 하는 것도, 후일 준페이의 매니저가 되기 위한 준비 같은 것 아니었을까?)


일본의 상황이 한국의 상황과 다르다는 거 알고, 이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는 거 알고, 저렇게 준페이가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뭐 대단하게 준페이네 동네가 좋아진 것도 아니라는 거 안다. 그렇지만 작년 총선과 대선…더 크게 보면 그 전의 대선과 지방선거…등등 여러 차례의 선거에서 열패감과 자조감을 맛봐야 했던 내 입장에서는 한나절의 짜릿한 오락거리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준페이의 연설을 기다리는 장면에서는 재작년 서울시장 재보선 때 박원순의 유세를 기다리던 때가 떠올랐다. 미키는 이제 거리낌도 없이 사람들의 어깨를 헤치며 앞으로 또 앞으로 걸어갔다. 앞으로 걸어간다기보다 무언가에 이끌려 가는 느낌이었다…(중략) 백 명의 군중이 아직 아무도 올라서지 않은 선거차를, 마치 거기에 자기들의 '행복한 모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라는 부분은, 아, 내 감수성이 촌스러워서 이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좀 뭉클한 거다ㅠㅠ 그리고 준페이가 당선됐을 때에는, 묘하게 카타르시스 비슷한 게 느껴지기도 했고. 나도 작년 겨울에 원하는 후보가 뽑히는 경험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짜르르르 지나가기도 했고. 


그리고 이 소설에 흥미를 더해주었던 인물은 바로바로 사와 할머니ㅎ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준페이가 당선되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진 않았지만 좋은 꿈을 꿔 준(준페이와 지역 노래방 대회에서 듀엣으로 노래해 전국대회 출전권을 얻는ㅋㅋㅋㅋ 이 꿈 엄청 상징적이다!!!!) 할머니. 남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도시락도 열심히 먹고 "먹는 거 말고 할 일도 없잖여."라 말하는 할머니. 나약한 말을 쏟아 놓는 나오코에게 "그랄 때일수록 맴을 단단히 먹고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해야 헌다. 모처럼 시골까지 왔으니께 주위 산이라도 바라보면 어떻게든 되겄지 싶은 맴이 들 거여."라 말하며 손을 붙잡아주는 할머니. 아이들에게 유아원에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며, 이 아이들이 모두 행복해지면 좋겠다,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언젠가 마지막에는 꼭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가가는 할머니…너무 귀여운 캐릭터. 각 막의 마지막마다 사와 할머니의 에피소드가 에필로그처럼 등장하는 덕분에, 마지막을 훈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요시다 슈이치가 사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을 쓴다면, 이 책보다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