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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말까지 다 읽은 후, 책 표지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꼼꼼히 살펴 보았다. 분홍색 종이 위에 그려진 두 남자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채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남자와 그 옆에서 북을 치고 있는 상투머리의 남자. 책 속에서 신통이 책을 읽을 때 고수를 데리고 다녔다는 구절을 본 기억은 안 나는데. 옛날에 전기수들이 고수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나? 싶어서 검색해 보았더니 전기수 중에서는 고수나 소리꾼과 동행하며 자신이 읽는 이야기의 흥을 더하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건 신통이고, 이건 서일수로구나, 하며 표지의 두 남자를 다시 보니 괜히 친근감이 느껴졌다. 책을 읽기 전엔 그냥 별 의미 없는 남자 둘의 그림이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보니  파란만장한 삶을 산 두 남자의 그림이었다. 이렇게 없던 의미가 생겼다는 건, 그들의 이야기를 내가 짚어 나가 보았다는 데서 연유하는 것.



그렇다. <여울물 소리>는 이신통이라는 남자의 이야기고, 이신통이라는 남자와 함께 조선 땅을 떠돌았던 서일수라는 남자의 이야기고, 이신통과 서일수가 따랐던 천지도를 세우고 전파한 최씨 대신사-신사들의 이야기고, 그들이 전한 진리를 믿었던 박도희라는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인물들 하나하나의 삶이 모두 다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이 여울물처럼 흘러가고 흘러가고 또 흘러가며 이어지고, 중간에 다른 물과 합쳐지고 천방지고 지방지고 소쿠라지고 펑퍼지며 넓은 데로 나아간다. 조그맣게 시작된 개울이 흘러 흘러 큰 강에 도달하듯이, 작은 여울의 물이 합쳐져 커다란 강물 속에 섞여버리듯이.



이신통은 서자이고, 어릴 적부터 글 읽는 재주를 가졌던 사람이다. 조선 후기의 양반이므로 연애 결혼을 할 리 만무하고, 집안에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하여 딸도 갖지만 그녀에 대한 애정 같은 건 없(다고 본)다. 어릴 땐 총명하다 칭찬도 들었고 나름 공부도 한 듯 하지만 어쨌든 서자이니 제대로 된 벼슬을 할 수도 없고, 매관매직이 당연한 시대에 제대로 된 벼슬 자리도 이미 없다. 과거를 보겠다고 집을 나온 지 일 년이 다 되었지만 집에 갈 생각 따위 없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고 아내가 곧 출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세상의 경난을 배우려고 집을 떠났'다며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참 대책 없고 책임감 없는, 무능한데도 뻔뻔한 양반이다.


그러나 사실 그가 대책 없고 책임감 없는 양반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건 꿈 자체를 꿀 수 없게 했던 시대적 제약 때문이었을 게다.  이신통이 백 년, 이백 년 일찍 태어났더라도 그렇게 일찍 '책임감 없는 길'에 올랐을까? 대원군과 고종이 나라를 지배하던 때,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두고 대립하던 때, 그래서 결국은 일제에게 국권을 찬탈당하도록 역사가 흘러가던 그 때에 어떤 양반이 어떤 야심을 품을 수 있었겠으며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었겠는가.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대에, 그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 테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읽어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을 테다. 자기가 주인공인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테니.


하지만 격변기를 살아가는 개인이란 태풍에 휩쓸려 날아가는 나뭇잎과 같은 것이라, 이신통의 삶 역시 격변기에 휘말린다. 서일수 주변에서 기록된 것을 읽고 세상의 모습을 관찰하던 데서 그치지 않고, 놀이패가 되어 재담을 하고 발탈놀음을 하며 자기 안에 있었던 '말들'을 몸 밖으로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믐이라는 여인을 만나고 연옥이라는 여인을 만나서 사랑다운 사랑도 해 본다. 천지도에 입문하고 신사의 말씀과 행적을 경전으로 쓴다. 신사의 죽음을 수습하고 호서 활빈당의 유사 노릇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진짜 형' 같던 서일수의 죽음을 경험하고 이복형을 죽이며 사랑했던 여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리고 결국, 관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의 무덤을 제대로 만들어준 사람도 없었고, 사랑했던 여인이 낳은 아들을 죽기 전에 한 번 만나보지도 못한다. 덤으로 사는, 죄 많은 인생이, 그렇게 쓸쓸히 저문다.


과연 이신통이라는 한 개인의 삶만 그러했을까. 천지도-동학에 입도하지 않았더라도, 굽이치는 역사의 물결에 자신이 진정 이루고 싶었던 꿈 같은 건 생각도 해보지 못한 채 굴곡진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신사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충실하는 것 말고 없다는 신념으로 천지도인으로서의 삶에 생의 순간을 모두 바치면서 개인적인 삶의 소소한 행복 같은 건 내 것이 아니라고 믿었던 이신통을 보면서, 이 소설은 이신통이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갔던 수많은 이신통들에 대한 이야기로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찌 보면 지금도 끊임없이 이신통들이 만들어지고 있을테고, 이신통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테다. 나 역시 한 명의 이신통인지도 모르고.



결국 모든 게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것이리라. 이신통이 읽고 만든 것도 이야기지만,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갖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역사라는 큰 힘에 나약한 개인의 삶이 빨려들어가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각각의 세계들이 만나고 부딪치고 합쳐져서 더 큰 세계를, 더 큰 세계를, 더 큰 세계를 이루어갈 것이다. 그 세계 하나하나가 또 각각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고...이렇게 이야기가 이어지고, 전해지며, 계속된다는 것이, 결국 사람이 살아왔고 살아가며 앞으로도 살아가리라는 증거겠지.



약간 아쉬운 건 백화/그믐을 제외한 여성 인물들의 삶이 너무 단편적으로 나타나 있었다는 것. 구례댁도, 동이 어멈도, 금산댁도, 자선이도,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 같아서 아쉬웠다. 남성 인물들의 이야기에 비해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사실 처음에 <여울물 소리>를 펼치고 몇 장을 읽지 않았을 때는 연옥이 주인공일 거라고 예측했던 탓에 책을 읽으면서 '어 이상해 아닌가 보네...어 아니네 아니야 아니었어...;'해야 했던 게 결국 아쉬움으로 남은 것 같다. '관기의 딸'이라는 구절을 보고 대충 춘향이 같은 여자인가보다 생각했고, 양반과 결혼한 관기의 딸이 유랑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아니면 남편이 유랑하러 떠난 후 겪게 되는 신산한 삶의 이야기겠거니 했지 그저 이신통이라는 남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관찰자에 그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지라. 하지만 뭐, 이야기를 쓴다는 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작업일 테니까, 이 아쉬움 역시 이신통의 삶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이해해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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