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대제 1 - 탈궁
이월하 지음, 한미화 옮김 / 산수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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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청나라는 그다지 관심있는 왕조가 아닌데, 아무래도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우리로써는 곱게 봐주기도 힘들 뿐더러, 정복왕조라는 한계 때문인지 의도적으로 잘 다루지 않는 측면도 잇는 것 같다. 다만 박노자 교수님의 저작 때문에 청의 말기와 조선의 말기가 겹친 대원군-고종 시대의 범아시아적 지식인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는 있으나, 관련 서적을 읽기란 쉽지도 않고 해서 관심으로만 묵혀두고 있었다.
 
요즘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관계로, 권수의 부담 때문에 미루었던 이월하의 제왕삼부곡의 첫 편인 강희대제를 읽엇다. 청나라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최전성기의 기틀을 닦은 강희대제, 엄격한 태도로 수성에 성공했던 옹정대제, 그리고 중흥과 쇠퇴를 동시에 가져온 건륭대제. 각각의 매력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보고 싶었다.

책에 따르면, 강희대제는 부왕이었던 순치제의 갑작스런 출가로 8세에 보위에 올랐다. 어린 나이에 권신 오베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15(!)세에 오베를 축출하고, 23(!)세에 오삼계를 위시한 삼번의 난을 진압했으며, 정성공 부자가 항거하던 대만, 몽골, 러시아를 평정하여 최후로 통일왕조를 이룩한 위대한 황제였다. 또한 강남을 안정시키고, 명조의 유신들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60여년간의 긴 치세로 인해 후반부에는 권신들의 난립 등의 부작용이 심햇으며, 특히 말년에는 황자들의 난으로 인해 편안히 눈을 감지 못했다. 오현제 시대의 트라야누스와 같은 황제라고 할 수 있겠다. 공평무사와 관용을 중시했다는 점은 상당히 유사하다. 다만 트라야누스는 무인 출신이고, 강희 대제는 문인 출신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점과 전자는 아들이 없어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후계자로 고를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그 점이 강희대체 후반부의 난맥상을 야기하기도 했다.

강희대제를 보면서,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자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칼'을 어떤 단어로 치환하여도 성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의 장점이 결국에는 단점이 되는 인간세계의 진리를 엿본 느낌이랄까? 강희의 수많은 장점과 치세가 후반부의 난맥을 야기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강희의 포용정책은 신하들의 방종을 가져왔고, 신하들의 중용은, 권신들의 등장을 야기했다. 또한 지나치게 똑똑하고 신중했던 강희로 인해 황자들의 비극이 시작된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성하면 망하는 것이 진리지만, 떨치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럴수록 더 업보에 빠져들게 되는 우리네의 삶. 

다른 단점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강희대제의 삶 자체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인지 재미있게 읽었다. 조선왕조실록류처럼 60년 모두를 다룬 것이 아니라 중요한 내용들 위주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번역상태를 볼 때, 작가로써 상당한 필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번역이 이상하다는 이야기...)

다만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삼국지> 등의 장엄한 고어체 혹은 문어체 형식을 선호하는 나로써는 지나친 구어체 위주의 서술 방식이 맞지 않았다. (솔출판사에서 새로 번역한 <서유기>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문제다.) 마치 저잣거리에서 일어나는 시시비비를 보는 느낌이랄까. 초반부에 황궁 외부에서 자신의 손발이 될 인재들을 구하는 과정이야 당연히 궁 외부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겠지만, 이런 경향이 계속 보이는 것은 문제다. 전체적으로 경박스럽다고 할까.

또한,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의 수준이 떨어진다. 오삼계는 거의 바보에 가깝고,-실제로도 바보에 가까웠다는 이야기가 잇지만-오베는 동탁의 마이너 버전이었으며, 기타 등장인물도 썩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패치 후에 능력치 조절에 실패하듯이, 1부의 뛰어난 신하가 2부 가면 병신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런 등장인물이 퇴장할 때는 별다른 족적도 없이 사라진다. 초반부의 충신이 중반부에 권신이 되어, 반역을 꾀하거나 다른 마음을 먹다가 제거되는 과정이야말로 강희 용인술의 백미인데, 초반부에 엄청난 포스를 가지고 등장햇던 인물들의 퇴장에 너무 무신경하다. 특히 소니 재상의 아들로 등장하는 소어투는 그야말로 안습 수준이었다. 그 이야기가 제일 재밌을 법한 이야기였는데, 그걸 몇 줄의 서술로 넘겨버리는 것은 아쉬웠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어서 재미있게 읽었지만, 기대를 뛰어넘지 못해서 아쉬웠다. 옹정과 건륭까지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긴 한데,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지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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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6-10-3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기를 다룬 게 바로 <녹정기>라죠. 저도 읽다가 흥이 떨어져 던져 버렸는데 꾸준히 다 보셨군요. ^^

상복의랑데뷰 2006-10-3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그냥 버리기는 좀 아깝네요. 지금은 옹정황제를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