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진 1 - 완전판
다카하시 츠토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들른 만화방에서 본 만화. 예전 모 님의 블로그에서 칭찬과 함께 암울한 느낌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 머리 한 구석에 기억해놓고 있었다.

우울한 분위기가 더해진 87분서와 같은 형사'들'의 팀플레이를 기대했으나, 처음부터 끝가지 이 만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이이다 쿄야의 피에 물든 활약상 뿐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쿄야는 파트너와 함께 범인을 쫓고, 유혈과 함께 사건은 종료된다. 내내 이 패턴이 반복된다.

이 단조롭고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주인공 교야의 압도적인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교야는 비정하다 못해 무정한 형사다. 손에 쥐어진 총은 분명 그의 업보일 것이다. 앞모습이 싸늘해 보이다가도, 뒷모습이 지치고 서글퍼 보이는 것은 살인의 업보일 것이다. 그는 기계적으로 범인을 추적하고 죽인다. 생각해보니 그는 결코 범죄자를 살려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과 태도는 겨울호수과 같이 고요하고 서늘하다. 그 묘한 이중성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아마도 그는 어렸을 때 입은 마음의 상처로 세상과의 감정적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상처가 컸고, 상처가 두려운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나온다.) 그래서 그를 보고 있으면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감탄을 표하다가도 손에 피를 묻힌 채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있는 모습을 보면 서글프다. 작가가 주화입마에 걸려서 숨겨진 이야기를 다 풀지 못하고 끝을 맺은건지, 아니면 원래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교야의 성격형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서, 오히려 교야의 성격이 뚜렷하게 들어나고 동정의 여지가 적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난 교야처럼 살 사진은 없다. 그처럼 살기에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거나 그보다 받은 상처가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가지는 세상에 대한 태도나 그런 태도를 지탱하게 해주는 B급의 전문가주의-백발백중의 명사수, 노련한 수사관, 카리스마-는 흠모하게 된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주위인물들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캐릭터가 아니고, 원래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작품은 감정이입 대신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주변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심하다라는-남의 일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한다라는 표현을 숟하게 들은 나로써는...-생각도 많이 하고, 나도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의 관심list에 오르내리기를 싫어한다.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적당한 무관심'을 꿈꾸니까. 내 밥벌이가 걱정없고, 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면, 드러나는 표면은 다르겠지만 나도 쿄야의 삶의 방식을 따라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할 사진은 없다. 세기의 차이가 크다. 내가 루키라면 그는 메이저리거이다. 아마도 그는 배리 본즈일 것이다.  
 
하지만, 더 서글픈 것, 역설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일그러진 얼굴상이다. 작가의 공들인 그리고 우울한 그림체는 <프리스트>와 <베르세르크> 이후로 마음에 들었다. 흑백이 주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좋다. 처절하게 묘사해냈다. 제목 '지뢰진'은 지뢰밭이란 뜻이라고 한다. 지뢰밭이라. 마음 편하게 한발한발 내딜 수 없는 곳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일본일까? 작가가 보여주는 일본의 지뢰밭은 지옥도 그 자체다. 밀입국자, 스토커, 정신이상, 과잉팬덤, 매스컴 중독....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흡혈귀가 살고 있는 것처럼 피를 원하고, 정상인 사람은 먼저 죽어나간다. 그럼 비정상은? 나중에 죽어나간다. 바로 옆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나라도 점점 지뢰진의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득 들었다. 에피소드의 잔혹성만으로는 'A'가 가장 처절했다. 인터넷 강국이라고 소문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작가는 매 에피소드마다 지옥도를 그려놓고,  희망이 있냐고 질문을 던진다. 교활하게도 지옥도와 절망에 지쳐 포기할 때 쯤이 되면, 희망의 한자락을 슬몃 보여준다. 형사후배가 아이를 낳고, 새로 들어온 신참형사가 잠시나와 애인과 연애를 하고, 하지만, 자락이다. 다시 작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새로운 지옥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말까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나요?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렇게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만화만 놓고 보자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절망의 무게가 지나치게 크다. 희망과 절망의 진폭이 커서 마치 운동장의 끝과 끝을 끝없이 돌면서 뺑뺑이 도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앞에서 A에피소드 이야기를 했는데, 비단 A뿐일까. 모든 에피소드가 우월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하지만, 최고로 우울했던,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교야를 사랑하던 여자. 교야를 따르던 후배가 자식을 가지게 되는 에피소드,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에피소드인데, 그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펼쳐놓은 절망의 무게가 너무 크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마치 가까운 사람이 죽은 사람한테 가서, '희망을 가지세요.' 혹은 실연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하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특히 그랬다. 경찰이 되면, 사람을 죽이게 되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들도 사람인데...

일본의 하드 보일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의 하드 보일드다. 단어 자체의 의미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고 할까. 이 작품도 그런 면이 있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과 함께, 가장 폭력적이면서도 가장 우울한 어조의 하드 보일드. 두 주인공이 만났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우울하지만, 속으로는 흥미가 생긴다.

추신)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문득 작년에 서거하신 에드 멕베인의 유작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에드 멕베인 옹은 생전에 87분서의 마지막 권을 미리 집필해놓고, 사후에 출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과연 어떤 내용일까? 내가 추측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데뷔작인 <경찰혐오자>의 속편. 다시 경찰들이 죽어나간다. 맨 마지막 희생자는? 카렐라이다. 혹은 카렐라가 범인인 에피소드. 이 두 가지가 결합한 내용일 수도 있고......너무 우울한가?

추신2) 대화 한 토막 : 업보를 짊어진 자의 슬픔

"살아있는 사람에겐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 하지만 사람마다 그림자 색깔은 모두 달라. 빨간 사람도 있고 파란 사람도 있다. 난 사람을 볼 때 반드시 그림자를 본다. 범죄자의 그림자는 한없이 어둡지..."

"선배님 그림자는 무슨 색일까요?"

"내 그림자? 내 그림자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냐.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너무나도 많이 짊어져서 밝은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구별도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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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0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암울해 더 못본 만홥니다 ㅠ.ㅠ 쿄야가 불쌍할것같아서요.

상복의랑데뷰 2006-02-0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에피소드 때문이라도 꼭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근데 저도 감당이 잘 안되네요. 기분이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