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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글쓰기 책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소설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글쓰기 책은 처음 읽어보았다. 제목 그대로 조선 최고의 문장가였던 연암 박지원에게 글쓰기를 배워보는 내용이다.
연암의 아들인 종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업적을 글로 남기기 위해 몇 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연암의 글을 비판하자 자신이 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작업으로 지쳐갈 때 쯤 자신의 앞으로 비밀스런 책 한권이 전해진다. 그 책 속에는 그가 몰랐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연암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 지문에게 연암은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연암선집을 읽고 놀라움을 느꼈던 지문은 그의 뜻 모를 가르침대로 책을 읽고 글을 지어 나가기 시작한다. 연암은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자, 조선 최고의 스승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세심하게 가르쳐 주기보다는 제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선생님 이였다. 물론 지문도 뛰어난 제자였고... 그러나 스승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한 지문은 연암에게 내쳐진다. 몰래 과거를 보고 김조순의 집을 들락거렸다는 이유로 연암은 크게 화를 내고, 그것이 연암과 지문의 마지막 이였다.
종채는 그 책을 가져다 준 이가 지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종채는 자신의 아버지가 쓴 글이 인용된 점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말처럼 연암이 다른 이의 글을 베낀 것인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지문에게 단지 소설 일뿐이고, 그 글들 역시 연암의 글이라는 말을 들은 후 안도한다. 지문은 그 소설의 뒷이야기라고 하면서 종이뭉치를 두고 간다.
지문은 자신이 스승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러다 사기를 지었던 사마천의 마음과 같이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글로 토해내게 된다. 그제 서야 연암이 알려주려 했던 글 쓰는 자의 자세를 깨닫게 된다. 진심으로 쓴 글이야 말로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최근에 외국인 번역가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세계명작 수준이고, 고전이지만 여전히 현대인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아직 열하일기를 읽어 보진 못했지만, 이 책 속에 소개된 연암의 짧은 글만 보아도 그의 문장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다른 글쓰기 실용서 들처럼 글 쓰는 스킬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어떻게 독서를 해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글을 써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를 주진 않겠지만, 깊이 있게 글을 읽고 쓰는 진지한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고전의 딱딱함을 부드럽게 풀이해 주고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