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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육후연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2년 7월
평점 :
묘하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시종일관 혼자서 궁시렁대는 것, 둘 다 어쩔 수 없는 '도련님'이라는 것,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는 것.
1900년대 초의 작품치곤 너무 쿨하다. 산뜻하게 시작했다가 산뜻하게 끝난다. 1950년의 홀든이 삐딱하게 바라보는 세상은 솔직히 읽는 사람을 피곤하고 머리 아프게 하는데, 봇짱이 바라보는 세상은 혼란스러우면서도 재미있고 경쾌하다. 유쾌하고 가볍게 읽히는 일본 소설들의 뿌리는 역시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읽다가 웃겨서 죽을 뻔 했다.
한편으론 나쓰메 소세키가 동경제대 영문과를 나와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이 쿨한 소설을 쓰는 동안, 이준 열사는 헤이그에서 세상을 떴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럼에도 한국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갈 동안 호밀밭의 파수꾼을 발표한 샐린저를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이 평가절하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김동인의 단편에 대한 리뷰를 썼지만, 우리네 우울한 시대에도 김동인 같은 천재가 나왔으니 (김동인을 제외하고도 얼마나 빛나는 소설을 쓴 작가들이 많은가!) 너무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
다른 번역본의 밑줄 긋기를 읽어보았는데, 그 부분만 읽고 판단하는 건 좀 성급하지만, 이 책이 더 경쾌한 리듬으로 번역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러스트도 귀엽고, 하드 커버이면서 가격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