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교사, 입시를 넘다 - 사교육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까?
홍세화 외 지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획 / 우리교육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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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송승훈 선생님의 방학을 위한 추천도서에 올라 있기에 읽었습니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사걱세)에서 이루어진 강연을 묶은 책입니다. 강연의 말글을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이 다듬지 않아 읽는데 조금 걸립니다. 그래도 보석같은 글들이 있습니다. 특히 고병헌 선생님의 글은 강연을 옮긴 느낌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정말 깊이 있고요. 강연도 잘 하시고 글도 최고입니다. 사교육 문제와 진로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위한 입문서 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교사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읽어야 할 책. 이제 중등 교육에 들어간 자녀를 둔 학부모를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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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유시민의 공감필법 : 공부의 시대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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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좋은 강연을 잘 글로 옮겼네요. 유선생님의 글과 말과 행동 모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편안하고 핵심을 짚어 말하고 글쓰는 능력에는 박수를 보내는 편입니다. 교양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좋은 강연입니다. 강연의 말글을 그대로 줄글로 옮기지 않고 덧붙이고 손봐서 편하게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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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세 아들의 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보고 그 기발한 생각에 정말 눈물을 흘리며 재밌게 아들과 읽었다. 그의 신작이 등장했길래 얼른 주문! 《이게 정말 나일까?》는 한 번 읽었는데 5세에게는 조금 어렵다. 이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더 읽어줘야겠다. 그래도 주변을 묘사하는 기발한 그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의외의 그림이 정말 좋다. 자기를 대신할 로봇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다. 결말은 다들 예상하듯 엄마에게 단번에 들킨다는 것! 《벗지 말걸 그랬어》는 딱 지금 나이에 맞는다. 사실 나와 남편은 정말 정신없이 웃었다. 정작 아들은 심각하게 `정말 저렇게 옷이 목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하는 표정으로 들었다. 마지막 반전까지 재미있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에 등장하는 엄마는 늘 쿨하다. 정말 짧은 분량으로 등장해도, 엄마의 마음을 잘 표현해 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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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0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의 눈물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딸아이가 좋아할 것 같아요
 
친구 사이
아모스 오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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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글은 처음이다. 페이스북에서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나의 친구의 친구겠지?) 나의 친구에게 권하는 `좋아하는 작가`의 리스트가 나의 리스트와 매우 닮아 있었다. 필립 로스, 줌파 라히리, 줄리언 반스, ...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댓글을 주목해 보고 있었는데 모르는 작가가 있었다. `아모스 오즈? 누구지?` 그래서 읽게된 책. 잘 모르는 사람의 책장에서 그가 권하는 책을 집어드는 느낌.

인간은 모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요즘 학교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 라는 말도 많이 한다. 정책적으로 내려와 피곤한 일이지만, 마공의 생각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조언의 형태로 요청하지 않은 참견을 할 때나, 잘 알지도 못하며 간섭하는 것은 누구나 싫어할 터. 개인적으로 분절되고 서로 나누어진 지금의 삶에 공동체라는 말은 늘 기름처럼 나의 위에 둥둥 떠있다. 구체적이지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으로, 대안으로 다가왔지만 섞이기 어렵다는 느낌이었다.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살지만 그것이 `공동체`라는 명칭으로 묶이는 순간 속박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답답함.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키부츠 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급자족하고, 서로 일을 나누어 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하는 삶은 유토피아적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림같지 않다. 함께 살아가다보면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모두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 하지만 이런 삶을 당장 실현할 수 없다면 공감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공동체 안에서도 외롭다는 것을, 결국 희생이 전제되어야 모두의 동의가 있는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공동체 묶어도 그 밖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니, 이름이 없다 뿐이지 결국 크기가 다른 공동체 안에 우리 모두가 묶여 있음을.

아모스 오즈는 단편 소설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그 정확한 지점을 잘 알고 있다. 8편의 소설이 모두 좋은 지점에서 끝난다. 여운을 남기기에도, 생각하기에도, 한숨을 짓기에도, 눈물을 흘리기에도 딱 좋은 지점에서. 그래서 그의 글을 더 읽어보기로 정한다.

덧, 에스페란토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은 지인에게서, 한 번은 소설로 이렇게 두 번이나 듣게 되고, 그에 관해 글도 썼는데. 정작 나는 에스페란토를 한 글자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이쪽 길을 두드려 봐야겠다는 다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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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가 물었다. ˝왜 세상의 모든 슬픔을 어깨에 지고 곗는 거예요?˝ 즈비가 대답했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 <노르웨이 국왕> 중에서

한번은 카르멜라가 햇빛을 받으며 서서 어떤 여자애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모시는 그 곁을 지나가면서 햇빛이 맞은편 벽에 드리운 그애의 그림자를 쓰다듬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반은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버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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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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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많이 챙겨보지는 못했다. 그의 영화가 좋다 좋지 않다의 입장이 아니라 아들이 태어난 뒤 영화곤에서 영화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나의 위시리스트에 잔뜩 있으나 남편의 취향과는 겹치지 않는 영화들이다. (그래도 공기인형은 함께 보았다) 아이가 생긴 뒤, 영화는 둘이 함께 본다는 부부의 작은 원칙은 `둘 다 볼 수 없다`으로 묶였다. 결국 뒤늦게 블루레이라도 구입해 감상할 기회를 노릴뿐.

일본의 배우나 미디어 관계자들의 이름이 줄줄 등장해 당황하는 부분이나 일본어 쓰임이 그대로 녹은 번역을 제외하면 잘 읽힌다. 그것은 취향에 따라 거부감의 정도가 조금 다를듯.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독서가 될 것은 당연.

그의 사유에 유독 후쿠시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이 글들이 연재된 시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세월호 이후의 삶이 그 이전의 것과 다르듯, 일본인들에게 후쿠시마 이후의 삶은 무언가 달라진듯 하다. (물론 그 둘에 모두 영향을 받지 않는 강철인간들도 있다.)

그의 영화에 대한 철학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뭉클해 영화를 볼때 생각날 글들이 많다. 마지막 6장의 `애도하다`에 나오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격하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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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행위가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자 유대인이 이런 말로 그 변명을 내친다.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죄가 무겁다.˝ 그 장면을 최근 계속해서 떠올린다. 38

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
...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노력으로 메우려 한다. 그러한 노력은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미덕으로 그려진다. 꽤 오래전부터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혼자만의 힘으로 그런 극복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해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일까? 이 시는 이렇게 우리의 가치관을 되묻는 것 같았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59-60

영화관은 겁쟁이가 혼자 울러 가는 곳이라고 다자이 오사무가 썼던가. 66

˝세상에는 쓸데없는 것도 필요한 거야. 모두 의미있는 것만 있다고 쳐봐. 숨막혀서 못 살아.˝ 하지만 이는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당한 남자의 자기변호, 번뻔할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자이 오사무는 옹호해주지 않을까. 영화도, 이 아버지도. 68

영화제 등으로 일주일 정도 해외에 나갔다가 나리타 공항에 돌아온다. 시부야행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너머로 도쿄 타워의 불빛이 보이면 `돌아왔구나...`하고 안도한다. 사람이 꼭 자연의 풍경으로만 치유되는 것은 아님을, 약간의 쓸쓸함과 함께 실감하는 순간이다. 105

연출은 연기 지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열 명 있으면 열 가지가 존재하는 애매한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 목표로 하는 한 가지만은 명쾌하다. 영화 속에 그려진 날의 전날에도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온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게하는 묘사. 그 때문에 연출도 각본도 편집도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1

지금 일본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 (일본인만으로 한정되는게 아니라)에게 가장 불행한 것은, 이 정신적 외부에 있어야할 미디어가 완전히 내부의 세상과 일체화되고 그 가치관에 영향에 의해 오히려 마을의 외벽을 보강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국가적 가치관과 개인적 가치관, 그 이쪽과 저쪽에 대해 비평적인 입장으로 접근해 타자와의 접촉의 장을 여는 것으로 양자의 성숙(상대화)을 촉진함이 미디어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는 미디어가 외부에 있지 않고 국가와 개인의 동심원상에 겹쳐 있다. 이는 섬나라 근성의 삼중고다. 미디어는 정부의 홍보 도구이며(TV를 오래 보는 사람일수록 자민당 지지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원래라면 제4의 권력으로서 경찰 권력의 행사를 점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솔선해서 범인 색출에 협력하고 사법에 앞서 사회적(세간적) 제재를 가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간`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내부 사람끼리 작은 차이를 찾아내 자기들끼리 서로 배제하는 `왕따`가 난무한다. 학교가 바로 지금 그런 세상의 축소판이 되어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넓은 세계는 높은 벽에 차단돼 볼 수 없고, 서로 감시하는 세간에만 둘러싸인 답답함에서 인간이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현재 자살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는게 아닐까?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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