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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핍과 그에게 주어진 유산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같은 유산에 그걸 펑펑 쓰며 살아가다 다시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교훈적인 결말은 조금 인위적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특유의 긴장감있는 문체와 유머는 정말 좋다!!

특히 소품처럼 등장하는 웨믹과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뭉클하다. 아들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자신과 집에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를 돌보는 자신을 철저하게 둘로 분리한다. 웨믹이 슬픔에 빠져있는 핍에게 제안하는 산책 길에서 ˝어? 여기 교회가 있네?˝하며 들어가서 여자친구인 미스 스키핀스에게 ˝어? 여기 미스 스키핀스가 있네? 우리 결혼이나 합시다.˝하는 장면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웨믹에게 정말 어울리는 결혼식. 핍에게 보여주는 이런 삶도 있다는 식의 그의 모습은 작은 소품이지만, 이 소설 전체를 감싸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잘 드러낸다.

뭐 이런 딱딱한 서평 같은 글을! 여튼 디킨스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잘 정리해 준 작품. 두 도시 이야기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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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아이들과 과학시간에 과학책 읽기 시작 >_< 막상 골라보니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이 좀 있었지만 호응은 좋다. 책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힘들어 하지는 않고 책을 고른다. 작년에 읽었던 책은 제외하고 신간을 많이 넣었다. 도서관에서 더 작업을 빨리 해주면 좋겠다. 내년엔 더 풍성해지길. 요즘 눈에 대해 배우는 중이고 다음주 해부 실습을 앞두고 있어, 중2아이들이 가장 핫 하게 고른 책은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얇은 두께와 제목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았다. 3권과 4권도 준비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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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차가갑고 하얀 입김같은 겨울, 혹은 죽음에 대한 짧은 이야기. 짧아서 아쉽고 여운이 길다.



구름 뒤에 달이 숨는 순간 구름은 갖자기 하얗고 차갑게 빛난다. 먹구름이 섞여있을 때면 미묘하게 어둑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다. 잿빛이거나 연보랏빛이거나 연푸른빛을 띠는 그 무늬 뒤에, 둥글거나 반원이거나, 그보다 갸름하거나 실낱처럼 가는 창백한 달이 숨겨져 있다.
보름달을 볼 때마다 그녀는 사람의 얼굴을 보곤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아무리 설명해줘도 무엇이 두 마리 토끼고 절구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생각에 잠긴 것 같은 두 눈과 코의 그늘만 보였다.
달이 유난히 커다랗게 떠오른 밤, 커튼으로 창들을 가리지 않으면 아파트 구석구석으로 달빛이 스며든다. 그녀는 서겅거리다. 생각에 잠긴 거대한 흰 얼굴에서 스며나오는 빛, 거대한 캄캄한 두 눈에서 배어나오는 어둠 속을. (70)

흰나비

만일 삶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사이 그녀는 굽이진 모퉁이를 돌아간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문득 뒤돌아본다 해도 그동안 자신이 겪은 어떤 것도 한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 길은 눈이나 서리 대신 연하고 끈덕진 연둣빛 봄풀들로 덮여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팔락이며 날아가는 흰나비가 그녀의 눈빛을 잡아채고, 떨며 번민하는 혼 같은 그 날갯짓을 따라 그녀가 몇 걸음 더 나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제야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숨막히는 낯선 향기를 뿜고 있다는 사실을, 더 무성해지기 위해 위로, 허공으로, 밝은 쪽으로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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