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모됐다.
그동안 아기에게 '이모야 이모~'라고 소개받은 적은 몇번 있었지만, 정말 친이모가 되기는 처음이다. 하나밖에 없는 울 언니가 새해 벽두부터 아기를 낳은 것이다.
이모 노릇 해보려고 주말이 되자마자 언니가 조리하고 있는 대전집에 다녀왔다. 신생아실 유리를 통해 본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사랑스럽고, 날개 없는 천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고 말해야 하나 사실 크게 감흥은 없었다.
아기는 그냥 아기일 뿐이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아직 뽀얗게 살이 오르지도 않은 그냥 신생아였으니까. 친구들의 출산을 몇번 보면서 그새 생명에 대한 경외심에 사라진 것일까? 난 언니를 위해 사간 케잌에 초를 붙여 주고, 육아 책을 몇 권 선물하고, 부은 언니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서울에 다시 올라와 밀린 설겆이는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통칭하여 첫 조카에 대한 감격, 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기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언니'라는 단어 자체에 깃든 어떤 것 때문이다. 함께 자라고, 나누고, 가끔은 싸우고 질투했지만 언제나 한 편이었던 언니와 나, 사이의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엄습한 것이다. 그런 '언니'가 배를 아파서 아기를 낳은 것이다.
누군가 오빠가 애를 낳았을 때와 언니가 애를 낳았을 때 감흥이 너무 다르다고 얘길한게 기억이 난다. 너무나 당연하다. 오빠는 오빠가 애를 낳은게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언니가 애를 낳은 거니까.
그렇게 우리 언니는 애를 낳았고, 난 다음 주말 또 조카를 보러 갔다. 언니가 가까운 곳에 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언니는 원래 부산에 살고 있다)
아기는 한주 사이에 놀랄만큼 이뻐졌다. 놀러온 이웃집 아주머니는 "어쩜 이렇게 갓난애가 밤톨 깎아놓은 것모냥 이쁠 수가 있냐"며 연신 칭찬이다. (근데 의문 하나 - 왜 하필 깎은 밤톨에 비유를 할까?) 코도 이쁘고, 귀바퀴도 이쁘고... 딱 보니까 엄마 귀가 이뻐서 아들 귀도 이쁘네... 라고 하신다.
너무 기분이 좋다. 언니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생각을 하니, 내 기분도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