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몇 시간만 기다리면 올림픽 예선 3차선 한국과 말리의 대결이 펼쳐진다. 한-멕시코전이 끝나던 순간부터 기다리던 한-말리전. 말리 선수들이 유연하고 개인기도 끝내준다던데… 오늘도 한국 선수들은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을까?

글 깨나 쓰는 사람 중 축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누구든 축구의 매력을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축구는 단순히 재미있는 스포츠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다. 당대의 문장가라 불리는 김훈은 이 축구의 묘미를 멋드러진 글로 표현해 낸 적이 있다.

“공으로 싸우고 공으로 노는 모든 경기들 중에서 축구의 공은 가장 인간의 몸과 가깝다. 축구의 공은 그 경기를 하는 사람뿐 아니라 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속도로 움직인다. 농구나 핸드볼의 공도 인간의 몸에 가까운 공이지만, 그 공은 보는 사람의 몸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속도로 움직인다. … 월드컵 스타디움에서 환호하는 관중들은 자신의 국적의 자부심을 환호하기보다는 인간의 몸의 정직성을 환호하는 것이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까닭은 인간이 기어코 땅에 들러붙어서 땅 위를 달리며 발로 차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김훈이 있다면 해외에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있다. 그 역시 축구가 전문이 아닌 남미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인데 이채롭게도 <축구, 그 빛과 그림자>라는 수필집을 남겼다. 아주 옛날 내가 쓴 알라딘 리뷰를 보면 이 책에서 뽑아낸 주옥 같은 문장이 있다.

* 선수 : 마을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며 부러워한다. 프로 축구 선수는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구출된 것이며,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그들에게 돈을 낸다.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 골키퍼 : 그는 항상 혼자다. 시합을 항상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신세다. 골대에서 움직이지 않고 세 개의 통나무 사이에 홀로 서서 자신에 대한 총살이 집행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 팬 :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팬들은 겨우 자리를 뜬다. 텅 빈 스타디움에는 어둠이 내리 깔린다. 스타디움은 홀로 남게 된다. 팬 또한 자신의 고독 속으로 되돌아가서 '우리들'이었던 존재에서 '나'의 본모습으로 회귀한다.

* 주심 : 주심은 땀을 뻘뻘 흘린다. 다른 사람들의 발 사이를 오가는 하얀 공을 끊임없이 쫓아다녀야 한다. 주심도 당연히 그 공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러한 축복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곳, 공이 굴러다니고 날아다니는 그 성스러운 녹색의 장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온갖 모욕과 욕설, 돌팔매와 야유를 감내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축구가 매력 있는 까닭은 가장 단순한 룰이 지배하기 때문이고 가장 과격한 공놀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축구는 손을 제외한 신체 기관으로 공을 몰고 가 상대편 골문에 넣으면 된다. 물론 농구도 핸드볼도 마찬가지지만 둘 다 손만으로 공을 몰아야 한다. 손보다는 덜 섬세하지만 훨씬 강력하고, 뇌의 컨트롤을 종종 벗어나는 다리는 그것을 핑계로 허구헌날 부딪히고 걸고 넘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룰의 축구도 살펴보면 어이 없는 규칙이 있다. 바로 ‘오프사이드’다. 내가 내 공을 몰아서 상대방의 문전까지 왔으면 넣어야지, 왜 공을 넘겨주고 나와야 할까? 상대수비가 나보다 늦은 게 왜 내 잘못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게 제대로 궁금한 사람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한 권의 책으로 썼다. <오프사이드는 왜 반칙인가?>. ‘근대 축구 탄생의 사회사’ 란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을 보면 오프사이드가 생겨난 원인과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쓰고 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다. 축구는 언제부터인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오랫동안 즐기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 이러한 축구의 재미는 여럿이 한데 얽혀 뒹구는 데 있는데 오프사이드가 없어져 버리면 누군가가 이 패거리들 사이에서 공을 멀리 빼내 버리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오프사이드는 경기의 신사다움 – 상대편이 여기까지는 쫓아와 주셔야 제가 골을 넣는 것이 덜 송구하옵니다 - 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오히려 얽혀 뒹구는 ‘남자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규칙이라는 것이다.

 

얼추 찾아보니 축구를 문화사적, 사회사적으로 풀어놓은 책이 꽤 많은 것 같다. 그 중 어제부터 읽고 있는 책이 <축구의 사회학>인데, 제목에서 각오하는 바처럼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부류는 아니다. ^^;

몇 장 읽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운 대목이 가끔 등장한다. 축구는 혁명의 적일까? 동지일까?축구라면 환장을 하는 나라, 이탈리아의 움베르트 에코는 “과연 월드컵이 벌어지는 일요일에 무장투쟁이 가능한가? 축구 경기가 있는 일요일에 혁명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스코틀랜드와 파라과이의 예를 들면서 축구경기가 반정부 집회로 돌변한 예를 들고 있다. 또한 축구가 종교의 대체물인가 하는 질문에는 ‘갈등과 일치의 의식’ 이라는 측면에서 축구가 종교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의식이 벌어지는 경기장, 서포터와 선수들의 영적 교감 행위, 재능이 뛰어난 선수를 신격화 하는 경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이 책을 보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축구 문화에 대해서도 짧은 코멘트가 있다. 영국에서 비롯된 유럽 축구는 나름대로 긴 전통과 역사가 있으니까 사회적 계급적 종교적 국가적 측면에서 여러 고찰점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오로지 ‘집단적 사회 단결과 화합을 증진’ 하는 특징만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지역 연고로 하는 프로리그가 유럽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한다. 오로지 A매치, 국대 또는 올대의 국제경기만이 온 국민을 들끓게 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제 네 시간 후면 또 다시 이 나라는 축구의 열기에 휩싸이겠지. 그리고 내일이면 졸음을 참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직장인들이 여기저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졸려서 업무에 차질이 있을지라도(꼭 차질을 빚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 국가와 민족이라는 허위의식에 빠져 어리석은 아우성을 친다 하더라도, 다국적 기업이 쳐 놓은 스포츠 마케팅의 덫에 빠져든다 할지라도 난 몇 시간 후 축구를 볼 거다. 나 역시 허위의식의 위로가 필요한 소시민이며, 스포츠라는 대리전을 통해 폭력에의 욕망을 해소하는 가련한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인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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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8-1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 하는 거나 보는 거. 둘 다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에 대한 글과 노래를 읽는 건 재밌더군요. 그래도 언젠가 위성방송을 통해서 본 리버풀의 응원가 you never walk alone를 구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환장하며 부르는 장면은 뭉클. 했던게 기억납니다. 이상하게도 월드컵때보다 더요.

그나저나, 매너 동갑내기 축구선수 오웬은 지구 지키러 갔더군요. 레알 마드리드에 -_-;

찌리릿 2004-08-1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갑자기 새벽까지 안자고 축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하지만.. 나는야 착실한 직장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해야쥐.. ㅋㅋㅋ

2004-08-18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nnyside 2004-08-1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오웬이 레알 마드리드에 갔나요? 이런... 별루네요. 앗! 경기 시작했다. ^^

sunnyside 2004-08-18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님에게만 보이기, 제가 언제 '잠 안자고' 기다린다고 했을까요? 저 자다가 이제 일어났어요. 죄송 ㅋㅋ

진/우맘 2004-08-18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서니님....오랜만에 나타나서 지성을 뽐내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