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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모놀로그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보다가 우연히 아래분이 쓰신 서평을 읽게 되었습니다. 남성의 입장에서 이 책을 대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나 의구심이 잘 드러나 있더군요. 제가 대단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아래분이 쓰신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관한 '냉소적인 평가' 혹은 '남성중심적 발언'에 대해 반론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남성의 성기와 여성이 성기가 똑같이 대우받지 못해온 현실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성기는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한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부분도 큽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성의 성기는 공공연히 자랑스러운 것으로 떠받들어지지요. 어른들은 '우리 고추~'를 운운하며 남아들의 성기를 그대로 내놓은 채 키우잖아요? 여아들을 그렇게 키우진 않죠. 오죽하면 남근중심주의란 말이 있겠어요.
아이가 자라 사춘기가 되면 성교육을 시킵니다. 대표적으로는 구성애의 '아우성'을 보아도 그렇고, 남자 아이들의 성욕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되죠. 그래서 사랑스런 아들을 위해 좋은 티슈를 사주라거나 하는 말도 서슴없이 합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여자 아이들의 성욕은 아예 없는 것 혹은 음탕한 것으로 치부되죠. 보통 여자아이들에게는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키라거나,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여자의 성은 수동적이거나, 은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성의 성기를 입에 올리는 것은 완전 금기시 되고, 그곳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곳을 통해 기쁨을 얻는 것도 비정상인 것처럼 몰아세우게 되죠.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여성의 성이 은폐되고, 죄악시되는 것과는 반대로 여성 자체는 늘 성적 대상으로밖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담론과 환경이 여성들에게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번에 불거진 이영자씨의 다이어트 사건이나 온갖 종류의 미인 선발대회, 일상적인 성희롱, 성폭행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책은 이와 같이 여성이 자연스럽게 타고난 '성'은 숨기려하고,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성'만을 부각시키는 왜곡된 사회의 통념에 당당히 반기를 드는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은 '보지'를 이야기해도 말하는 주체에 따라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타인의 음흉한 시선에 비춰지기보다는 나의 입으로 나의 성을, 나의 성기를 직접 말하겠다는 의지이니까요. 노상 '버자이너'에 자신의 '페니스'를 꽂을 궁리만 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은 '보지'라는 말을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고되고 힘든 일입니다.
이 책은 무조건 '보지'를 말하기 위해 '보지'를 입에 올리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보지가 가진 욕망과 남성중심 사회를 살면서 보지가 겪어야 했던 수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만약 보지가 그 소중함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고, 상처를 입어왔다면 이에 가해진 폭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겠죠. 그리고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로서 그것 자체에 대해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흡하긴 하지만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바로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반론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암튼 아래의 서평이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의견이 있다면 올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