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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 사계 - 이 한 장의 명반
네빌 마리너 지휘 / 유니버설(Universal)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중요 산업 중의 하나는 `섬유산업`이었다.
우리나라의 의류시장과 패션업계가 여전히 호황인 까닭 중의 하나는
역시 `계절`의 덕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년 내내 같은 종류의 옷만 입어야 하는 시베리아의 민족들과 적도 부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패션`이니 하는 낱말들이 그렇게 생활과 밀접하진 않으리라 본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매 계절마다 옷을 바꿔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경제적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선현들의 생활상에서도 이 사계를 다루는 솜씨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음식이 그렇고, 입는 옷이 그렇고, 사는 집이 그렇다.
의식주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 속엔 역시 `사계`가 자리잡고 있다.
고전음악에서는 `자연`을 소재로 한 음악을 찾기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오히려 20세기에 들어와 팝과 록, 뉴에이지 등에서 `자연`을 소재로 한 음악이 많이 생산되었다.
고전음악에서는 기껏해야 `월광`, `전원`, `숭어`, `도나우 강`, `사계`가 고작이다.
그것도 작곡자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 아니라, 훗날 애호가들이 붙인 `별명`이 대부분.
차라리 `죽음`, `슬픔` 등의 어두운 제목들이 더 많이 있어,
이들 작곡가들의 삶이 그렇게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는 것 같아 비싼 CD와 공연티켓을 통해 감동을 먹는 부유한(?) 애호가들이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사계`를 소재로 한 음악으로는 하이든, 차이코프스키, 글라주노프 등의 작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역시 비발디의 <사계>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음악이라고 하는 설문 자료도 있었고, 공영방송 화면조정 시간이나 갖가지 CF 등의 시그널에 가장 즐겨 삽입됐던 곡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흔한 곡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냥 지나쳐 버리기가 일수였다.
하지만 !!
비발디의 사계만큼 매번 들을때마다 감동을 달리하는 작품은 일찌기 없었고
너무도 유명하고 흔하다고 해서 놓쳐서는 안될 음악 역시 비발디의 사계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총 4곡(봄-여름-가을-겨울) 속에 각각 3악장씩이 포함된,
총 12악장으로 이루어진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최근 카리스마가 풀풀 넘치는 `파비오 비온디`의 비발디 사계 음반이 세간에 큰 사랑을 받았고 정경화를 포함한 세계 유수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사계`를 연주해 왔다.
산수를 배우려면 구구단을 외어야 하듯, 음악을 하려면 사계를 연주해야 한다는 지론이 수없이 많은 연주자들과 음반을 통해 증명된 것이다.
여기 소개되는 음반 역시, 안동림 교수의 <이 한장의 명반>에 소개된 대표음반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너무도 많은 버전으로 들어봤기 때문에
이 음반도 꼭 사야되는가, 하는 고민도 잠시 뿐...
이 음반은 지휘자 네빌 마리너의 첫 레코딩(녹음앨범)이라는 것과,
성 마틴 아카데미 악단, 바이올리니스트는 Alan Loveday가 참여한
데카의 뛰어난 녹음기술이 단연코 돋보이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봄의 풋풋함을 지나,
정열과 젊음이 불타오르는 여름이 지나면,
노련한 손 놀림으로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과,
살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속에서도 벽난로에 언 손을 녹이는 겨울이 금새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 열두개의 악장은 계절과 계절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쉴 새 없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음반을 올려 놓으면 언제 봄이 지나갔으며, 언제 겨울이 찾아왔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음악에 푹~~ 빠져 버리고 만다. 마치 세월에 푹 빠져 버리듯.
여기에 비발디 <사계>의 위대성이 숨어 있다.
어느새 봄인가 했더니 여름이 찾아왔고,
어느새 가을인가 했더니 겨울이 찻아오듯.
음악은 계절이요, 계절은 곧 음악이니라.
시대가 변해도,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이다.
그 우주의 불변원칙 `사계`와 함께 비발디의 사계도 영원하리라.
sun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