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ergiu Celibidache - Tchaikovsky Symphony No.5 - 이 한 장의 명반
세르게이 첼리비다케 (Sergiu Celibidache) 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평상시에 즐겨하는 농담에서부터,
다수의 사람 앞에서 보여지는 언변과 제스처, 눈동자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한치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보편적 상식에서 벗어난 모난 행동이나 말 실수를 하지만,
그것을 정당화 또는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투영되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긍정적 평가를 서슴치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다.
10원 더하기 100원이 110원이 되는 완벽은 있을지언정,
사람에게 있어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완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벽에 가깝게 노력하는 모습 등을 보며,
(완벽을 `지향`한다고 해서) `완벽주의`라는 말을 쓰곤 한다.
여기 음악의 완벽(지향)을 위해 한평생 살다간 `완벽주의자`가 한명 있다.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1912~1996)`
<아래-인용>
첼리비다케가 평생 존경한 지휘자는 훼라라(Ferrara), 바인가르트너, 후르트뱅글러였다.
그에게는 대부분 소위 `인기 지휘자`란 존재가 `자동차 유리의 와이퍼`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신랄한 야유는 정곡을 찌른 예리한 것이었다.
그는....
카라얀을 `유능한 비즈니스 맨이거나 아니면 귀가 안 들리는 인간`이라고 단정했고,
무티는 `재능은 있으나 지나치게 무식`하다고 깎아내렸으며,
아바도에게는 `아주 무능한 사나이다. 3주 동안 굶고도 견딜 수 있지만 3시간 계속하여 아바도의 연주를 들으면 심근경색이 일어난다`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칼 뵘은 `감자 포대`이고,
토스카니니는 `완벽한 음표 공장`이며,
번스타인은 `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예 무시해 버렸다.
토스카니니에 대해 남달리 신랄했다. `만약 음악이 토스카니니가 주장한 것처럼 음표(악보)에만 있다면 그는 위대할지 모른다`고 전제하고 나서 첼리비다케는 자기의 음악론을 피력한다.
` 음악에 기적은 없다. 다만 노력이 있을 뿐이다. 음악은 본래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음악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음향(음악)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강한 집중력으로 오랜 기간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적당주의와 타협하느니 차라리 아무 일도 안 하는 편이 낫다 `
<인용 - 끝>
1948년 7월, 런던 킹즈웨이 홀 실황을 담은 위 음반은 (비록 모노 녹음이지만)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의 `완벽주의` 성향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완벽한` 음악이다.
레코딩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후세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귀중한 유산이다. 평생 녹음을 좋아하지 않고 실연만 즐겨왔던 고집불통 노인네라서인지 그의 녹음(음반)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 중에서도 차이코브스키의 유명한 5번 교향곡은 값지고 또 값지다.
시퍼렇게 선 칼날 위를 맨발로 조심스럽게 걷는 듯한,
또는 금방이라도 깨져 버릴 듯한 살얼음 위를 사뿌사뿐 걸어가는 조심스러움...
게다가 차이코브스키 특유의 러시아적 아름다움을 철저히 추구하여
그지없이 세련되고 격조높은 음악을, 우리는 이 음반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 어떤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익숙한 감성이라도
첼리비다케의 차이코프스키를 듣지 않고는 시베리아의 그 넓은 설원을 만끽할 수 없으리라.
2004.08.20
sun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