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1981 녹음) - The Glenn Gould Edition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작곡, 굴드 (Glenn Gould) 연주 / SONY CLASSICAL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음악 한잔 하시죠?] – 아홉 번째 음악 (9)


달동네의 추억



1. 그때 그 시절

지하철 3호선 금호역.
금남시장 방면으로 독서당 길을 따라 구백여 걸음을 걸으면 금호사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신금호역 방면 비탈길 구불구불 달동네 골목 귀퉁이에 제 신혼의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었습니다. 1층은 24시간 붉은 조명만으로도 한눈에 업종을 알아 볼 수 있는 정육점이 있었고 2층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살고 있었으며, 저희는 옥탑 방이 딸려 있는 3층을 빌려 살림을 차렸습니다.  


2000년 4월부터 이곳 아산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3년 정도 그 동네에 살았었는데, 한 겨울에는 위풍이 심해 창문마다 비닐을 덧대어 바람을 막고 겨울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신혼 집을 장만하고 얼마 후에 시골에 계신 장모님이 처음 올라오셨었는데, “내 딸이 이런 곳에 사는구나” 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식구한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을 새 출발하는 형편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예쁜 딸을 시집 보내는 부모들의 심정이 다들 비슷하겠지만 그 당시 저희 처가에서는 직업도 변변치 않은 반 백수건달 같은 놈에게 귀한 맏딸을 시집 보내는 것이 못마땅하셨을지 몰라도,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자주 왕래도 하고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상의도 하곤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장모님이 위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처가에 놀러 가면 푸짐한 대접을 받았었는데, 당신께서 음식을 잘 못 드시니깐 요즘은 반찬 가짓수가 많이 줄어든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당시 저는 장충동에 위치한 자그마한 IT 회사에 근무를 하면서 야간에는 학교를 다녔었는데, 2000년 말부터 꺼지기 시작한 IT 산업 거품이 저희 회사에도 몰아 닥쳐 회사 문을 닫을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결국 제가 그만두고 한달 정도 후에 회사는 정말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2009년 현재 제 몸과 마음에 무장된 정신이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회사를 살려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한계를 탓하며 저를 위로하곤 했었죠.

2001년 초반부터 집에서 백수생활을 하면서 임신한 아내가 벌어오는 봉급 80만원으로 생활을 했는데, 저는 염치없게도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까지 학교를 다녔으니 아마 주위에서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말씀은 안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2001년 1월부터 약 5개월 정도 집에서 놀면서 책을 썼는데, 그때 쓴 책이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서울시내에서 잘 나가는 대형 서점 2001년 여름 베스트셀러 여행기부문 순위에도 들지 못하고 음지로 사라져버린 유럽 배낭여행기였습니다. 당시 받은 계약금 30만원과 인세 50만원이 전부였으니, 책만 쓰면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돈도 좀 버는 줄 알았던 그때의 순진함에 가끔 쓴 웃음을 짓곤 합니다. 그런데 2003년 2월에 3쇄를 찍어냈는데도 추가 인세가 입금되지 않은 것으로 보면 출판사 사장님께서 형편이 어렵다거나 아직 시중에 깔린 책이 판매가 되지 않고 재고로 남아 있어 그러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금까지도 의문점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안 쓰고 버린 옛날 통장에 입금하셨을지도?

그때 제 나이 스물 여덟, 돈벌이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책을 한 권 꼭 써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베토벤이 “스물 여덟이면 철인이 되어야 한다”라는 그 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초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등 정규 코스를 밟는다고 했을 때, 남자 나이 스물 여덟 정도면, 군대 다녀오고 학교 졸업하고 1-2년 어학연수 다녀오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각종 시험공부, 휴학 등을 거쳐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나이로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하는 시기인데, 그 나이에 존경하는 베토벤 할아버지께서 ‘철인(哲人 :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 되라고 하시니 얼마나 큰 부담이었겠습니까.

하지만 그 책을 통해 인광가족 김회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회장님 덕분에 느슨했던(?) 제 인생은 180도 바뀌어 긴장과 배움의 연속선상에서 많은 깨달음 얻어 세상과 인생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담금질 해주신 회장님께 마음으로나마 항상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2. 글렌 굴드와의 만남

낮에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쪼그려 앉아 자판을 두들기고 점심 겸 저녁으로 라면 한 그릇 먹고 학교로 등교하는 길.
제가 다니는 학교가 지하철 1호선 회기역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저희 동네에서는 1호선 응봉역까지 약 20분 정도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면 됐습니다.
지금은 MP3 플레이어에 밀려 전자제품 박물관으로 사라진 휴대용 CD플레이어가 당시 제 통학시간의 유일한 친구였는데, 조선일보 등 유수 언론에까지 대서특필(?) 됐던, 한때는 잘 나갔던-지금은 휴대용 CD 플레이어와 같은 처지가 된- 음악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음악 애호가들이 꽤 많은데, 그때 요한 세바스찬 바하(Johann Sebastian Bach)를 “아버지, 우리 아버지”하면서 추종했던 동생을 한 명 만났습니다. 그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가 연주한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 복제 CD가 한동안 제 통학 길의 큰 즐거움이었죠.

바하가 작곡한 불후의 명곡 <골드베르크 변주곡>보다 더 유명한, 1981년도에 녹음한 음반을 통해 이 음악을 세상에 더욱 많이 알린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전세계 포탈사이트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추천음반’이라고 검색 창에 입력하면, 제일 많이 등장하는 연주자 이름과 음반이 글렌 굴드의 연주 음반일 정도로 그의 유명세는 특이한 자세와 입소리를 내는 연주 습관만큼이나 유명합니다.
(포탈사이트 검색 창에 ‘글렌 굴드’를 입력하시면 그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뿐만 아니라 다른 비디오 자료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녁에 집을 나서면서 헤드폰을 쓰고 가방에 넣은 포터블을 재생시키며 걸어가는 시간,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 내내 제 입술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보다 흥얼거리는 소리를 따라 부르느라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비록 복제 CD라고는 하지만, 워낙 좋은 공씨디에 복제를 해서인지 튀지도 않고 음질도 아주 좋아서 정말이지 2008년에 실제 정품 CD를 구매하기 전까지 거의 7년 가까이 이 음반을 즐겨 들었습니다.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글렌 굴드 연주앨범’이라는 공식이 왜 성립하는지는 직접 들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그의 연주는 몇 달 동안의 지하철 통학시간 동안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입으로 통째로 외울 만큼 저의 정신세계를 혼미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육체를 황홀경에 이르게 하는 엄청난 마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암울했던 달동네에서의 첫 살림살이를 그나마 버티게 해준 건 가족들의 힘이 제일 크지만, 아마도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미술보다 아름답고, 건축보다 탄탄하며, 철학보다 깊이 있는.
그래서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고 할까요?


3. 골드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

요한 세바스찬 바하(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음악의 아버지는 바하’,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 이렇게 다들 배우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바하와 헨델이 만나 결혼을 하면, 누가 나올까요?
정답은 ‘음악’입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면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위대한 음악들이죠.
저의 짧은 소견으로 감히 아버지의 음악을 이야기하기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바하의 음악은 서양음악사의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작품세계와 후대에 끼친 음악적 영향력은 실로 ‘음악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위대합니다. 천여 곡이 넘는 바하의 음악만 가지고도 <음악 한잔 하시죠?>를 100년은 족히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음악은 방대합니다.

오늘은 바하가 남긴 건반 음악 가운데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함께 규모가 크면서도 작품성이 뛰어난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한 장의 명반] 저자 안동림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소개합니다.

“G장조의 아리아를 서른한 곡의 변주곡으로 전개시킨 이 작품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제목을 붙인 연유를 포르켈(J. N.Forkel)은 그의 [바하 독본]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글에 의하면, 당시 드레스덴의 궁정에 러시아 대사로 와서 주재하고 있던 카이절링 백작은 바하의 예술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심한 불면증에 걸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잠 못 이루는 괴로운 밤을 위해 백작이 생각해 낸 묘안은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그 무렵 백작을 모시고 있던 음악가가 골드베르크였다. 그는 바하의 제자이며 솜씨 있는 쳄발로(독일어 표현; 영어는 하프시코드) 주자였다. 무엇이든 쉽게 잠들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하라는 지시를 받은 골드베르크는 궁리 끝에 스승 바하를 찾아갔다.
사연을 들은 바하는 평소 자기에게 많은 배려와 호의를 베풀어 온 백작을 위해 즉시 작곡을 시작했다. 그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의 필사본 <클라비어 곡집> 제2집에서 사라방드를 가려내어 여기에 아리아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 변주곡의 주제로 삼았다. 백작은 얼마 뒤 이 음악을 들으며 편히 잠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들어봐도 수면을 재촉하기는커녕 들었던 잠도 깨울 정로 시끄러운 변주곡들로 가득한 음악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얽힌 사연은 위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끄러운 변주곡들로 가득한 음악이라 어떻게 불면증 치료제로 연주되었겠느냐고 의문을 품는데, 이 음악을 제가 오랜 시간 들어 본 결과, 아마도 바하는 총 30개의 변주곡과 2개의 아리아 중 맨 처음에 전개되는 아리아만 백작에게 보내어 숙면을 도와주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저 혼자만의 추측입니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이, 그 시대에 그 인물과 살아보지 못했던 후손들이 해석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탄생설화(?)는 그러한 것이고, 이 곡은 건반이 2층으로 된, 현재 피아노의 증조할머니 격인 쳄발로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오늘날의 피아노로는 연주가 불가능하여 훗날 부조니(Busoni, 1866~1924)가 피아노용으로 편곡했으나 어려운 기술과 난해함 때문에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기회는 적었다고 합니다.
이런 음악을 20세기에 들어와 원곡에 거의 가깝게 연주하고 또 음반화 시킨 피아니스트가 완다 란도브스카(Wanda Landowska, 1877~1959)였습니다.
그녀의 뒤를 이어 수많은 바하 연주자들이 골드베르크를 그들만의 스타일로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최고다’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바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이라는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훗날 그의 작품을 연주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골드베르크를 완성시켰습니다.
실제로 들어보면 누구의 연주가 좋고 나쁜지를 평할 수 없을 정도로 각기 개성이 넘치는 음반들이 많습니다.
중요한 일과에 열중하시다가 간혹 음악이 듣고 싶다면, 저의 칼럼을 살짝 열어보십시오. 좋은 음악을 찾는 시간을 절약해 드리고자 제가 이렇게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4. 추천음반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또한 많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크게 쳄발로(하프시코드) 연주와 피아노 연주, 오케스트라,
재즈 편곡 연주로 나뉘어 있는데, 오늘은 제가 소장한 음반 위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 순서로 골고루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순서대로 들어보신다면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 되실 거라 자부합니다.


(1) 글렌 굴드 - 1981년 녹음: 피아노 연주 앨범 (소니)  

 



이미 소개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사의 새 역사이며, ‘굴드베르크’라는 별명까지 낳게 한, 클래식 음반사에 길이 남을, 20세기 최고의 명반 중 하나입니다.
이 음반을 듣는 순간 여러분은 글렌 굴드의 추종자가 될 것이며, 그가 연주하면서
내는 입소리를 무의식 중에 흥얼거릴 것이며, 아울러 바하의 음악에 심취하게 되실
겁니다.
글렌 굴드가 1955년도 첫 연주-녹음을 한 음반도 있으니, 구매하시게 되거든 위 표지사진과 꼭 1981년 녹음 음반인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발매는 1982년)

언젠가 절친한 친구가 저희 집에 놀러 와서 삼천여장밖에 안되는 저의 소장 음반을 가리키며 “저 음반들을 다 버리고 다섯 개만 남기라면 뭐를 남기겠냐?”라고 물었는데, 저는 지체 없이 답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유진 올먼디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소니)’.
두 번째는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의 말러 교향곡 5번 (도이치 그라모폰 – 말러 교향곡 전곡 세트 중)’.
세 번째는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 (ECM)’
네 번째는 ‘재즈 아티스트 에그베르토 기스몬티와 찰리 헤이든의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실황 (ECM)’.
다섯 번째가 바로 ‘글렌 굴드의 바하 골드베르크 변주곡 (소니)’.

다섯 개만 남기고 다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2) 키스 자렛 - 1989년도 하프시코드 연주 앨범 (ECM)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필자 생각) 키스 자렛이 쳄발로(하프시코드)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입니다.
쳄발로를 연주하는 바하 음악의 대가들을 제치고 키스 자렛의 음반을 두 번째로 꼽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제가 너무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거니와 독일 ECM 레코드사의 탁월한 녹음기술이 바탕이 되어 그렇습니다.
이 음반은 명징한 사운드와 저-중-고음의 또렷한 음색, 좌우 밸런스의 완벽한 조화 등 스피커 테스트 음반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니, 집에 좋은 오디오 장만하실 때 이 음반으로 테스트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로 재즈 음악을 많이 연주하는 아티스트이지만, 가끔 이와 같이 클래식을 오가는 연주자로도 유명합니다. 연주실력 또한 아주 일품입니다.


(3) 슈트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 - 오케스트라 편곡 앨범 (Mono Poly)  



국내에 본적을 두고 있는 소규모 음반사가 독일의 유명 악단을 스카우트 하여 녹음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오케스트라 버전입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대한민국이 지구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는 현실에 국내의 작은 음반사가 독일까지 날아가 음반을 제작하고 유통시켰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건반 음악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 연주했다고 해서 그 음악의 본질을 훼손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음반을 들어보신다면, 피아노나 쳄발로 독주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 이상의 감동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추천합니다. 
 



(4) 로잘린 투렉 - 1957~1959년도 피아노 연주 앨범 (EMI)  



바하 연구에 일생을 바친 로잘린 투렉 여사의 1957년 모노녹음 앨범입니다.
1980년대에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두 번째 골드베르크 연주 앨범을 발매했는데,
그 음반과 더불어 아주 유명한 음반입니다.
보통 ‘제2의 란도브스카’라 불리기도 하고, 글렌 굴드의 연주와 자주 비교 평가되는 바하의 정통 연주자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합니다.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 음악과 비교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참고로 로잘린 투렉 관련한 인터뷰를 발췌하여 적어봅니다.

- 왜 그렇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애정을 기울이십니까? 당신에게 이 곡의 매력은 어떤 것인가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한두 마디로 말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할 말이 아주 많기도 하고, 전혀 말이 필요 없는 곡이기도 하니까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구조가 가장 완벽한 곡입니다. 오프닝의 아리아 이후에 차례로 펼쳐지는 서른 곡의 변주곡은 꼭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리아로 돌아와 곡이 끝나지요. 곡의 구조와 작곡가의 생각이 완전히 합일되어서 표현된 방식이 정말 찬탄할 만 합니다. 열여덟 살 때 이 곡을 5주간 배워서 연주했는데, 연주 전날에 악보를 베개 밑에 깔고 잤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내게 가장 중요한 음악이 되었어요. 이 곡을 한번은 피아노로 연주하고, 또 휴식시간 후에 다시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독주회를 미국과 유럽에서 열기도 했었습니다."  



(5)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 쳄발로 연주 앨범 (Deutsche Harmonia Mundi)  




위 표지와는 다르지만, <도이치 아르모니아 문디 50주년 기념 음반세트>에 이 음반이 세 번째로 꼽혀있는데, 이번 칼럼을 준비하면서 몇 번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규범적이며 수학의 정석 같은 연주라고 할까요?
옛날 바하시대의 그 원전 연주를, 타임머신을 타고 오래된 고딕양식의 성당 같은 곳에서 듣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쳄발로 연주의 교과서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 외 피에르 앙타이의 쳄발로 연주앨범, 안드라스 쉬프의 피아노 연주앨범은 제가 가끔 듣기는 하지만, 위 다섯 개를 들으시면 특별히 구매하실 필요는 없을 듯 하여 추천은 하지 않겠습니다.
많은 애호가들이 빌헬름 켐프의 피아노, 헬무트 발햐의 쳄발로, 머레이 페라이어의 피아노, 임동혁의 피아노 연주 앨범도 추천을 하오니 형편이 되시는 분들은 참조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줄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2010년 한해 복 많이 만드시길 기원하겠습니다.


2010년 1월 18일
sunh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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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1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예전 제 서재에서 뵌 적이 있으시지요? 그때는 제 닉네임이 Circle..이었죠? 아마 ㅎ

기억와 음악, 그리고 골트베르크. 말씀하신 음반가운데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오늘 좀 들어봐야겠습니다. 글들을 따라가니 저도 뭔가를 좀 꺼내봐야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자주 인사 드렸으면 좋겠네요~

sunholee 2010-01-2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서재는 오래전부터 방문하여 거의 모든 글을 다 읽어봤습니다.
고전음악 및 문학예술 등에 매우 조회가 깊고 문장력 또한 출중하신 전문가인 것 같습니다.
뛰어난 안목으로 컬렉션한 아이템들에 관한 좋은 글이 풍부한 서재에 종종 놀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