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705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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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고,

후자는 전자의 부연이 되고 전자는 후자의 부연이 되는 법이다.

 

......

 

무릇 모든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은 하고많은 직업 중에서 유독 예술을 업으로 택한 이유는

-자기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보기 위해서 독특한 생활방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독특한 시를 쓰려면 독특한 생활의 방식(즉 인식의 방법)이 선행되어야 하고,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문단에 등장을 하는 방식 역시 이러한 생활의 방식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남의 흉내를 내지 않고 남이 흉내를 낼 수 없는 시를 쓰려는 눈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면,

자기가 문단에 등장하고 세상에 자기의 예술을 소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것이

독자적인 방법이냐 아니냐쯤은 한번은 생각하고 나옴 직한 문제이다.

 

......

 

성급한 규정을 내리자면 예술가는 되도록 비참하게 나와야 한다.

되도록 굵고 억세고 날카롭고 모진 가시면류관을 쓰고 나와야 한다.

 

이런 비참한 가시면류관의 대명사가 <현대문학>지의 추천시인이 될 수 있는가.

<현대문학>지의 , 혹은 <시문학>지의

씨도 먹지 않은 천자(薦者)들의 추천사를 통해서 배출되는 추천시인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두부가시로 만든 면류관이다.

 

......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나아가서는 가치)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오.

나의 이상으로는 개성 있는 시인의 대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너리즘에 빠진 오늘날과 같은 치욕적인

추천제도에는 도저히 응해지지 않을 것이오.

 

 

-김수영, "문단추천제 폐지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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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실존론적 존재론적 구조의 소묘

 

가장 독자적이고 무연관적이며 능가할 수 없고

확실하면서도 무규정적인 가능성으로서의 죽음

 

......

 

이렇게 죽음은 가장 독자적이고 무연관적이며 능가할 수 없으며

가장 확실하면서도 무규정적인 가능성으로서 드러난다.

그런데 현존재가 항상 죽음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은

동물과 달리 자기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고 자신이 어떻게 살지를

고뇌할 수 있는 실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존재의 이러한 실존적 성격은 '죽음을 향한 존재'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첨예하게 구체화된다.

 

......

 

따라서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전체에 진정한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는

죽음으로의 선구야말로

우리 자신의 삶에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본래적인 결의성에 해당한다.

 

현존재가 이렇게 죽음으로 선구하면서 결의할 때

현존재의 삶이 중심을 갖게 되면서

하나의 유의미한 전체로 형성된다는 것을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상주성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박찬국,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읽기" 중-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신과는 전혀 무관하게 세계는 계속됩니다.

세계는 넓습니다. 그 세계는 더욱 넓습니다.

세계는 계속됩니다. 그 세계는 더욱 오래 계속됩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세계는 변합니다.

 

......

 

<고도를 기다리며>는 종말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만, 절대 그런게 아닙니다.

 

......

 

이제 지긋지긋해, 그만둬. 시간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건, 바보같아!

언제야! 언제야! 어느 날이면 안되는 거야?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인 어느 날, 놈은 벙어리가 되었어. 어느 날 나는 맹인이 되었어.

어느 날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지도 모르지.

어느 날 태어났어. 어느 날 죽겠지. 같은 어느 날, 같은 어느 시간에.

그것으로 충분하잖아. 여자들은 묘석 위에 걸터앉아 출산을 하지. 그 순간 해가 빛나는 거야.

그리고 또 새로운 밤이 찾아오지. 앞으로!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인 어느 날",

"또다시 새로운 밤이 찾아오지. 앞으로!" 이런 연극입니다.

이 장면을 인용한 것은, 축자적으로는 아니지만,

분명히 미셸 푸코가 인용구 없이 인용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가 결정적인 시대라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요.

 

.......

 

바로 현대문학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안 뭔가 결정적인 몰락이나 종언이 일어나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유치한 사고에 대한 투쟁으로 조직되어왔습니다.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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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K는 교촌치킨 사장이다. 올해로 9년차다.

 

그러니까 20대 중반에 어머님과 함께 닭집을 냈다고 들었을 때,

고교때부터의 닭과의 인연이 결국 이어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시절부터 KFC에서 닭튀기는 알바를 했었었다)

 

그렇게 K는 십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닭을 튀겨왔다.

 

요 몇년간은 어머님께서 편찮으셔서 혼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말 그래도 젊은 사장이다.

10월엔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런 K와 몇 년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K는 정오부터 장사 준비를 시작해서 가게 정리를 마치면 새벽 4시가 된다고 한다.

1년 365일 가운데 단 이틀, 설과 추석 당일에만 쉬고,

 

심지어 10월에 있을 결혼식도 주말 장사를 위해 

토요일 결혼식을 마치고 이틀 장사를 하고, 월요일에 신혼여행을 간다고 한다.

 

요즘 유일한 낙이 TV드라마 "정도전"을 보는 것이라는데

한 편을 다 보기도 전에 잠들곤해서 일주일에 2편을 보기가 빠듯하다고 한다.

 

K는 이제 많은 것을 아는 것 같다.

 

치킨을 만드는 법은 물론이고, 손님을 대하는 법,
 

철없는 고교 알바생들을 상대하는 법,

 

무슨 대한민국에 그렇게 친척이 많은 지 한달에 두어번은 꼭 친척들 행사에 가야하는 

조선족 주방 아주머니의 비위를 맞추는 법,

 

아무리 피곤하고 아까워도 매일 기름을 바꾸고 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직원들로부터 먼저 좋은 평판을 얻는 법.

 

얼마 전처럼 가게를 넓혀 사업을 확장시키는 법.

 

K는 정말 이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4남매의 막내인 그는 아픈 형과 누나를 대신해 어머님 병원비로 수천만원을 선뜻 내놓고,

 

자신은 일 년을 채 못 다닌 대학이지만 어려운 형편의 여자친구가 대학 다닐 때에는 

아르바이트 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매달 용돈을 챙겨줬고,

결혼을 앞둔 지금은 혹시 앞으로 어머님을 챙기고 모시는게 소원해질까 그것이 벌써 걱정이라고 말한다. 

 

이제 K는 

초등학교 때 함께 게임팩을 바꿔가며 배를 깔고 게임을 하던 그 친구가 아니다.

일요일날 교회가 끝나고 같이 떡뽁이와 튀김을 먹고 놀러다니던 그 친구가 아니다.

 

그는 이제 책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삶살이의 기술들을 몸 속 깊이 체득했고,

제 한 몸과 부모 형제는 물론 나아가 새로운 가정을 능히 꾸릴만한 책임감과 능력을 가졌으며,

때로는 적지 않은 돈을 어려운 직원들에게 보증도 없이 빌려주는 그런 사장이 되었다.


 
치킨은 그렇게 그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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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루까지전력질주하는권군 2014-05-26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뭔데. 이 밀려오는 감동은. 그래서 치킨이 아니라 치느님인 건가?ㅎㅎ

숭군 2014-05-2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랬군!! 역시 치느님은 위대하시다 ㅋㅋ
 

 

 

부조리의 인색한 공기 속에서 유지되는

 

이 모든 삶들은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어떤 심오하고 한결같은 사상없이는

 

지탱될 수 없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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