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고,
후자는 전자의 부연이 되고 전자는 후자의 부연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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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은 하고많은 직업 중에서 유독 예술을 업으로 택한 이유는
-자기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보기 위해서 독특한 생활방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독특한 시를 쓰려면 독특한 생활의 방식(즉 인식의 방법)이 선행되어야 하고,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문단에 등장을 하는 방식 역시 이러한 생활의 방식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남의 흉내를 내지 않고 남이 흉내를 낼 수 없는 시를 쓰려는 눈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면,
자기가 문단에 등장하고 세상에 자기의 예술을 소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것이
독자적인 방법이냐 아니냐쯤은 한번은 생각하고 나옴 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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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규정을 내리자면 예술가는 되도록 비참하게 나와야 한다.
되도록 굵고 억세고 날카롭고 모진 가시면류관을 쓰고 나와야 한다.
이런 비참한 가시면류관의 대명사가 <현대문학>지의 추천시인이 될 수 있는가.
<현대문학>지의 , 혹은 <시문학>지의
씨도 먹지 않은 천자(薦者)들의 추천사를 통해서 배출되는 추천시인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두부가시로 만든 면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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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소설 그 자체의 형식(나아가서는 가치)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활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오.
나의 이상으로는 개성 있는 시인의 대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너리즘에 빠진 오늘날과 같은 치욕적인
추천제도에는 도저히 응해지지 않을 것이오.
-김수영, "문단추천제 폐지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