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mming -사진의 일부를 잘라내는 행위

  내 책상 왼쪽 벽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 붙어있다. 사진은 그의 뒷모습을 담고 있는데 저 멀리 파도가 내려다보이는 것으로 보아 장소는 바닷가 어느 건물 테라스인 것 같다. 의자에 앉아 팔꿈치를 팔걸이에 기댄 채 비스듬 몸을 젖히고 왼편을 바라보고 있는 체 게바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다. 상의를 벗고 긴 머리를 어깨까지 드리운 채 그 유명한 베레모를 쓰고 있다. 얼굴의 좌측면을 담고 있는 사진이어서 오똑한 콧날, 쑥 들어간 깊은 눈, 수염으로 덮인 턱 선이 더욱 인상적이다. 어쩌면 그가 좋아했던 네루다의 시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왼쪽 하단에는 “CHE FOTOGRAFISCHES  ALBUM”라는 글자가 검은 사각형 안에 쓰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진은 아마도 체 게바라를 담은 사진집의 표지 이미지일 것이다. 2004년인가 인터넷에 내려 받은 사진을 프린트 해두었다가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책상 붙여두게 되었다. 

 

 

(내 책상 벽면에 붙은 체 게바라의 사진)




사진에 관한 글을 한 번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이 동해서 어떤 사진으로 이야기하면 좋을까하며 두리번거리다 체 게바라의 사진에 눈이 간다. 좋다. 아이콘이 되어버린 이들의 사진에 대해 글을 써보자. 자본에 포섭되어 상품이 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아가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알베르 카뮈, 피카소, 마틴 루터 킹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니다. 내가 무슨 위인전을 쓰겠다는 게 아니잖아. 그래. 혁명과 사진을 써보자. 사진의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이야기 해보자. 이편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한다.

그러던 중 문득 사진 속 체 게바라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프레이밍으로 볼 때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니니까 체 게바라만 단독으로 찍었거나 트리밍을 했으리라 추측해본다. 구글에 들어가 Che Guevara를 입력하고 이미지 검색을 시도한다. 내가 가진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다시 벽에 붙은 사진을 유심히 본다. 단서를 찾자. 검은 사각형 안에 쓰인 “CHE FOTOGRAFISCHES  ALBUM”를 검색해본다. 오! 나왔다. 역시나 사진집이 맞았다. 이베이(e-bay)에 사진집이 올라와 있다. 클릭을 해서 들어가 본다. 중고 사진집을 팔기 위해 판매자가 올린 사진들을 넘기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반전을 만난다. 내가 가진 사진의 숨겨진 왼쪽 편 진실이다. 아마 사진집의 뒤표지인 것 같다. 숱 많은 곱슬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남자의 오른쪽 아래에는 낚싯대 하나가 놓여있다. 그리고 곱슬머리 남자의 발 아래로 배의 갑판처럼 보이는 마루가 보인다. “이런... 그랬구나”. 다시 구글로 들어가 Che Fishing을 검색한다. 트리밍이 되지 않은 전체 사진이 보인다. 전모가 밝혀진다. 알고 보니 내가 가진 사진은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요트에 나란히 앉아 낚시를 하며 이야기 나누고 있는 사진의 일부분을 잘라낸 것이었다. 원본 사진을 보니 원근감이 회복 되면서 바다와 체 게바라 사이의 거리감이 좁혀진다. 사진을 편집한 이는 영리하게 체 게바라의 왼편에 놓여있던 낚싯대를 “CHE FOTOGRAFISCHES  ALBUM”라 쓰인 검은 사각형 모양의 사진집 제목으로 가려 놓았던 것이다. 긴 머리칼을 스치는 바람과 함께 탁 트인 바다를 멀리서 내려다보며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젊은 혁명가의 모습을 그렸던 나의 상상력은 그렇게 상처 입는다. (검색을 통해 찾아보니 이 사진은 10년 동안 피델 카스트로의 전속 사진사였던 알베르토 코르다(Alberto Korda)가 1960년대에 찍었던 사진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찍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사진들을 보니 낚시를 도와주는 몇몇 사람들이 더 보이고 낚싯배 갑판 위는 활기찬 분위기이다. 코르다가 직접 서명을 한 오리지널 프린트가 판매되기도 했는데 이 사진에서도 역시 왼쪽 편 피델 카스트로의 모습은 트리밍 되어있다.)


 

  

       
(사진집의 뒤표지 사진)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원래 사진)



 

(같은 배에서 찍었으리라 추정되는 알베르토 코르다의 사진)




흑백 사진을 많이 본 사람들 중에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어떤 흑백사진들은 약간 불규칙적인 형태의 검은 테두리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흑백 사진은 전구에서 나온 빛이 필름에 맺힌 상을 통과해서 인화지를 태우는 원리로 이미지를 만든다. 필름 위에 맺힌 상이 투명할수록 전구의 빛은 더 잘 투과되어 인화지를 많이 태우게 되고 최종 인화물은 더 진한 검은색으로 표현된다. 이런 인화 작업을 위해서는 필름을 고정시키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캐리어에 필름을 거치시켜야 한다. 그리고 거치된 필름 위로 전구의 빛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필름 캐리어는 필름 이미지의 규격과 거의 동일한 크기만큼의 사각형 홈을 가지고 있고 이 빈 공간에 걸쳐진 필름을 통과한 빛이 인화지를 태우고 사진 이미지를 만든다. 그래서 필름 이미지와 동일한 크기의 일반적인 홈을 갖춘 캐리어에 필름을 올려놓고 인화를 하면 원본 필름에 맺힌 상은 외부 여백이 거의 없는 상태로 그대로 인화지에 맺히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진가들은 이런 필름 캐리어의 테두리 부분을 애써 줄로 갈아 캐리어의 홈을 필름 이미지보다 더 크게 만든다. 이런 상태에서 인화를 하게 되면 상이 맺혀있지 않은 투명한 필름 테두리 부분으로도 빛이 투과되어 인화지를 태우게 되며 이것이 종종 우리가 흑백 사진에서 보게 되는 사진을 둘러싼 검은 테두리를 만드는 것이다. 흑백 사진을 다루는 작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애써 필름의 이미지 외부까지 인화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적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사진이 트리밍 되지 않았다는 것, 즉 촬영할 당시 필름에 맺힌 이미지 전체를 인화지 위에 “전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사진은 “잘라내지 않은 진실”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 없는 진실한 사진을 강조했던 대표적 작가가 바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피사체가 프레임 구성의 절정에 이르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 미학으로 스트레이트 포토의 신화가 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촬영 이후 이미지를 자르거나 가공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는데 실제로 거의 모든 그의 사진들은 “손대지 않았음”을 역설하고 있는 검은색 테두리를 가지고 있다.


“‘조작’되거나 연출된 사진은 나와 관계가 없다.(...) 잘 된 사진을 조금이라도 잘라내면 이 비례의 역할은 치명적으로 손상된다. 암실에서 확대기를 통해 네거티브 필름을 재단하는 식으로 재구성한다고 해서 처음 찍었을 때 구성이 빈약한 사진이 살아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각적 통일성이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영혼의 시선, p16, 33, 열화당)

그러나 사진 이미지에 조작(?)을 가하는 것을 이토록 강력하게 거부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도 그가 말한 “결정적 순간”의 한 장을 위해 때로는 필름 한 롤의 반 이상을 쓸 만큼 같은 피사체를 여러 번 촬영하였다. 즉 피사체가 완벽하게 자신이 원하던 이미지의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까지 계속하여 촬영하였고 이렇게 찍힌 수많은 사진 가운데에서도 충분히 흡족한 사진만을 선택하여 공개하였다. 그렇다면 내 책상 옆에 붙어 있는 체 게바라의 사진, 피델 카스트로는 잘려지고, 낚싯대는 책 제목으로 가려진 그 사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사진에 비해 진실하지 못한 사진이라 할 수 있을까? 사진에 담긴 모든 이미지는 결국 특정 시간과 공간에 한정된 선택적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자세히 보면 검은 테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일전에 소위 말하는 셀렙(celeb)들을 사석에서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가운데 어떤 국회의원은 청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학벌이 좋은 친구들의 이름만을 별도로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고, 어떤 지식인은 대화를 나누던 중 평소에 가까운 관계에 있는 줄 알았던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지식인을 조소하며 서슴지 않고 비난했으며, 어떤 음악인은 소주를 마시며 몇 시간 동안 민중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다가 흥이 올라 단골집으로 가자며 수십, 수백만원짜리 술을 파는, 서민들은 가기 힘든 고급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좋은 정치인, 지식인, 음악가로 그들을 알고 있었던 당시 나의 기대는 내 책상 옆 체 게바라 사진의 전체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만큼 상처 받았다. “이런... 그랬구나.”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도덕성이나 인격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회의주의적 태도는 이후 거듭되었던 몇 번의 비슷한 실망과 상처가 만들어낸 굳은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본다. 그들은 그냥 그들이었을 뿐이다. 내 책상 옆에 붙어있는 체 게바라의 사진이 그랬듯 그들은 그저 그들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다. 미풍을 맞으며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근사한 혁명가를 상상한 것도 나 자신이었고, 좋은 정치인, 지식인, 음악가를 섣불리 기대한 것도 나 자신이었다. 트리밍을 했든, 전체 이미지를 다 보여주고 있든, 사진은 본질적으로 시공간의 한 단면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언론을 통해서든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든, 혹은 심지어 그들이 직접 쓴 책을 통해서든 내가 가졌던 그들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저 그 인물에 대한 한 단면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니 아마도 내가 느꼈던 실망스런 단면을 모두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다른 특정한 공간과 시간의 단면에서 그들은 내가 애초 기대했던 것 이상의 좋은 정치, 좋은 글, 좋은 음악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사진 이미지에 드러난 피사체에 대한 판단이 그렇듯 사람에 대한 판단 역시 항상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예민함과 상상력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한 단면만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성급한 예단은 늘 상처를 낳는다. 검은 테두리를 두른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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