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연구2. 리처드 웬트워스(Richard Wentworth)
“삶은 계란이다.” 라는 문장이 있다. 이 말의 뜻이 당신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1)“삶은 계란이다. 맛있을 것 같다. 같이 먹자.”/ 2)“삶은 계란이다. 그만큼 약한 껍질을 가진 것이 우리 삶이다. 조심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다시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가자. “삶은”이란 말은 이처럼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1)의 의미로써의 “삶은(boiled)"과 2)의 의미로써의 "삶은(life is)" 가운데 어느 하나의 의미만 파악했고 다른 의미를 놓쳤다면 그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일까? 아마도 당신의 언어 인식 방식에 특정한 형태의 구조가 (무의식중)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리처드 웬트워스의 작품은 그를 인터뷰한 벤자민 이스텀의 표현대로 이러한 우리 내부에 내재된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의 자동성”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의 이미지 속에서 반으로 쪼개져 전시장 벽면을 횡단하는 접시들의 행진 속에서 접시는 더 이상 접시가 아니며, 직각으로 구부러진 채 버려진 빨대는 사각형의 맨홀 뚜껑과 만나 새로운 조형적 의미를 만들어 내며, 검은색 자동차 바퀴 뒤에 놓인 빨간 토마토의 모습은 야채 가게 진열대에 놓여있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긴장의 정서를 발생시킨다. 이처럼 그는 우리에게 낯익은 일상의 이미지 해석 코드를 해체하고 새로운 해석의 방식을 제안한다.
“나는 이미지의 유기적 구조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일종의 텍스트고, 따라서 읽힐 수 있다.”... “이 난간을 보라. 어떤 무기로 여겨질 법도 하지만 주변 맥락으로 인해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리처드 웬트워스의 작업은 일상의 낯익은 사물을 새로운 맥락들과 접속시킴으로 그 사물을 둘러싼 낡고 단단하고 익숙한 해석의 껍질을 깨뜨려 사물의 의미에 새로운 개방성을 부여하고자한 시도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