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연구1.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큐레이터)
인터뷰어이자 큐레이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가장 큰 관심은 compiling을 통해 균질화된 기존의 시공간 질서에 균열을 가하고 나아가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생산하고자 하는 시도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단어 compile은 다른 자원들을 결합하여 의미를 생산하는 행위, 일련의 목록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편집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인터뷰어로서의 그는 도착적일 정도로 집요하게 모든 인터뷰를 기록하고 저장한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기록과 저장에서 그치지 않고 이 정보들을 가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그는 건축가 세드릭 프라이스와의 10시간짜리 인터뷰 영상에 간단한 설명과 키워드가 달린 태그를 결합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영상의 선형적 시간 순서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입력해 검색하여 시청할 수 있도록 함으로 영상이 제공하는 시간성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1991년 전시 Kitchen Show에서 그는 일반 갤러리가 아닌 자신의 부엌에서 리차드 웬트워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를 비롯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함으로 부엌과 갤러리라는 공간들의 정형화된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시를 기획한다.(이후에도 그는 수도원 도서관, 비행기, 호텔 객실에서 이루어지는 전시를 기획한다.)
이러한 그의 “시공간의 재해석과 생성”에의 관심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기획중 하나가 Do-It 프로젝트이다. Do-It 프로젝트는 그가 1993년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와 베르티앙 나비에와의 대화가운데 “일련의 교본(instruction)만으로도 전시가 가능할까?”라는 토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Do-It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들은 특정 작품을 생산하는 지침만 제공하고 작가가 아닌 전 세계의 일반인들이 (여러 언어로 번역된) 동일한 교본을 참고해 각기 다른 작품을 만듦으로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 계속해서 새롭게 생성되는 작품전을 기획한다.(Do-It 프로젝트는 전세계 90개의 장소에서 현재도 진행 중이다.)
살펴본바와 같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작업은 기존의 planner로서의 큐레이터의 역할을 벗어나 “생성의 틀”을 만드는 것을 큐레이팅의 본질로 하고 이를 통해 정형화된 시공간 의식에 균열을 주고자 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