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는 우리가 그 이유를 명석하고 판명하게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이 참되다는 것을 때때로 확신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내가 그 차이점이나 특징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 그러한 인식은 혼연하다(confused). 실제로 우리는 가끔 하나의 시나 그림이 잘 혹은 잘못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명석하게, 즉 추호의 의심도 없이 인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리를 만족시켜 주거나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나도 모르는 그 무엇"(I don't kow what)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판명한 것은 아니다.
바움가르텐 역시 판명한 인식과 혼연한 인식을 구분하였다. 인식은 그것이 하나의 초점에 맞춰져 부적절한 것이 제거될 때 판명한 것이 된다. 따라서 철학적 인식이나 과학적 인식은 구체적인 것의 혼연함으로부터 추상된 것이다. 그러나 인식에는 좀더 직접적인 또 하나의 방식이 있는데, 감성이 바로 그것이다. 감성(sensibility)은 명석-판명하지 않기 때문에 오성(understanding)에 비해 열등하다. 그러나 감성은 구체적인 것이 지니는 풍부함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오성보다 우월하다. 오성과 감성은 둘 다 우리로 하여금 실재에 접근하게 해주지만, 양자는 일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식은 판명함을 상실하게 될 때 외연을 획득하며, 또 그 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K. 해리스 <현대미술 -그 철학적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