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k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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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군 네 의견이 궁금하다.


숭군:
난 작업 별로인데ㅋㅋ
이거 김옥선 작가 아류이고 이런식으로 접근하는 방법론 너무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진다.
외국 잡지도 한국의 기형적 성형문화에 대해 관심있는거지 뭐 작품에 관심이 있는건 아니지싶다.
사실 김옥선 작가 사진도 난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일단 이 사진은 새로운 미학적 통찰도 없고 방법론도 진부하고 감각도 떨어지고 하다못해 테크닉도 별로인 것 같다.. "고민이 안 느껴진다"랄까..

k군
숭군! 나 어제 일찍 잤다. 그래 나도 네 생각과 같다. 김옥선에 대한 견해도 거의 같아. 덧붙여서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거야. 1) 대개의 사람들이 이런 작품에 대해 흥미가 있지? 어떤 면에서 정연두 작품도 주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라나. 아무튼 이런 방법론이 왜 진부한지에 대한 네 논증이 궁금하다. 나는 직관적으로는 알겠는데, 왜 그런지 '언어화된' 논거를 못찾겠어. 2) 다른 하나의 고민은 결국 좋은 사진이라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뛰어난 사진일텐데, 그러면서도 기존 미학에 대한 혁신 내지 혁명적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마치 만레이나 아로요 작품들처럼.. 그런데 뭔가 새로운 것이라고 주장되는 것이 있으면 그게 혁신이라 말할 수 있는 계기도 있고, 아무것도 아니고 쓰레기라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동시에 있는거잖아? 사실, 나도 이런 류의 작품들이 뭔가 오형근/라이어맥긴리 작품과도 유사한면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류의 작품들이 구본창, 배병우 류의 사진에 대한 작품에 대한 혁신이 아니라 오히려 진부하다고 말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뭘까. 조심스레 묻자면 히로시 스기모토나 사진이 좋긴 좋은데 젊은 사진가들의 지향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거야. a씨 같은 작품들이 전유하는 방법론을 구시대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뭘까. 방법론적으로 어떤 참신함이 깃들어 있나..




숭군:
1. 사실 이런 작품에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기본적으로 나는 오히려 사진 외부에 있는 사람들, 그니까 미술전반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나 큐레이터 혹은 회화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류의 작품들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 아무래도 확실히 "비회화적"인 성격이 강하니까. (정말 "사진적"이라고나 할까?,,) 근데 되려 사진계 내부에서는 이런 작업들이 어느정도 진부하다는 의식을 가진 작가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생각해보니 정연두나 이런 작업한 사람들 모두 회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니까 "뭔가 날것의 사진적인 것"에 끌려서 이런류의 사진을 찍는게 아닌가 싶다.

2. 이런류의 사진이 왜 진부한가에 대해서는 나 역시 기본적으로 너처럼 직관적으로 느끼는게 먼저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직관적이라는 것이 이론적 근거가 없다는게 아니라 타당한 논증의 기반에서 이루어진 감각이라는 것 역시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차근히 생각해보면 더 견고한 논리가 세워지겠지만, 일단 내 생각에 위의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시적 지시성"이 결여된게 아닌가 싶다. 그니까 같은 방법론을 사용하더라도 뭔가 새로운 사태를 지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작품은 충분히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예를 들어 스기모토), 성형수술 사진은 아쉽게도 그 지점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수 십년전의 낸 골딘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이점 더 뚜렷하지 않을까 싶다.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이나 미학적 감성을 환기시키는 작업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적어도 진부한 주제의식, 예전에 우리가 말했던 언어로 이미 정리가 끝난 사태를 굳이 다시 이미지화 하려고 했다는 것이 성형사진의 기본적 한계가 아닐까한다. 그니까 부연하자면 사태의 개방성이 없는 닫힌 기호랄까... 그래서 시적 지시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정연두가 먹히는 이유는 나름대로 그 방법론 내에서 독특한 정서를 호출하는 힘이 있어서겠지..(사실 난 잘 못느끼겠지만...)

2. 나도 k군의 생각에 동의한다. 스기모토가 젊은 작가의 지향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거지. 사실 스기모토의 힘은 기술적 완성도와 피사체를 바라보는 스기모토만의 독특한 개인적 관점이 결함되었기 때문이지, 즉, f64 클럽이나 신즉물주의 계통의 사진미학 (탁월한 재현력에 근거한 이미지 생성이라는 미학적 태도)위에 스기모토 본인의 사물과 대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결합된 것이 스기모토 사진의 힘이라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스기모토를 롤 모델로 삼는 젊은 사진가는 피카소의 큐비즘이라는 방법론이나 인상파의 방법론으로 21세기에 그저 나름 자신의 주관적 감성을 표현하는 2류 혹은 1.5류 작가가 되는 것과 같은 형국이겠지.

a의 사진 역시 지형학 사진이라는 보다 큰 사진의 가지에서 나온 작은 가지이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불가피하게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니까 방법론적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는 거지. 이점은 본인도 인정하고 있고... (로버트 아담스라는 작가를 한번 참고해 보면 될꺼야). (뭐 그렇게 따지면 나도 마이너 화이트 짝퉁이지만ㅋㅋ)

말이 너무 길어졌다ㅋㅋ 암튼 뭔가 사진에서도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너무 다들 열심히만 찍는게 문제인 것 같다.

예전에 한번 생각해 본 문제인데 결국 내용이 형식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즉, 새로운 미적 감수성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형식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지. 그점에서 나는 k군이 이야기 했던 "뭔가를 봤나?"라는 질문이 중요한 것 같다. 고흐나 피카소도 "그 뭔가"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 기존의 방법론으로는 한계를 느꼈기에 새로운 스타일이 나온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스타일을 위한 스타일 창조는 아니라는 것이지... 그래서 작가들이 정말 깊이 있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게 되면 새로운 형식은 그림자처럼 따라 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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