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시장에 관한 6가지 질문
이정전 지음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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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전 교수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존경한다. 몇해전 <녹색경제학>이라는 저서를 인상깊게 읽은 적있다. 거기서 저자는 환경을 보는 경제학적 시각을 충실히 설명할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시각 또한 공정하게 다루어주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한편 <두 경제학의 이야기>는 꼼꼼히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역작이라고 느꼈다.

이전 저작에 비해 이 책 <시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는 아쉽게도 실망스러웠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런 질문들을 겨우 한 권의 책이 충분히 해결해 주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실망스러운 것은 소개하고 있는 주장들의 반복과 전반적인 논리의 부재 탓이다.

앞선 저작들에서 저자는 다양한 시각의 주장과 연구들을 매우 솜씨있게 자신의 글로 엮어내었더랬는데, 본서에서는 왠지 다양한 주장들이 각자 그냥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문제는 질문 자체의 모호함에 기인한다고 보고 싶다. 도대체 시장이란 무엇인가? 물론 저자는 한 장을 할애하여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지만, 후에 행복, 자유, 도덕 등을 논함에 있어 시장은 자유경쟁이 되었다가, 과당경쟁이 되기도 하고,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를 뜻하기도 하며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던 거래 양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서평 제목에서 지적한대로, 뒤집어서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가? 좀 심하게 말한다면 본서와 유사한 내용을 조금 손질해서 그런 제목으로 책을 낼 수도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특히 경제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가 어려운 방식으로 논술되기 때문에 권하기가 어렵고, 경제학 전공자들의 경우는 막연히 고민하였으면서도 실제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을 몰랐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주장과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거슬렸던 점은, 특히 책 전반부에서 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언급되던 부분, 그리고 별로 신뢰할 수 없는(?) 후쿠야마 교수의 말로 책을 시작해서 그의 말로 책을 끝낸 점, 가정 문제를 논하면서 저자의 성차별적/가부장적 시각을 드러낸 점, 그리고 제레미 리프킨을 계속 '교수'라고 지칭하는 점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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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러가 사랑한 수 e 경문수학산책 16
엘리 마오 지음, 허민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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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는 'e: 어느 수의 이야기'이다. 이걸 '오일러가 사랑한 수 e'라고 뽑은 것은 과장스럽지만 봐줄 수 있는 출판 기획이다. 오일러는 책에 등장하는 여러 훌륭한 수학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e와 관련된 가장 아름다운 발견들을 남겼으니.

저자가 지적하듯 원주율 '파이'에 비해 e는 역사도 짧고 일반인들에게 덜 친숙한 수이다. 물론 파이에 대해서도 억지로 외운 원둘레나 넓이 공식으로 별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가진 이가 많겠지만, e라는 수를 이해하려면 로그함수까지 나와야 하므로 골치아프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대담하게도, 대중적 서적은 아니다. 어려운 개념을 피하고 대충 얼버무려 설명하는 책은 아니라는 거다. e가 가진 아름다움과 독특성을 에둘러 설명하기는 아마 불가능할 거다. 로그, 사인, 코사인, 미분, 적분 등등이 나오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 책은 아주 잘 씌어진 개론 교과서이다. 복잡한 증명은 부록으로 미루면서도 엄밀하고자 애썼고, 여러 수학자들(네이피어, 뉴턴, 라이프니쯔, 베르누이 일가, 오일러, 가우스 등등)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차근차근 e와 관련된 수학의 발전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복소함수 해석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또한 먹기 좋게 잘 썰어놓은 음식처럼, 주제 하나 하나가 간결하게 다루어져 있다. 짤막짤막한 단위로 나누어 놓은 책은 읽기에는 수월하지만 피상적이기 쉬운데, 이 책은 잘게 나누어졌으면서도 피상적이지 않다. 이것은 아마도 수학과 수 e가 가진 특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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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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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다양성을 논하고 진화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고자 애쓰는 이 책은 엉뚱하게도 야구 이야기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저자가 다양한 잣대를 동원하여 지구상 생명체의 대표 주자로 박테리아를 꼽고 있는 방식을 그대로 원용하자면, 아마도 저자의 머릿속에는 야구가 가장 많이 들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도 야구를 좋아하는지라 큰 불만은 없었지만, 야구 이야기는 책의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데 도움이 되진 않았다는 느낌이다. '풀하우스'라는 표현으로 반복 강조하듯이, 저자는 진화론이 역사적으로 수반해온 진보 이데올로기, 인간(!)중심주의를 무너뜨리고 인간과 같은 소위 고등생물의 출현은 특정 출발점에서 시작된 다양성 증가의 우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은 다양성이 증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선수들의 전반적 수준이 증가하면서 일종의 평준화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법하다.

물론 4할 타자 멸절의 이유를 다양성의 차원에서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해버릴 수는 없다. 야구는 생명 진화와는 또 다른 복잡한 측면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문에 진화 논의에서 야구 이야기는 곁길로 샌 느낌이 드는 셈이다. (사소한 점으로 역자는 한국어-영어-과학 세 분야의 실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이 책의 경우 야구 지식도 상당히 필요했을 것이다. 다행히 상당한 지식을 보여주긴 했으나 안타깝게 자그마한 오역들도 눈에 띄었다.)

굴드가 사용하는 핵심적인 논리는 사실 생물학적이라기 보다는, 분포와 관련한 통계학적 상식에 해당한다. 여기에 '왼쪽벽'과 '오른쪽벽'이라는 특정 분포의 상한과 하한을 두고 이 한계의 존재가 야기하는 결과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벽'의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야구 이야기의 앞과 뒤에 자신의 투병 경험 에피소드와 술취한주정뱅이 모형을 동원한 점은 성공적인 도구였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한 가지 의문은,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습관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렇게 복잡한 설명들과 함께 박테리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방법 밖에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어쩌면 진보가 내포한 문제점은 특정 기준을 설정하고 비교를 시도하는 것일텐데, 굴드도 박테리아를 칭송하면서 (자기 나름의) 기준을 동원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 책은 한 진지한 학자가 독자들을 향해 던지는 진지하고 유머섞인 대화의 시도이다. 내가 굳이 길게 비평한 것은 아마 기대했던 바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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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 근대, 이성, 주체를 중심으로 살펴본 현대 한국 철학사
강영안 지음 / 궁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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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큰 장점이자 한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문체의 편안함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다양한 서양철학 사상과 한국 학계로의 수용에 대한 설명을 이토록 평이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저자의 능력이다.

한편, 서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어떤 독자적인 저서라기보다는, 연구과제 보고서의 묶음인지라 현학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반면, 읽은 후에는 무언가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저자가 생각하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더 있었을 것 같고, 더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았다. (다시 말하자면, 아마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은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할 듯 싶다.) 철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예컨대 훗설의 현상학에 대해 한국철학계의 수용과정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준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하는 마지막 장은 우리나라 및 일본의 학자들이 서양의 철학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다루고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자는 단어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정리하였겠지만, 독자에게 보여지는 것은 단지 색인목록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듯이 우리의 철학은 놀랍도록 태연하고도 빠르게 서양을 흡수하였으며, 그 와중에서도 여러 학자들이 나름대로 한국적 시각을 견지하고 개발하려 애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민은 학문적 수준에서나, 일반인의 입장에서나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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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시대
필립 볼 지음, 고원용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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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과목이 화학이다. 대학 때는 일반화학 과목에서 어려움을 느꼈고 그 이후 화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은 없다. 지금은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여전히 자연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교양과학서를 종종 찾아 읽는 편이다. 양자역학 따위를 설명한 교양물리학 서적은 많이 읽어본 반면, 교양화학 서적은 아마 이 책이 처음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뜻밖에 이 책은 상당히 어렵게 씌어진 책이었다. 화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추상적 이론으로 요약될 수 없고, 다양한 화합물과 관련한 실험적 발견 등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제법 두꺼운 부피에, 장마다 넘쳐나는 분자모형 그림, 복잡하고 어려운 화합물 이름들...물론 이 책이 무작정 지루하지는 않다. 저자는 해박한 지식으로 가능한 한 쉽게 이야기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번역자 또한 책이 씌어진 후의 연구 동향과 한국인 학자들의 성과들에 대해 보충을 해 주고 있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나 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히 담겨 있는 사진과 그림들이다. 책 중간 쯤에 모여 있는 컬러 사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본문 곳곳에 그려진 분자구조 그림들이 없었다면 내용 이해는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의 분위기를 굳이 표현하자면, 최근 화학 연구의 핵심 분야에 대해 심도 있게 씌어진 백과사전 정도라고 할까. 화학 전공자는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비전공자로서 화학에 대해 정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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