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어뱃살 > 오역의 문화와 함께 비평의 문화도 한번 돌아봤으면
문화의 오역
이재호 지음 / 동인(이성모)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알라딘으로부터 이 책을 받아 읽는 순간 10분도 안되어서 나는 이 책에 대해 실망했다. 미리 서점에서 한번 만 봤더라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번역서를 접하면서 오역에 대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출판계에는 오역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의 오역'으로 '오역의 문화'가 일상화되었다면, 그에 대한 비평도 뼈아프지만 애정 어린, 미래 지향적인 비평이 되었어야 했다.

내가 기대했던 책의 내용은 그간 '문화의 오역'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발전적 대안이 포함된 책의 내용이었다. 즉 우리 영어 교육의 문제, 번역 작업의 학술 성과로서의 인정 문제, 번역가 양성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 오역 나올 수밖에 없는 번역가에 대한 대우 같은 제반 사항이 포함된 내용 말이다. 아마 책 제목만 보고 말한다면 누구나 이런 식의 기대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없다. 저자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잘못 번역된 내용들만 나열되어 있다.  이 내용도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Queen이 여왕과 왕비로 모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영어가 그다지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여왕이라고 번역해야 할 곳에 왕비로 왕비라고 번역해야 할 곳에 여왕이라고 쓰인 경우가 무수히 많다는 것은 이미 안정효씨의 <영어 길들이기>에서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이 내용에 대한 예를 무러 18페이지나 들고 있다. 이건 지면 낭비가 아닐까?

저자는 오역만 찾다보니 오역이 제대로 고쳐져 사용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나 보다.

* 올더스 헉슬리의 Brave New World가 <용감한 신세계>로 오역되어 있는데 <멋진 신세계>가 맞다는 것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알라딘에 검색창을 한번 사용해 보시길 바란다. 요즘도 <용감한 신세계>로 제목을 다는 경우가 있는지..

* A Man For All Season이 <팔방미인>이 아니고 <4계절의 사나이>란다. 미안하지만 이 영화 제목은 오래 전에 <명화극장>에서 방송할 때도 그렇고 각종 영화 잡지에도 그대로 <4계절의 사나이>로 번역되고 있다.

* 코페르니쿠스의 On the Revolution of Celestial Orbit가 <천체의 혁명에 관하여>가 아니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란다. 그러면서 오역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책이 1963년 판 <세계문화사>이다. 골동품 수준의 책에 실린 오역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번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1998년에 서해문집에서 이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 같은 예로 토마스 핀천의 The Cry of Lot 49는 저자가 지적을 안해도 이미 <49번지의 비명>이 아니라 <49호 품목의 경매>로 번역되어 있다.

저자의 오류도 눈에 뜨인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원 제목은 Lost In Translation. 저자는 Translation은 '번역/통역'이 아니란다. 왜냐하면 Translation의 동사형 translate는 '황홀하다'라는 뜻이 되고 명사형인 translation은 '황홀경' 정도(Translation이 '황홀경'이라고 영어 사전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translate에서 유추해서 다시 명사화 시킴 ). 'be lost in~'은 '~에 홀리다'. 즉 Lost In Translation은 '황홀경에 빠지다'라는 뜻이라는게 저자의 주장. 영화 제목 하나 설명하기 위해서 고차 연립 방정식을 푸는 것 같다.

저자의 주장대로 Translation이 '황홀경'이라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이 영화의 감독 소피아 코폴라의 인터뷰에 의하면 translation은 '번역'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 외국 영화 리뷰에도 '황홀경'이 아니라 모두 '번역'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영화에서 일본인들이 '통역' 때문에 애를 먹지 남녀 배우 두 사람은 모두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통역'에 문제가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통역'과 무관하다는 단순 논리. 하지만 우리 식으로 의역을 하지 않고 영어 원제로 하자면 <번역 속에 사라지다>(Lost In Translation) 정도가 적절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 소통 속에 사라진 의미를 향수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저자도 '오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에게 진심으로 충고를 하고 싶다.  '요런 의미가 있는 건 몰랐지?'하는 반박을 위해 두꺼운 영어 사전을 몇권 씩 뒤지기 보다는  <씨네 21> 실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해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라는 김소영 교수의 글을 읽기를 권한다. 왜 tanslation이 '번역'의 의미로 쓰였는지를 저자에게 차근 차근하게 알려 줄 것이며 제목 트집 잡다가 놓친 영화의 주제를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그러면서 단어에 국한된 번역이 아니라 '문화'의 번역'이 뭔지를 그 글을 통해서 한번 깨달아 보시길 바란다. 

 이 책의 2/3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장미의 이름> 등으로 알려진 이윤기씨에 대한 비평이다(솔직히 비평이라기 보다는 비난이나 험담이 더 어울린다)
저자는 마치 영어 선생님처럼 "니가 한 이 번역은 이래서 틀렸고 저건 저래서 틀렸어.."하며 이윤기씨를 몰아세운다. 보기에 참 민망하다.
저자의 지적 중에 일면 타당한 것도 없지 않지만 이윤기씨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건.. 이런 식의 의미로 보인다"라고 해석한 부분을 '마치 자기가 세계적인 신화학자가 되는 것처럼 함부로 해석한다'라는 글로서 험담을 해댄다. 신화의 해석은 세계적인 신화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신화가 그들의 손에서만 해석되어야 한다면 신화는 얼마나 밍숭맹숭했을까.(난 개인적으로 이윤기씨나 이 책의 저자 이재호씨에게 한번 물어 보고 싶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금전 채무 문제로 다툼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왜냐하면 이재호씨는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저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이윤기씨만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물고 늘어지니 말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는 책 제목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이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이는 그의 관점에서 현대식으로 해석해보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도 않은채 자기 관점에서만 벗어나면 무조건 오역이라는 건 문제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이 책은 2천년전에 쓰여진 신화이다. 신화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전승과 관점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이윤기씨의 오역과 저자인 이재호씨의 주장을 모두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화의 오역'을 단지 저자 몇 사람을 골라서 인민재판식으로 몰아 붙인다고 해결될까? '문화의 오역'에는 그만큼 우리 번역 문화가 미성숙했음을 보여준다.이 문제는 한 개인의 능력에 국한시킬 문제가 아니라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비평을 위한 비평, 비판만 난무하는 비평을 넘어선 성숙한 번역 문화를 만들 수 있을것이다. 

오역이 있으면 오역을 지적하고 오역을 한 사람은 타당한 지적이면 수용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핏대 올리면서 남을 폄하할 필요도 없고 주눅이 들 필요도 없으며 오역을 찾아냈다고 우쭐해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한 작품에 대한 번역의 수준은 한 번역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 많은 오류와 수정 속에 번역은 새롭게 바뀌어지고 시대적 관점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번역은 단 한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구' 번역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길러지는 것은 번역 과정에서 쌓여지는 것이 우리 문화의 수준이며, 그 번역 문화에는 번역가의 문제와 번역을 지적하는 비평가의 수준 역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는 진정한 번역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계가 지금껏 '오역의 문화'를 양산해 왔다면, 저자는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문제일까? 과연 이재호 교수 책을 잡고 이 잡듯이 잡으면 오역이 보이지 않을까? 비평을 하는 사람 자신 역시 번역문화라는 큰 테두리에서는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차라리 자신의 그간 번역 과정에서 쌓여온 고충이나 노하우를 점잖게 소개하는 것이 옐로우 저널리즘식 글쓰기 보다는 우리 번역 문화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저자에게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책은 '명예교수'라는 '명예'와 전혀 걸맞지 않는 비평이다. 이건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비평에 불과하다. (만약 저자식의 비아냥거림이 허용된다면 저자에게 이런 식으로 돌려주고 싶다)  "이런 식의 비평은 네이버 댓글에서 한 페이지마다 수두룩하게 찾을 수 있는 공해 수준의 글이다."

번역이 오역이라고 해서 똑같은 수준의 비평이 용납될 수 없다. 어쩌면 수준 높은 번역 문화는 수준 있는 비평이 자리잡을 때 가능할지도 모른다.

군소리)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말씀드린다. 이재호 교수를 비판했다고 '이윤기씨의 측근' 이런 식의 황당한 편가르기 식의 소리를 하지 말기 바란다.  우연찮게 두 사람의 책을 다 읽은.. 책 읽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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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별빛처럼 > 말아톤CE, 레퍼런스급 그 이상의 무엇
말아톤 CE - OST + 시나리오집 + 엽서 + 핸드폰줄 + 감독 배우 랜덤 친필싸인 3,000장 한정판
정윤철 감독, 조승우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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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은? 백만불짜리 영화! DVD는? 끝내줘요!'

예약하고 한 달 넘게 기다린 끝에 받은 첫 DVD이어선지 애착이 남다릅니다. 더구나 영화 말아톤은 제가 어설프게나마 마라톤에 뛰어든 계기가 된 영화여서 더 그런 듯 합니다.

오랜 기다린 보답인 듯 이번 한정판 패키지는 절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우선 마라톤 풀코스를 뜻하는 '42.195km' 글자를 큼지막하게 뚫어새긴 박스 디자인부터, 초원이가 누워있던 잔디밭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스포츠타월이 그렇습니다. 한정판에만 포함된 OST와 시나리오북, 엽서 5장, 앙증맞은 얼룩말 핸드폰고리도 빼놓을 수 없겠죠.


말아톤, 레퍼런스급 그 이상의 무엇

이미 5월 중순에 나오긴 했지만 말아톤SE 본편을 얘기하는 게 순서겠죠. 이미 많은 분들이 평한 대로 DVD 자체의 화질과 음질만으로도 레퍼런스급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영화 DVD 가운데 레퍼런스급으로 손꼽히는 '아라한 장풍 대작전' 이상의 품질을 보여줬고, 최신 외국영화 타이틀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아톤DVD에는 국내외 어떤 타이틀도 흉내낼 수 없는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청각장애인용 한글 자막과 시각장애인용 영상해설이 그것입니다.

막연히 얘기로만 들었을 때는 실감이 잘 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PC로 DVD를 보면서 언어와 자막 선택메뉴를 보고, 직접 제 눈으로 제 귀로 체험하는 순간 그 소중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청각장애인용 한글 자막은 단순한 장식용 한글 자막이 아니었습니다. 영어자막, 일반 한글 자막과 별도로, 화자, 효과음까지 세세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용 영상해설 역시 배우들의 대사 중간중간 빈틈을 이용해 장면 묘사와 함께 상황 설명을 친절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정말 극장영화가 아닌 DVD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가장 멋지게 발휘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밖에 아직 들어보지 못했지만 스탭과 출연배우들의 오디오 코멘터리에도 큰 기대를 해봅니다. 

자폐아 형진이와 마라톤에 한걸음 다가가기

또 DVD의 또 하나의 결정적 메리트. 부가영상을 빼놓을 수 없겠죠. 말아톤SE의 두 번째 디스크에 담긴 부가영상은 크게 ▲45분짜리 영화제작과정 다큐멘터리 ▲초원이 옛 여자친구와의 만남 등 삭제장면 5개 ▲웃음만발 뒷이야기 영상물 ▲배형진군과 자폐아, 마라톤 이야기 등을 담은 '형진이야기' ▲시사회, 예고편, 포스터촬영현장 등 말아톤 관련 영상 ▲정윤철 감독 단편영화 '기념사진(1997)'과 '동면(1999)' 2편 등입니다.

이 가운데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영상물은 주요 스탭과 배우들이 총출동한 45분짜리 제작 다큐멘터리입니다. 배형진군 실화를 계기로 영화를 만들게 되기까지의 과정, 영화제작과정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는데요. 마라톤대회 장면을 찍기 위해 인천 송도에서 직접 마라톤 대회를 여는 장면과 실제 춘천마라톤대회 현장에서 촬영하는 장면이 눈길을 끄네요. 추운 날씨에 무리한 조승우가 탈진해 쓰러지자 모든 스탭들이 달려들어 팔, 다리를 주무르는 안타까운 장면도 있습니다.

5개 삭제장면도 재밌습니다. 영화에서 왜 빠졌을까 싶게 완성도를 갖추고 있고요. 삭제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는 정윤철 감독의 얘기도 재밌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 초원이의 여자친구를 만나는 장면과 동생 중원이가 한밤중에 혼자 연습하는 초원이를 찾아가 '화이팅!'을 외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네요. 또 춘천마라톤대회에서 초원이가 말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똑같은 신발을 신었다며 "똑같다! 똑같다!" 되뇌는 모습도 재밌습니다.

하지만 역시 부가영상의 백미는 초원이의 실제인물 배형진군과 조승우가 처음 만나는 장면 등이 담긴 '형진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영화 촬영 전에 배형진군을 모델로 만든 말아톤 영화 예고편도 있어 눈길을 끕니다. 또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는 재밌는 모습도 있습니다. 친절하게도 마라톤 입문자를 배려해 준비운동부터 주법을 소개한 영상물 '말아톤? 마라톤!'도 관심을 끄는군요. 무엇보다 다른 자폐아와 부모들의 애환을 담은 '초원이는 자폐증'과 '형진 뮤직비디오'는 독립적인 다큐멘터리로도 손색없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정윤철 감독의 단편영화도 인상적입니다. 97년 만든 '기념사진'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무학여고 여학생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뤘고, 99년에 만든 '동면'은 IMF 당시 심각한 실업문제를 냉동인간이라는 첨단과학기술에 접목시킨 사회성 짙은 작품입니다. 모두 놓치지 마세요.

마무리하며...

500만 관객동원이란 말이 무색치 않는 영화 자체의 작품성, 영화 본편 DVD이 갖고 있는 영상, 음향 등 품질적인 면, 장식용에 그치지 않은 장애인들을 위해 여러 가지 배려, 그리고 풍부한 부가영상 등 모든 것을 감안할 때 감히 지금까지 나온 한국영화 DVD 가운데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부디 말아톤DVD를 계기로 앞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한국영화 DVD가 많이 탄생하길 기대해 봅니다.


                                                        *별빛처럼(김시연) 2005.6.9
                                                                           blog.naver.com/kimsi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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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연 > 레이첼 카슨 평전 中
레이첼 카슨 평전 -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
린다 리어 지음, 김홍옥 옮김 / 샨티 / 2004년 11월
절판


"많은 사람들이 과학 저서가 이렇게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있고 일상 생활과 무관하다는 통념이야말로 바로 제가 도전해보고 싶은 점입니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지식을 실험실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성직자 같은 소수만이 향유하는 특권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일 수 없습니다. 과학적 자료들은 삶의 자료 그 자체입니다. 과학인 실제적인 삶의 일부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의 내용이자 이유이자 방법입니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그것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주조해 준 힘에 대한 이해 없이는 결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350쪽

"저를 감상주의자로 취급한 대도 상관없습니다만, 저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개인이나 사회의 정신적인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어떤 것으로 이 세상의 천연적 특성이 시시각각 대체될 때마다 우리의 정신적인 성장은 그만큼 지연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410쪽

"꽤 급작스럽게 제 마음 속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었어요. 이제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한꺼번에 착착 맞추어지듯이 모든 게 가능할 것처럼 보여요! 더 이상 제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로 작정하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요. 마치 기도에 대한 응답처럼 느껴져요. 답을 구하는 기도를 따로 드리진 않았지만, 제 삶 자체가 바로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누구라도 뭔가를 이루려면 모름지기 꿈을 원대하게 품어야 한다고, 크게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이제 마치 '그렇게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그 길이 제 앞에 훤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요."-466쪽

"저는 '여성'이 하는 일, '남성'이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사람'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따름입니다."-664쪽

카슨은 생명체들간의 상호 관련성,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 관련성으로서 '자연의 조화'를 이야기했다.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카슨의 강력한 언명으로 끝을 맺었다. "우리는 아직도 정복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껏 우리 자신을 거대하고 엄청난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여길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 세대는 자연과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인류는 과거에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지만, 이제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정복하는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704쪽

"무엇보다 그 제왕나비들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뭔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 듯한 그 여유로운 날갯짓을요. 우리는 그들의 몸짓과 생애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죠. 저들이 다시 돌아올까? 우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을 마감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일 테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참 행복한 광경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을 때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어떤 생명체가 삶의 마지막 주기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그 마지막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제왕나비의 마지막은 몇 달 밖엔 안 된다고 알려진 그들의 수명 속에서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수명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마지막에 대한 예측이 좀 다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결국 발상은 동일하죠. 불가해한 주기가 자연의 추이를 따르다가 명이 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결코 불행해 할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요.
이게 바로 오늘 아침 제가 경쾌하게 펄럭이던 작은 생명체에게 배운 점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아주 깊은 행복감에 젖었습니다. 바라건대 그대도 저와 꼭 같은 심정이길." -7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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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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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렀을 때 동시에 느낀 기분 세 가지. 하나, '마르케스의 신작이 나오는 건 처음 보는 걸'(그의 전작이 나왔을 때 너무 어려서 작가와 작품을 몰랐다.) 둘, '히야~ 이 작가의 작품이 새롭게 나오긴 하는구나.' 셋, '내가 그럼 이 대단한 작가랑 동시대에 살고 있는 거야?'(물론, 세대 차이는 꽤 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새 작품을 여전히 기다릴 수 있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무료한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어떤 순서를 밟는 것처럼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었다. <백 년의 고독>을 읽으면서 가요만 듣다가 록 음악과 처음 조우한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록 음악에 빠졌던 그 순간처럼 마르케스와 라틴 문학에 순식간에 빠졌다. 문학이라고 해 봤자, 국문학과 영문학, 일본 문학이 다였던 대학생에게 마르케스, 보르헤스, 아옌데, 세풀베다는 진정한 신세계였다. 그 신세계 속에서 더위에 몸부림치던 3학년 첫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그의 신작을 읽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처음 집었을 때, 책의 두께와 무게에 좀 놀랬다. '호~ 금방 읽을 수 있겠는 걸.' 읽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은 읽는 속도의 배가 걸렸다. 그만큼 이 작품에 주인공의 사랑과 그 애절함이 진하게 농축되어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90세를 맞이한 신문 칼럼니스트. 사랑이 없는 육체 관계에 익숙한 주인공은, 자신이 창녀들 때문에 결혼할 시간이 없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생일을 맞아, 노인은 이제 막 밤의 여자가 된 한 숫처녀와의 하룻밤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 하룻밤은 잠든 처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때부터 노 칼럼니스트는 생애 처음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자고 있는 어린 연인을 위해 칼럼을 쓰고, 그녀의 집을 장식하고, 보지 못할 때의 연인을 그리워한다.

사랑을 할 수 없었노라고 선언하던 사람의 사랑은 눈물겹다. 세상의 눈이 두려워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표현할 수 없었던 한 남자. 그리고 그의 어린 연인 역시 자신의 사랑을 떳떳이 밝힐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둘의 사랑을 가슴 졸이면서 읽어 내렸다. 그동안 마르케스의 여러 작품들은 사랑을 읊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그 중에서도 작가 본인의 감정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90세의 신문 칼럼니스트와 작가를 동일시한 건 나 하나였을까. 분명 많은 독자들이, 그리고 작가 자신도 그랬을꺼라 믿고 싶다. 전작들처럼 환려하고 격정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한 노인과 어린 창녀, 델가디나의 사랑에는 진정성이 살아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포주의 입을 빌어서 표현된 델가디나의 짤막한 고백은 진정한 애정과 그 결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는 여전히 마르케스 특유의 환상적인 문체와 상황이 가득하다. 소설가는 현재 70대 후반이다. 다시 한 번 그의 신작 소식을 듣고, 동시대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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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movieweb.com)

<스타워즈 3>와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다음으로 내가 가장 기다리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

지미 팔론(지미!!)과 드류 베리모어가 출연하는 것 외에도 닉 혼비의 소설이 원작이라서 개봉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작년 12월인가, 1월인가... 회사에서 무언가 준비하다 우연하게 닉 혼비의 소설이 영화로 제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부랴부랴 교보 외국어매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가 <피버 피치>를 원서로 구입했다. 그리고 현재도 꾸역꾸역 읽고 있는 중이다.(재미는 있는데 영 진도가 시원찮네 그려....)

그런데 럴수 럴수 이럴수! 원서를 부여잡고 있는 동안 2월에 번역본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더 강렬한 표지로! OTL..... 애통할지고~~~

하여튼, 최근에 온스타일서 하는 <헐리우드E뉴스>를 통해 영화를 살짝 볼 수 있었다. 10초에 불과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강렬했다.(나름대로 나한테는....^^;;) 물론 미국식으로 변형된 터라 축구가 야구로 바뀐 건 좀 아쉬웠지만. (그래서 아스날이 아닌 보스턴 레드삭스가 팬덤의 대상이다.) 그래도 패럴리 형제가 만드는 만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후훗~

사실 닉 혼비의 <피버 피치>가 영화로 만들어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에 영국에서 콜린 퍼스를 주연으로 한 영화가 이미 개봉한 바 있다. (이번 헐리우드 판에 대한 정보를 뒤지다 알았다. 알고보니 리메이크군....^^;;) 97년 작에는 축구도 그대로 등장하고, 아스날도 등장하고, 심지어 닉 혼비가 까메오로 출연한다고 한다.

97년이면 아직 월드컵 열기가 덜 달아올라서일까. 우리 나라에서 영국판 <피버 피치>는 개봉도 안 했고 비디오나 DVD도 안 나와 있다.ㅠ_ㅠ 98년에 프랑스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으면 이 영화가 개봉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서 개봉날짜나 잡혔으면....그리고 영국판도 어떻게든 들어오기나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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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5-2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서는 영 여자친구 이야기 없는데, 완전 다른 내용이 될것 같아 두렵습니다. -_-a
그나저나 콜린퍼스가 나왔던 피버피치!는 완전! 보고 싶군요!!!

강한벌레 2005-05-2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이상, 아무래도 원작과는 많이 다르겠죠..^^;; 그래도 패럴리 형제의 내공에 기대를 거는 중입니다. 콜린 퍼스의 <피버 피치>는 아마존으로라도 구해 볼까..생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