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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평점 :
마르케스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렀을 때 동시에 느낀 기분 세 가지. 하나, '마르케스의 신작이 나오는 건 처음 보는 걸'(그의 전작이 나왔을 때 너무 어려서 작가와 작품을 몰랐다.) 둘, '히야~ 이 작가의 작품이 새롭게 나오긴 하는구나.' 셋, '내가 그럼 이 대단한 작가랑 동시대에 살고 있는 거야?'(물론, 세대 차이는 꽤 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새 작품을 여전히 기다릴 수 있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무료한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어떤 순서를 밟는 것처럼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었다. <백 년의 고독>을 읽으면서 가요만 듣다가 록 음악과 처음 조우한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록 음악에 빠졌던 그 순간처럼 마르케스와 라틴 문학에 순식간에 빠졌다. 문학이라고 해 봤자, 국문학과 영문학, 일본 문학이 다였던 대학생에게 마르케스, 보르헤스, 아옌데, 세풀베다는 진정한 신세계였다. 그 신세계 속에서 더위에 몸부림치던 3학년 첫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그의 신작을 읽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처음 집었을 때, 책의 두께와 무게에 좀 놀랬다. '호~ 금방 읽을 수 있겠는 걸.' 읽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은 읽는 속도의 배가 걸렸다. 그만큼 이 작품에 주인공의 사랑과 그 애절함이 진하게 농축되어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90세를 맞이한 신문 칼럼니스트. 사랑이 없는 육체 관계에 익숙한 주인공은, 자신이 창녀들 때문에 결혼할 시간이 없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생일을 맞아, 노인은 이제 막 밤의 여자가 된 한 숫처녀와의 하룻밤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 하룻밤은 잠든 처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때부터 노 칼럼니스트는 생애 처음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자고 있는 어린 연인을 위해 칼럼을 쓰고, 그녀의 집을 장식하고, 보지 못할 때의 연인을 그리워한다.
사랑을 할 수 없었노라고 선언하던 사람의 사랑은 눈물겹다. 세상의 눈이 두려워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표현할 수 없었던 한 남자. 그리고 그의 어린 연인 역시 자신의 사랑을 떳떳이 밝힐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둘의 사랑을 가슴 졸이면서 읽어 내렸다. 그동안 마르케스의 여러 작품들은 사랑을 읊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그 중에서도 작가 본인의 감정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90세의 신문 칼럼니스트와 작가를 동일시한 건 나 하나였을까. 분명 많은 독자들이, 그리고 작가 자신도 그랬을꺼라 믿고 싶다. 전작들처럼 환려하고 격정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한 노인과 어린 창녀, 델가디나의 사랑에는 진정성이 살아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포주의 입을 빌어서 표현된 델가디나의 짤막한 고백은 진정한 애정과 그 결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는 여전히 마르케스 특유의 환상적인 문체와 상황이 가득하다. 소설가는 현재 70대 후반이다. 다시 한 번 그의 신작 소식을 듣고, 동시대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