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뿔
권정현 지음 / 노블마인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 유물을 둘러싼 고도의 추리물을 기대했다. 원체 역사와 픽션이 결합된 팩션 장르를 좋아하는 지라 <다빈치 코드>류의 재미를 느낄거라 예상했다. <동한연의>의 이야기와 함께 대선이 펼쳐지면서부터 추리극보다는 정치 활극으로 마음을 바로잡았다. 바로잡지 않고서는 읽겠다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과연 무엇을 읽었는지 종잡기 힘들었다. 사건 수사로 시작해 권력욕이 뒤엉키고 나중에는 유물 보호의 정당화 주장?

작가는 <달팽이의 뿔> 속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았던 것 같다. 첫 장편인만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리라. 덕분에 시작은 거창했다. 다섯 병정을 둘러싼 배경과 사건, <동한연의>라는 작자 미상의 소설이 상당히 긴박감 넘치게 소개되면서 읽는 이의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과연 이 소설이 주인공과 주인공의 현실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다섯 병정을 훔친 이는 과연 누구일까? 다섯 병정은 결국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작가는 속도감 있는 문체와 전개로 이런저런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시작에 비해 결말은 초라하다. 한껏 벌려 놓은 이야기를 분량과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포장한 느낌이 든다. 권정현 작가가 결말을 위해 제시한 복선이나 구성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한나라 왕위 찬탈을 노린 5명의 역적들과 대권에 도전하는 5명의 후보를 함께 엮은 것은 그 숫자 외에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두 상황의 허술한 연결은 단지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로만 보여진다. 아울러 주인공의 성격 묘사도 상당히 부족하다. 섬세하지 못한 내면 표현은 그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평면적인 캐릭터로 끝나버렸다.

물론 복잡한 내용을 쉽게 읽히도록 표현한 것과 속도감 있는 전개는 높이 살 만 하다.(개인적으로 <동한연의>를 풀어 쓴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덕분에 추천서를 쓴 박철화 교수의 글대로 권정현 작가는 이야기꾼이라 부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단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만으로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소설 속에는 줄과 줄 사이의 빈 틈에서도 작가의 생각이 읽혀야 된다고 생각한다. <달팽이의 뿔>은 그런 빈 틈이 그저 '빈 것'으로 느껴진다. 이야기는 있지만,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빈 틈이 계속 느껴진다.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만 끝난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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