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살면서 사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늏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 P33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래.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느끼는 걸까?"
"괜찮아."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네가 생각에 푹 빠져서 길을 걷고 있어. 어떤 여자가맞은편에서 오는데 마치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왼쪽도 오른쪽도 안 보고 그대로 전진하는 거야. 둘이 서로 부딪쳐. 자,
이제 진실의 순간이야. 상대방한테 욕을 퍼부을 사람이 누구고, 미안하다고 할 사람이 누굴까? 전형적인 상황이야. 사실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가 하면 또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상대에게 부딪힌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드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경우 너라면 사과할 것 같아 아니면 비난할 것 같아?"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 그래, 그렇지."
"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 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어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