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금 1,306일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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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인간들은 비밀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폭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악의 의사소통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인 듯하다. 다른 종이라고 훻씬 나은 건 아니지만, 청어조차 자신이 속한 무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며 그에 따라 헤엄쳐 나간다. 

그런데 왜 인간은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기진 수백만 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걸까?

바다 또한 비밀을 아주 잘 지킨다. 특히나 바다 깊숙한 곳에잠긴 그 비밀은 내가 아직도 굳게 지키고 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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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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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나는 도서관에 가서 잠에 대한 책을 읽어보았다. 잠에 관한 책은 그다지 많지 않고, 별로 대단한 내용도 없었다. 결국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잠이란 휴식이다. 그것뿐이다. 차의 엔진을 꺼버리는 것과 똑같다. 줄곧 휴식 없이 엔진을 작동하면 얼마 못가 망가져버린다. 엔진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열을 발생하고 그렇게 고인 열은 기계 자체를 피폐하게 한다. 
그래서 방열을 위해 반드시 쉬게 해주어야 한다. 엔진을 끄고 다운시킨다. 그것이 곧 수면이다. 

인간의 경우, 그것은 육체의 휴식이면서 동시에 정신의 휴식이기도 하다. 몸을 눕히고 근육을 쉬면서 동시에 눈을 감고 사고를 중단한다. 그랬는데도 남아 있는 사고는 꿈이라는 형태로 자연 방전한다.

어떤 책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다. 인간은 사고에 있어서도 육체의 행동에 있어서도 일정한 개인적 경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그 저자는 말했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의 패턴을 만들어나가는 존재이고, 한번 만들어진 그런 경향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바뀌지 않는다. 즉 인간은 그러한 경향의 감옥에 갇힌 채 살아가는 셈이다.

그리고 잠이야말로 그렇게 한쪽으로 쏠린 경향을 - 구두 뒤축이 한쪽만 닳는 듯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 중화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잠 속에서, 한쪽으로 쏠린 채 사용되던 근육을 자연스럽게 풁어주고, 한쪽으로 솔리뉴채 사용되면 사고 회로를 진정시키고 또한 방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쿨다운된다.

잠은 인간이라는 시스템에 숙명적으로 프로그램화된 행위이며 누구도 그것을 패스할 수는 없다. 잠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존재 그 자체의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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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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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양 사나이 씨의 세계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 나는 말했다. "그런 다양한 세계가 모두 이곳에 뒤섞여 있다. 너의 세계, 나의 세계, 양 사나이씨의 세계. 서로 겹쳐진 부분도 있고 서로 겹쳐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런 얘기지?"
소녀는 작게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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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assume)이란 너와 나를 바보로 만들 수 있는(make an ASS out of U and ME)것"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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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깉은 것도 조금은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마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설령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오히려 몸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기져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주위의 누군가에게 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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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될 만해서 러너가 되는 것이다. - P73

[ 한여름의 아테네에서 최초로 42킬로를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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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가 넘는 여름풀 너머로 결승점이 조그많게 보이기 시작한다. 마라톤 마을 입구에 있는 마라톤 기념비이다 그것이 진짜 결승점인지 아닌지 처음에는 잘 판단할 수 앖었다. 결승점이라고 하기엔 눈앞에 너무 갑작스레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종착점이 보이는 것은 기쁨 일이지만 그 갑작스러움에 대해 까닭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마지막이니까 사력을 다해 스피드를 내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해도 다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지는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온몸의 근육이 녹슨 대패로 깎여 나간 것처럼 거칠게 보였다.

골!!

드디어 결승점에 다다랐다. 성취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머릿속에는 ‘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 라는 안도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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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찬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은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102

[ 이제 아무도 테이블을 두드리지 않고 컵을 던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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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있으면 마지막 단계쯤에 일분일초라도 빨리 골인해서, 아무튼 이 레이스를 완주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그런 건 추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끝이라고 하는 것은 , 그저 우선 단락을 짓는다는 것뿐으로, 실제로는 대단한 의미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이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라는 사물의 의미를 편의적으로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또 그 유한성의 에두른 비유로서, 어딘가의 지점에 다른 일은 젖혀놓고 우선 종착점이 설정되어 있을 뿐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꽤 철학적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것이 철학적이라는 따위의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말이 아닌 오직 신체를 통한 실감으로서, 말하자면 포과적으로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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