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CD 캘린더
독일teNeues 편집부 엮음 / 독일teNeues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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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놓인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왠지 편안해진다. 클림트의 화려한 색감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지만 '클림트 CD 캘린더'가 내곁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달력하면 음력과 국경일 표시가 있어야한다는 나의 통념을 잊게 할 정도로 클림트의 그림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다. 마치 나만의 작은 갤러리가 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클림트 CD 캘린더'는 크기가 너무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기 때문에 부담이 없고 또한 달력이란 역할이 없더라도 클림트의 그림자체로 만족할만한 것이다. 또한 달이 지난 그림은 애인에게 사랑의 쪽지를 전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할수있기에 더욱 만족스럽다.(개인적으로 나의 여자친구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다만 음력과 국경일 표시를 크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달력이 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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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로자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 지음, 오영희 옮김 / 예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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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편지들을 묶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선택을 두고 고민했다. 로자의 편지를 모두 출판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폴란드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과 관련된 부분만 추려낼 것인가, 아니면 로자의 인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자유로운 영혼 로자 룩셈부르크]편집자의 글-

이 편집자의 글을 본후 이 책을 산 것을 후회했다. 왜냐하면 로자의 인간적인 면이 과연 개인신상에 관한 제한된 편지에서 볼수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했던데로 로자가 애인인 레오 요기헤스에게 보낸 편지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있고, 연애편지라해도 정치적인 부분은 중략 되버린 느낌을 감출 수없기 때문이다. 편지 하나에서도 생략된 부분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이 책을 구입하면서 로자가 개인의 신상과 그의 정치적 활동의 통일된 면을 감상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임을 처절히 확인했다. 인간적인 부분만으로 로자의 삶에서 골라놓는다는것이 로자의 삶에서 잡글에 불과한 글만을 뽑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과거 [이론과실천]출판사에서 '혁명가의 품성'(책 제목이 정확하지 않음)이란 책을 본적이 있었는데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서한 중에 전후내용은 생략된 채 생활 태도에 관한 문구만 편집해 책으로 만들어 우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영혼 로자 룩셈부르크]는 남성중심의 정치활동에서 빼어난 여성정치가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나는 차라리 우상화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단지 남성의 편견이 만든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으로 로자의 '인간적인 부분'이라 말하고 있다. 남성인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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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하나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93
김남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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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님은 자신의 시가 활동가(activist)들에게 읽어지길 원했다. 여기서 활동가들이라고 하면 사회적 발전과 개인적 발전을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라 생각된다. 소수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에 그들에 굴종하는 사람들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의 삶과 일상에 접근하여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랬던 것이다. 아마 활동가들이 김남주님의 시를 읽는 다면 일상에 힘을 받고 더욱 치열하게 살것이다.

그런데, 활동가가 아닌 사람이 김남주의 시를 읽는 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혹은 그런 사람이 김남주의 시를 읽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상의 지리함 그리고 일상에서 수없이 접하게 되는 불합리/불평등을 접하되 이것을 해결 할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상태에서 김남주의 시를 읽는 다는것은 아마도 자유에 대한 갈증만을 위안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아마도 자유를 향한 작은 행동일것이다.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남주님의 시를 읽으면 확인되는 나의 부자유스러움...

나의 자유롭지못함을 김남주님의 시를 통해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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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김남주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요,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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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지음 / 살림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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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는 죄인이다. 나는 앚아서 성장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에게 경배하러 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육체에 물을 묻히고 녹이 슬기를 기다렸다. 서울에서 나의 행복론은 산산조각나고 있다. 내가 거듭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변하기 위해 나는 지금의 나를 없애야한다. 그것이 구원이다.'(기형도. <<기형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pp.22~23)

(2)'빗방울처럼 아아, 이 우울하고 음침한 북구의 하늘 같은 나의 몽상이여. 공원의 낡은 목조 팔걸이 의자위로 힘없이 뒤집히는 신문지 조각 같이 서럽게 또 다시 천천히 땅의 동맥을 관통하며 지나가는 기적소리여 나는 언제부터 이따위 시시한 감상주의자였을건가. 이 둔감한 나의 지성과 딱딱한 빵껍질처럼 굳어 더 이상의 탄도를 잃고 쓰러진 용수철 같은 완고한 철학과 언어요. 공격적 성품 오우, 펜촉이 날카로운 이유를 나는 왜 납득하려 하지 않았을까. 나는 운명과 사내를 기피해온 일 개 무숙주의자였으며 현명한 무숙주의자가 되기엔 또 얼마나 현실적 사고의 그라프에 따라 좌표를 이동하였던가. 아아, 나는 마침내 또다시 영락하고 말았음을 확인하였다.'(기형도. <<기형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p71)

(1)은 1988년 여행중 광주에서 쓴 글이다. (2)는 1982년 일기로 보이는 '참회록'중에 하나다.

기형도는 '나는 마침태 또다시 영락하고 말았음을 확인'하였고, '지금의 나를 없애야'했던 사람이었다. 그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고 지울수있었던 것을 시로 말하였다. 그의 유작시집 <<입속의 검은 잎>>에서 너무도 정확한 단어선택으로 피부가시를 세울수밖에 없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죽은자(기형도)의 편린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허위와 가식으로 둘러싸인 내 일기와 메모를 비교하였다. 언제나 좌충우돌하고 현실에 기댄 무능력의 상징을 내 끄적거림에서 볼수있다면 그는 철저히 씻어낼 수 없는 자신의 허울 멀정한 껍질을 벗겨내는데 너무도 투철한것이었다.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는 탈피의 과정은 얼마나 힘겨운 것인가. 벗겨낼수없는 가벼운 껍질의 무게는 감당하기 힘든 것인가. 그것을 나는 기형도의 정제된 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가 간간히 남기고 간 여행기, 일기, 편지, 단편소설, 서평 속에서(직업상 쓴 기사를 제외하겠다.) 진중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형도는 감정의 뱉어냄이 아니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살을 베어내었다. 기형도의 시는 바로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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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 밀레니엄 프로파일 1
로버트 서비스 지음, 정승현 외 옮김 / 시학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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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에게 정치를 빼면 뭐가 남을까? 그러니까 볼세비키 당과 코민테른을 빼놓고 레닌의 이야기를 하면 레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분명 생물학적 결론만이 나올 것이다. 비약이 심하다고 해도 레닌이라는 한 인물의 삶에서 정치는 핵심이며 저변이다. 그런데 레닌에게 인간적 감성을 추가한다면 과연 역사에서 레닌에 대한 평가나 의의가 재정립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회의를 감출 수 없었고 <<레닌>>을 읽으면서 의구심을 해결하고자 했다.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은 정치적인 동물이었던 레닌에게 인간적 감수성이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길게 인용하겠다.

'우리는 실제로 악렉상드르의 처형에 대해 레닌이 얼마나 많이 분노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리고 확실히 그는 객관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을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냉정했고 또한 분석적인 모습을 지닌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로마노프 왕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든지 간에 그는 짜르가 지배하는 전체 사회체제에 강력히 대항했다. 그는 귀족과 기업가와 은행가를 혐오했다. 게다가 레닌에게 있어서의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자나 철저한 반동주의자만큼이나 나쁜 것이었다. 다른 정치 지도자들과는 달리 그는 임시정부를 새로운 체제의 구현이 아닌 낡은 것의 새로운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맑스주의 이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하수인 과 그들의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그는 악렉상드르의 사형이 집행된 후 자신의 가족이 심비르스크에서 어떻게 추방되었는지를 회상했다. 분명 볼코보 공동묘지의 방문이 그의 기억을 일깨웠을 것이다 그에게 용서하고 잊으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확실히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빚을 청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복수를 원했고 살아남은 그의 가족들--당의 다른 사람들도(그리고 일반 대중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p484

'레닌이 중산계급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것을 당의 목표로 삼았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부유층과 귀족층, 특권층들에 대한 가혹한 조치에 관한 문제들은 확실히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했고 레닌은 이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1887년 레닌의 형인 알렉상드르가 교수형을 당한 후에 구통치 엘리트들에 대한 레닌의 격렬한 원한은 결코 생각의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을 수 없었다.'pp.579~580

레닌의 형, 테러리스트 알렉산드르의 교수형이 레닌의 의식에(그러니까 정치활동과 정책결정)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이야기한다. '임시정부'에 대한 태도와 '부유층과 귀족층, 특권층에 대한 가혹한 조치'가 교수형 당한 형을 위한 복수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교묘히 주입하고 있다. 내 의구심(<<레닌>>이라는 책에 실망할지도 모른다는)은 확실했다. 이중권력에 대한 레닌의 견해는 사라졌고, 왜 노동자계급의 지배가 구통치 엘리트를 억압해야만했는지를 설파한 그의 견해는 희석 되 버렸다. 레닌에게는 형의 죽음이 '결코 생각의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위대성을 높이 평가하는 로버트 서비스의 글이 있다하더라도 가장 정치적인 동물이었던 레닌을 가족사의 복수 극을 멋들어지게 행한 인물로 그려진 것이다.

아직 레닌의 사상이 한국에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전기가 나온 것이 아주 찝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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