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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불꽃이 되고 싶어라!'
나는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하루는 마오의 전기인 <붉은 별>을 보고 '그 시대는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반동이 되는 시대였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시대에 풍미하는 조류에 휩쓸리게 하는 것과 흑백논리를 강요하는 사회(혹은 시대)를 비판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체는 마오를 굉장히 신뢰했던 것 같은데...'라 말하며 체와 마오 두 사람은 모두 동일하게 암울한 시대에 희망이 되어준 정치적 표상임을 내 비췄다.
내가 물꼬를 틀었지만 체와 마오(또는 체와 스탈린, 체와 레닌, 등등)로 대립시키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체가 상징하는 것과 그 밖에 인물들이 상징하는 것들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논지에서 체는 억압적인 사회 규율을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회 건설 위해 백의종군을 마다하지 않는 '자발적인 인간'이었고, 그 밖에 인물들은 억압적인 사회 규율을 확립하고 보다 공고히 했던 인간이었던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이 우리 나라에서 전기문의 통상적인 판매 부수를 뛰어넘고 체의 포스터와 뱃지가 곳곳에 붙여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나는 바로 그 친구가 행했던 평가와 독자들의 평가가 어느 정도 부합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들은 체 게바라의 그림자만 잡고 그의 실천이나 사상에는 무관심한 가벼운 유행일 뿐이라고 평한다. 대중들의 관심 집중이 되면 체 게바라에 대한 인식이 질적으로 향상되기보다는 오히려 저하가 된다는 우려를 포함한 것이겠지만 내게는 그러한 단순한 유행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즉, 독자들의 평가에는 단순히 체 게바라 자체에 대한 평가이기보다는 다른 이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아르헨티나인으로 쿠바 혁명에 참여하고 아프리카와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종횡무진한 모습에서 특히 말끔한 연설이나 문장으로 대중을 선동하기보다는 게릴라로 몸소 실천했다는 것. 세상을 온통 불사르진 못했어도 자신의 불사르는 불꽃이 되어 자신의 고유한 빛을 잃지 않았다는 것. 뭐 이런 것들이 빛 바래졌던 그리고 지금도 바래지고 있는 시대의 영웅이나 지도자와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매일같이 자신의 신념에 불타는 생활을 하고는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이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어쩜 굴욕적일지도 모른다)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들(즉 이 책을 보며 열광했던 독자들)의 처지를 반추하며 <체 게바라 평전>을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이익과 개인적 이익이 부합되지 않을 때, 더구나 개인적 이익보다는 개인의 자아실현이라는 것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이 봉급을 걱정하거나 불확실한 장래에 괴로워할 때, 이에 또 부과되는 괴로움으로써 이 사회의 굴레에 억눌려 주체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질 때, 영웅이 되고 싶고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영웅을 기다리게 되거나 과거의 영웅을 돌이켜본다는 측면에서 체에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체 게바라 평전>은 청량제였다.
바로, <체 게바라 평전>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선명히 타오르는 불꽃인 '체'를 돌이켜보며,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에게 '불꽃이 되고 싶어~!' 라는 소리 없는 절규를 대신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