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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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서 함께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다.  이때 누가 마이크를 잡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분위기를 망치는 이가 있다.  분위기 망치는데 일조하시는 분은 소위 말해 `음치'과에 속한다.  음의 높낮이, 템포의 빠르고 느림, 박자의 엇나감, 음색의 고움과 거침 등이 노래방 가수와 음치를 나뉜다.    문제는 음치과에 속하는 분들이 대개 자기 몰입형이란 것이다.  주위의 고통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흥에 겨워 노래하기 마련이다.   

노래 잘 못하는거야 사는데 지장이 없다.  노래 부를 기회도 그리 자주 찾아오진 않는다. 외국 사람들은 특히 사람들앞에서 노래 부르길 더 꺼려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매우 용감한 편에 속한다. 잘 부르건 못 부르건 함께 어울린다는것에 미덕이 있다.  음치가 노랠 못해도, 분위기를 깨도, 미움받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언치'라는 다소 낯선 용어를 들어보았는가?   언어의 활용이 미숙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말치(말을 잘 못하는 사람)' 나 `글치(글을 잘 못쓰는 사람) 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소설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 나오는 용어다.  노래 못하는 사람을 `음치'라 한다면 언어 활용이 서툰 사람을 `언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 사용에 지장이 있다면 노래 못 부르는 문제보단 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현대인에게 글쓰기 능력은 학생이나 직장인 모두에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는 두툼한 두께만큼 언치들의 의지가 될법한 듬직한 글쓰기 책이다.  저자 이름이 몹시 생소하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지은 소설가이자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는 전문가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고백한다.  `나도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좋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말도 한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좋은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전문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며 유수한 문학상까지 받으신 저자님이 지금 글쓰기의 공포로 이 책을 잡은 독자들을 희롱하는가?  아니겠지, 이건 겸손함이다. 겸손은 원래 미덕아닌가?  잠시 마음이 심란하다.   그러나 이 두툼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야 저자의 고백의 진의를 깨닫게 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는것.  등단 수년차의 작가에게나 글쓰기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당신에게나...

왜 글쓰기가 어려운가?  우린 글쓰기를 하나의 기교나 기술로 알고 있다.  이 당혹스러운 착각을 분명하게 짚어주고,  수정할 근거를 제공해 준 것은 이 책이였다.  글쓰기는 연습과 노력의 산물이란 고정관념때문에 기교나 기술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글에는 삶이 담겨 있고, 거기거 끌어올린 `새로운 진실'이 녹아 있다는 의미에서 글쓰기는 깨달음이며, 철학이다.  깨달음과 철학에 이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평생을 수행해도 불가의 스님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오직 깨닫기 위해 고통스런 수행을 지속하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당신의 이웃은 기교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도를 터득해서 먼저 사물을 다르게 인식하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 자신의 성정을 갈고 닦으면 문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글쓰기란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훌륭하고 모범적인 사람이나 번듯한 생각에 대해 표현하는 작업이 아니다. 불완전하면 불완전한 대로 바로 자기 자신의 느낌,정서,생각, 상상력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작업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실질적 정직'이야말로 글쓰기의 `첫 단추'인 것이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p.62

작가가 지적하는 `실질적 정직'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준을 말한다.  우리가 한 편의 글도 창작할 수 없는 것은 먼저 이 정직이라는 눈으로 세상의 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자신과 세상을 보려면 먼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대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듯, 우리는 솔직히 생각하는 것을 글로 풀이하지 않는다. 마음속의 숱한 장애물들이 정직한 자아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글이 왜곡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언어 능력이 풍부한 성인이 쓴 글보다 초등학생의 글이 더 낫게 보이는 이유를 저자는 이 `실질적 정직'의 문제에서 찾는다.   

"이렇듯 정직하고 진솔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면 그것으로 작품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비유나 수사는커녕 철자법조차 갖추지 못해도 좋은 것이다. (...) 매끈하지 않지만 한 구절이라도 살아서 반짝이는 문장이 좋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p.65-67

노래방에서 노랠 부를 기회만큼 이젠 글을 쓰는 일이 범상한 이들의 일상이 된 시대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이 서점가에 넘쳐나고 있다.  글쓰기 책 몇 권만 읽으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도는 누구나 감잡을 수 있다.  글쓰기 책에서 강조되는 것들도 대부분 기술적인 면에 치우치곤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쓰는 자의 자세다.  마인드가 중요한 것이다.  글은 때로 흉기가 될 수 있다.   직업적 글쓰기에 능숙한 기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왜곡과 편파 보도에 능숙한 언론인들은 글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곤 한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는 글쓰기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와 기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내려한 책이다. 책의 중심부는 창작 위주의 첨삭과 합평 강의가 주를 이룬다.  이 부분은 읽기에 따라 지루할 수 있다.  수많은 예문과 저자의 친절한 고쳐쓰기 해설이 반복된다.  일반적인 글쓰기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루는 글쓰기의 철학과 자세라 일컬을만한 부분은 독창적이며, 재미있고, 깊이가 있다.  따로 떼어내 읽어도 좋은 글쓰기론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여타의 글쓰기 책과 구분되는 <글쓰기 공작소>만의 `고갱이'이라 부를 만 하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우리들의 소심하고, 게으른 습성 하나를 질타한다.  "우리의 글쓰기 역시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늦은 것일 수 없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쓰고 성찰하는 우리 각자의 행동이 언제나 가장 빠른 길이다."(p.384)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 일에는 누구나 일가견이 있다.  그러나 글쓰기에 있어선 미루기야말로 최대의 적이다.  오늘 쓰지 않으면 내일은 더 잘 쓰지 못할 것이다.  

글쓰는 이에게 독서는 약이자 독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워가 <인생론>에서 독서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적었다.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사고의 원천이 완전히 고갈되었을 때에만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러나 독서를 하기 위해 자신의 강력한 사상을 내동댕이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식물 표본첩을 보기 위해 또는 동판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구속되어 있지 않은 자연으로부터 도망치는 것과 같다."  <쇼펜하워 인생론>, 육문사, 김재혁 옮김 

나또한 마찬가지다. 서평이라고 끄적거리는 몇 편의 글 빼곤 글을 도무지 쓰지 않는다. 아니 쓸 만한 용기가 없다.  미적거리다 언제나 눈길을 돌리는 곳은 빼곡히 들어찬 책장의 서적들이다. 저 책들을 다 읽으면 뭔가 나또한 자유롭게 쓸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낸지가 오래전이다.  그러니 독서는 글쓰기의 도피처가 될 수 있다는, 쇼펜하워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 책을 읽을때마다 깨닫는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지금 바로 써보라.   "행동이 최선의 방법이니까"



200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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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7-1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대로 지르게끔 하시네요~.ㅎㅎㅎ
마지막 사진도 멋져요~.^^

개츠비 2009-07-13 22:32   좋아요 0 | URL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입니다. 지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ㅎㅎ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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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계화란 더이상 정치인이 내뱉는 선동구호나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나비효과를 연상시킨다.  이 과학용어는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로렌츠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이며, 이것은 훗날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한다.  대개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예를 들면, 중국 상공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얼마후, 미국 워싱턴에 허리케인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경제상황에 적용하면 과학 이론으로 정립된 것보다 더 분명한 그림이 그려진다.  전날 미국의 증권시장(다우,나스닥)에 몰아친 폭풍우가 한국의 코스피에 대재앙이 돼 버리는 것은 일상다반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과 상관없는 거시적인 경제현상도 아니다.  미국에서 느닷없이 발생한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선캄프리아기쯤의 빙하기로 후퇴시켰다.  그 여파는 잘 나가던 유럽의 금융 중심 국가들을 몰락시켰고, 기축통화인 달러의 지위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며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더불어 각 개인에게 몰아닥친 직접적인 영향은 대규모 실업과 소득감소라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태였다.  이만큼 현실적인 나비효과가 어디 있겠는가?

경제학에 문외한인 대중들이 경제학 서적들을 펴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전 구속되었다 풀려난 미네르바는 한때 한국 경제의 `위대한 예언자'노릇을 했다.   그의 신분이 공개되기 전까지 그는 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제 금융업계에 종사한 이력이 있을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세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을 예언하고, 국내 경제의 흐름을 한동안 족집게처럼 집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학의 그 흔한 경제학 교수들에게 강의 한번 들어본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유명세를 탔는가 하면,  한국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면담을 시도했을 정도다.

미네르바 사건으로 우리는 몇가지 교훈을 얻었다.  부활한 빅 브라더가 있으니 입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첫번째다.  진실을 유포하면 이유여하를 막논하고 잡혀갈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거리'인 법을 들먹이며 법치를 강조한다.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자기검열에 몰두해야 한다.   소위 위축효과(chilling effect) 덕분이다.  더불어, 명망높은 경제학자나 관료님들이 경제 위기의 시대 쏟아낸 언사나 정책들의 신뢰성 문제다.   곧 망할 것이 확실했던 리먼 브라더스의 주식을 사려한 모 은행의 헛발질은 이제는 전설이 된지 오래다. 경제학자나 관료들은 경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그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걸까?  미네르바 사건 이후, 대중들이 갖게 된 자연스런 의문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일단의 경제학자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는 부시 정권의 경제정책에 쓴소리를 해온걸로 유명한 학자다.   오바마 취임후에도 그의 쓴소리는 멈추지 않고 더 가혹하다.   오마바의 금융위기 대처 방안들에 대해선, 사기나 마찬가지라며 입바른 소리를 한적도 있다.  그가 최소한 정권의 입맛에 따라 놀아나는 학자가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그를 신뢰할 수 있는 하나의 분명한 증표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기 4년전인 1994 발표한 한 논문에서 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허구적"이라고 주장하며 학계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의 고속 성장은 요소 생산성(기술 진보)의 향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요소 투입량(노동과 자본 등)의 증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요소 투입량은 무한정 늘릴 수가 없기 때문에 성장도 곧 한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아시아 기적의 신화The Myth of Asian Miracles, 포린 어페어즈 1994년 11월 논문 가운데)

신뢰받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2008년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경기침체, 불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했을까?  그가 아시아 금융 위기 때인10여년전 출판했던 같은 제목의 책을 개정, 증보해 펴낸 것이 <불황의 경제학>이다. 

이 책에서 그는 수년 전 경기불황과 위기를 겪었던 일본,아시아,남아메리카의 경우를 상세히 분석해 들어간다.  위기의 배경과 상황을  열거한 후,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에 해법을 내놓는다. 간단히 말해 미국에서 발생한 최근의 위기를 그는  `규제를 받아야 할 기관들이 규제를 받지 않고 오히려 높은 리스크를 감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결국 주택거품이 터지면서 상상 훨씬 이상의 나쁜 결과가 야기되었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바로,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 <불황의 경제학> p.190

"영향력있는 인물들이 나서서 한 가지 간단한 규칙, 즉 은행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모든 기관들, 다시 말해 은행과 똑같은 방식으로 구제되어야 하는 모든 기관들을 은행과 똑같이 규제한다는 내용의 규정을 발표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폴 크루그먼, <불황의 경제학> p.203

그의 예언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명확해진다. " 현재의 경제 위기는 세계 대공황의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황경제학이 컴백했으며, 이 말의 뜻은 본질적으로 두 세대 만에 처음으로 경제에서 수요 측면의 실패가 세계 번영에 뚜렷한 당면 제약이 되었다는 것이다."(226p)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크루그먼은 세계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신용경색 완화 노력과 소비지원에 진력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소비지원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통해 내수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보수주의 정권하에서 무시되어온 케인스식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세계화 내지 신자유주의는 탈규제, 감세를 통해 시장을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시장은 그에 맞게 제자리를 찾게 된다는 신념이었다.  즉, 보이지 않은 손이 모든 일을 할테니 정부는 손을 떼라는 것이다.  이것이 1970,80년대 영국과 미국을 지배했던 대처와 레이건의 정책 즉 신자유주의였다. 그러나 또다시 컴백한 불황경제속에서 지금 세계의 정부들은 지나친 시장의 자유때문에 파멸의 길로 걷고 있는 자신들의 경제를 목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번 금융위기에서 어떤 교훈도 얻은게 없는 것일까?  정부 정책은 규제를 풀고, 부자들의 세금을 깍고, 포이즌 필(poision pill) 제도를 통해 재벌의 경영권 방어를 돕는데 앞장 서려한다.  한물간 토건사업에 치중하고, 규제받아야할 금융산업에 대해 금산법 개정으로 재벌이 금융산업에까지 진출하는걸 허용해주려 한다.  부동산 시장은 풀 수 있는 거의 모든 규제를 풀어놓아 과열 조짐까지 보이자 난발되는 주택담보대출에 뒤늦게 브레이크를 걸겠다고 나섰다.  부자들의 세금을 깍은덕에 발생한 세수부족을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담배나 술에 `죄악세(sin tax)'라는 해괴망측한 이름을 붙여 세율을 인상하고, 보충하려든다. 이쯤 되면,  이번 경제 위기에서 얻은 것은 교훈이 아니라 `자만'이라 불러야 옳다.

2008년 시작된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며칠전 미국의 실업통계수치가 근래 최악을 기록하면서 당일 다우존스 지수를 폭락시켰다.  그러나 한국에선 벌써 경기회복을 점치는 성급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IMF나 외국의 신용평가기관은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상향 조정하고, 추후의 상황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사실 이들 IMF나 신용평가기관들이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장본인들 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역설적이다.

축제의 밤이 무르익고 있을 때 사람들은 축제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행동한다. 환락의 밤이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란 심사란 술기운 때문이거나 군중 심리의 영향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축제는 반드시 새벽이 오기전에 끝나기 마련이다. 축제를 잘 끝내는 방법은 밝아오는 새벽을 준비하는 마음이다.  미국의 금융위기전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재임시절 미국 경제의 미래를 의문없이 낙관했다. 그의 퇴임은 화려했으며 그의 공헌은 높이 칭송받았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금융위기로 그의 과거 정책들이란 축제의 밤에 꾸는 헛된 욕망들과 다를 바 없음이 밝혀졌다. 

이처럼, 경제란 경제전문가나 경제관료들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그것은 지난해 가을 한 인터넷 경제 논객의 예언에 휘둘린 한국 경제만 보아도 분명해진다.  이 시대 경제학은 더이상 경제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출판시장에서 대중 경제학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누구도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지 못할때,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 수밖에 없다.  지금 그 무기란 경제학적 지식이고, 사유방식이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생경한 경제학 용어들을 인내하며, 폴 크루그먼을 읽는 이유다.

 



200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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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리더의 조건 피터 드러커의 21세기 비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청림출판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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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의 시대, 문제의 해결책에 대한 탐구


2000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세계는 하나의 공동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소위 컴퓨터의 날짜 인식 오류인 Y2K, 즉 밀레니엄 버그라는 문제였다. 컴퓨터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예상하지 못하고, 비싼 메모리 가격 때문에 20세기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년도의 4자리 가운데 앞의 2자리를 생략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잘못된 설계 때문에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20세기와 21세기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Y2K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2000년 1월 1일 아침엔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동안 언론에 소개된 위험성에 비한다면 하나의 해프닝이라 부를 만 했다. 해프닝으로 그친 것은, 그간 당국이 Y2K문제를 세심하게 대비해온 것도 있겠지만, 실제 이 문제의 심각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하나의 반증이기도 했다.  

이제 세계는 21세기의 닻을 올리고 힘껏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느 시대나 위기는 있었다. 좁게는 개인에게 넓게는 사회, 국가, 세계적으로도 항상 문제는 인간의 문명과 함께 공존해 왔다. 문제가 없는 개인이나 사회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문제란 인간 삶의 본질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떤 문제에 맞서 어떤 자세를 갖느냐 혹은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하는 방법론이 본질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위기 또한 마찬가지다. 20세기 초의 세계 대공황의 파괴력에 버금가는 지구적인 금융 위기와 그에 따른 국가경제 위기도, 넓게 보자면 역사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해결해야 할 하나의 도전이랄 수 있으며, 우리는 그에 맞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이 시대는 근본적으로 개인과 사회에 문제를 던져주고 있지만, 해답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정치인들이 매일 수많은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실업문제 해소를 위한 청년 인턴제, 저탄소 녹색성장론, 4대강 정비사업 등, 그러나 숱한 정책들 가운데 어느것하나 미덥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책이란 정치적 포석을 함의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위기의 타개책이란 효과를 내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 진정 필요한 지혜란 냉정을 유지하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이나 개인에게 마냥 기다림이란 지혜가 아니라 시간낭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미래는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넓게 보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란 언제나 변화하는 시대다. 변화의 시대, 미래를 설계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학습하는 것. 즉, 미래를 연구하고 탐구하는 일이다. 

 

왜 지금 피터 드러커를 펴들어야 하는가?

피터 드러커를 지금 펴들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05년 96세의 나이로 영면(永眠)한 이 세계적인 경영학자는 무수한 저작들을 통해 오늘 이 경제 위기의 시대, 개인과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줄 거란 느낌을 들게 한다. 그간 조금씩 읽어왔던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서적들을 통해, 그가 보통의 학자들과는 다른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함을 느껴왔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르네상스적인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단순한 경영학자가 아니라,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겸비한 최초의 경영학자라는 사실 말이다. 드러커는 20세기 사람이었지만 21세기의 벽두까지도 우리 곁에 존재했던 지식인이었다. 청년기를 유럽에서 보냈지만 장년기는 미국의 대학에서 경영학자로 연구활동을 했다. 그는 또한 20세기 미국의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 세계 1위로 도약하던 미국 기업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유수 기업 경영자들의 컨설턴트였다. 그는 20세기 기업의 경영이론과 활용 방법들에 관한 숱한 저작과 강연, 연구활동에 전념했고 그 성과들은 무수한 저작들로 오늘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드러커는 경영자들을 곁에서 보좌하면서,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목격하며 기업 사례를 통해 살아있는 경영이론들을 정립해 나갔다.

또한 그는 20세기 산업 부흥 시대에 거대 기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던 개인(근로자)도 결코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그는 산업시대에 개인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의 위치를 설정하는 로드맵을 자주 그렸다. 그 작업을 통해 그는 미래 사회에서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기업의 총수가 아니라 지식 근로자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지식 근로자는 실용성과 사회적 지위, 혹은 경제적 성과를 낼만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기업간 높은 이동성을 장점으로 기업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산업시대에 묻혀버릴 수 있는 개인의 존엄성을 드러커는 지식과 노동이 결합된 지식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살려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드러커의 업적은 20세기 산업화 시대에 경업의 본질과 목적을 정립한 것에 있다. 더 나아가 그는 경영의 사회적 책임과 성공하는 기업가의 존재조건을 공식화 하는데 성공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 <변화 리더의 조건 The Essential Drucker On Management>은 그의 경영학 관련 저서 가운데 경영에 관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이 담긴 책으로, 경영이란 무엇이며 경영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 경영의 존재목적 등을 개념적으로 정립하고 있다. 이 책은 드러커의 숱한 경영관련 저작 가운데 경영학의 핵심을 가장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는 저서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한국 독자들을 위한 특별 서문의 제목을 드러커는 “미래 사회의 도전과 과제”로 잡고 있다. 그는 이 시대를 전환기의 한 가운데라고 명명한다. 더불어 미래 경제에 대해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은 몹시도 어렵다는 점을 주지시키면서도, 현재의 전환기가 과거와 닮았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19세기 일어났던 두 번의 전환기란 1830년대의 기차, 우체국, 전신기, 사진기 그리고 유한 책임 회사와 투자 은행의 발명, 1880년대 철강, 전기, 전구, 합성 유기 화학물, 엘리베이터, 고층 건물, 상업은행의 발명으로 설정한다. 이 두 전환기 모두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한 반면 소득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는 모순적 현상을 드러낸다. 드러커는 미래 시장은 더 이상 성장하는 시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미래 시장은 재화와 용역의 교환이 주가 되는 자유 시장이 아니라 교육과 건강 분야의 성장을 두 축으로 하는 정보교환이 주가 되는 자유 시장이 될 것이므로 세계적인 기업들은 그에 적합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또한 미래 사회는 지식 근로자가 이끄는 지식 사회가 될 것이므로 개인은 그 같은 미래 조건에 맞는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한다. 드러커가 이 서문에서 강조한 것은 하나로 집약될 수 있다. 즉 경영에 대한 인식을 기업과 개인이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 사회에서 맞게 될 모든 문제들은 `경영의 도전들’이 될 것인데, 기업과 개인은 이 같은 도전들에 맞서기 위해 생산성과 목표 달성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 리더의 조건>에서 드러커가 말한 것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에서는 경영의 본질을 다룬다. 산업사회 이전에도 기업이란게 존재했었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문명의 시작과 함께 기업이란 개념은 태동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경영의 개념이 정립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이 장에선 경영의 개념이 정립된 과정과 경영이 현대 기업과 개인에게 갖는 의미를 분석한다.

경영은 현대 산업 사회의 기본적인 신념을 표현한다. 즉, 경영이 경제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인간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자원과 인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운영하는 것은 경영의 힘이다. 현대 사회는 거대화 되면서, 통제를 필요로 했고 효율적인 시스템의 통제를 위해서 경영 이론은 정교화되어 갔다. 경영자란 보스(Boss)란 의미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경영자는 기업의 고유한 기관이라고 드러커는 정의한다. 즉 하나의 사회 기관은 그 존재자체로 본질과 성격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이란 곧 기관과 동등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경영의 기능을 드러커는 다층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의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기업은 경영이론을 실제 업무에 적용해야 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궁극적인 결과물을 도출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란 한 기업의 경영에서의 실패와 성공이다. 경영은 결국 인간 활동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관이 개입되고, 그것의 성장 발전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영에는 인문학이 접목되어야 한다. 성공하는 기업 안에는 반드시 존경 받는 경영자가 있게 마련이다. 인문학을 접한 경영자는 기업인의 인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경영에 대한 이러한 다층적 해석은 경영을 보는 눈높이를 키워준다.

“경영이란 인간에 관한 것이다. 경영의 과업은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각자의 강점을 활용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직이 해야 할 모든 것이다. “ 피터 드러커, <변화 리더의 조건> p. 39

2장 경영의 과제에서 드러커는 경영의 몇가지 과업을 제시한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그는 자체의 고유한 목적과 사명을 달성하고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단정한다. 기업의 목적과 사명이란 경제적 성과와 목표 달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장에서 드러커가 제시한 경영의 과업은 세가지다. 첫째로 조직의 사명을 달성하는 것이다. 모든 조직은 자체로 존재목적이 있다. 영리조직과 비영리조직의 사명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둘째로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생산적이지 못한 기업은 존재이유가 없다. 생산성은 조직의 본질인 것이다. 세번째로 드러커는 조직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것으로 요구한다. 현대 사회의 기업은 이윤추구만으론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드러커는 말한다. 사회적 책임의 이행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드러커는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3장을 경영의 책임으로 따로 떼어내 설명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첫째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다. 즉, 성과를 올리고 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말할 자격이 없다. 기업이 부를 창출하기 위해선 단기적 결과와 장기적 결과를 통합하는 활동적 차원의 기업 성과들 즉, 마케팅, 혁신, 생산성, 그리고 인적 자원 개발 등을 재무적인 성과로 연결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주주와 고객 그리고 종업원을 포함한 모든 이해 관계자들의 기대와 목표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드러커는 현대 미국의 기업이 주주를 위한 경영에 치우쳤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대부분 `주주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기업을 경영한다고 말하지만, 그 같은 단기적인 수익에 치중했던 전략이 오늘날 미국 경제의 위기를 불렀다는 자성론이 대두되는 시점에 드러커의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책임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감사를 독립적인 전문 기관에 의해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효과적인 이사회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기업 경영에서 경영자에게 막대한 권한을 주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이사회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드러커는 오늘날 미국의 이사회들이 그 반대가 되고 있다고 질타한다. 그는 이사회가 좋은 의도를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소유주를 대표할 때에만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드러커는 조직은 자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로 그 필요성을 역설한다. 더불어 사회 문제 자체를 사업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경영자의 능력또한 요구하고 있다.

“변화를 혁신, 즉 새로운 사업 기회로 전환하는 것은 기업의 과제이다. 혁신이 기술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영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사회적 변화와 혁신은 기술적 변화와 혁신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피터 드러커, <변화 리더의 조건> p. 153

4장과 5장에서 드러커는 경영의 기초지식과 기업가 정신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변화로 설정하고 경영의 원칙들을 설명한다. 드러커는 경영을 좁게 기업 경영으로 정의한다. 기업에서의 조직에 대해 그는 세상엔 단 하나의 올바른 조직 구조만 존재하며, 또한 단 하나의 올바른 인적 자원관리방법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공하는 기업에는 반드시 하나의 공식이 존재한다는 드러커의 강한 확신을 엿볼 수 있다. 이 장에서 드러커는 자신이 1960년대에 이미 예언한 지식 근로자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 근로자로 탈바꿈하고 있으며, 지식근로자는 경영자의 부하가 아니라 동반자라고 설명한다. 그 이유를 드러커는 수습기간이 해제된 지식 근로자는 상사보다도 더 많이 자신의 일에 대해 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들은 높은 이동성을 보유한다. 그들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으며, 그들 스스로 생산 수단, 즉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의 경영이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경영을 일컫는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고, 현재와 우리가 기대하고 꿈꾸는 것과도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드러커는 유능한 기업가는 일어날 미래를 미리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래를 파악하기 위해 드러커는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들을 분석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기업가가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드러커는 혁신기업의 기업가 전략으로서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전면전략, 적이 없는 곳도 공격하는 게릴라 전략, 전문분야에서 틈새를 발견하고 지위를 노리는 틈새전략, 제품,시장, 산업의 경제적 특성을 바꾸는 고객 창조 전략 등을 들고 있다.


피터 드러커가 주는 교훈 – 지식(Knowledge)이 해답이다.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5년 전에 태어난 그는 2차 세계 대전를 비롯 20세기의 굵직한 사건들을 몸소 체험했고, 특히 히틀러의 독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하고 관찰했다. 그리고 온갖 이념들로 몸살을 앓던 유럽을 청년시절 모두 겪은 바 있다. 유럽에서 대학을 나오고 첫 직장을 영국에서 가졌으나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인으로 살았고, 주요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20세기 미국의 대기업들의 컨설턴트 역할을 해냈다. 21세기 미국 발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3년 전인 2005년 그는 96세의 나이로 영면하기에 이른다. 짧게 그의 연보를 정리해 본 것은 그가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인 20세기를 온전히 살아왔던 경영학자이며, 영면하기 직전까지도 경영학자와 컨설턴트로서 일선에서 은퇴하지 않고 활동했던 놀라운 열정과 성실성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서다. 그는 어느 미래 학자보다도 더 현실적인 예언들로 경영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 예측했다. 이 같은 그의 능력은 한 세기에 걸친 꾸준한 관찰을 통해서 가능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는 <자서전>의 서문에서 평생 자신이 구경꾼(관찰자)의 자세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이 같은 고백은 탁월한 경영학자로서 기업의 비전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그의 능력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깨닫는 작은 힌트가 된다.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연극과 거기에 참여한 모든 배우의 성공은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지만, 구경꾼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자기 내면에만 어떤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극장의 안전요원들이 그런 것처럼 구경꾼들은 무대 한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 p.21 프롤로그 / 한국경제신문, 이동현 옮김

그는 관찰자로서의 능력을 통해 경영자들과 근로자들의 앞날을 내다보고 그들에게 깊은 혜안(慧眼)을 제공해왔다. 드러커가 가장 중요시 한 것은 지식이었다. 전통적인 생산요소들인 자본과 노동, 토지는 지식이 있다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경영자는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근로자는 지식을 보유해야만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드러커가 이야기하는 지식은 단순히 앎으로써의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을 포함해 혁신과 변화, 그리고 도덕성과 생산성이라는 개념을 총괄하는 의미에서의 지식이다. 과거의 경영자는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보스(Boss)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경영자는 군림하지 않는다. 그는 건전한 상식과 높은 도덕성, 그리고 자신의 업무에 대한 총괄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조직에서 지식을 행동으로 구체화하는 데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보스가 아니라 리더(Leader)인 것이다.

드러커는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공통된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것은 경영자와 근로자의 마인드가 같아야 한다는 획기적인 견해처럼 보인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경영자와 근로자를 대립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왔다. 그러나 드러커의 저작들에서 강조하는 지식의 중요성은 경영과 근로의 양측에서 몹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드러커는 왜 지식경영과 지식근로를 강조했던 것일까? 그것은 지식이 변화하는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분명한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기업의 평균 기대수명이 겨우 30년밖에 안되는데 비해, 노동자의 수명은 늘어나 평균적인 근로 년수가 50년을 넘어서고 있다. 근로자들은 자신의 고용기관보다 오래 살 것이 분명하므로 답은 2개 이상의 직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는 것이다. 드러커는 이러한 데이터를 두고 기업과 근로자 모두의 혁신을 주도하고 변화에 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 평균 수명이 서른살이라는 것은 과히 충격적이다. 더불어 근로자의 수명이 늘어남으로써 은퇴하고 남은 생존기간이 더불어 30년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 모두의 해법을 드러커는 지식(Knowledge)에 두고 있다.

지식을 보유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 기업의 운명과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의미다. 기업의 미래와 상관없이 개인은 자신이 소유한 지식만으로 기업간 이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 이동성은 지식노동자의 근로수명의 연장을 의미한다. 높은 수준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지식을 보유한 개인은 그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기업에 특별한 공헌을 할 수 있다. 더불어 기업은 보다 많은 지식 근로자를 고용함으로써, 선도적인 기술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글로벌 경쟁력은 여타의 기업보다 앞서갈 수 있는 동력을 의미하며, 평균 30년에 지나지 않은 기업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다.

드러커가 모든 저작에서 지식을 최우선에 두는 것은 이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드러커는 또한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사람이 변화를 관리할 수 없지만, 변화를 앞서갈 수는 있다고 설명하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히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 현대의 우리들에게 피터 드러커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함을 깨닫게 된다.


결론 – 열정과 성실성이 필요한 시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있는 피터 드러커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의 삶 가운데는 두 번의 세계대전이 놓여 있다. 나치 독일이 자신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는 것을 목격했고, 1932년에는 유명 일간지의 편집자로 장래가 보장되었지만, 독일이 히틀러의 손아귀에 넘어가자 모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락을 포기하고 독일에 위치했던 전도유망한 직장을 떠난다. 드러커의 최초의 저서 <경제인의 종말>은 히틀러의 독일과 유럽 사회에 드리워진 전쟁의 위기감을 예언하는 것으로 소수 지식인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앞날을 내다보는 특별한 능력을 품고 있었던 듯 하다. 또한 그는 평생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일생 동안 경영이란 한 분야에만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인 학습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습관을 들였던 그는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최고의 컨설턴트와 위대한 작가, 그리고 뛰어난 스승이 될 있었던 것은 이런 그의 가치관 때문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서 나는 피터 드러커에게 두 가지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드러커의 삶과 학문, 그 모두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이다. 90세가 넘은 그에게 한국의 학자가 은퇴할 시기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은퇴할 욕심이 생기지 않네( I have no desire to retire)”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한국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2002년에 출판된 <넥스트 소사이어티>라는 저서에서 그는 “한국을 기업가 정신이 가장 뛰어난 국가”로 언급했으며, 1993년 출판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의 서문에서는 “역사상 한국전쟁 이후 40년 동안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에 필적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육에 대한 투자로부터 그렇게 풍부한 수확을 거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또한 한국의 교육과 한국인의 정신력을 높게 설명한 적이 있다.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쓴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그는 미국 흑인 사회의 게으름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인들처럼 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해도 이길 수가 없는 싸움입니다. 한국인들은요? 온 가족이 하루에 열 여섯 시간씩, 그리고 일주일에 7일을 일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 버락 오바마,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p.310 램덤하우스, 이경식 옮김

드러커와 오바마가 극찬한 한국인의 정신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 교육(지식)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최대한의 투자라 부를 만 하다. 드러커또한 평생을 이러한 자세를 중시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그가 한국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업과 개인이 잘 되기 위해선 매우 단순한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성공의 방법을 연구하고, 그 방법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다. 그 밑바탕에는 기업과 개인의 열정과 성실성이 초석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경제적인 문제들로 기업과 개인은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 세계 금융 위기로 시작된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기업과 개인에겐 크나큰 위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위기일수록 미래에 대한 높은 기대와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에 대한 학습과 과거의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 그리고 미래를 대비한 투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피터 드러커는 1969년 출간된 저서 <단절의 시대>에서 최초로 `지식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미래 사회가 지식사회가 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오늘날 지식경영, 지식근로자 라는 용어는 너무 흔하게 쓰이지만, 이것은 피터 드러커 이전에는 우리가 감히 알지 못했던 용어에 다름 아니다. 평생 기업 컨설턴트로서 그는 수많은 경영이론을 정립하고, 개인의 발전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기계발 로드맵을 구축해 갔지만, 이것은 그의 삶의 철학인, 열정과 성실성을 그대로 경영과 자기계발의 이론에 접목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지식근로자의 최상의 모델은 바로 피터 드러커 자신인 것이다.

그는 영면하기 전까지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은 진정한 학자였다. <자서전>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라고 쓴 바 있다. 그는 지식과 근로가 결합된 지식근로자라는 개념을 정립함으로써, 산업화 시대에 개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고, 그것을 통해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는 사람을 중시했으며, 인간이 기업 안의 일개 부속품이 아닌 가장 중요한 핵심적 역량임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

기업이란 결국 사람이 모여 조직하고, 하나의 조직 목표아래 움직이는 총체적인 기관이다. 개인이 잘 되어야 기업이란 조직도 튼실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서적들에서 나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탐욕이든, 부정부패든 간에 인간이 자초하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의 극복 또한 소수일지라도 현명한 인간들의 몫이라고 단정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지금의 세계적인, 혹은 국가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단 하나의 비법이란 존재할 수 없다. 피터 드러커는 어떤 인간에게도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들 나름의 강점이 존재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기업이 한 개인에게 바라는 것은 단점에 대한 수치심이 아니라, 오직 강점을 통한 공헌일 뿐이다. 또한 자서전에서 완벽한 사회에 대한 이상을 젊은 시절에 이미 버렸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결국 사회란 번영과 위기가 뒤섞여 결국엔 보다 나은 길을 찾아가는 것임을 그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끊임없이 주지시켰던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서적들에 대한 나의 독서는 이 모든 것들을 삶의 지혜와 경영의 본질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가 21세기에도 기업인과 지식 근로자의 영원한 구루(Guru:정신적인 스승)로 우리 곁에 남아 무궁무진한 지혜를 끝없이 전해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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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소원칙
도정일 외 지음 / 룩스문디(Lux Mundi)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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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더이상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뭔가를 쓰고 산다. 하루에도 수십통의 문자 메세지를 보내고, 학생이면 보고서를 쓰고, 직장인은 기획안을 작성한다. 영상 세대에겐 문자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란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치 텔레비전의 보급이 라디오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란 예언처럼 그것은 허언이었다.  

최첨단 미디어인 블러그엔 사람들의 개성 가득한 문장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문자로 표현하고 타인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현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나 기술이 되었다. 사실 이것은 오래된 전통이기도 하다. 근대 이전의 중국과 한국의 관리 등용시험인 과거(科擧)란 글을 짓고 글을 쓰는 시험이었다. 글을 잘 짓고 쓰는 사람이 관리가 되었고, 세상을 지배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나는 아주 짜릿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사내에서 주최한 본사 글짓기 공모전이 있었다. 큰 뜻 없이 응모한 글 한 편이 우수상을 받았다. 그 상 때문에 내가 소속된 지사는 그 해 경영평가에서 가점을 받게 되었다. 사장표창과 상금을 받았고 지사장님과 점심을 함께 먹는 시간이 주어졌다. 내 생애, 그렇게 비싼 공짜 점심은 처음이었다. 거기서 보태 내가 쓴 글이 오랜시간 지사의 영업창구에 내걸렸다. 사내 체육행사에서 처음 본 직원들도 아는 체를 했다. 짬을 내서 써내려간 A4용지 2장 정도의 글 한 편으로 나는 작년 팔자에 없는 호사를 누린 것이다.

그 일은 글쓰기를 통해 얻은 가장 황홀할 성취다. 살면서 내가 글을 잘 쓴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고, 글을 잘 쓰는 `평범한' 이들을 항상 부러워했다. 상을 받아서 기분은 좋았지만 그건 글 못쓰는 자신을 되돌아본 기회도 되었다. 요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다. 내가 글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무지하면 용감한 법. 아무래도 용감한 덕분에 상을 받은 것 같아 지금도 머쓱하다

경희대출판국에서 펴낸 <글쓰기의 최소원칙>은 14명의 달인들이 글쓰기에 관한 특수한 비방(秘方)을 유포하는 알차고 다채로운 글쓰기 책이다. 책의 표지엔 제목 정도의 크기로 14명의 저자 이름이 강조돼 나왔다. 이름을 대충 훑어봐도 우리 시대의 글쓰기 달인들이다. 도정일, 김훈, 최재천, 이문재, 김영하 등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2007년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진행된 글쓰기 특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은 작가들과의 대담과 강의형식으로 돼 있다.

도정일은 고교 논술 교육의 허점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논술이란 본래 글쓰기 가운데 가장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현재 고교의 글쓰기 교육은 일기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논술을 가르치려 하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글쓰기와 평생 작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학 입시를 위해 기계적인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글쓰기 교육이 될리가 만무하다. 이럴게 아니라, 아이들의 글쓰기에 숨통을 터주는 것이 중요하단다. 즉, 책 한 권을 읽고 느낀점을 자유롭게 써보라든가, 논술형식이 아닌 수필, 등 신변잡기적인 글들을 쓰는 연습을 먼저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들은 논술을 먼저 배우고 쓰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가벼운 에세이를 쓰는 일부터 시작한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달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우리 교육의 실태를 교육 현장에 있는 이에게 직접 듣는 일은 반갑고도 몹시 씁쓸한 일이다.

"글쓰기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가장 효과적이고 좋은 방법이 있다면 글을 쓴다고 하는 일 자체를 학생들이 즐거운 일, 기쁨을 경험하는 일, 해보니까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작업으로 바꿔야 합니다." 도정일, <무엇을 쓸 것인가>, p.15

소설가 김훈은 시인 이문재와의 대담에서 인간의 언어를 네 가지 범주로 요약한다. 말하기, 읽기, 듣기, 그리고 쓰기. 말하기와 쓰기는 같은 것이고 그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형식이다. 듣기와 읽기는 같은 것으로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김훈에 따르면, 요즘 사회의 언어 풍경에선 듣는 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히어링은 안하고 채팅만 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담벼락에 대고 혼자 독백을 하는 것 같은 언어의 풍경이 벌어진다"며 그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일방통행식 `불통'을 꼬집는다.

글쓰기의 기술적인 면에서 그는 문학적인 글이란 동어반복의 지옥에서 벗어나는 일로 규정하고, 우리 모국어의 본질을 조사(助詞) 활용의 미묘한 차이에 두고 있다. 또한 문학적 글쓰기란 표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설명하는 글과 문학적인 글이 갈리는 지점이다. 문학적 글쓰기의 본질은 표현을 극한으로까지 끌고 가는 것이며, 그것이 작가가 도달해야할 궁극의 경지라고 주장한다. 김훈이 소설을 쓸 때 조사 하나의 쓰임까지 고심했다는 고백에선 글쓰기의 달인이 도달한 매서운 엄격성이 전해온다.

"<칼의 노래>라는 소설의 첫 문장을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고 썼는데, 그 전에는 `꽃은 피었다'라고 써놨어요. 다 써놓고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고심참담한 끝에 `꽃이 피었다'로 고친 거예요.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가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김훈, <문학적 글쓰기는 하나의 전략이다>, p.55

최채천 이화여대 교수는 좋은 글의 특성을 "정확성과 경제성 우아함, 치열성"을 갖춘 글로 설명한다. 신문사에 기고할 때 그는 글을 미리 써서 보내는 걸로 유명하다. 대개 2,3일 전에 써서 보내지만 여기엔 조건이 하나 따른다. 자신의 글을 수정할 때 반드시 토시 하나까지 자신과 협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글에 대한 완벽성과 자신감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훈 작가는 아직도 원고지에 글을 쓴다는데, 자신은 컴퓨터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한단다.

"컴퓨터가 없었으면 저는 글 못 썼을 겁니다. 컴퓨터에서 고치고 또 거치고 수십 번을 고치는 과정에서 소리내서 읽어보며 입에서 굴러야 만족합니다. 안 굴러가면 다시 고치고, 또 안 굴러가면 다시 고치고, 거짓말 조금 보태면, 수십 번을 고친 다음에 보냅니다. 저는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씁니다." 최채천, <정확성과 경제성과 우아함, 그리고 치열성>, p.113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소설가 김영하와 문학 평론가 김수이의 대담이다. 이 대담은 김영하가 충분히 매력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성찰에 덧붙여 한 작가의 삶과 철학, 글쓰기의 태도, 견해를 듣는 매우 재밌고 유익한 대담이다. 14명의 글쓰기 달인들의 대담과 강의가 묶여져 있지만, 중간 부분에 삽인된 대담과 강의는 사실 지루하고 일반적인 글쓰기와 특별히 관련이 없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김영하와 김수이의 대담은 이 책의 값어치를 제자리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김영하는 글쓰는 인생으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매우 전복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글쓰기의 본령을 자기 즐거움에서 찾는다는 것이나 작가로 성장한 것이 전문적인 훈련에 있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는 부분은, 의외였다. 더구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때도 합평같은걸 하지 않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글쓰기 자체가 즐거운 일이여야 하고 의욕과 용기를 북돋워주었을때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름의 소신을 밝힌다. 젊은 작가인 그가 지금껏 상당히 많은 문학상을 타왔고, 그 상들이 자신이 계속해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돼 주었다는 점을 언급한 부분에선 특히 공감이 갔다. 주위의 상찬을 독이 아니라 약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는 문학상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맘껏 향유한 자의 여유가 묻어난다. 특히 글쓰기 자체를 자신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에 빗대, `삶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로 풀이한 것이 인상적이다.

"결국 나라는 것은 글이라는 것을 적어 사람들에게 전하는 하나의 도구인 것이고, 일종의 펜이라는 것. 그렇다면 내가 경험한 것들,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해야겠구나 생각했죠.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죠." 김영하, <존재,삶,글쓰기> p.311

이 책의 저자들은 글쓰기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것은 그대로 응용가능한 교훈이며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단지 피상적인 조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실제 글을 잘 써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그들은 이미 글을 잘 쓰고 있다. 이미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에겐 글쓰기의 비방(秘方)이란 하나의 형식으로 공식화할 계제(階梯)가 못되는 듯 했다. 그들의 사례란 공감은 갈 수 있을지언정, 그 방법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모든 독자에게 그들 나름의 특수성이 존재한다고 보는게 옳다. 그것은 글쓰기의 능력이 될 수 있고,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독자들은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할 점이 있다. "왜 글을 잘 쓰고 싶은가?" "글쓰기 시간이 기다려지고 행복한가?"

이 지점에서 공자님의 그 유명한 말을 다시 되뇌여보자. 논어 옹야 편에 나오는 말이다. 子曰[자왈] 知之者 不如 好之者[지지자 불여 호지자] 好之者 不如 樂之者[호지자 불여 락지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같지 못하느니라.”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란 글쓰는 시간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기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 면면을 보면 자신의 분야를 좋아하고 그 경지를 넘어 그 분야의 일을 즐기는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가? 잠자는 것, 티비보는 것, 노는 것, 먹는 것 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글쓰고 있는 시간이라면, 당신은 이미 글쓰기의 비방 하나를 알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을 아껴 책을 읽을 것이고, 하얀 모니터 위에 무언가를 쓰기 위해, 초초히 앉아 있는 시간조차 행복할게 분명하니까. 그는 樂之者이기 때문이다.




2009.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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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9-06-22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목요연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개츠비 2009-06-22 20:57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반딧불이님^^

달님 2009-11-0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글을 잘 쓴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으시다는 것에 놀랐어요. 1Q84로 들어와서 잘 읽고 있습니다.^^

개츠비 2009-11-06 18:27   좋아요 0 | URL
제가 기준으로 하고 있는 잘 쓴 글은 문학적인 향기가 짙게 흘러나오는 글입니다. 그런 의미에선 전 글을 못쓰는 축에 속합니다. T.T
 
10년 법칙 - 명품 인생을 만드는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처럼 모든게 빨리 변화하는 시대에는 1년 뒤를 내다보기가 무척 어렵다.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치여, 1년을 하루처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직업과 삶안에 갖혀 미래가 아닌 현재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야는 좁다.  이들의 성실함은 높이 사줄만 하지만, 인생을 넓고 멀리 보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순간 전망과 비전없는 인생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10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러나 그 시간은 생각하기에 따라, 몹시도 짧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놓지 않는다면 그 10년동안 우리는 언제나 제자리 걸음만 할게 분명하다. 어떻게 준비하고 시작하는가에 따라 10년 후 내 인생은 명품과 폐품으로 나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나이가 어딘가에 상관없이 앞으로의 10년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공병호 경영 연구소 소장은 <명품 인생을 만드는 10년 법칙>이란 저서에서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우리 시대를 대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10년 법칙을 내걸었다. 10년 법칙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취와 성과를 이루기 위해 최소 10년의 지속적이고 정교한 훈련"이 필요함을 말한다.

정교한 훈련은 곧 전문가로 도약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연습'을 의미한다. 1946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이작 펄만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된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핵심이 되는 말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연습(practice)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 언급한 적이 있다. 

공병호 소장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작가로서의 능력은 그야말로 연습의 산물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학창 시절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다.  논술이나 글짓기, 작문에 대해 특별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15년 전부터 원고지 10장, 즉 2,000자를 쓰는 훈련이 오늘날 작가로서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공병호, <10년법칙> p.57

10년 법칙은 뇌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는 뇌의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단적으로 `사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잃게 된다'라고 뇌의 특성을 요약한다.  뇌는 적절히 쓰면 쓸수록 좋아지며 사용하지 않은 회로는 사라지게 된다. 심지어 노령에도 자극받은 뇌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치매같은 질환 예방 효과를 낳게 된다.  즉 꾸준한 뇌의 자극이 "기존의 신경회로망을 좁은 도로에서 사통팔달(四通八達 )의 대로"로 바꾸게 된다.  전문가가 되는 길은 이 뇌의 신경 회로망을 확장하는 일이다.

10년간의 지속적인 뇌 자극이 한 분야의 전문가로 대성하는 지름길이다.  왜 전문가로 성장해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CEO들의 멘토였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1969년 출간된 저서 <단절의 시대>에서 최초로 `지식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오늘날 `지식경영'이나 `지식근로자'라는 용어는 보통명사가 되었지만, 그 당시는 몹시 생소한 말이었다.  그는 또한 미래 사회가 지식 기반 사회가 될 것으로 예언한 바 있다.  그는 21세기 근로자의 존재 조건을 지식에 두었다. 왜 그랬을까?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유수 기업의 평균 수명이 30년밖에 되지 않으며 반대로 근로자의 수명은 점점더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은 20세기에 이미 무너져 내렸다.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생존을 위협받은 기업들은 평생 고용이란 개념을 파괴하고, 노동 유연성을 강화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가치사슬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자신을 차별화 할 수 없는 노동자는" 존립 기반 자체를 잃게 된다.  이 차별화와 가치 사슬의 상위 레벨을 점유하기 위해 평범한 직업인은 전문가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소속돼 있다고 지금의 안정감을 향유하는 일은 공병호나 피터 드러커의 미래지향적 안목에 비춰보면,  벼랑끝 부러지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 잎사귀에 묻은 꿀을 핥아 먹는 일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꿀의 단맛에 취해 일순간 행복하겠지만 나뭇가지가 부러져 목숨을 잃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꿀을 먹을게 아니라 부러지는 나뭇가지를 잡고 벼랑끝을 벗어날 궁리부터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병호 소장이 얘기하는 10년 법칙의 핵심과 그 전략은 무엇인가?

그는 우선 현재의 삶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환경이 열악하다고 불평불만 할것이 아니다. "환경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으며, 내가 한 선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의 냉엄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투자에 나서자. 공병호 소장은 기업의 연구원으로 있다가 경영자로 자립한 경험을 얘기하면서, 끝없는 자기 개발의 과정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경영자로서 내 연구소를 단시간 내에 국내 어느 곳에서도 관찰할 수 없는 곳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나 개인의 역량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경영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나란 사람은 무엇인가? 나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공병호, <10년법칙> p.31

그는 또 `어느 분야에서나 무엇을 하고 있든 간에 10년 전후의 집중적인 선행 학습이나 경험, 투자와 같은 정교하고 집요한 노력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기 힘들다'라는 말로, 10년 법칙의 핵심을 요약한다.  또한 자연스럽게 정교한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의 뇌가 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배움의 열정을 가지라" "자기 경영은 엔진이다" 등 이 책에는 10년 법칙을 실행으로 옮기는데 필요한 공병호식 전략들이 가득하다.  책의 모든 페이지들에는 저자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생활을 하다, 기업 이사와 경영 연구소 소장 겸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현재까지 자신이 거쳐온 삶의 이력들에서 건져올린 경험과 인생의 전략, 전문가로서 발돋움하는 독창적인 지혜가 가득하다. 살아 있는 10년 법칙의 멘토로서 독자에게 동기부여와 희망을 공급하는데 이 책과 저자의 조언은 부족함이 없다.

요즘 같이 경제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절, 직장인의 10년 후를 상상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꺼림칙한 일이다.  IMF 시절부터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깨어졌다. 돈많은 은행도, 무소불위의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도, 망할 수 있음을 경험한 적이 있다. 최근의 쌍용 자동차 사태를 보면 자본과 노동자의 애증을 묘파한 잔혹동화 한 편이 연상된다.  한 노동자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에게 "20년 넘게 노동자로서 죽도록 일한 것밖에 죄가 없다"라며 울먹였다.  

소위 전문가는 자본에 의해 버려지는 일이 적다.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기업간 이동성을 바탕으로 오히려 기업을 버리고 더 높고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그들의 두뇌다.  끝없는 아이디어와 창조적인 발견이란 전문가의 두뇌에서 나온다.  그들의 두뇌 자체가 바로 생산기지이며, 도구다. 

자신의 인생을 외부적인 상황과 조건에 맡겨놓지 않고 인생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이끌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 바로 `10년 법칙'이다.  현재의 경제 상황이 어렵고, 당장의 회사일도 벅찬데, 10년 후의 나를 생각하는 것이 힘든가?   좁게 볼일이 아니라 넓게 보고 멀리 볼 일이다.  당신도 언제든지 직장의 폐품으로 폐기처분될 수 있다. 섬뜩한 상상이지만, 지금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이웃의 일상다반사한 일이다.   단지, 당신의 차례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10년후를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명품은 되지 못할지언정, 폐품으로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바로 지금 스스로 인생과 직업세계의 명품이 되는 장도(壯途)에 나서야 한다.  



 

200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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