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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리더의 조건 ㅣ 피터 드러커의 21세기 비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청림출판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 위기의 시대, 문제의 해결책에 대한 탐구
2000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세계는 하나의 공동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소위 컴퓨터의 날짜 인식 오류인 Y2K, 즉 밀레니엄 버그라는 문제였다. 컴퓨터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예상하지 못하고, 비싼 메모리 가격 때문에 20세기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년도의 4자리 가운데 앞의 2자리를 생략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잘못된 설계 때문에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20세기와 21세기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Y2K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2000년 1월 1일 아침엔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동안 언론에 소개된 위험성에 비한다면 하나의 해프닝이라 부를 만 했다. 해프닝으로 그친 것은, 그간 당국이 Y2K문제를 세심하게 대비해온 것도 있겠지만, 실제 이 문제의 심각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하나의 반증이기도 했다.
이제 세계는 21세기의 닻을 올리고 힘껏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느 시대나 위기는 있었다. 좁게는 개인에게 넓게는 사회, 국가, 세계적으로도 항상 문제는 인간의 문명과 함께 공존해 왔다. 문제가 없는 개인이나 사회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문제란 인간 삶의 본질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떤 문제에 맞서 어떤 자세를 갖느냐 혹은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하는 방법론이 본질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위기 또한 마찬가지다. 20세기 초의 세계 대공황의 파괴력에 버금가는 지구적인 금융 위기와 그에 따른 국가경제 위기도, 넓게 보자면 역사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해결해야 할 하나의 도전이랄 수 있으며, 우리는 그에 맞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이 시대는 근본적으로 개인과 사회에 문제를 던져주고 있지만, 해답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정치인들이 매일 수많은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실업문제 해소를 위한 청년 인턴제, 저탄소 녹색성장론, 4대강 정비사업 등, 그러나 숱한 정책들 가운데 어느것하나 미덥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책이란 정치적 포석을 함의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위기의 타개책이란 효과를 내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 진정 필요한 지혜란 냉정을 유지하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이나 개인에게 마냥 기다림이란 지혜가 아니라 시간낭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미래는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넓게 보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란 언제나 변화하는 시대다. 변화의 시대, 미래를 설계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학습하는 것. 즉, 미래를 연구하고 탐구하는 일이다.
왜 지금 피터 드러커를 펴들어야 하는가?
피터 드러커를 지금 펴들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05년 96세의 나이로 영면(永眠)한 이 세계적인 경영학자는 무수한 저작들을 통해 오늘 이 경제 위기의 시대, 개인과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줄 거란 느낌을 들게 한다. 그간 조금씩 읽어왔던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서적들을 통해, 그가 보통의 학자들과는 다른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함을 느껴왔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르네상스적인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단순한 경영학자가 아니라,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겸비한 최초의 경영학자라는 사실 말이다. 드러커는 20세기 사람이었지만 21세기의 벽두까지도 우리 곁에 존재했던 지식인이었다. 청년기를 유럽에서 보냈지만 장년기는 미국의 대학에서 경영학자로 연구활동을 했다. 그는 또한 20세기 미국의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 세계 1위로 도약하던 미국 기업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유수 기업 경영자들의 컨설턴트였다. 그는 20세기 기업의 경영이론과 활용 방법들에 관한 숱한 저작과 강연, 연구활동에 전념했고 그 성과들은 무수한 저작들로 오늘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드러커는 경영자들을 곁에서 보좌하면서,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목격하며 기업 사례를 통해 살아있는 경영이론들을 정립해 나갔다.
또한 그는 20세기 산업 부흥 시대에 거대 기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던 개인(근로자)도 결코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그는 산업시대에 개인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의 위치를 설정하는 로드맵을 자주 그렸다. 그 작업을 통해 그는 미래 사회에서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기업의 총수가 아니라 지식 근로자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지식 근로자는 실용성과 사회적 지위, 혹은 경제적 성과를 낼만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기업간 높은 이동성을 장점으로 기업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산업시대에 묻혀버릴 수 있는 개인의 존엄성을 드러커는 지식과 노동이 결합된 지식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살려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드러커의 업적은 20세기 산업화 시대에 경업의 본질과 목적을 정립한 것에 있다. 더 나아가 그는 경영의 사회적 책임과 성공하는 기업가의 존재조건을 공식화 하는데 성공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 <변화 리더의 조건 The Essential Drucker On Management>은 그의 경영학 관련 저서 가운데 경영에 관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이 담긴 책으로, 경영이란 무엇이며 경영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 경영의 존재목적 등을 개념적으로 정립하고 있다. 이 책은 드러커의 숱한 경영관련 저작 가운데 경영학의 핵심을 가장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는 저서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한국 독자들을 위한 특별 서문의 제목을 드러커는 “미래 사회의 도전과 과제”로 잡고 있다. 그는 이 시대를 전환기의 한 가운데라고 명명한다. 더불어 미래 경제에 대해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은 몹시도 어렵다는 점을 주지시키면서도, 현재의 전환기가 과거와 닮았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19세기 일어났던 두 번의 전환기란 1830년대의 기차, 우체국, 전신기, 사진기 그리고 유한 책임 회사와 투자 은행의 발명, 1880년대 철강, 전기, 전구, 합성 유기 화학물, 엘리베이터, 고층 건물, 상업은행의 발명으로 설정한다. 이 두 전환기 모두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한 반면 소득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는 모순적 현상을 드러낸다. 드러커는 미래 시장은 더 이상 성장하는 시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미래 시장은 재화와 용역의 교환이 주가 되는 자유 시장이 아니라 교육과 건강 분야의 성장을 두 축으로 하는 정보교환이 주가 되는 자유 시장이 될 것이므로 세계적인 기업들은 그에 적합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또한 미래 사회는 지식 근로자가 이끄는 지식 사회가 될 것이므로 개인은 그 같은 미래 조건에 맞는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한다. 드러커가 이 서문에서 강조한 것은 하나로 집약될 수 있다. 즉 경영에 대한 인식을 기업과 개인이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 사회에서 맞게 될 모든 문제들은 `경영의 도전들’이 될 것인데, 기업과 개인은 이 같은 도전들에 맞서기 위해 생산성과 목표 달성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 리더의 조건>에서 드러커가 말한 것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에서는 경영의 본질을 다룬다. 산업사회 이전에도 기업이란게 존재했었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문명의 시작과 함께 기업이란 개념은 태동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경영의 개념이 정립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이 장에선 경영의 개념이 정립된 과정과 경영이 현대 기업과 개인에게 갖는 의미를 분석한다.
경영은 현대 산업 사회의 기본적인 신념을 표현한다. 즉, 경영이 경제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인간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자원과 인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운영하는 것은 경영의 힘이다. 현대 사회는 거대화 되면서, 통제를 필요로 했고 효율적인 시스템의 통제를 위해서 경영 이론은 정교화되어 갔다. 경영자란 보스(Boss)란 의미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경영자는 기업의 고유한 기관이라고 드러커는 정의한다. 즉 하나의 사회 기관은 그 존재자체로 본질과 성격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이란 곧 기관과 동등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경영의 기능을 드러커는 다층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의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기업은 경영이론을 실제 업무에 적용해야 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궁극적인 결과물을 도출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란 한 기업의 경영에서의 실패와 성공이다. 경영은 결국 인간 활동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관이 개입되고, 그것의 성장 발전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영에는 인문학이 접목되어야 한다. 성공하는 기업 안에는 반드시 존경 받는 경영자가 있게 마련이다. 인문학을 접한 경영자는 기업인의 인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경영에 대한 이러한 다층적 해석은 경영을 보는 눈높이를 키워준다.
“경영이란 인간에 관한 것이다. 경영의 과업은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각자의 강점을 활용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직이 해야 할 모든 것이다. “ 피터 드러커, <변화 리더의 조건> p. 39
2장 경영의 과제에서 드러커는 경영의 몇가지 과업을 제시한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그는 자체의 고유한 목적과 사명을 달성하고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단정한다. 기업의 목적과 사명이란 경제적 성과와 목표 달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장에서 드러커가 제시한 경영의 과업은 세가지다. 첫째로 조직의 사명을 달성하는 것이다. 모든 조직은 자체로 존재목적이 있다. 영리조직과 비영리조직의 사명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둘째로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생산적이지 못한 기업은 존재이유가 없다. 생산성은 조직의 본질인 것이다. 세번째로 드러커는 조직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것으로 요구한다. 현대 사회의 기업은 이윤추구만으론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드러커는 말한다. 사회적 책임의 이행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드러커는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3장을 경영의 책임으로 따로 떼어내 설명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첫째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다. 즉, 성과를 올리고 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말할 자격이 없다. 기업이 부를 창출하기 위해선 단기적 결과와 장기적 결과를 통합하는 활동적 차원의 기업 성과들 즉, 마케팅, 혁신, 생산성, 그리고 인적 자원 개발 등을 재무적인 성과로 연결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주주와 고객 그리고 종업원을 포함한 모든 이해 관계자들의 기대와 목표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드러커는 현대 미국의 기업이 주주를 위한 경영에 치우쳤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대부분 `주주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기업을 경영한다고 말하지만, 그 같은 단기적인 수익에 치중했던 전략이 오늘날 미국 경제의 위기를 불렀다는 자성론이 대두되는 시점에 드러커의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책임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감사를 독립적인 전문 기관에 의해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효과적인 이사회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기업 경영에서 경영자에게 막대한 권한을 주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이사회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드러커는 오늘날 미국의 이사회들이 그 반대가 되고 있다고 질타한다. 그는 이사회가 좋은 의도를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소유주를 대표할 때에만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드러커는 조직은 자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로 그 필요성을 역설한다. 더불어 사회 문제 자체를 사업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경영자의 능력또한 요구하고 있다.
“변화를 혁신, 즉 새로운 사업 기회로 전환하는 것은 기업의 과제이다. 혁신이 기술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영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사회적 변화와 혁신은 기술적 변화와 혁신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피터 드러커, <변화 리더의 조건> p. 153
4장과 5장에서 드러커는 경영의 기초지식과 기업가 정신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변화로 설정하고 경영의 원칙들을 설명한다. 드러커는 경영을 좁게 기업 경영으로 정의한다. 기업에서의 조직에 대해 그는 세상엔 단 하나의 올바른 조직 구조만 존재하며, 또한 단 하나의 올바른 인적 자원관리방법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공하는 기업에는 반드시 하나의 공식이 존재한다는 드러커의 강한 확신을 엿볼 수 있다. 이 장에서 드러커는 자신이 1960년대에 이미 예언한 지식 근로자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 근로자로 탈바꿈하고 있으며, 지식근로자는 경영자의 부하가 아니라 동반자라고 설명한다. 그 이유를 드러커는 수습기간이 해제된 지식 근로자는 상사보다도 더 많이 자신의 일에 대해 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들은 높은 이동성을 보유한다. 그들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으며, 그들 스스로 생산 수단, 즉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의 경영이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경영을 일컫는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고, 현재와 우리가 기대하고 꿈꾸는 것과도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드러커는 유능한 기업가는 일어날 미래를 미리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래를 파악하기 위해 드러커는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들을 분석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기업가가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드러커는 혁신기업의 기업가 전략으로서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전면전략, 적이 없는 곳도 공격하는 게릴라 전략, 전문분야에서 틈새를 발견하고 지위를 노리는 틈새전략, 제품,시장, 산업의 경제적 특성을 바꾸는 고객 창조 전략 등을 들고 있다.
피터 드러커가 주는 교훈 – 지식(Knowledge)이 해답이다.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5년 전에 태어난 그는 2차 세계 대전를 비롯 20세기의 굵직한 사건들을 몸소 체험했고, 특히 히틀러의 독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하고 관찰했다. 그리고 온갖 이념들로 몸살을 앓던 유럽을 청년시절 모두 겪은 바 있다. 유럽에서 대학을 나오고 첫 직장을 영국에서 가졌으나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인으로 살았고, 주요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20세기 미국의 대기업들의 컨설턴트 역할을 해냈다. 21세기 미국 발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3년 전인 2005년 그는 96세의 나이로 영면하기에 이른다. 짧게 그의 연보를 정리해 본 것은 그가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인 20세기를 온전히 살아왔던 경영학자이며, 영면하기 직전까지도 경영학자와 컨설턴트로서 일선에서 은퇴하지 않고 활동했던 놀라운 열정과 성실성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서다. 그는 어느 미래 학자보다도 더 현실적인 예언들로 경영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 예측했다. 이 같은 그의 능력은 한 세기에 걸친 꾸준한 관찰을 통해서 가능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는 <자서전>의 서문에서 평생 자신이 구경꾼(관찰자)의 자세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이 같은 고백은 탁월한 경영학자로서 기업의 비전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그의 능력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깨닫는 작은 힌트가 된다.
“구경꾼은 자신만의 역사가 없다. 그들은 무대 위에 있지만 연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의 역할도 하지 않는다. 연극과 거기에 참여한 모든 배우의 성공은 관객들의 반응에 달려 있지만, 구경꾼의 반응은 연극의 성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자기 내면에만 어떤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극장의 안전요원들이 그런 것처럼 구경꾼들은 무대 한쪽에 서서 배우나 관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우나 관객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 p.21 프롤로그 / 한국경제신문, 이동현 옮김
그는 관찰자로서의 능력을 통해 경영자들과 근로자들의 앞날을 내다보고 그들에게 깊은 혜안(慧眼)을 제공해왔다. 드러커가 가장 중요시 한 것은 지식이었다. 전통적인 생산요소들인 자본과 노동, 토지는 지식이 있다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경영자는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근로자는 지식을 보유해야만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드러커가 이야기하는 지식은 단순히 앎으로써의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을 포함해 혁신과 변화, 그리고 도덕성과 생산성이라는 개념을 총괄하는 의미에서의 지식이다. 과거의 경영자는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보스(Boss)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경영자는 군림하지 않는다. 그는 건전한 상식과 높은 도덕성, 그리고 자신의 업무에 대한 총괄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조직에서 지식을 행동으로 구체화하는 데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보스가 아니라 리더(Leader)인 것이다.
드러커는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공통된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것은 경영자와 근로자의 마인드가 같아야 한다는 획기적인 견해처럼 보인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경영자와 근로자를 대립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왔다. 그러나 드러커의 저작들에서 강조하는 지식의 중요성은 경영과 근로의 양측에서 몹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드러커는 왜 지식경영과 지식근로를 강조했던 것일까? 그것은 지식이 변화하는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분명한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기업의 평균 기대수명이 겨우 30년밖에 안되는데 비해, 노동자의 수명은 늘어나 평균적인 근로 년수가 50년을 넘어서고 있다. 근로자들은 자신의 고용기관보다 오래 살 것이 분명하므로 답은 2개 이상의 직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는 것이다. 드러커는 이러한 데이터를 두고 기업과 근로자 모두의 혁신을 주도하고 변화에 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 평균 수명이 서른살이라는 것은 과히 충격적이다. 더불어 근로자의 수명이 늘어남으로써 은퇴하고 남은 생존기간이 더불어 30년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 모두의 해법을 드러커는 지식(Knowledge)에 두고 있다.
지식을 보유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 기업의 운명과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의미다. 기업의 미래와 상관없이 개인은 자신이 소유한 지식만으로 기업간 이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 이동성은 지식노동자의 근로수명의 연장을 의미한다. 높은 수준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지식을 보유한 개인은 그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기업에 특별한 공헌을 할 수 있다. 더불어 기업은 보다 많은 지식 근로자를 고용함으로써, 선도적인 기술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글로벌 경쟁력은 여타의 기업보다 앞서갈 수 있는 동력을 의미하며, 평균 30년에 지나지 않은 기업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다.
드러커가 모든 저작에서 지식을 최우선에 두는 것은 이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드러커는 또한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사람이 변화를 관리할 수 없지만, 변화를 앞서갈 수는 있다고 설명하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히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 현대의 우리들에게 피터 드러커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함을 깨닫게 된다.
결론 – 열정과 성실성이 필요한 시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있는 피터 드러커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의 삶 가운데는 두 번의 세계대전이 놓여 있다. 나치 독일이 자신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는 것을 목격했고, 1932년에는 유명 일간지의 편집자로 장래가 보장되었지만, 독일이 히틀러의 손아귀에 넘어가자 모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락을 포기하고 독일에 위치했던 전도유망한 직장을 떠난다. 드러커의 최초의 저서 <경제인의 종말>은 히틀러의 독일과 유럽 사회에 드리워진 전쟁의 위기감을 예언하는 것으로 소수 지식인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앞날을 내다보는 특별한 능력을 품고 있었던 듯 하다. 또한 그는 평생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일생 동안 경영이란 한 분야에만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인 학습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습관을 들였던 그는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최고의 컨설턴트와 위대한 작가, 그리고 뛰어난 스승이 될 있었던 것은 이런 그의 가치관 때문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서 나는 피터 드러커에게 두 가지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드러커의 삶과 학문, 그 모두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이다. 90세가 넘은 그에게 한국의 학자가 은퇴할 시기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은퇴할 욕심이 생기지 않네( I have no desire to retire)”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한국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2002년에 출판된 <넥스트 소사이어티>라는 저서에서 그는 “한국을 기업가 정신이 가장 뛰어난 국가”로 언급했으며, 1993년 출판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의 서문에서는 “역사상 한국전쟁 이후 40년 동안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에 필적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육에 대한 투자로부터 그렇게 풍부한 수확을 거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또한 한국의 교육과 한국인의 정신력을 높게 설명한 적이 있다.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쓴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그는 미국 흑인 사회의 게으름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인들처럼 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해도 이길 수가 없는 싸움입니다. 한국인들은요? 온 가족이 하루에 열 여섯 시간씩, 그리고 일주일에 7일을 일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 버락 오바마,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p.310 램덤하우스, 이경식 옮김
드러커와 오바마가 극찬한 한국인의 정신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 교육(지식)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최대한의 투자라 부를 만 하다. 드러커또한 평생을 이러한 자세를 중시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그가 한국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업과 개인이 잘 되기 위해선 매우 단순한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성공의 방법을 연구하고, 그 방법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다. 그 밑바탕에는 기업과 개인의 열정과 성실성이 초석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경제적인 문제들로 기업과 개인은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 세계 금융 위기로 시작된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기업과 개인에겐 크나큰 위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위기일수록 미래에 대한 높은 기대와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에 대한 학습과 과거의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 그리고 미래를 대비한 투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피터 드러커는 1969년 출간된 저서 <단절의 시대>에서 최초로 `지식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미래 사회가 지식사회가 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오늘날 지식경영, 지식근로자 라는 용어는 너무 흔하게 쓰이지만, 이것은 피터 드러커 이전에는 우리가 감히 알지 못했던 용어에 다름 아니다. 평생 기업 컨설턴트로서 그는 수많은 경영이론을 정립하고, 개인의 발전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기계발 로드맵을 구축해 갔지만, 이것은 그의 삶의 철학인, 열정과 성실성을 그대로 경영과 자기계발의 이론에 접목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지식근로자의 최상의 모델은 바로 피터 드러커 자신인 것이다.
그는 영면하기 전까지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은 진정한 학자였다. <자서전>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라고 쓴 바 있다. 그는 지식과 근로가 결합된 지식근로자라는 개념을 정립함으로써, 산업화 시대에 개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고, 그것을 통해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는 사람을 중시했으며, 인간이 기업 안의 일개 부속품이 아닌 가장 중요한 핵심적 역량임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
기업이란 결국 사람이 모여 조직하고, 하나의 조직 목표아래 움직이는 총체적인 기관이다. 개인이 잘 되어야 기업이란 조직도 튼실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서적들에서 나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탐욕이든, 부정부패든 간에 인간이 자초하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의 극복 또한 소수일지라도 현명한 인간들의 몫이라고 단정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지금의 세계적인, 혹은 국가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단 하나의 비법이란 존재할 수 없다. 피터 드러커는 어떤 인간에게도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들 나름의 강점이 존재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기업이 한 개인에게 바라는 것은 단점에 대한 수치심이 아니라, 오직 강점을 통한 공헌일 뿐이다. 또한 자서전에서 완벽한 사회에 대한 이상을 젊은 시절에 이미 버렸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결국 사회란 번영과 위기가 뒤섞여 결국엔 보다 나은 길을 찾아가는 것임을 그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끊임없이 주지시켰던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서적들에 대한 나의 독서는 이 모든 것들을 삶의 지혜와 경영의 본질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가 21세기에도 기업인과 지식 근로자의 영원한 구루(Guru:정신적인 스승)로 우리 곁에 남아 무궁무진한 지혜를 끝없이 전해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