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화란 더이상 정치인이 내뱉는 선동구호나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나비효과를 연상시킨다.  이 과학용어는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로렌츠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이며, 이것은 훗날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한다.  대개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예를 들면, 중국 상공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얼마후, 미국 워싱턴에 허리케인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경제상황에 적용하면 과학 이론으로 정립된 것보다 더 분명한 그림이 그려진다.  전날 미국의 증권시장(다우,나스닥)에 몰아친 폭풍우가 한국의 코스피에 대재앙이 돼 버리는 것은 일상다반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과 상관없는 거시적인 경제현상도 아니다.  미국에서 느닷없이 발생한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선캄프리아기쯤의 빙하기로 후퇴시켰다.  그 여파는 잘 나가던 유럽의 금융 중심 국가들을 몰락시켰고, 기축통화인 달러의 지위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며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더불어 각 개인에게 몰아닥친 직접적인 영향은 대규모 실업과 소득감소라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태였다.  이만큼 현실적인 나비효과가 어디 있겠는가?

경제학에 문외한인 대중들이 경제학 서적들을 펴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얼마전 구속되었다 풀려난 미네르바는 한때 한국 경제의 `위대한 예언자'노릇을 했다.   그의 신분이 공개되기 전까지 그는 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제 금융업계에 종사한 이력이 있을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세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을 예언하고, 국내 경제의 흐름을 한동안 족집게처럼 집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학의 그 흔한 경제학 교수들에게 강의 한번 들어본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유명세를 탔는가 하면,  한국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면담을 시도했을 정도다.

미네르바 사건으로 우리는 몇가지 교훈을 얻었다.  부활한 빅 브라더가 있으니 입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첫번째다.  진실을 유포하면 이유여하를 막논하고 잡혀갈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거리'인 법을 들먹이며 법치를 강조한다.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자기검열에 몰두해야 한다.   소위 위축효과(chilling effect) 덕분이다.  더불어, 명망높은 경제학자나 관료님들이 경제 위기의 시대 쏟아낸 언사나 정책들의 신뢰성 문제다.   곧 망할 것이 확실했던 리먼 브라더스의 주식을 사려한 모 은행의 헛발질은 이제는 전설이 된지 오래다. 경제학자나 관료들은 경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그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걸까?  미네르바 사건 이후, 대중들이 갖게 된 자연스런 의문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일단의 경제학자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는 부시 정권의 경제정책에 쓴소리를 해온걸로 유명한 학자다.   오바마 취임후에도 그의 쓴소리는 멈추지 않고 더 가혹하다.   오마바의 금융위기 대처 방안들에 대해선, 사기나 마찬가지라며 입바른 소리를 한적도 있다.  그가 최소한 정권의 입맛에 따라 놀아나는 학자가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그를 신뢰할 수 있는 하나의 분명한 증표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기 4년전인 1994 발표한 한 논문에서 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허구적"이라고 주장하며 학계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의 고속 성장은 요소 생산성(기술 진보)의 향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요소 투입량(노동과 자본 등)의 증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요소 투입량은 무한정 늘릴 수가 없기 때문에 성장도 곧 한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아시아 기적의 신화The Myth of Asian Miracles, 포린 어페어즈 1994년 11월 논문 가운데)

신뢰받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2008년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경기침체, 불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했을까?  그가 아시아 금융 위기 때인10여년전 출판했던 같은 제목의 책을 개정, 증보해 펴낸 것이 <불황의 경제학>이다. 

이 책에서 그는 수년 전 경기불황과 위기를 겪었던 일본,아시아,남아메리카의 경우를 상세히 분석해 들어간다.  위기의 배경과 상황을  열거한 후,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에 해법을 내놓는다. 간단히 말해 미국에서 발생한 최근의 위기를 그는  `규제를 받아야 할 기관들이 규제를 받지 않고 오히려 높은 리스크를 감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결국 주택거품이 터지면서 상상 훨씬 이상의 나쁜 결과가 야기되었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바로,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 <불황의 경제학> p.190

"영향력있는 인물들이 나서서 한 가지 간단한 규칙, 즉 은행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모든 기관들, 다시 말해 은행과 똑같은 방식으로 구제되어야 하는 모든 기관들을 은행과 똑같이 규제한다는 내용의 규정을 발표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폴 크루그먼, <불황의 경제학> p.203

그의 예언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명확해진다. " 현재의 경제 위기는 세계 대공황의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황경제학이 컴백했으며, 이 말의 뜻은 본질적으로 두 세대 만에 처음으로 경제에서 수요 측면의 실패가 세계 번영에 뚜렷한 당면 제약이 되었다는 것이다."(226p)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크루그먼은 세계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신용경색 완화 노력과 소비지원에 진력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소비지원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통해 내수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보수주의 정권하에서 무시되어온 케인스식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세계화 내지 신자유주의는 탈규제, 감세를 통해 시장을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시장은 그에 맞게 제자리를 찾게 된다는 신념이었다.  즉, 보이지 않은 손이 모든 일을 할테니 정부는 손을 떼라는 것이다.  이것이 1970,80년대 영국과 미국을 지배했던 대처와 레이건의 정책 즉 신자유주의였다. 그러나 또다시 컴백한 불황경제속에서 지금 세계의 정부들은 지나친 시장의 자유때문에 파멸의 길로 걷고 있는 자신들의 경제를 목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번 금융위기에서 어떤 교훈도 얻은게 없는 것일까?  정부 정책은 규제를 풀고, 부자들의 세금을 깍고, 포이즌 필(poision pill) 제도를 통해 재벌의 경영권 방어를 돕는데 앞장 서려한다.  한물간 토건사업에 치중하고, 규제받아야할 금융산업에 대해 금산법 개정으로 재벌이 금융산업에까지 진출하는걸 허용해주려 한다.  부동산 시장은 풀 수 있는 거의 모든 규제를 풀어놓아 과열 조짐까지 보이자 난발되는 주택담보대출에 뒤늦게 브레이크를 걸겠다고 나섰다.  부자들의 세금을 깍은덕에 발생한 세수부족을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담배나 술에 `죄악세(sin tax)'라는 해괴망측한 이름을 붙여 세율을 인상하고, 보충하려든다. 이쯤 되면,  이번 경제 위기에서 얻은 것은 교훈이 아니라 `자만'이라 불러야 옳다.

2008년 시작된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며칠전 미국의 실업통계수치가 근래 최악을 기록하면서 당일 다우존스 지수를 폭락시켰다.  그러나 한국에선 벌써 경기회복을 점치는 성급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IMF나 외국의 신용평가기관은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상향 조정하고, 추후의 상황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사실 이들 IMF나 신용평가기관들이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장본인들 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역설적이다.

축제의 밤이 무르익고 있을 때 사람들은 축제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행동한다. 환락의 밤이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란 심사란 술기운 때문이거나 군중 심리의 영향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축제는 반드시 새벽이 오기전에 끝나기 마련이다. 축제를 잘 끝내는 방법은 밝아오는 새벽을 준비하는 마음이다.  미국의 금융위기전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재임시절 미국 경제의 미래를 의문없이 낙관했다. 그의 퇴임은 화려했으며 그의 공헌은 높이 칭송받았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금융위기로 그의 과거 정책들이란 축제의 밤에 꾸는 헛된 욕망들과 다를 바 없음이 밝혀졌다. 

이처럼, 경제란 경제전문가나 경제관료들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그것은 지난해 가을 한 인터넷 경제 논객의 예언에 휘둘린 한국 경제만 보아도 분명해진다.  이 시대 경제학은 더이상 경제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출판시장에서 대중 경제학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누구도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지 못할때,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 수밖에 없다.  지금 그 무기란 경제학적 지식이고, 사유방식이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생경한 경제학 용어들을 인내하며, 폴 크루그먼을 읽는 이유다.

 



200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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