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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책쓰기 - 인생 반전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오병곤.홍승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 뭐 그런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군대를 막 다녀와서다. 소설 쓰기에 관심이 많았고, 또 소설을 즐겨 읽어왔다. 까지것! 그들이 쓰는데 내가 못 쓸게 뭐냐? 라는 생각이었다. 그 당시의 관심사에다, 제목까지 눈에 확 들어와 열심히 읽었다. 그 책을 읽고나면 단편 소설 한 편 쯤은 써낼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지 15년이 지났다. 15년간 읽은 책이 얼마며, 보아온 소설책은 또 몇 권일텐가 ? 그런데도 나는 여태 소설을 써본적이 없다.
<내 인생의 첫 책쓰기>라는 책을 4년 전 사두고 이제야 꺼내 읽었다. 아마, 4년 전에도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거라는 희망처럼, 내 책을 써 낼 수 있다는, 어떤 희망을 품었던게 분명하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러니까, 나는 글쓰기의 욕망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온 듯 하다. 내가 꾸준히 책을 읽는 것도, 독후감을 규칙적으로 쓰는 일도, 가끔 괜찮은 영화평을 써보겠단 생각으로 영화관을 찾는 것도, 모두 궁극적으론 내 책을 갖고 싶다는 소망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있다. 어렵기로 소문난 이 분의 철학책을 읽은 것도 군 제대 전후다. 소위 사르트르의 주저라고들 한다. <존재와 무>다. 그것도 육중한 두께에 1,2권으로 나뉜다. 딱 15년 전에 1권의 앞 몇 페이지를 읽다 포기했다. 좀더 쉬운 걸로 도전했다. <구토>다. 로캉텡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사르트르의 철학소설이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자전적 기록에 가깝다. 그의 자서전 <말 Les mots >도 읽었다. 이 두 권의 책은 지금도 강렬히 기억속에 남아 있는데, <구토>의 독학자 로캉텡씨의 기행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는다. 때로 알 수 없는 독백을 늘어놓는다. 혹은 누군가를 미행하며 풍경과 사람을 묘사하기도 한다.
자서전 <말>을 읽으며 로캉탱이 사르트르 자신임을 깨달았다. <말>의 말미에는 제법 의미심장한 구절이 등장한다. 15년 전 읽은 책이며, 구입한지 그 나이가 된 책은 내 서재 선반의 어느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책 상태가 아주 말끔하다. 책의 생명력은 질기구나. 서재에서 꺼내 몇 페이지 넘기니 그 오래 전 밑줄 그은 곳이 나온다.
"1955년경에는 한 마리의 유충이 파열할 것이고, 2절판으로 된 스물다섯 마리의 나비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와 자기네의 모든 페이지들을 팔딱거리며 국립도서관의 선반에 가서 앉을 것이다. 그 나비들은 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스물다섯 권의 책 1만 8천 페이지의 본문, 저자의 초상화까지 합해서 3백 매의 삽화들, 이런 것들이 나 자신인 것이다. 내 뼈들은 가죽, 그리고 마분지에 속해 있고, 양피지가 된 내 살은 풀과 버섯 냄새를 풍기고, 60킬로의 종이를 통하여 나는 아주 편안하게 자리잡고 앉는다. 나는 다시 태어나 마침내 생각하고, 말하고, 노래하고, 우레처럼 울리는 소리를 내는 한 인간, 물질의 확고한 관성을 지니고 자기를 주장하는 인간이 된다." 장 폴 사르트르 자서전, <말Les mots>
철학자 사르트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서전에 썼다. 결국 그는 스물 다섯권의 책과 1만 8천 페이지의 본문으로 환생했다. 자신의 예언대로, 그는 죽어서 책이 되었고 세계의 어느 도시 뭇 도서관의 서가에 앉아, 자신을 선택해 줄 독자와 만나고 있다. 책은 사르트르 처럼 박식하고 유명한 사람만 쓸 수 있는걸까? <내 인생의 첫 책쓰기>의 저자들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공저자 오병곤과 홍승완은 자신의 평범함을 무척 강조한다. 이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는' 우리 시대의 직장인이다. 오병곤은 IT업계에서 소위 `노가다' 정신으로 프로그램을 계발하던 사람이다. 홍승완은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한다.
다만, 그들이 평범한 직장인과 다른 한가지 점이 있다. 책을 두 권씩 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평범한 직장인의 신분을 벗어나, 책을 두 권 씩이나 쓴 저자 반열에 올랐을까? <내 인생의 첫 책쓰기>에서 이들은 그 노하우를 전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말 그대로 이것은 고군분투다. 이들은 자신의 책쓰기 경험과 참고도서에서 추출한 엑기스와 저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수기를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아냈다. 책 쓰는 방법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독서법과 글 잘 쓰는 방법까지 실려 있는 아기자기한 책이다. 많이 팔리지 않았겠지만, 내용이 충실하고 저자들의 노고가 전해온다. 무엇보다 갓 저자 지위에 오른 이들이라, 남다른 열정이 느껴진다.
이 책은 책을 쓰는 방법을 담고 있는 책쓰기 메뉴얼이다. 먼저 책을 내고 저자로 `환생'에 성공한 선배로서 이들은 자신의 경험 모두를 들려주려 애쓴다.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순서대로 담겨 있다. 그 아기자기함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책을 구상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콘셉트를 차별화해서 책을 기획할 것, 뭐니뭐니해도 기획이 신선해야 신선한 책이 나오는 법이니까. 그 다음은 목차다. 목차를 정교하고 견고하게 꾸밀 것 ! 목차는 책의 설계도니 두말하면 잔소리겠다.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공을 들여라. 이것은 책의 얼굴이니 여기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면 끝이다. 어쩌면 책을 쓰겠다 마음먹은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 출판사에 책의 서문과 목차, 그리고 셈플 원고를 몇 개 보내 출판계약을 따내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문장론, 저자의 태도, 책을 쓰는 동기도 읽을만 하다.
"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은 매우 훌륭한 책이다. 책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화, 인용, 연구결과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찌 보면 방대한 자료수집에 의해 완성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좋은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고 잘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제대로 된 자료수집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책이다." p. 123 < 내 인생의 첫 책쓰기>
"생각해봐라. 책이야말로 내 마음대로 빠져들 수 있는 세상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것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 p.177 구본형
첫 책을 쓸 때 베스트셀러로 만들겠단 생각을 버리고, 먼저 좋은 책, 내용이 충실한 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가져라는 저자의 충고는 마음에 든다. 요즘 동네 서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베스트셀러 판매대를 채우고 있는 그 책들의 면면을 보라. 가끔 의아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제목으로 독자를 홀리는 책은, 제목만 보아도 티가 난다. 출판사의 기획과 광고로 그 자리에 오른 책들도 상당하다. 베스트셀러는 믿을게 못 된다는 것, 좋은 책의 기준도 아니라는 것 !
이 책의 아기자기함 속에는 함정도 있다. 저자들이 책을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너무 강조한다는 점이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지 ?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집을 아무나 내서는 안 된다. 이 책에 빗대 바꿔 말하면,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책을 내서는 안 된다 쯤? 저자들이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의 독서 내공과 글쓰기 수업, 습작의 시간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책을 내겠다는 꿈을 꿀 수는 있지만, 책을 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항상 그렇듯이 메뉴얼은 참고로 하고, 실전이 중요한 법이다. 꾸준히 읽고 쓰다보면 언젠가 내공이 쌓이고 깊이를 갖게 될 때 자신의 책을 쓰는 날도 오게 되는 것 아닐까? 미국의 저술가 폴 마이어가 이런 말을 했다. "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의 90퍼센트는 진짜로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만두었을 뿐이다." 책읽기와 글쓰기는 자신과의 긴 싸움이다. 하지만,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좋을 책과 만날 것이고, 결국 멋진 글을 쓰게 될 게다.
직장 생활 8년차다. 적응하는 2년간은 책을 못 읽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한해 평균 30~40권 정도의 책을 읽고 리뷰를 써 온 게 6년이 되었다. 6년간 꾸준히 읽고 썼다. 6년간 블로그에 내가 쓴 글은 대부분 책 리뷰였다. 그것이 모여 이제 160개 정도의 리뷰가 됐다. 한달에 3~4개의 리뷰를 쓰고 올린다. 정말 더딘 작업이다. 마음 같아선 한해 100권의 책은 읽고 싶다. 갈수록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모두 고통스럽다.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게 아니라,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일이 독서와 글쓰기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름 이룬것들이 있다. 158편의 서평을 쓰는 동안 도서 파워블로그에 두차례 올랐다. 온라인 리뷰대회와 사내 글짓기대회에서 수차례 수상했고, 서평전문잡지에 온라인 서평가라는 직함으로 기고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5년 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15년 전, 사르트르의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는 걸음마 수준이었다. 지금껏 책이 나를 변화시켰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5년후에는 내 책을 쓰고 싶다. 그런데, 사실 소설을 써보고 싶었던 15년 전의 바람처럼 이것은 단지 소망이거나 꿈이다. 그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히 한가지는 약속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읽고 쓴다면, 5년 후 나는 360개 독서일기와 125개의 영화평을 블로그에 올리게 될 게다. 위안하자면, 그것으로 책을 쓴 것이나 다름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느긋하게 좀더 여유롭게 읽고 쓸 수 있다. 갈수록 글쓰기가 힘들고 어렵지만, 멀리 보면 서두를 것도 없다. 사르트르처럼 품격과 깊이를 갖춘 철학서를 쓰진 못하겠지만, 먼 훗날 `저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 책의 두 공저자는 `인생 반전'이라 부른다. 로또로 인생역전하는 것보단 실현 가능성이 높고, 훨씬 의미깊은 일이다.

2012.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