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책쓰기 - 인생 반전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오병곤.홍승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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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일이다.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 뭐 그런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군대를 막 다녀와서다. 소설 쓰기에 관심이 많았고, 또 소설을 즐겨 읽어왔다. 까지것! 그들이 쓰는데 내가 못 쓸게 뭐냐? 라는 생각이었다. 그 당시의 관심사에다, 제목까지 눈에 확 들어와 열심히 읽었다. 그 책을 읽고나면 단편 소설 한 편 쯤은 써낼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지 15년이 지났다. 15년간 읽은 책이 얼마며, 보아온 소설책은 또 몇 권일텐가 ? 그런데도 나는 여태 소설을 써본적이 없다.

 

<내 인생의 첫 책쓰기>라는 책을 4년 전 사두고 이제야 꺼내 읽었다. 아마, 4년 전에도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거라는 희망처럼, 내 책을 써 낼 수 있다는, 어떤 희망을 품었던게 분명하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러니까, 나는 글쓰기의 욕망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온 듯 하다. 내가 꾸준히 책을 읽는 것도, 독후감을 규칙적으로 쓰는 일도, 가끔 괜찮은 영화평을 써보겠단 생각으로 영화관을 찾는 것도, 모두 궁극적으론 내 책을 갖고 싶다는 소망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있다. 어렵기로 소문난 이 분의 철학책을 읽은 것도 군 제대 전후다. 소위 사르트르의 주저라고들 한다. <존재와 무>다. 그것도 육중한 두께에 1,2권으로 나뉜다. 딱 15년 전에 1권의 앞 몇 페이지를 읽다 포기했다. 좀더 쉬운 걸로 도전했다. <구토>다. 로캉텡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사르트르의 철학소설이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자전적 기록에 가깝다. 그의 자서전 <말 Les mots >도 읽었다. 이 두 권의 책은 지금도 강렬히 기억속에 남아 있는데, <구토>의 독학자 로캉텡씨의 기행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는다. 때로 알 수 없는 독백을 늘어놓는다. 혹은 누군가를 미행하며 풍경과 사람을 묘사하기도 한다.

 

자서전 <말>을 읽으며 로캉탱이 사르트르 자신임을 깨달았다. <말>의 말미에는 제법 의미심장한 구절이 등장한다. 15년 전 읽은 책이며, 구입한지 그 나이가 된 책은 내 서재 선반의 어느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책 상태가 아주 말끔하다. 책의 생명력은 질기구나. 서재에서 꺼내 몇 페이지 넘기니 그 오래 전 밑줄 그은 곳이 나온다.

 

"1955년경에는 한 마리의 유충이 파열할 것이고, 2절판으로 된 스물다섯 마리의 나비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와 자기네의 모든 페이지들을 팔딱거리며 국립도서관의 선반에 가서 앉을 것이다. 그 나비들은 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스물다섯 권의 책 1만 8천 페이지의 본문, 저자의 초상화까지 합해서 3백 매의 삽화들, 이런 것들이 나 자신인 것이다. 내 뼈들은 가죽, 그리고 마분지에 속해 있고, 양피지가 된 내 살은 풀과 버섯 냄새를 풍기고, 60킬로의 종이를 통하여 나는 아주 편안하게 자리잡고 앉는다. 나는 다시 태어나 마침내 생각하고, 말하고, 노래하고, 우레처럼 울리는 소리를 내는 한 인간, 물질의 확고한 관성을 지니고 자기를 주장하는 인간이 된다." 장 폴 사르트르 자서전, <말Les mots>

 

철학자 사르트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서전에 썼다. 결국 그는 스물 다섯권의 책과 1만 8천 페이지의 본문으로 환생했다. 자신의 예언대로, 그는 죽어서 책이 되었고 세계의 어느 도시 뭇 도서관의 서가에 앉아, 자신을 선택해 줄 독자와 만나고 있다. 책은 사르트르 처럼 박식하고 유명한 사람만 쓸 수 있는걸까? <내 인생의 첫 책쓰기>의 저자들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공저자 오병곤과 홍승완은 자신의 평범함을 무척 강조한다. 이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는' 우리 시대의 직장인이다. 오병곤은 IT업계에서 소위 `노가다' 정신으로 프로그램을 계발하던 사람이다. 홍승완은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한다.

 

다만, 그들이 평범한 직장인과 다른 한가지 점이 있다. 책을 두 권씩 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평범한 직장인의 신분을 벗어나, 책을 두 권 씩이나 쓴 저자 반열에 올랐을까? <내 인생의 첫 책쓰기>에서 이들은 그 노하우를 전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말 그대로 이것은 고군분투다. 이들은 자신의 책쓰기 경험과 참고도서에서 추출한 엑기스와 저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수기를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아냈다. 책 쓰는 방법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독서법과 글 잘 쓰는 방법까지 실려 있는 아기자기한 책이다. 많이 팔리지 않았겠지만, 내용이 충실하고 저자들의 노고가 전해온다. 무엇보다 갓 저자 지위에 오른 이들이라, 남다른 열정이 느껴진다.

 

이 책은 책을 쓰는 방법을 담고 있는 책쓰기 메뉴얼이다. 먼저 책을 내고 저자로 `환생'에 성공한 선배로서 이들은 자신의 경험 모두를 들려주려 애쓴다.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순서대로 담겨 있다. 그 아기자기함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책을 구상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콘셉트를 차별화해서 책을 기획할 것, 뭐니뭐니해도 기획이 신선해야 신선한 책이 나오는 법이니까. 그 다음은 목차다. 목차를 정교하고 견고하게 꾸밀 것 ! 목차는 책의 설계도니 두말하면 잔소리겠다.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공을 들여라. 이것은 책의 얼굴이니 여기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면 끝이다. 어쩌면 책을 쓰겠다 마음먹은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 출판사에 책의 서문과 목차, 그리고 셈플 원고를 몇 개 보내 출판계약을 따내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문장론, 저자의 태도, 책을 쓰는 동기도 읽을만 하다.

 

"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은 매우 훌륭한 책이다. 책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화, 인용, 연구결과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찌 보면 방대한 자료수집에 의해 완성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좋은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고 잘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제대로 된 자료수집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책이다." p. 123 < 내 인생의 첫 책쓰기>

 

"생각해봐라. 책이야말로 내 마음대로 빠져들 수 있는 세상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것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 p.177 구본형

 

첫 책을 쓸 때 베스트셀러로 만들겠단 생각을 버리고, 먼저 좋은 책, 내용이 충실한 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가져라는 저자의 충고는 마음에 든다. 요즘 동네 서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베스트셀러 판매대를 채우고 있는 그 책들의 면면을 보라. 가끔 의아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제목으로 독자를 홀리는 책은, 제목만 보아도 티가 난다. 출판사의 기획과 광고로 그 자리에 오른 책들도 상당하다. 베스트셀러는 믿을게 못 된다는 것, 좋은 책의 기준도 아니라는 것 !

 

이 책의 아기자기함 속에는 함정도 있다. 저자들이 책을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너무 강조한다는 점이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지 ?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집을 아무나 내서는 안 된다. 이 책에 빗대 바꿔 말하면,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책을 내서는 안 된다 쯤? 저자들이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의 독서 내공과 글쓰기 수업, 습작의 시간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책을 내겠다는 꿈을 꿀 수는 있지만, 책을 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항상 그렇듯이 메뉴얼은 참고로 하고, 실전이 중요한 법이다. 꾸준히 읽고 쓰다보면 언젠가 내공이 쌓이고 깊이를 갖게 될 때 자신의 책을 쓰는 날도 오게 되는 것 아닐까? 미국의 저술가 폴 마이어가 이런 말을 했다. "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의 90퍼센트는 진짜로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만두었을 뿐이다." 책읽기와 글쓰기는 자신과의 긴 싸움이다. 하지만,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좋을 책과 만날 것이고, 결국 멋진 글을 쓰게 될 게다.

 

직장 생활 8년차다. 적응하는 2년간은 책을 못 읽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한해 평균 30~40권 정도의 책을 읽고 리뷰를 써 온 게 6년이 되었다. 6년간 꾸준히 읽고 썼다. 6년간 블로그에 내가 쓴 글은 대부분 책 리뷰였다. 그것이 모여 이제 160개 정도의 리뷰가 됐다. 한달에 3~4개의 리뷰를 쓰고 올린다. 정말 더딘 작업이다. 마음 같아선 한해 100권의 책은 읽고 싶다. 갈수록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모두 고통스럽다.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게 아니라,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일이 독서와 글쓰기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름 이룬것들이 있다. 158편의 서평을 쓰는 동안 도서 파워블로그에 두차례 올랐다. 온라인 리뷰대회와 사내 글짓기대회에서 수차례 수상했고, 서평전문잡지에 온라인 서평가라는 직함으로 기고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5년 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15년 전, 사르트르의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는 걸음마 수준이었다. 지금껏 책이 나를 변화시켰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5년후에는 내 책을 쓰고 싶다. 그런데, 사실 소설을 써보고 싶었던 15년 전의 바람처럼 이것은 단지 소망이거나 꿈이다. 그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히 한가지는 약속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읽고 쓴다면, 5년 후 나는 360개 독서일기와 125개의 영화평을 블로그에 올리게 될 게다. 위안하자면, 그것으로 책을 쓴 것이나 다름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느긋하게 좀더 여유롭게 읽고 쓸 수 있다. 갈수록 글쓰기가 힘들고 어렵지만, 멀리 보면 서두를 것도 없다. 사르트르처럼 품격과 깊이를 갖춘 철학서를 쓰진 못하겠지만, 먼 훗날 `저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 책의 두 공저자는 `인생 반전'이라 부른다. 로또로 인생역전하는 것보단 실현 가능성이 높고, 훨씬 의미깊은 일이다.

 

 

 

2012.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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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서재 - 경영은 인문정신의 예술이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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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겨우 서너 권의 책을 읽는다. 책 선택은 매번 주먹구구식이다. 새 책을 펴들 땐 다음 책을 생각하긴 해도 딱히 정해두진 않는다. 매번 책을 고를 때마다 그러니 어떤 설렘이 있다. 되도록이면 여러분야의 책을 보려 노력한다. 책을 고를 때 나는 거실 서재의 새 책이 자리한 공간을 응시한다. 잠시 응시하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들어오게 돼 있다. 그간 꾸준히 읽어야 할 책을 서재의 새책 공간에 차곡차곡 사서 넣어둔 덕분이다. 당장은 읽지 않더라도 내가 책을 미리미리 사두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신문 서평란에서, 광고에서, 혹은 책 속에서 알게 된 책들이다. 책을 읽는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 타인의 책읽기에 관심가져야 하는 이유일 게다. 책읽기의 선배들은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갖고 있다. 그 안목은 곧 책 목록과 이어진다. 우리가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집요한 독서습관과 더불어 비책이 담겨 있을 그들의 책 목록이다. 이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책을 작년과 올해 우연히 만났다. 방송작가 출신 저자 한정원이 작년 <지식인의 서재>에 이어, 딱 1년만에 를 들고 독자앞에 다시 나타났다. 사진작가이자 방송 프로듀서인 전영건의 디테일한 사진과 인터뷰 상대의 책읽는 삶을 무난한 필력으로 녹여낸 한정원의 글을 통해, 뭇 독자들의 책읽는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책이다.

 

<CEO의 서재> 에는 8명의 우리 시대 CEO가 등장한다. 그들은 현재 경영 일선을 지키고 있는 현역 CEO들로 이미 자신의 영역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들이다. 작년 <지식인의 서재>에서 만났던 지식인들은 익히 알려진 분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CEO 가운데 내가 아는 분은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CEO니까 5대 그룹의 재벌 수장들이 등장할거란 상상 때문이었을까? 사실 그분들이 등장했다면 이 책 안 읽고 싶었을 것 같다. 이 책의 부재가 마침 `경영은 인문정신의 예술이다' 인데, 그런 분들의 서재와 인문정신을 연결 짓기엔 왜 어색한 걸까?

 

다행히 이 책에 등장하신 CEO들은 그들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훨씬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들은 지식인에 비견될만큼 무척 많은 책을 사고, 소장하고, 읽고 있었다. 하나 예외없이, 책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를 경영과 삶에 응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돈벌이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인이자 경영인이기 전에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자세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단 느낌이 든다. 재벌 수장들에게 전해오는 왠지모를 거부감이 아닌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넉넉한 미소와 지혜가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 이들의 삶에는 그대로 한 권의 책으로 읽어도 좋을 만한 모험과 감동이 자리한다.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에게 서재는 꿈이다. 그는 외국 출장길에 책 구입비용으로 4천만원을 쓸 정도로 대단한 책 수집가이자, 장서가다. 자신의 독창성과 상상력의 원천을 어려운 책을 읽는 가운데 모르는 부분을 끊임없이 메우고 배우려는 자세 덕분이란다. 다독을 선호하지 않고 많이 읽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독서를 행한다는 그는, 고전이야말로 경영철학의 뿌리라고 단언한다. IMF 때 부도난 회사를 다시 살려내고 송추아트밸리를 통해 전 직원이 참여하는 조각,그림,음악의 예술공간을 꾸릴 수 있었던 것도 독서의 힘이 바탕이 됐다.

 

인간개발연구원 장만기 회장에게 서재는 가장 안전한 창작의 공간이다. 조찬 모임의 대부로 통하는 그는 37년 동안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를 주도하며 오랜 시간동안 그 자리를 비워본적이 없다. 놀라운 것은 단 한번도 시간을 어기거나 빠진적이 없다는 것이다. 경영자들을 교육하는 선생이라 부를만한 그는 기업이 발전하려면 경영자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더는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해야 하며,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어불성설이란다.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의 90퍼센트는 진짜로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만두었을 뿐이다."라는 저술가 폴 마이어의 말을 좌우명 삼아, 그는 7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공부한다.

 

민음사 박맹호 회장에게 서재는 자신이 대부분을 머무는 상상과 창조의 공간이다. 그는 책의 위기니 출판업의 위기 따위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 얘기는 50년 전부터 있었다고 단언한다. 많은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는 일을 해왔지만, 역시 많은 책을 지금껏 읽어온 그가 가진 독서철학은 무척 흥미있고 유익하다.

 

"책은 무조건 쉽고 재미있어야 해요. 책이 어려우면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요' 이렇게 되는 거죠. 어렸을 때 어려운 책을 읽게 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제일 나쁜 겁니다. 아이들한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면 안돼요. 서점에 가서 자기가 직접 고르게 해야죠. 자기가 골라서 재미있으면 그게 만화면 어떻고 소설이면 어떻습니까? 그러고 난 후에야 이론적이고 아카데믹한 책도 읽을 수 있는 겁니다. " p.285, 박맹호의 서재

 

한미글로벌 김종훈 회장에게 서재는 삶이 재창조되는 곳이다. 이 책에 소개된 8명의 책읽는 CEO 가운데 가장 인상깊은 분이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그가 책을 통해 얻은 지혜와 지식 모두를 경영에 완벽히 접목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이끄는 한미글로벌은 건설사업관리 회사로 2008년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가운데서 대상을 수상했다. 경영의 원칙을 구성원 최우선주의로 두고 있는데, 세부적인 이 회사의 복리후생제도를 살펴보면 그가 이끌고 있는 회사가 왜 천국인지 알 수 있다. 회사 내 모든 직원 자녀의 장학금 제도, 4명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고 권유하는 CEO, 임원은 5년마다, 직원은 10년마다 두 달의 안식휴가를 보내주는 회사, 모든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휴게실이 제공되고, 매주 목요일이면 의무적으로 오후 5시에 퇴근해 자기계발을 돕는 회사. 또 자신의 친족이 아닌 경영능력이 우수한 구성원에게 회사를 물려줄 계획을 세운 CEO가 바로 그다.

 

그의 인간중심, 구성원 중심 경영철학은 온전히 책을 통해 얻은 것이다. 자신의 첫번째 안식휴가 때 그는 50권의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정독했다. 지금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이건 정말 진심인데, 책을 엄청 많이 읽고 싶어요. 젊었을 때 책을 많이 못 읽었어요. 그게 좀 후회가 되더라고요.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 정말 책을 많이 읽고 싶어요." P. 266 김종훈의 서재

 

책읽는 CEO 들은 뭔가 달랐다. 그들의 삶에서 책은 스승이자 동반자였다. 책은 그들을 존경할만한 리더이자 경영자로 이끌었다. 책을 통해 장사의 기술, 경영의 기교만을 섭취한 게 아니었다. 가장 뛰어난 경영자는 `인문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 모두 창의력과 상상력의 원천을 자신의 서재에 가득 들어찬 책에서 찾았다. 책읽는 CEO들은 돈벌이에만 눈이 먼 `하수 경영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원양어업과 호텔사업으로 거부가 된 글로벌 한상(韓商) 권영호 인터불고 그룹 회장은 그 흔한 법인카드 한장이 없다. `돈이라는 건 조금 부족한 듯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많은 걸 잃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책은 지치고 힘들 때, 언제나 힘과 지혜를 주는 좋은 친구이자 가족이며, 책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한다.

 

이 책을 통해 꽤 쓸만한 독서목록을 만날 수 있다.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들이 즐겨 읽고, 감동하고, 추천한 책 모음이다. 독자에게 무척 유익한 자료가 될 게다. 를 통해 독자는 가난과 고난을 딛고 최고의 CEO로 우뚝 선 인간미 넘치는 경영자들을 만난다. 조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재벌그룹의 오너들, 돈이라면 친족과의 소송도 불사하고, 혈육의 정까지도 끊어낼 수 있는, 세금을 덜 내기위해 자식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꼼수를 부리는 그런 CEO들과는 인식의 차원이 다르다. 인문정신으로 무장된 사람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는 법이다.

 

한 회사를 책임지는 최고위직에 앉기까지 그네들의 인생에도 위기와 절망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평생 자신이 사랑하는 책을 읽어왔고 독창적인 서재를 꾸렸다. 기업가로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이자 작가 씨킴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주)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은 더이상 기업가가 아닌 예술가로 불러줘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다. 경영의 정점에서 예술가로 전직한 그를 통해, 경영이 예술과 합일되는 경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게 바로 책이 가진 힘이자 위력이다.

 

"보통 사람들도 Good은 쉽게 도달한다. 하지만 Best는 남이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일 때 도달할 수 있다. 그런 포용력을 가지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 " p. 311 김창일의 서재

 

 

 

 

 

 



                                                             20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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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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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잘해야 외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中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이상 쓸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작가는 절망한다. 쓸 이야기를 한아름 안고 죽어야 하는 것,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한 것만큼 작가를 허탈하게 하는 것은 없다. 끊임없이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 창작의 고통과 글쓰기의 외로움을 숙명인냥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작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창작의 고통이 정점에 다다르자, 그 실망과 허무의 절정에서 입에 문 장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전쟁을 비롯한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가 몸소 체험한 소재들을 그는 장편과 단편에 담아 발표했다. 정영목의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단편집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독자가 만나는 것은 헤밍웨이의 단편 속 인물들이지만, 그 인물들은 헤밍웨이와 닮거나 어쩌면 헤밍웨이 그 자신이란 느낌을 받는다. 소설이란 장르에 담기지 않고 이야기의 비약만 제거한다면, 그 이야기 모두는 작가의 과거이자 현재였고 또 가까운 그의 미래였다. 아프리카 사냥 여행, 낚시, 전쟁터의 경험, 작가수업, 사랑했던 여인, 이별, 어린시절 아버지와 보낸 기억들 그리고 자살에의 충동을 담고 있는 이야기는 날것으로의 그의 삶이었다.

 

<킬리만자로의 눈> 첫 장은 무척 인상깊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 해발 고도 5895m, 그 서쪽 봉우리를 마사이족 사람들은 응가예 응가이, 즉 `신의 집'이라 불렀다. 기이한 것은 그 서쪽 봉우리 근처에 얼어서 말라붙은 표범 사체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사실일테다. 이어지는 문장은 헤밍웨이의 절박한 의혹이자 물음이다. " 이 표범이 무엇을 찾아 그 높은 곳까지 왔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

 

작가 해리는 새롭게 사귄 애인과 아프리카 사냥여행을 왔다 가시에 다리를 긁혀 한쪽 다리가 썩어가고 있다. 죽음이 평원의 야수처럼 그 주위를 맴도는 지금 새롭고 진귀한 경험들을 쌓기 위해, 전쟁터와 이국을 떠돌았던 과거가 스친다. 이제 돈많은 여인을 사귀었고 소설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는 머릿속 가득하다. 하지만, 이제 어쩌면 죽어야 하는데 그건 가정이 아니라 시시각각 현실처럼 다가온다. 곁의 애인은 해리를 위로하고 희망을 주려하지만 해리는 비행기가 그를 구조하러 올 것이라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랑하고 열망하던 이 지상에서 죽음은 아직 해리의 몫이 아니라고 믿었다. 소설은 해리의 죽음을 킬리만자로의 눈밭에서 얼어죽은 표범과 대치시킨다. 그 둘의 공통점은 야망과 회한을 품고 고독과 대면한 채 외로이 사라졌다는 것일까?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이 지금 죽음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은 빠르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물이나 바람처럼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악취를 풍기는 공허처럼 들이닥쳤다. 묘한 것은 하이에나가 그 공허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볍게 미끄러지듯 달려갔다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p.32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에서 머콤버의 죽음은 행복과 비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돈많은 갑부인데다 잘빠진 몸매, 아름다운 아내를 소유한 남자다운 남자. 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 사냥을 온 그는 직업사냥꾼 윌슨과 사냥을 하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사자에 놀라 도망치는 겁쟁이로 전락한다. 더불어, 아내는 윌슨과 바람을 피우고 머콤버의 자존감은 끝없이 추락할 시점, 다시 물소 사냥을 하며 되찾은 용기와 삶에의 자신감이 그를 구원한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눈을 멀게 하는 백열의 빛이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것을 느끼며"(p.119) 머콤버는 최후를 맞는다. 빗나간 아내의 총알에 희생된 그의 생이 이 소설의 제목처럼 짧지만 행복한걸까? 남겨진 이들이 머콤버의 주검앞에서 던지는 `할 일이 지랄맞게 많다'는 푸념은 뭇 독자의 서글픔을 자아낸다.

 

가장 인상깊은 단편은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이란 작품이다. 마치 헤밍웨이 노년시절의 허무와 절망을 그리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하지만, 젊은 시절인 스페인 내란 취재를 위해 그곳에 머문 시기에 집필되었다. 돈 많은 여든 노인은 자주 `깨끗하고 불이 환한' 카페를 밤늦에 홀로 찾는다. 사람들은 늦은 시간이라 모두 카페를 떠나고 종업원들도 일을 접고 문을 닫아야 할 시간, 귀가 먼 노인은 밤새 앉아 새벽 3시까지 `브랜디 한 잔 더'를 외칠 뿐이다. 노인은 지난주에도 자살을 하려다 실패했다. 귀머거리 노인을 앞에 두고 두 명의 젊은 종업원이 나누는 대화는 평범하지만 그 대화가운데 독자는 사뭇 우리네 삶이 외로움과 허무로 가득들어차 있다는 진실과 대면케 된다.

 

"지난주에 저 노인네가 자살을 하려고 했어." 한 웨이터가 말했다.

"왜요?"

"절망에 빠졌거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없었어."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p.125-126

 

그 외의 작품은 "닉 애덤스 이야기"로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과 생애를 짧게 스케치하고 있는 단편들이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몇 해에 걸친 일상을 사실적인 필체와 다른 제목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모두 닉 애덤스가 주인공이며 그 이야기의 흐름은 어린 시절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겪은 일부터 작가지망생으로 살았던 시절, 전장의 포화와 사랑이야기, 실연의 아픔과 낚시와 캠핑을 즐기던 날들의 구체적 묘사가 주를 이룬다. 10여 편의 작품들은 소설이지만 전기로 읽혀도 충분히 독해될 수 있으며,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과 그가 겪은 생의 주요한 사건들을 파악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장편으로 성공한 작가지만, 단편들은 그의 경험과 일상을 더 가까이 바라보게 해주고 있다.

 

"좋은 글은 진실한 글이다. 누군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그 이야기의 진실성은 작가가 지닌 삶에 대한 지식의 양과 진지함의 정도에 비례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작가의 가장 중요한 미덕을 경험과 지식에 두었다. 그는 작가론을 쓰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에 발표한 글속에서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대상에 대해 철저히 알아야만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소설들이 하나같이 상상력 이전에 경험을 2차 가공한 것에서 시작됨은 이 단편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그는 소재를 찾아 위험한 전쟁터를 누볐고 아프리카의 야생을 찾아 맹수 사냥같은 독특한 경험을 하기에 이른다.

 

그의 단편들을 읽으며 전해오는 감동은 `실제'에 바탕을 두고 있는 셈이다. 킬리만자로의 초원에서 죽음에 다다른 해리와 사자와 맞닥뜨린 절정의 순간을 묘사하는 머콤버의 절박함은, 온전히 헤밍웨이의 것이다. 자살시도에 실패하고 쓸쓸히 새벽 3시까지 브랜디를 홀짝이는 노인네는 공교롭게 젊은 시절 상상한 그의 실제 `미래'였다. 그러니 그의 삶과 문학에는 조금의 간극도 없다. 이 진실성은 그가 생을 과대포장하고, 거짓 희망을 쫓아 인위적인 교훈을 작품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은 이유다.

 

뭇 독자들은 그의 작품속에서 희망과 기쁨이 거세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허무와 절망, 그것이 삶에서 그가 끌어낸 온전한 진실이라면 어떨까? 희망을 구현하지 못해도 패배와 실패 가운데 생의 진실들을 포착해낸 문학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201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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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2-06-1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츠비님 리뷰 덕분에 헤밍웨이에게 한발짝 다가간 느낌이에요. 고맙습니다.

개츠비 2012-06-20 11: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들에 관심을 두게 한 작품집이었답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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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남짓 나이에 나는 마흔 이후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십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리면 민초희, 라는 아이 하나가 기억에 되살아난다.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편지를 보내 유명해졌던 아이. 이후 17살 소녀에 대한 스토리는 영화화 되었고, 그가 라디오 DJ에게 보낸 편지들은 책으로 묶여졌다.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것은 그가 17살 소녀라는 것과 소박한 바람이 깃든 말 때문이었다.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나는, 그 시절의 청취자들은, 소녀가 그토록 바라던 스무살을 한참은 넘어 살아왔다. 그 시절 우리 생을 되돌아보기에 충분했던 소녀의 바람은 지금 허공속 메아리처럼 사라지고 없다. 우리는 낯뜨겁게도 소녀가 바라던 나이를 두배,세배 먹어버렸다. 누군가의 간절한 희망이 누군가에겐 그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기회이자 시간일 뿐이다. 누구나 이 지상에서 정해진 시간을 보내고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17살 생애는 인생을 경험하기엔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 공평한 시간을 경험할 기회조차 박탈해 버렸으니까.

 

김애란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 등장하는 주인공 17살의 조로증 환자 `한아름'은 내 기억속에 잠들어 있던 17살 민초희의 꿈을 되살려냈다. 작가가 어떤 경로로 모티브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17살 불치병 환자와 그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엔 여러모로 슬픔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화려하게 꽃 피울 시간에 이미 시들해져 버린 자신의 육체를 바라봐야 하는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작가는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해 17살 사춘기 소년과 조로증 환자의 심리와 행태 모두를 완벽히 체현해 낸다.

 

"그뒤로도 어머니는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가며 어쩔 줄 몰라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내 몸은 자꾸 자라났다. 주위에선 쉴새없이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었다. 그러고 지하 벙커에서 모스부호 해독에 열중하는 병사처럼 내 주위를 감싸는 그 `떨림'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리고 암호는 다음과 같았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p.31

 

소설은 조로증에 걸려 17살에 80노구의 몸을 가진 고등학생 남자 아이의 눈을 통해, 똑같이 17의 나이에 자신을 잉태한 부모의 삶을 되짚는 수고를 담는다. 이 근원에 대한 탐구는 아픈 몸에 대한 원망에 가닿지 않고, 부모의 가난과 탈선에 대한 비난을 섞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의 생 한 가운데 자신의 존재가 자리하게 된 시간으로 거슬러가서, 온전한 삶에 대한 욕망과 부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놓는다. 이 욕망과 애정엔 다른 의도가 없다. 17살 사춘기 남자 아이라면 더불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바람을 갖고 있는거니까.

 

아버지 "대수"는 태권도 특기생으로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부당판정에 항의해 심판에게 소란을 피우다 정학을 당한다. 엄마 "미라"는 성악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꿈을 이룰 길이 막히자 가출을 결심한다. 그리고 대수와 미라는 `아름'을 잉태하고 고달픈 어른의 세계에 진입해 버렸다. 그것은 사춘기의 몸으로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이들이 한 생명을 책임지는 그것. 그 과정을 이제 여든 같은 열일곱 아들, 아름이 부모의 기억속에서 끄집어낸 언어들을 유추해 한 편의 소설로 완성해 나간다. 그것은 아름이 부모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이자 최초이자 최후의 선물같은 것이다.

 

17살, 하지만 신체나이는 80살. 육체의 모든 기관이 쇠락해 간다. 하루만큼 늙는 것이 눈에 보이고, 나빠지는 몸이 제 기능을 상실해간다. 아름을 절망으로 내모는 것은 정신은 말짱히 17살이라는 것 아닐까? 사춘기의 모든 욕망이 살아있지만, 몸은 이미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상황에서, 아름은 부모에게 선물할 아름다운 글을 짓는 것이다. `두근두근 그 여름'이란 산문은 소설 속 에필로그의 너머에 자리한다. 아름이 최선을 다해 고르고 선택한 지우고 다시 쓴 문장들로 구성된, 산문은 온전히 아버지와 엄마의 17살 그 해, 그 계절, 그 녹색의 시간을 닮았다.

 

" `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 김애란, <두근두근 내인생> p.79

 

김애란의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은 장편 분량의 이야깃거리로선 충분치 않다. 그럼에도, 그는 단편소설의 소재를 가지고 장편으로 엮는 마술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구성은 흥미롭지 않지만, 곳곳에 빛나는 감수성과 세심한 필력으로 독자를 울고 웃게 만드는 재주가 남다르다. 독자는 이야기의 색다름과 사건전개의 긴박함보다는 작가의 필력안에 감추어진 넉살좋은 웃음과 인생을 바라보는 나름의 깊이에 탄복한다. 그가 중년의 작가가 아니요, 1980년 태생의 젊은 작가이기에 더욱 그렇다. 소설 속 문장들을 훑어내려가다 놀라운 관찰력과 마치 연륜에서 전이된 듯한 표현들을 만날 땐 멈칫하게 된다.

 

소재의 독특함과 신선한 이야기를 직조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춘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 문장의 기발함과 문체의 유능함만을 가지곤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마음속 깊게 파고드는 여운 같은게 있기 바랐다. 하지만, 이 소설은 소재가 지나치게 평이해서 작가의 특별한 상상력은 이야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분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감탄과 동시에 어떤 한계를 느낀다.

 

다시 20살 전후의 어느 봄날로 기억을 되돌려본다. 황사가 내가 사는 마을을 덮은 봄날 하루, TV에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외국인의 다큐먼테리가 방송되고 있었다. 약 스무 해 전, 스무 살이 된지 얼마 되지 않던 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이후 오래도록 그 외국인의 앙상한 몸과 초췌한 표정과 그 연약한 육체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시한부 생으로서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힘겨운 언어로 구술하던 그 목소리. 이제 막 20살을 넘어 어른의 세계에 들어선 그 시절 인생이 누군가에겐 감당키 어려운 비극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문득 알아채 버린건 아니었을까?

 

이 소설 속 17살 소년 아름은 남보다 4배는 빨리 인생을 압축해 살아낸다. 하지만, 17살에 깨달은 것을 80 나이에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17살을 넘어 스무살을 살고 싶어했던 민초희나 이 소설 속 아름의 소망을 대신해, 우리는 지상에서의 스무해을 넘고 서른해를 넘겼다. 그네들 인생의 배를 살고도 우리 삶은 그들이 보냈던 열일곱해 보다 성숙하기나 한건지 알 길 없다. 뜻하지 않은 병과 육체의 고통이 그들의 생을 여물게 했다면 그러한 고통을 겪지 못해 여전히 어른에 이르지 못한 아이같은 어른들의 삶은 행운일까? 불운일까?

 

 

20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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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꼭 한 번은 들어야 할 명강 - 불확실한 시대, 지성에게 길을 묻다
송호근.유홍준.정재승 외 지음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신동아> 창간 80 주년을 기념해 이 잡지는 자축행사의 일환으로 지식인 강연회를 개최한다. 2011년 한 해 동안 12명의 강사를 초청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이 기획은 우여곡절 끝에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1월부터 한 번씩 기획된 강연은 5월에서야 시작되었다. 그리고 12월까지 강연회는 비교적 성황리에 지속된다. 기념이 되는 해를 넘기지 않겠다는 <신동아> 측의 의지로 강연은 8회에서 종결된다. 이곳에 초청된 강연자는 우리 시대의 지식인 8인이었다. 웬만한 독자라면 이들의 이름은 눈에 익을 것이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의 저자이자 문화재청장을 했던 분이고, 정재승은 활발한 저술,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카이스트 교수이자 과학자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통섭>이란 저서가 가장 유명한 분이고, 김지하는 유신과 싸운 전설적인 시인이자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사위다.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학계와 역사문제를 갖고 피튀기는 논쟁을 이어오신 재야의 역사학자이며, 도정일은 시인이자 유명한 인문학자다. 그외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문정인 연세대 교수 정도가 내겐 익숙지 않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분들도 신문지상에서 몇 번 칼럼을 읽은적은 있다.

 

이 책은 음악앨범으로 치자면 당대의 히트곡만 엄선해 놓은 컴필레이션 앨범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유명 지식인의 강연을 선별해 묶어 놓았으니 말이다. 컴필레이션 앨범이 한장으로 좋은 곡들을 들을 수 있는 점에선 좋지만, 아티스트와 앨범의 분위기가 잘 파악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이 책도 지식인 8인의 알곡진 강연 내용을 수록했지만, 그닥 깊이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자신들이 일평생 쌓아온 지식과 내공을 한 편의 강연에서 쏟아내는 열정과 압축된 메세지의 강렬함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지식인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으로서 한계와 지식인의 시대적 역할에 대해 독자들이 고민할 거리를 주는 책이기도 하다.

 

시인 김지하의 강연은 그 깊이와 열정면에서 단연 앞섰지만, 대중과의 소통에 문제점을 드러내 놓는다. 그는 인류 최고의 도덕률로서 모심(母心)의 실천을 들고나온다. 그는 "살림(生)의 힘은 모심에 있고, 모심(섬김,존경)만이 우리 시대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주제문으로 놓고 그는 우리 나라의 산새에 대한 풍수지리를 해설하고, 각 나라의 철학자의 이론을 검토하고, 종교와 사상을 넘나들며 설명을 이어가는데 좀체 책으로 옮겨 놓아도 강연의 진의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이런 강의를 현장에서 듣는 청중이 과연 김지하의 강연을 얼마나 이해하고 자리를 비웠는지 알 길 없다. 내용의 깊이를 떠나서 어떻게 보면 현학적이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횡설수설 같기도 한 그의 강연은 실망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일까? 김지하는 아내의 말을 강연 말미에 인용하며 머쓱해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내가 `만날 민중,민중 하면서 여성이나 아기들, 또 쓸쓸한 사람들 그 누구더러 들으라고 주역이니 정역이니 산알이니 그 어려운 얘기를 혼자서 즐기느냐?'고 말했기 때문에 벌컥 화부터 냈다." p.150 김지하 편 <명강>

 

가장 쉽고 인상깊은 강의는 재야 역사학자 이덕일 소장의 강연이다. 그는 <조선 후기 정치사의 현재적 의의>를 주제문으로 놓고 `노론 사관과 일제 식민 사관에서 벗어나는 정신적 과거 청산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주장을 쉽고 풍부한 해설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풀어낸다. 서울대를 비롯한 학계와 조선후기사에 대한 논쟁을 이어온 그는 이 강연에서 인조반정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무엇이며 독자가 어떤 역사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공식적인 역사교육이 지나치고 무시한 관점을 끌고와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인조반정을 정권에서 소외된 서인들이 일으킨 쿠테타로 정의한다. 광해군의 중립 정책을 바꿔 강대해지는 후금(청)을 적대시 함으로써 우리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불러온 책임이 있음을 질책한다. 충과 효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온 유학자들이 왕을 내친 건, 왕 자체를 자신들과 같은 사대부로 여기고 소중화(小中華), 즉 우리는 작은 중국인이기에 중국 왕(명나라 황제)를 섬겨야 한다는 사대 사상에 노론 사대부들이 빠져있었음을 해설한다. 그의 강연은 곧 그가 집필한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강연의 완성도가 불러온 힘이다.

 

"이인직은 이완용의 비서입니다. (중략...) 이인직이 고마쓰를 찾아가서 `우리는 중국을 섬겨 왔는데 이제 일본으로 바꾸는 것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정확한 노론의 당론입니다. 그런데 국어 교과서에서는 이인직을 <혈의 누>를 쓴 선각자로 가르쳐 왔지 않습니까? 이 상태에서 대한민국이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혈의 누> 내용이 뭔지 아세요? 청일 전쟁 때 청나라 군사가 조선 처녀를 겁탈하려는 것을 일본군이 구해 준다는 내용이에요." p.217-218 이덕일 편 <명강>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강연 <대학문국의 꿈과 지식의 통섭>에서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지식의 통섭을 통해 나만의 영역을 넓혀라'고 조언한다. 그는 대학시절 학문의 벽을 넘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를 줄곧 연구하고, 공부해 왔다. 생물학자인 그가 인문학에도 정통한 것은 대학시절부터 학문간 통섭을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다. 가장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학자라는 걸 그의 강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원과 인구가 부족한 대한민국이 흥하는 길은 오직 학문 뿐이며, 정부가 이곳저곳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교육과 학문에 투자하면 절대로 굶어죽을 일은 없다, 고 주장한다. 그가 꿈꾸는 나라는 대학문국(大學問國)이다.

 

최재천 교수는 강의 말미에 독자에게 살과 피가 될만한 말을 남긴다. 우리 시대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자가 하는 말이라서 쉽게 넘길 수 없다. 그는 세상 모든 일의 종국에 반드시 글쓰기가 있고, 글쓰기로 모든게 판가름 나더라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고 전한다. 대학교수는 논문을 써야 하고 똑같은 데이터를 갖고 누가 설득력 있게 써 내느냐에 따라 최고의 저널에 실리느냐 못 실리느냐가 결정된다. 회사에 가면 기안을 한다. 원 페이지 프로포절, 한 페이지에 누가 설득력있게 기안을 했느냐가 업무의 성패를 가른다. 즉, 누가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으냐가 아니라 그 지식을 갖고 짜임새 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가, 지식인으로서 필수적 관건이라는 말이다. 더불어, 그는 독서가 취미가 아닌 일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게 독서라고 말한다.

 

"모든 게 글쓰기입니다. 끝에 가면 나는 책은 안 읽는데 글은 잘 쓴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역시 많이 읽은 사람이 잘 씁니다. 결국은 흉내 내는 거니까요. 어디서 오겠습니까? 다 읽은 것에서, 그게 제 안에서 녹았다가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풍부한 책 읽기가 좋은 글쓰기의 전제 조건입니다." p.128 최재천 편 <명강>

 

지식인은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실천력과 현실판단력이 없다면 지식은 쓸모없는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의 양과 배움의 정도로 지식인을 판가름 한다면, 곡필아세와 권언유착에 여념이 없는 언론인들은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들이 파는 지식은 지금 불량품이질 않는가? 불량품을 팔고 돌아다니는 상인을 우리는 잡상인이라 부른다. 잡상인은 팔고 도망치기라도 한다. 하지만, 그네들은 불량 지식을 파는 상점을 차렸다. 더불어 지식인은 또 동시대의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현학적 언어가 아니라 대중앞에 나설 때는 언제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만 알아먹는 언어로 유창하게 떠들어댄다면, 그는 지식인이 아니라 자폐와 정신분열을 의심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우리 시대 대표 지식인 8명을 만날 수 있다. 모두 각 분야를 이끌고 있는 역량과 실력이 충분한 분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만 능통해 시야가 좁은 지식인도 있다. 자신만의 언어로 대중과 소통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지식인도 있다. 사회적이자 정치적인 발언에 서슴없는 용기를 보여줘야 할 위치에 있건만, 말을 무척 아끼는 소극적인 지식인도 있다. 나의 생각에 지식인은 통섭에 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지식인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 정통하지만, 한 시대의 정치와 사회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절름발이 지식인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소설가 조지오웰은 모든 지식인의 사표가 될 만 한 인물이다. 조지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에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 되었을 때였다."

 

이 책을 통해 한 시대의 지식인이 어떤 자세로 글을 쓰고 발언을 해야 하는지 독자는 어떤 암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존경받아야 할 지식인상인지 독자 스스로 읽고 판단해 보는 것도 한가지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지식인이 부족한게 아니라, 넘쳐나서 문제이며 그 많은 지식인 가운데 제대로 된 지식인이 없어서 나라가 곤궁에 처했다. 곡학아세와 권언유착에 능통한 지식인들이 주류가 되어, 국민을 속이고 나라를 어지럽힌다. 한말 나라가 망할 때 이인직 같은 당대 대표 지식인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같은 세도가의 비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일신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나라를 함께 팔아치웠을 뿐이다. 지식인의 존재 이유를 되물어봐야 할 역사다.

 

모름지기 대학교육이란 궁극적으로 교양인의 양성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거대한 취업기지로 변한 대학이라 그 말도 퇴색된지 오래겠지만, 원래 대학을 나온다는 것은 교양인이 되는 일이다. 교양인은 일평생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섭취하고 소화하는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 가운데 판단력, 즉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가치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된다. 교양인은 죽는날까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인게다. 한 나라에 이러한 교양인이 많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결국, 정치인이 국민을 쉽게 속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 권언유착(權言癒着:권력과 언론이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결합하여 있음), 곡학아세(曲學阿世:학문을 굽히어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가 불가능한 나라, 그게 바로 현실세계에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20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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