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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스무 살 남짓 나이에 나는 마흔 이후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십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리면 민초희, 라는 아이 하나가 기억에 되살아난다.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편지를 보내 유명해졌던 아이. 이후 17살 소녀에 대한 스토리는 영화화 되었고, 그가 라디오 DJ에게 보낸 편지들은 책으로 묶여졌다.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것은 그가 17살 소녀라는 것과 소박한 바람이 깃든 말 때문이었다.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나는, 그 시절의 청취자들은, 소녀가 그토록 바라던 스무살을 한참은 넘어 살아왔다. 그 시절 우리 생을 되돌아보기에 충분했던 소녀의 바람은 지금 허공속 메아리처럼 사라지고 없다. 우리는 낯뜨겁게도 소녀가 바라던 나이를 두배,세배 먹어버렸다. 누군가의 간절한 희망이 누군가에겐 그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기회이자 시간일 뿐이다. 누구나 이 지상에서 정해진 시간을 보내고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17살 생애는 인생을 경험하기엔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 공평한 시간을 경험할 기회조차 박탈해 버렸으니까.
김애란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 등장하는 주인공 17살의 조로증 환자 `한아름'은 내 기억속에 잠들어 있던 17살 민초희의 꿈을 되살려냈다. 작가가 어떤 경로로 모티브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17살 불치병 환자와 그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엔 여러모로 슬픔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화려하게 꽃 피울 시간에 이미 시들해져 버린 자신의 육체를 바라봐야 하는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작가는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해 17살 사춘기 소년과 조로증 환자의 심리와 행태 모두를 완벽히 체현해 낸다.
"그뒤로도 어머니는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가며 어쩔 줄 몰라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내 몸은 자꾸 자라났다. 주위에선 쉴새없이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었다. 그러고 지하 벙커에서 모스부호 해독에 열중하는 병사처럼 내 주위를 감싸는 그 `떨림'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리고 암호는 다음과 같았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p.31
소설은 조로증에 걸려 17살에 80노구의 몸을 가진 고등학생 남자 아이의 눈을 통해, 똑같이 17의 나이에 자신을 잉태한 부모의 삶을 되짚는 수고를 담는다. 이 근원에 대한 탐구는 아픈 몸에 대한 원망에 가닿지 않고, 부모의 가난과 탈선에 대한 비난을 섞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의 생 한 가운데 자신의 존재가 자리하게 된 시간으로 거슬러가서, 온전한 삶에 대한 욕망과 부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놓는다. 이 욕망과 애정엔 다른 의도가 없다. 17살 사춘기 남자 아이라면 더불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바람을 갖고 있는거니까.
아버지 "대수"는 태권도 특기생으로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부당판정에 항의해 심판에게 소란을 피우다 정학을 당한다. 엄마 "미라"는 성악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꿈을 이룰 길이 막히자 가출을 결심한다. 그리고 대수와 미라는 `아름'을 잉태하고 고달픈 어른의 세계에 진입해 버렸다. 그것은 사춘기의 몸으로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이들이 한 생명을 책임지는 그것. 그 과정을 이제 여든 같은 열일곱 아들, 아름이 부모의 기억속에서 끄집어낸 언어들을 유추해 한 편의 소설로 완성해 나간다. 그것은 아름이 부모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이자 최초이자 최후의 선물같은 것이다.
17살, 하지만 신체나이는 80살. 육체의 모든 기관이 쇠락해 간다. 하루만큼 늙는 것이 눈에 보이고, 나빠지는 몸이 제 기능을 상실해간다. 아름을 절망으로 내모는 것은 정신은 말짱히 17살이라는 것 아닐까? 사춘기의 모든 욕망이 살아있지만, 몸은 이미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상황에서, 아름은 부모에게 선물할 아름다운 글을 짓는 것이다. `두근두근 그 여름'이란 산문은 소설 속 에필로그의 너머에 자리한다. 아름이 최선을 다해 고르고 선택한 지우고 다시 쓴 문장들로 구성된, 산문은 온전히 아버지와 엄마의 17살 그 해, 그 계절, 그 녹색의 시간을 닮았다.
" `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 김애란, <두근두근 내인생> p.79
김애란의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은 장편 분량의 이야깃거리로선 충분치 않다. 그럼에도, 그는 단편소설의 소재를 가지고 장편으로 엮는 마술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구성은 흥미롭지 않지만, 곳곳에 빛나는 감수성과 세심한 필력으로 독자를 울고 웃게 만드는 재주가 남다르다. 독자는 이야기의 색다름과 사건전개의 긴박함보다는 작가의 필력안에 감추어진 넉살좋은 웃음과 인생을 바라보는 나름의 깊이에 탄복한다. 그가 중년의 작가가 아니요, 1980년 태생의 젊은 작가이기에 더욱 그렇다. 소설 속 문장들을 훑어내려가다 놀라운 관찰력과 마치 연륜에서 전이된 듯한 표현들을 만날 땐 멈칫하게 된다.
소재의 독특함과 신선한 이야기를 직조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춘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 문장의 기발함과 문체의 유능함만을 가지곤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마음속 깊게 파고드는 여운 같은게 있기 바랐다. 하지만, 이 소설은 소재가 지나치게 평이해서 작가의 특별한 상상력은 이야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분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감탄과 동시에 어떤 한계를 느낀다.
다시 20살 전후의 어느 봄날로 기억을 되돌려본다. 황사가 내가 사는 마을을 덮은 봄날 하루, TV에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외국인의 다큐먼테리가 방송되고 있었다. 약 스무 해 전, 스무 살이 된지 얼마 되지 않던 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이후 오래도록 그 외국인의 앙상한 몸과 초췌한 표정과 그 연약한 육체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시한부 생으로서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힘겨운 언어로 구술하던 그 목소리. 이제 막 20살을 넘어 어른의 세계에 들어선 그 시절 인생이 누군가에겐 감당키 어려운 비극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문득 알아채 버린건 아니었을까?
이 소설 속 17살 소년 아름은 남보다 4배는 빨리 인생을 압축해 살아낸다. 하지만, 17살에 깨달은 것을 80 나이에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17살을 넘어 스무살을 살고 싶어했던 민초희나 이 소설 속 아름의 소망을 대신해, 우리는 지상에서의 스무해을 넘고 서른해를 넘겼다. 그네들 인생의 배를 살고도 우리 삶은 그들이 보냈던 열일곱해 보다 성숙하기나 한건지 알 길 없다. 뜻하지 않은 병과 육체의 고통이 그들의 생을 여물게 했다면 그러한 고통을 겪지 못해 여전히 어른에 이르지 못한 아이같은 어른들의 삶은 행운일까? 불운일까?

201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