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쓰는 일은 잘해야 외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中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이상 쓸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작가는 절망한다. 쓸 이야기를 한아름 안고 죽어야 하는 것,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한 것만큼 작가를 허탈하게 하는 것은 없다. 끊임없이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 창작의 고통과 글쓰기의 외로움을 숙명인냥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작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창작의 고통이 정점에 다다르자, 그 실망과 허무의 절정에서 입에 문 장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전쟁을 비롯한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가 몸소 체험한 소재들을 그는 장편과 단편에 담아 발표했다. 정영목의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단편집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독자가 만나는 것은 헤밍웨이의 단편 속 인물들이지만, 그 인물들은 헤밍웨이와 닮거나 어쩌면 헤밍웨이 그 자신이란 느낌을 받는다. 소설이란 장르에 담기지 않고 이야기의 비약만 제거한다면, 그 이야기 모두는 작가의 과거이자 현재였고 또 가까운 그의 미래였다. 아프리카 사냥 여행, 낚시, 전쟁터의 경험, 작가수업, 사랑했던 여인, 이별, 어린시절 아버지와 보낸 기억들 그리고 자살에의 충동을 담고 있는 이야기는 날것으로의 그의 삶이었다.

 

<킬리만자로의 눈> 첫 장은 무척 인상깊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 해발 고도 5895m, 그 서쪽 봉우리를 마사이족 사람들은 응가예 응가이, 즉 `신의 집'이라 불렀다. 기이한 것은 그 서쪽 봉우리 근처에 얼어서 말라붙은 표범 사체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사실일테다. 이어지는 문장은 헤밍웨이의 절박한 의혹이자 물음이다. " 이 표범이 무엇을 찾아 그 높은 곳까지 왔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

 

작가 해리는 새롭게 사귄 애인과 아프리카 사냥여행을 왔다 가시에 다리를 긁혀 한쪽 다리가 썩어가고 있다. 죽음이 평원의 야수처럼 그 주위를 맴도는 지금 새롭고 진귀한 경험들을 쌓기 위해, 전쟁터와 이국을 떠돌았던 과거가 스친다. 이제 돈많은 여인을 사귀었고 소설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는 머릿속 가득하다. 하지만, 이제 어쩌면 죽어야 하는데 그건 가정이 아니라 시시각각 현실처럼 다가온다. 곁의 애인은 해리를 위로하고 희망을 주려하지만 해리는 비행기가 그를 구조하러 올 것이라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랑하고 열망하던 이 지상에서 죽음은 아직 해리의 몫이 아니라고 믿었다. 소설은 해리의 죽음을 킬리만자로의 눈밭에서 얼어죽은 표범과 대치시킨다. 그 둘의 공통점은 야망과 회한을 품고 고독과 대면한 채 외로이 사라졌다는 것일까?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이 지금 죽음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은 빠르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물이나 바람처럼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악취를 풍기는 공허처럼 들이닥쳤다. 묘한 것은 하이에나가 그 공허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볍게 미끄러지듯 달려갔다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p.32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에서 머콤버의 죽음은 행복과 비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돈많은 갑부인데다 잘빠진 몸매, 아름다운 아내를 소유한 남자다운 남자. 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 사냥을 온 그는 직업사냥꾼 윌슨과 사냥을 하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사자에 놀라 도망치는 겁쟁이로 전락한다. 더불어, 아내는 윌슨과 바람을 피우고 머콤버의 자존감은 끝없이 추락할 시점, 다시 물소 사냥을 하며 되찾은 용기와 삶에의 자신감이 그를 구원한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눈을 멀게 하는 백열의 빛이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것을 느끼며"(p.119) 머콤버는 최후를 맞는다. 빗나간 아내의 총알에 희생된 그의 생이 이 소설의 제목처럼 짧지만 행복한걸까? 남겨진 이들이 머콤버의 주검앞에서 던지는 `할 일이 지랄맞게 많다'는 푸념은 뭇 독자의 서글픔을 자아낸다.

 

가장 인상깊은 단편은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이란 작품이다. 마치 헤밍웨이 노년시절의 허무와 절망을 그리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하지만, 젊은 시절인 스페인 내란 취재를 위해 그곳에 머문 시기에 집필되었다. 돈 많은 여든 노인은 자주 `깨끗하고 불이 환한' 카페를 밤늦에 홀로 찾는다. 사람들은 늦은 시간이라 모두 카페를 떠나고 종업원들도 일을 접고 문을 닫아야 할 시간, 귀가 먼 노인은 밤새 앉아 새벽 3시까지 `브랜디 한 잔 더'를 외칠 뿐이다. 노인은 지난주에도 자살을 하려다 실패했다. 귀머거리 노인을 앞에 두고 두 명의 젊은 종업원이 나누는 대화는 평범하지만 그 대화가운데 독자는 사뭇 우리네 삶이 외로움과 허무로 가득들어차 있다는 진실과 대면케 된다.

 

"지난주에 저 노인네가 자살을 하려고 했어." 한 웨이터가 말했다.

"왜요?"

"절망에 빠졌거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없었어."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p.125-126

 

그 외의 작품은 "닉 애덤스 이야기"로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과 생애를 짧게 스케치하고 있는 단편들이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몇 해에 걸친 일상을 사실적인 필체와 다른 제목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모두 닉 애덤스가 주인공이며 그 이야기의 흐름은 어린 시절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겪은 일부터 작가지망생으로 살았던 시절, 전장의 포화와 사랑이야기, 실연의 아픔과 낚시와 캠핑을 즐기던 날들의 구체적 묘사가 주를 이룬다. 10여 편의 작품들은 소설이지만 전기로 읽혀도 충분히 독해될 수 있으며,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과 그가 겪은 생의 주요한 사건들을 파악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장편으로 성공한 작가지만, 단편들은 그의 경험과 일상을 더 가까이 바라보게 해주고 있다.

 

"좋은 글은 진실한 글이다. 누군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그 이야기의 진실성은 작가가 지닌 삶에 대한 지식의 양과 진지함의 정도에 비례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작가의 가장 중요한 미덕을 경험과 지식에 두었다. 그는 작가론을 쓰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에 발표한 글속에서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대상에 대해 철저히 알아야만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소설들이 하나같이 상상력 이전에 경험을 2차 가공한 것에서 시작됨은 이 단편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그는 소재를 찾아 위험한 전쟁터를 누볐고 아프리카의 야생을 찾아 맹수 사냥같은 독특한 경험을 하기에 이른다.

 

그의 단편들을 읽으며 전해오는 감동은 `실제'에 바탕을 두고 있는 셈이다. 킬리만자로의 초원에서 죽음에 다다른 해리와 사자와 맞닥뜨린 절정의 순간을 묘사하는 머콤버의 절박함은, 온전히 헤밍웨이의 것이다. 자살시도에 실패하고 쓸쓸히 새벽 3시까지 브랜디를 홀짝이는 노인네는 공교롭게 젊은 시절 상상한 그의 실제 `미래'였다. 그러니 그의 삶과 문학에는 조금의 간극도 없다. 이 진실성은 그가 생을 과대포장하고, 거짓 희망을 쫓아 인위적인 교훈을 작품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은 이유다.

 

뭇 독자들은 그의 작품속에서 희망과 기쁨이 거세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허무와 절망, 그것이 삶에서 그가 끌어낸 온전한 진실이라면 어떨까? 희망을 구현하지 못해도 패배와 실패 가운데 생의 진실들을 포착해낸 문학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2012.6.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2-06-1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츠비님 리뷰 덕분에 헤밍웨이에게 한발짝 다가간 느낌이에요. 고맙습니다.

개츠비 2012-06-20 11: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들에 관심을 두게 한 작품집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