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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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유시민에 대해 생각보다 내가 아는게 없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에 대해서도 그렇다. 난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특별히 좋고 싫음의 감정이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끌리는 일은 아니다. 그간 정치인으로 살 때 나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는 시민에 불과했고, 가끔 그가 책을 냈을 땐 책을 사 놓고서 읽어보지 않은 비자발적 독자였다. 그런데 최근 그가 10여년 간 생활의 터전으로 삼던 정치와 정치인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후, 다시 책을 냈다. 제목도 간단치 않다. <어떻게 살 것인가>무척 철학적이다. 나이 쉰 다섯에 이르러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자기 고백이다. 삶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 말이다.

 

여러 선거에 나와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난 후 그는 출판사의 도움으로 책을 쓰곤 했다. 또, 책을 내고 다시 정치 일선으로 복귀했다. 그러던 그가 이젠 정치인의 삶을 그만두겠다고 올 초 선언했다. 정치인들의 말이나 책에는 신뢰를 보내지 않는 고질적 습관 때문일까? 그의 정치생활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도, 지금껏 유시민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이유다. 밖에선 그렇게 신망이 높던 사람도 정치인의 옷을 입으면 달라 보인다. 정치의 세계를 진흙탕에 비유하는 것은 선악에 대한 일종의 양비론이라 믿는다. 어찌 훌륭한 정치인이 없겠는가. 어쨌든 이제 그 진흙탕을 그는 스스로 걸어나왔다. 독자들에게 할 말도 많을 듯 했다.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사람이란 내 예감을 믿고 싶다. 여러 궁금증도 일었다. 왜 그는 현실 정치에 실패했는가. 왜 주변 정치인들과 불화했을까. 그리고 대체, 어떻게 살아갈 작정일까.

 

정치인 유시민에 앞서 그를 가장 잘 드러내는 호칭은 아마도 `지식소매상'이란 단어다. 이 호칭을 그는 마음에 들어 한 듯 하다. 하여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찾아 요약하고, 발췌하고, 해석하고, 가공해서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라고 책에서 친절히 풀이해 놓았다. 그가 저자로서 재능을 확인한 건 군사정권 시절의 어느 정보기관 취조실에서 였다. 그는 자술서를 쓰는 순간은 구타 당하지 않았기에, 감금 상태로 항상 자술서를 썼는데 그걸 읽어본 정보기관 요원은 그의 글쓰기에 감탄했단다. 훗날 이 재능 덕에 민주화 운동권 내에서 글을 쓰는 일을 그는 도맡았다. 세월이 흘러 평생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그이지만 언제나 작가라는 자의식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생의 매 순간 글을 써왔던 그는 정치인이 되면서 글 쓰는 일에 변화를 겪는다. 직업정치인이 된 뒤로 글을 쓸 때 항상 자기검열을 거쳐야 했다. 자신이 쓰는 글이 정쟁의 빌미를 주진 않을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유권자의 미움을 사진 않을지, 걱정한 결과다. 그가 사심없이 쓰려 노력했던 근작들 <청춘의 독서>나 <국가란 무엇인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밝힌다.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 모든 자기검열의 습관을 벗어던지고 `글 쓰는 자'의 풍성한 자의식을 갖고 써낸 책이란다. 이 책이 진실한 고백체의 문체를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어린시절과 청춘의 날들, 민주화 운동의 기억, 5.18의 상처, 정치인의 삶, 고뇌와 실패의 순간들을 서술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청년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유시민식 힐링과 바로서기를 조언한다. 그는 서술하는 매순간 철학적 명제들을 끌어온다. 삶의 편린들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 올리다가, 자살에 대해 논했던 카뮈의 문장들을 훑어내기도 한다. 유명 아이돌 가수의 책을 읽고선 성공하는 삶은 `마음이 이끄는 일에 전념하는 가운데 도달'할 수 있다는 교훈을 가져온다. 야권 정치인들의 기득권 정치를 해체하려다 `분열과 갈등의 화신'이란 비난과 인식공격에 시달린 기억을 이야기 할때, 독자는 현실 정치의 높은 장벽 앞에 패배한 한 정치인의 절망감을 감지한다. 책의 처음과 끝은 일관되게 박식과 교양이 넘치는 만연체의 문장들로 가득하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풍부한 지식과 검열을 벗어난 자유와 나름의 인생 철학을 독자와 공유하려 애쓴다.

 

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유시민의 답은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시시때대로 즐기고, 사랑하는 일은 사람들의 인생을 구성하는 세가지 근간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여기에 보태, 이념을 같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을 삶의 방도로 내 놓는다. 정치인으로 살진 않겠지만 정치에 대해 시민으로서 발언은 하겠다는 다짐은 이 연대에 방점을 둔 표현이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유시민이 가장 강조한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결정권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인간은 매순간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선택엔 포기가 따르고 미련을 불러온다. 실패와 성공에 따른 불안감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사라진다.

 

"나는 글쓰기로 되돌아왔다. 정치가 싫다거나,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 때문만은 아니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다. 인생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아서다. 그래서 더 절실한 마음으로 자문해본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이 삶은 훌륭한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가? 오늘 하루의 모든 순간들은 내게 의미가 있었는가? 나는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지금 하는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 내 마음이 이렇게 대답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 글 쓰는 일로 돌아가자. 마음이 설레고 일상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자." 238-239쪽,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은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일, 곧 독자이자 저자로 사는 것이다. 평생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한 나라의 장관에 까지 오른 그가, 쉰 다섯에 정계를 떠나 남은 인생을 독서와 글쓰기에 바치겠다고 한다. `지식소매상으로 살며, 일상의 모든 순간마다 나름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며 살고 후회없이 죽는 일'은 그에겐 다름 아닌 저자가 되는 일이었다. 정치적으로 나는 그가 지향하는 방향을 지지한다. 이 책에 드러난 그의 이념적 성향과도 크게 엇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현실정치를 바꾸는 일에 실패한 정치인이다. 그 원인을 그는 인간관계에서 찾는다. 실패한 정치에 대한 원인이 인간관계라니 뜻밖이다.

 

아무리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옳아도, 그것을 상대에게 납득시키는 일은 신념만으론 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정치를 통해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자기주관이 강한 청년들이 명심할 일이다. 여전히 우리 정치는 그가 10년 전 정계에 입문하던 시절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 하지만, 실패가 자산이 되는 법이다. 우린 유시민을 통해 우리 정치의 한계와 현실을 체감했다. 그의 실패가 진보하는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것이라 믿고 싶다.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다소 난해한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애써 이 책에서 답을 주려 한다. 청년들에게 그의 경험과 지식은 유용하다. 무엇보다 그가 책을 쓰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겠다는 포부를 던져준 것 자체가 의미 있다. 이 메세지가 바로 가르침이자 교훈이다.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감지하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독자들은 갖추어야 한다.

 

알고 속아주는 것과 알지 못하고 속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유시민의 실패는 시민의 실패이고 어쩌면 독자들의 실패일 수 있다. 한 나라가 후진성을 벗지 못하는 것은 교육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독서하고 생각하는 시민들을 양성하지 못하는 사회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기득권에만 천착하는 정치인들에게 휘둘리게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식소매상들이 넘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꿈일까?

 

 

 

 

 

 

 

2013년 7월 5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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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수학 콘서트 - 나의 창의성을 깨우는 두뇌 개발 프로그램
김대수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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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바람이 거세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인문학은 이제 기업 면접장에서까지 측정 지표로 등장했다. 하여, 토익 점수 늘리기에 여념이 없던 취업준비생들은 이제 기업들로부터 새로운 스펙을 요구받는다. 바로,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소양에 관해서다. 그런데, 그런 소양이 일시적 과외와 단기 전략으로 습득될 수 있을까? 몹시 회의적이다. 인문학은 인간 자신의 삶, 문화,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인문학 공부가 폭넓고 오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창의로운 인재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끝없는 수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창의성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오늘날 더 이상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 기계적인 일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체하고 있다. 창의력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가운데 개발된다. 인문학이 창의력에 관계하는 지점도 여기다. 인간을 깊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학문은 통섭에 이르고 창의적 상상력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위대한 기기와 예술품으로 완성된다. 중요한 건 그 모든게 연습과 노력을 통해 개발된다는 점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후천적으로 습득될 수 있다.

 

기초 방정식과 사칙연산, 도형과 다이어그램 등 기초 수학을 통해 창의성을 습득시키는 노하우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창의수학콘서트>(리더스하우스 펴냄,2013년)다. 저자는 한신대 컴퓨터공학부에서 일하며 인공지능, 신경망, 퍼지이론을 국내외 대학에서 수십년간 연구해온 김대수 교수다. 그는 이 책의 도입부에서 수학의 효용성에 대한 독자들의 오랜 의문을 정면돌파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배우는 목적을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수학을 통하여 합리적인 사고력을 배양하고 끈기와 치밀성도 배울 수 있으며,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 등의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수학 공부를 통하여 물리학, 생물학, 공학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인문학 등 타 학문의 학습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33쪽, 김대수 <창의수학콘서트>

 

솔직히 학창시절 수학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대개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대체 그 어렵고 골치아픈 수학문제가 지금 내 삶에 보탬이 되고 있는가? 왜 수학 문제는 늘 쓸데없이 복잡하고 난해했을까? 이러한 질문이 보편성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수학이 그리 달가운 학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했고 수학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분명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저자가 밝혔듯이 수학은 창의력의 질료이자 연습 도구임이 분명하다. 수학은 공학 뿐만 아니라 인문적 사고에도 유용하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데는 수학에서 빌려온 합리성과 규칙성, 추리력, 직관력, 통찰력이 절실하다.

 

이 책에는 창의력을 배양하기 위한 다양한 문제들이 등장한다. 수식과 산술문제, 도형 추리, 숫자퍼즐 등 기발한 문제들의 만찬상이다. 이 문제들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로 풀어낼 수 없다. 문제가 어려운게 아니라 익숙한 규칙으론 풀어낼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를 풀어내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게 이 책의 목적이다. 각 장에는 수학적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인지능력별 연습문제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정독이나 속독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곁에 두고 낱말 퍼즐 맞추듯이 시간 날때마다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보면 연상과 추리 능력, 유추와 이해력, 응용력과 공간능력이 길러지고 결과적으로 창의적 사고력을 습득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스토리 텔링 수학이나 STEAM 교육(융합인재교육)은 수학에 창의성을 접목시킨 새로운 학습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토리텔링 수학은 수학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내,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고 흥미와 호기심, 그리고 논리적 추론력을 통해 창의성 구현에 도움을 준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제시된 STEAM 교육은 과학과 기술, 공학과 수학, 그리고 예술을 합한 과학 기술 기반의 융합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을 배양하는 교육이다. 이 책에는 스토리텔링과 STEAM 교육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된 다양한 문제들이 제공되며 상세한 해설이 뒤따른다. 수학을 싫어하거나 논리와 추론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지적 자극을 줄 수 있을 듯 하다.

 

스티브 잡스는 자서전에서 애플의 DNA 속에는 "인문학과 공학의 교차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그만 알 것이다. 하지만, 대충의 의미를 우린 감지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아무런 기술도 창조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없던 IT 기기들을 우리 앞에 가져다 주었던 혁신가였다. 그의 능력은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재주에 있지 않았다. 대단한 학벌도 재력도 없었다. 대학중퇴 경력에다 그의 양아버지는 자동차 수리공이었다. 하지만, 삶의 처음과 끝이 창의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병까지도 창의적으로 다스리려 했다. 그런 창의적 인재를 지금 세상은 원한다. 창의력이 산업의 혁신을 불러오고 세상의 부를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기업이 기계적 토익풀이를 잘하는 사람보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인재를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창의력을 어떻게 후천적으로 습득할 것인가? 이 책은 그 절절한 고민끝에 나온 한 수학자의 창의력 습득 두뇌 개발 프로그램이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나 수학의 효용성을 의심했던 어른 모두에게, 이 책은 수학적 사고의 흥미로움과 가치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하나하나의 문제를 풀어내면서 성취감과 더불어 숨어있던 수학적 재능도 확인하게 된다.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들에게 이 책은 특히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예시 문제들의 특징이 깊은 사고와 생각의 다양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능력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수학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착각하는 그 많은 어른들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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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 세트 - 전15권 이현세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
이현세 그림, 강주현.전영신.김기정 글, 구학서.정하현 감수 / 녹색지팡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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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글을 깨치는 나이에 이르면 모든 부모들은 한가지 소망을 품는다.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많은 책을 읽히게 할까? 바로 이것이다. 책을 읽고 있는 아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부모의 자랑이자 보람이다. 아이는 책을 통해 세상을 알고, 지식을 쌓고, 미래를 꿈꿀 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소망대로 커가지 않는 법이다. 모든 아이가 책을 좋아할 수 없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와 책을 많이 읽히게 하고 싶은 부모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만화책으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물론 이건 오락용 심심풀이 만화가 아니다. 그건 TV로 충분하다. 역사와 문화를 만화를 통해 풀어낸 책이면 금상첨화다. 만화의 장점은 책이 주는 활자의 답답함을 줄이고, 흥미로운 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야기속에 빠져들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일상 대화체를 사용하는 만화의 형식은 아이들이 읽기에 쉽고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만화는 어린이를 위한 일종의 `독서 당의정'이다. 만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지고 훗날 아이는 활자가 좀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독서를 멀리하는 아이를 독서광으로 만드는 이 `당의정 요법'은 꽤 역사가 깊다.

 

 

 

 

녹색지팡이 출판사에선 어린이를 위한 역사,문화 탐방 시리즈 3편을 최근 완간했다. 유홍준의 그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박재동 화백이 기획,감수하고 만화가 김형배가 그림으로 풀어낸 책이다. 바로 <만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다. 유홍준의 원작처럼 이 어린이를 위한 만화전집도 7권으로 편집됐다. 강원도와 경상남도 상하 편, 경주편과 전라도 상,하편, 그리고 충청도 등 지역별 구성이 돋보인다. 유홍준 교수를 닮은 탐방대장과 아이들을 등장시켜 각 지역의 문화재와 인물, 지역 역사를 훑어낸다. 딱딱한 글로써 풀어낼 수 없는 상세한 그림 지도와 특색있는 지역의 풍광을 잡아내는 작법이 인상적이다. 부모가 유홍준의 이 시리즈를 읽었다면 아이와 대화 소재도 늘어날 것이다. 이 책과 함께 국토를 순례하는 가족여행을 떠나면 그 자체가 교육이자 놀이가 되겠다.

 

 

 

다음으로 한국사와 세계사를 이현세 화백의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전 12권,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전 15권 세트로 완간해 냈다. 한국사는 고대선사 시대와 고조선에서 현대사까지를 다루고 있다. 세계사 전집은 제 1 권 문명의 새벽에서 마지막 15권 세계의 오늘과 내일까지를 주제로 풀어썼다. 이현세의 그림은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의 만화를 읽고 자란 부모세대는 그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보낼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만화가 이현세는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은 그 속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와 앞날을 내다보는 힘을 얻고자 함"이라고 썼다. 더불어 도도히 흐르는 그 역사의 강에서 큰 물줄기를 이해하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한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읽기 쉽고 재밌는 만화 책 수 십권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많은 학생들이 역사와 멀어지고, 역사를 단순한 암기 과목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 이유가 물론 입시와 경쟁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이러한 역사만화를 읽어두는 것만으로도, 훗날 역사를 다시 배울 때 큰 부담감을 줄여줄 것이다. 어린 시절 많은 책을 읽어두어야 하는 이유도 그와 같다. 독서경험과 이력은 결국 학년이 올라가면서 큰 힘을 발휘한다. 배경지식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가 수업을 듣는 태도는 전혀 다르지 않을까? 그 아이가 수업을 통해 섭취할 지식의 양과 질도 다를게 분명하다.

 

이 만화 전집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내 어린 시절 부족했던 독서이력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성인이 되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채워넣을 수 없는, 기억에 의존하는 능력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의 독서와 그것을 통한 지식의 기초를 쌓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교육학에선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독서는 단절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 소개한 이 어린이를 위한 만화 전집은 한국 문화와 역사, 세계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가장 효율적인 기회다. 동시에 이 책은 인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어른들을 위한 만화라고 생각한다. 상세한 사진과 문헌 자료 등이 만화와 함께 제공되며 책의 충실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살인 딸아이가 훗날 글을 깨쳐 이 만화를 읽을 날을 기대한다. 그 전에 먼저 한 두 권씩 시간내 내 자신 먼저 펼쳐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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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커리큘럼 -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길
이계삼 지음 / 한티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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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쓰던 고등학교 교사가 있었다. 많은 칼럼 가운데서도 난 꼭 그의 글을 찾아 읽었다. 정교한 논리,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에 끌렸다. 칼럼의 마지막엔 칼럼리스트의 직명이 나오는데, 이 분의 직명이 얼마 전 바뀌었다. 경남 밀성고 교사에서 `오늘의 교육 편집 위원'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분은 그외 몇 가지 감투를 더 갖고 있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 일꾼, 감물 생태학습관 인문학 교사 겸 사무장. 그는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현직 칼럼리스트이자 `전직' 고교 교사인 이계삼이다. 물론 최근에 펴낸 <청춘의 커리큘럼>이란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교사가 쓰는 책 답게 제목에 커리큘럼 즉 교과과정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그것도 청춘의 교과과정이다. 청춘이란 애매한 지칭어는 또 뭔가? 청춘에겐 특정한 배움이 필요하단 의미일까? 이계삼은 11년간 고향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런 그가 최근 학교에 사표를 냈다. 이제 막 마흔 줄에 들어선 젊은 선생이 말이다. 그 오랜 궁금증은 이 책의 말미에서 풀렸다. `나는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가' 라는 꼭지의 글에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한다. `사기를 좀 그만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325쪽)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은 이 책의 곳곳에 등장한다. "내 경험으로 학교 교육 속에서 아이들에게 받을 수 있는 질문이란 시험 범위 알려 달라는 것밖에 없다" (100쪽) 그는 학교 교육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들을 낮은 사고력과 높은 애국심으로 길러내고 싶어하는 지배자들이라 잘라 말한다. 이 불온한 표현들은 다 뭐란 말인가? 그가 교사를 그만두기 잘했단 생각이 드는가? 학교에서는 절대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이계삼이 학교 교육을 부정하고, 청년들에게 새롭게 가르치고자 한 커리큘럼은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보자.

 

이 책에는 많은 저자들의 책이 소개 돼 있다. 이계삼의 책은 이 책들에 관한 서평과 평론 모음집이다. 평이한 서평이 아닌 또 하나의 사상을 담고 있는 수준높은 글들이다. E.F 슈마허는 생태론적 경제 사상가로 `작은 것의 가치'와 `적정 기술론'을 제창한 지식인이다. 또, <온 삶을 먹다>의 저자 이자, 녹색평론에 글을 싣던 웬델 베리는 미국의 농부다. 그는 43살에 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고향 켄터키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문필 활동을 해왔다. 이들이 한결같이 내세운 건 새로운 경제 모델에 관한 구상이다. 이들 저서에 대한 서평을 통해 저자는 자본집약적 산업화된 농업에 반대하고, 공동체 중심 소농의 삶과 자립 가능한 농촌의 새로운 미래를 상상한다.

 

영화 <매트릭스>에 대한 평론에선 우리 시대 노동 환경을 영화를 빗대 비판한다. 네오가 선택한 트리니티의 빨간약은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20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의 선택으로 풍자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저자 스베틀라나 일렉시예비치의 문장들을 소개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깝다. 원자력에 대한 실상과 공포를 비추는 글 속에서 독자들은 종말의 징후들을 감지한다.

 

" 한 아내가 있다. 남편이 체르노빌에서 트럭으로 모래와 콘크리트를 운반하는 일에 종사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고, 의사의 중절 권유에도 기어코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죽은 채 태어났다. 손가락도 두 개 모자란 계집아이였다. 사랑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사랑의 감정에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는 것, 사랑 때문에 2세에게 끔찍한 고통을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체르노빌 이후의 세계다." 123쪽, <청춘의 커리큘럼>, 이계삼

 

로버트 콜스의 <환대하는 삶>은 20세 미국의 카톨릭 빈민 운동가 도로시 데이의 삶을 그리고 있는 평전이다. 가난한 이들과의 공존, 교회의 경직성과 투쟁 등을 다루는 이 평전에서 이계삼은 올바른 신앙이 가야할 길을 상상한다. 근거없는 도그마를 고집하는 교조주의는 권력과 신앙의 오랜 전통이다. 도로시 데이는 "무신론자의 흠 없는 삶을 내치고, 자신을 경배하는 신앙인을 더 사랑할 만큼 하느님이 경배에 굶주린 존재가 아니라고 믿었다" (299쪽) 란 표현을 쓴다.

 

<죄와 벌을 거꾸로 읽다>란 장에서 이계삼은 청년들이 살아가야할 이 세상이 어떤 세계인지 되묻고, 되살필 것을 요구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한 사회의 총체적 부조리를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 라는 고뇌가 깊이 내재된 소설이다. 이계삼은 오늘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자신을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과 응징이란 몽상에 젖어들게 한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강력한 후원자로 등에 업은 돼지 같은 자본가가 활개를 치고, 멀쩡한 갯벌의 숨통을 끊어 놓고 죽음의 시궁창이 되어가는 그 갯벌 옆에서 록 페스티벌을 벌이고 수천 명이 떼로 모여 춤추고 노는 나라에서, 60대 70대 할머니들을 하루 열여섯 시간 동안 유독가스가 넘쳐나는 공장으로 밀어 넣는 나라에서, 이성을 가진 누군들 그런 몽상에 젖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 216쪽

 

이 책의 주장은 과격한 면이 없지 않다. 세계를 날것으로 보여주고 비판해서다. 주류 언론과 교육이 감추고 무시한 현실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다수가 긍정하는 삶을 비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익숙한 체제 내의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가 있다면, 이 책의 주장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 비판이 나의 미래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어떤 해법을 주는가 알 수 없다. 하지만, 1 대 99의 사회나 원자력의 공포, 환경 오염과, 먹거리에 대한 걱정,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이 불가능한 세대)는 이미 우리 앞에 출현한 현실이다. 모든 정권과 모든 세계의 지도자의 꿈이 지상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인데도 이 지경이다. 그러니 뭔가 근본적으로 세계는 잘못된게 아닐까? 결론적으로 저자는 자급자족의 농업 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소통이 원활한 소규모 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인문학과 노동을 삶의 중요한 지렛대로 삼는 개인의 삶을 꿈꾼다.

 

이 책은 신념으로 가득차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바뀔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면, 강건한 학교 교육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이 체제를 현상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다. 자본과 권력이 경제의 무한한 확장과 인류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란 환상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하여, 인간적인 공동체, 행복한 개인은 미사여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핵폭탄의 위력을 최초로 경험한 일본이 전후 50기가 넘는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한 것은 무얼 말하는가? 국가 권력의 생리는 과거와 역사를 외면한다. 탐욕과 반사유성이 자본과 권력의 본질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럼에도 청년들의 몫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환경오염과 원자력, 전쟁의 공포와 자본주의의 폐해 모두를 막아낼 지혜는 공부하는 청년들에게서 나온다, 고 그는 믿는다.

 

지금 청년들은 정작 체제속의 정착을 꿈꾸는 공부에 여념이 없다. 하여, 이 책이 제시하는 청춘의 커리큘럼은 배부른 자의 탁상공론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걸어간 길이 새로운 삶과 미래에 대한 실천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시험 범위 외에는 질문할줄 모르는 학생들을 양산하는 학교를 벗어난 이후라면, 이제야 본격적으로 세상과 삶을 공부해야 할 때가 아닐까? 책 속 청년들의 커리큘럼은 가볍지 않고, 즐겁지 않은 과목들이다. 하지만 우리 세계를 반성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책들로 가득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책을 통해 공부의 길로 들어선다는 데 있다. 이 안에 소개된 책의 목록을 기록해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절대로 학교 교과서로 채택될리 만무한 이 커리큘럼을 주목하자. 다른 삶은 가능하다,는 저자의 믿음을 지지한다.

 

 

 

2013년 6월 16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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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밀리타스 - 위대한 리더십의 완성
존 딕슨 지음, 김명희 옮김 / 포이에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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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겸손은 기독교에서 대척점에 있는 단어다. 교만은 철저히 배격하고, 겸손은 환영받는다. 마태복음에는 겸손한 사람을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표현한다.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첫번째 덕목은 겸손이다. 기독교에서 구원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신의 은혜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였을까? 기독교 저술가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교만을 가장 큰 죄의 목록에 올려 놓는다. 은총을 갈망해야할 신의 피조물이 인간이다. 인간은 절대 완전하지 않다. 그런데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에 완전하며 공정한 척한다. 좀더 가진 사람은 가난한 자를 업신 여기고, 좀더 배운 사람은 덜 배운 사람을 깔보기 마련이다. 교만의 최종적 단계는 신앙을 잃는 것이다. 신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재단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오히려 교만이 장려되고 겸손은 무시되었다. 고대에 통용된 겸손의 의미는 `낮게 여겨지다' 즉, 굴욕을 당하다였다. 히브리어는 `아나와 anawa' 그리스어는 `타페이노스tapeinos', 라틴어는 후밀리타스humilitas', 이것이 오늘날 겸손으로 묘사되는 고대의 단어들이다. 서양의 고대 세계는 정복과 통일 전쟁이 지속되면서, 거대 제국을 형성하던 시기다. 이민족과 싸움이 잦았기에, 정복을 당하면 수치심을 느꼈고 이 때 이 단어들을 썼다. 겸손이 오늘날의 긍정적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 후반기(2-5세기)였다. 정확히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뿌리를 내리던 시기다. 서양 역사에서 교만과 겸손이 긍정과 부정의 자리 바꿈을 한 때이기도 하다.

 

겸손은 문명과 종교로부터 발원한 단어지만, 오늘날 리더쉽 이론에서 각광받고 있는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성품이 됐다. 서양 역사에서 겸손이란 성품은 어떻게 발원했고 오늘날 리더쉽과 겸손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어떻게 나사렛 출신의 한 유대인이 위대함의 정의를 한없이 낮은 겸손이란 성품에서 다시 썼는지 궁금하다면, 우리는 호주의 역사학자이자 목사이며, 저술가인 존 딕슨의 <후밀리타스>를 펼쳐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성품에 지나지 않은 `겸손'의 먼 과거와 오늘을 되돌아보고, 이것이 종교의 영역을 넘어, 사회 각개 각층의 리더와 조직을 이끄는 핵심 가치가 된 이유를 놀랍도록 세밀한 역사 지식과 방대한 예를 인용해 풀어 놓는다.

 

이 책이 전제하는 겸손의 뜻은 이렇다. "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자원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고귀한 선택 " 즉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힘을 내려놓으려 한다. 겸손한 사람은 성공 의지나 영향력이 약한 사람일 것이란 편견이 가능할까?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베스트셀러 작가 짐 콜린스는 가장 영향력 있고 감화력 있는 이들은 보통 겸손하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더불어,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한 11개 기업의 핵심 성장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결단력과 겸손한 자세라고 선언한다. 위대한 기업을 이끈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나서지 않고, 조용하고, 내성적인데다 부끄러움까지 탔지만, 개인적 겸손함과 직업적인 의지가 융합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콜린스는 이들을 `화성인' 같았다고 표현한다.

 

역사상 자신의 힘과 지위를 내려놓고 고귀한 영향력을 전파한 이같은 `화성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인으로부터 오늘날 기업의 CEO들까지 다양하다. 부처나 예수와 같은 종교적 성인과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와 같은 정치 지도자, 그리고 킴벌리 클라크의 다윈 스미스, 질레트의 콜먼 모클러 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겸손이 리더쉽의 핵심이 되는걸까? 저자는 리더쉽의 도구들을 네가지로 정리한다. 능력, 권위, 설득력, 본보기다. 능력은 리더가 갖추어야 할 기본이다. 이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가지 도구들은 겸손을 통해 완성에 이를 수 있다. 자기를 낮추고 팀원을 높이고 존중할 때 그 팀은 자발적인 충성심과 존중감이 흘러 넘친다. 위대함은 힘과 권위에 대한 복종에서가 아닌, 자유의지에 따른 창의성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모든 위대한 종교와 기업의 특징이 이와 같다.

 

"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성취와 지위만으로는 진정으로 감화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영웅들로부터 가장 감화를 받는 순간은 그들이 겸손을 보일 때이다. "169쪽

 

우리는 능력에 목말라 한다. 학생들은 스펙을 경쟁 하듯 쌓아 올리고, 직장인들은 실적을 통해 승진을 이루고자 목을 맨다. 종교인들은 타종교에 대한 관용이 부족하다. 이 편협함은 가끔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모두가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드러내고파 하는 시대다. 하지만, 이천년 전 예수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일찌감치 겸손의 미덕에 대해 설파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고 일평생 가난하게 살고 핍박받다 십자가에서 생을 마감한 예수야말로 삶 자체가 겸양으로 가득차 있었다. 왜 예수는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지리라고 했을까? 구태여 종교적인 답을 구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겸손한 이에게 호의를 품는다. 리더의 기본 자질 가운데 설득력과 본보기는 겸손한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누군가를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적의까지 해소시킬 순 없다. 타인을 설득시키는 건 논리가 아닌 감성의 몫이다. 자기를 낮추는 지도자는 명령이 아닌 존경심으로 조직을 이끈다. 힘이 있는 자가 낮아지려 할 때, 그의 능력과 권위는 더 높아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리더는 갈등을 해소하고 조직을 일치단결 시키는 새로운 능력을 겸손이라는 성품을 통해 이끌어 낸다. 더불어, 겸손은 인간의 본래 위치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교만과 자만심이 불러온 우리 시대의 위기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인간은 본래 미미한 존재다. 만물의 영장이란 수식어는 자화자찬일 뿐이다. 인간이 이 지구에서 문명을 건설하고 살아온 시간은 1만년에 지나지 않는다. 멸종한 공룡이 이 지구를 지배한 기간은 3억년이나 된다. 대우주에서 지구가 차지하는 위치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우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항성(태양)이 존재하고, 생명체가 거주할지도 모르는 행성들이 있다. 지구는 은하수 은하의 구석진 나선팔의 태양계에 위치한 존재조차 희미한 행성일 뿐이다. 그것뿐인가. 인간의 오만으로 탄생한 핵무기는 지구의 전 도시들을 수천번 파괴하고도 남을만큼 충분히 비축돼 있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이 겨우 지난 지금, 경제적 욕망에 가득찬 인간은 하나밖에 없는 지구 환경을 파괴하며 기후변화,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모두 겸손이란 성품을 잃어버린 결과다.

 

겸손한 리더는 하찮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키워낸다고 이 책은 논증한다. 하지만, 겸손이야말로 이 시대가 구할 종교적, 문명적 성품이 아닐까? 겸손은 넓게 보면 대우주의 미미한 구성원으로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는 일이다. 우리 시대 모든 분쟁의 씨앗은 자만심과 오만의 결과다. 겸손할 성품들이 모일 때, 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낙원이 될 것이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그런 사람이 결국 가정과 기업과 국가를 살릴 것이다. 겸손은 위대한 리더를 완성으로 이끄는 덕목이다. 겸손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미덕을 문명과 종교적 관점에서 논한 이 책도 마찬가지로 겸양의 미덕에 따라 치우침이 없다. 겸손은 우리 시대의 필수 처세술이자, 성공하는 리더의 성품이며,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처방전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위대한 지혜, `겸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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