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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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유시민에 대해 생각보다 내가 아는게 없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에 대해서도 그렇다. 난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특별히 좋고 싫음의 감정이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끌리는 일은 아니다. 그간 정치인으로 살 때 나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는 시민에 불과했고, 가끔 그가 책을 냈을 땐 책을 사 놓고서 읽어보지 않은 비자발적 독자였다. 그런데 최근 그가 10여년 간 생활의 터전으로 삼던 정치와 정치인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후, 다시 책을 냈다. 제목도 간단치 않다. <어떻게 살 것인가>무척 철학적이다. 나이 쉰 다섯에 이르러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자기 고백이다. 삶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 말이다.

 

여러 선거에 나와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난 후 그는 출판사의 도움으로 책을 쓰곤 했다. 또, 책을 내고 다시 정치 일선으로 복귀했다. 그러던 그가 이젠 정치인의 삶을 그만두겠다고 올 초 선언했다. 정치인들의 말이나 책에는 신뢰를 보내지 않는 고질적 습관 때문일까? 그의 정치생활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도, 지금껏 유시민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이유다. 밖에선 그렇게 신망이 높던 사람도 정치인의 옷을 입으면 달라 보인다. 정치의 세계를 진흙탕에 비유하는 것은 선악에 대한 일종의 양비론이라 믿는다. 어찌 훌륭한 정치인이 없겠는가. 어쨌든 이제 그 진흙탕을 그는 스스로 걸어나왔다. 독자들에게 할 말도 많을 듯 했다.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사람이란 내 예감을 믿고 싶다. 여러 궁금증도 일었다. 왜 그는 현실 정치에 실패했는가. 왜 주변 정치인들과 불화했을까. 그리고 대체, 어떻게 살아갈 작정일까.

 

정치인 유시민에 앞서 그를 가장 잘 드러내는 호칭은 아마도 `지식소매상'이란 단어다. 이 호칭을 그는 마음에 들어 한 듯 하다. 하여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찾아 요약하고, 발췌하고, 해석하고, 가공해서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라고 책에서 친절히 풀이해 놓았다. 그가 저자로서 재능을 확인한 건 군사정권 시절의 어느 정보기관 취조실에서 였다. 그는 자술서를 쓰는 순간은 구타 당하지 않았기에, 감금 상태로 항상 자술서를 썼는데 그걸 읽어본 정보기관 요원은 그의 글쓰기에 감탄했단다. 훗날 이 재능 덕에 민주화 운동권 내에서 글을 쓰는 일을 그는 도맡았다. 세월이 흘러 평생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그이지만 언제나 작가라는 자의식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생의 매 순간 글을 써왔던 그는 정치인이 되면서 글 쓰는 일에 변화를 겪는다. 직업정치인이 된 뒤로 글을 쓸 때 항상 자기검열을 거쳐야 했다. 자신이 쓰는 글이 정쟁의 빌미를 주진 않을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유권자의 미움을 사진 않을지, 걱정한 결과다. 그가 사심없이 쓰려 노력했던 근작들 <청춘의 독서>나 <국가란 무엇인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밝힌다.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 모든 자기검열의 습관을 벗어던지고 `글 쓰는 자'의 풍성한 자의식을 갖고 써낸 책이란다. 이 책이 진실한 고백체의 문체를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어린시절과 청춘의 날들, 민주화 운동의 기억, 5.18의 상처, 정치인의 삶, 고뇌와 실패의 순간들을 서술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청년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유시민식 힐링과 바로서기를 조언한다. 그는 서술하는 매순간 철학적 명제들을 끌어온다. 삶의 편린들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 올리다가, 자살에 대해 논했던 카뮈의 문장들을 훑어내기도 한다. 유명 아이돌 가수의 책을 읽고선 성공하는 삶은 `마음이 이끄는 일에 전념하는 가운데 도달'할 수 있다는 교훈을 가져온다. 야권 정치인들의 기득권 정치를 해체하려다 `분열과 갈등의 화신'이란 비난과 인식공격에 시달린 기억을 이야기 할때, 독자는 현실 정치의 높은 장벽 앞에 패배한 한 정치인의 절망감을 감지한다. 책의 처음과 끝은 일관되게 박식과 교양이 넘치는 만연체의 문장들로 가득하다. 이 책에서 유시민은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풍부한 지식과 검열을 벗어난 자유와 나름의 인생 철학을 독자와 공유하려 애쓴다.

 

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유시민의 답은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시시때대로 즐기고, 사랑하는 일은 사람들의 인생을 구성하는 세가지 근간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여기에 보태, 이념을 같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을 삶의 방도로 내 놓는다. 정치인으로 살진 않겠지만 정치에 대해 시민으로서 발언은 하겠다는 다짐은 이 연대에 방점을 둔 표현이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유시민이 가장 강조한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결정권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인간은 매순간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선택엔 포기가 따르고 미련을 불러온다. 실패와 성공에 따른 불안감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사라진다.

 

"나는 글쓰기로 되돌아왔다. 정치가 싫다거나,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 때문만은 아니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다. 인생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아서다. 그래서 더 절실한 마음으로 자문해본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이 삶은 훌륭한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가? 오늘 하루의 모든 순간들은 내게 의미가 있었는가? 나는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지금 하는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 내 마음이 이렇게 대답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 글 쓰는 일로 돌아가자. 마음이 설레고 일상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자." 238-239쪽,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은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일, 곧 독자이자 저자로 사는 것이다. 평생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한 나라의 장관에 까지 오른 그가, 쉰 다섯에 정계를 떠나 남은 인생을 독서와 글쓰기에 바치겠다고 한다. `지식소매상으로 살며, 일상의 모든 순간마다 나름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며 살고 후회없이 죽는 일'은 그에겐 다름 아닌 저자가 되는 일이었다. 정치적으로 나는 그가 지향하는 방향을 지지한다. 이 책에 드러난 그의 이념적 성향과도 크게 엇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현실정치를 바꾸는 일에 실패한 정치인이다. 그 원인을 그는 인간관계에서 찾는다. 실패한 정치에 대한 원인이 인간관계라니 뜻밖이다.

 

아무리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옳아도, 그것을 상대에게 납득시키는 일은 신념만으론 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정치를 통해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자기주관이 강한 청년들이 명심할 일이다. 여전히 우리 정치는 그가 10년 전 정계에 입문하던 시절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 하지만, 실패가 자산이 되는 법이다. 우린 유시민을 통해 우리 정치의 한계와 현실을 체감했다. 그의 실패가 진보하는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것이라 믿고 싶다.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다소 난해한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애써 이 책에서 답을 주려 한다. 청년들에게 그의 경험과 지식은 유용하다. 무엇보다 그가 책을 쓰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겠다는 포부를 던져준 것 자체가 의미 있다. 이 메세지가 바로 가르침이자 교훈이다.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감지하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독자들은 갖추어야 한다.

 

알고 속아주는 것과 알지 못하고 속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유시민의 실패는 시민의 실패이고 어쩌면 독자들의 실패일 수 있다. 한 나라가 후진성을 벗지 못하는 것은 교육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독서하고 생각하는 시민들을 양성하지 못하는 사회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기득권에만 천착하는 정치인들에게 휘둘리게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식소매상들이 넘치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꿈일까?

 

 

 

 

 

 

 

2013년 7월 5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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