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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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이 훨씬 전에 프로이트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 인간에게 정신병이 걸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외상과 달리 정신적으로 어떤 충격이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위력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를 지나오면서, 나는 그러한 생각들을 수정해야 했다.  육체적 외상은 정신적 상처에 비해 치유가 그런대로 쉽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우리 인간에게 존재하며,  그 보이지 않는 세계는 우리 자신조차도 인지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현대를 정신병의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인정하듯이,  평온한듯 보이는 나의 동료, 나의 친구, 나의 이웃 등 모두가 알게 모르게 어떠한 정신적 컴플렉스에 빠져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인정하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가 정신의학에 보탠 공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부분으로 분류하고,  성년에게 나타나는 어떠한 정신적 질환의 기원을 어린시절과 성장기의 부모와 사람들과의 관계로 지목했다.  그 시대 가장 크게 반발을 불러 일으킨 그의 이론은 아이의 성장과정을 성적인 발달과정으로 설명하면서, 지금은 일반화된 유아성욕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무의식의 발견은 정신학계에서 그의 뛰어난 업적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비중을 1대 99로 든 것은,  지금까지도 인정되는 그의 이론이다.  인간 내면을 바닷물의 표층(의식)과 그 밑바닥인 심해(무의식)로 나누었으며, 모든 정신병의 원인이 무의식에 있다고 말한 것은 현대 정신의학의 길을 제시해 준 그의 업적이었다. 

소설가 김형경이 에세이 <사람풍경>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인간 무의식에 내재해 있는 무수한 정신병의 인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헤치는 일이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그는 이 책을 세계여행과 심리여행이라는 두가지 테마로 엮고 있다. 나이 마흔에 자신의 집을 팔아 세계일주를 계획했단다.  9개월간 세계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고 한다.  듣기만해도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한편으론 부럽지만, 또 그건 나에겐 불가능하지, 라는 내면의 울림이 들려온다.  그래서 더 부럽고 근사하고 신나게 보이는건지도 모르겠다. 유럽,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 무수한 나라들을 홀홀단신 여성의 몸으로 9개월간 여행한다는 것은, 보기보다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해외여행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히 세계를 돌아다녔고, 수많은 이방인들과 만났다.  또 무수한 유적들과 박물관들을 견학했단다.  이 책을 보면서,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음을 깨달았고, 해외 여행에 관심갖게 된 것은 덤으로 얻은 소득이다.

이 책을 만나보기 전까지 소설가 김형경은 그 이름과 몇편의 베스트셀러 책 제목으로만 알고 지낸 작가다. 프로필에 나와 있는 그의 책들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그러나 이 에세이의 책장을 다 덮고 난 후에,  이 작가에 대해 몇편의 소설을 읽은 것보다도 더 많이 친숙해졌다.  그건 작가가 스스로 밝혀놓은 친절한 대목들 덕분이다. 작가는 몇해전 정신분석을 받았단다.  어린시절 엄마와의 관계,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홀로 지낸 시간이 많은 어린시절, 20년 넘게 `체인 스모커' 였다고 밝힌 부분 등을 보면,  그가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직감케 한다.  사실 나는 담배피우는 여자는 딱 질색이라서, 적잖이 이 얌전하게 보이는 소설가에게 충격을 받았다. 뭐 그건 이 책을 빌어 설명하자면,  남성우월주의에서 오는 여성에 대한 나의 편견으로 치부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여행기와 심리분석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지만,  여행기는 인간 심리를 설명하기 위한 양념에 지나지 않는단 생각을 했다.  인간 감정을 세 개의 큰틀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30개에 가까운 감정들로 나누어 설명한다.  무의식,우울,의존, 질투, 투사, 회피, 콜플랙스, 나르시즘, 공감, 변화, 자기실현 등이다.  그리고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들이다. 이것은 무의식에 잠재돼 있다가 적절한 상황이 오면, 의식의 전면으로 부상하고 하나의 감정에 과도하게 빠져들어 허우적 거리게 될때, 우리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들을 잘 다스릴줄 알고, 그러한 감정들이 생겨나는 이유를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자신의 어린시절의 경험과 성장기의 기억들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적 문제를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물론 그 모든 심리적인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들으면 분노하는 `남성 콤플렉스'가 있고, 자신이 선하다는 나르시시즘이 있고,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는 영화를 보지 못하는 공포가 있다. 내면에서 맞닥뜨리는 질투나 시기심도 있고, 계속 소설을 쓰는 행위 뒤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이제는 그것들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들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그것들을 조절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 p.359

세상에는 개성이 남다른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획일성이 아니라 사회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인생 역정이 있고, 거기엔 무수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람을 겪어나가는 과정에서 깊은 이해와 동정, 그리고 동지애가 필요한 이유가 거기엔 있진 않을까?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편견이라는 시선을 둘 수밖에 없고, 그 관계에선 갈등과 몰이해만 존재할 뿐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무수한 정신병적 인자들을 무의식속에 감추어 둔다고 한다.  무의식은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일부인가조차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과 이성, 자신의 의식이 허락하지 않은 욕망의 덩어리이며, 감금당한 인간성의 편린이다.  김형경의 이 책은, 우리에게 그같은 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는 모든 감정들과 화해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신이 과거에 받은 상처, 또 어렸을적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해 생긴 무수한 정신적 문제들, 그것은 성년의 인간의 정신속에 남아 아직도 우리를 유아기에서 성장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거기서 자유로워지는 길은,  우리 모두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삶에서 위대한 가치에 의지하는 일이다.

그 위대한 가치가 바로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암시해준다. 종교는 인간이 불완전하며, 그래서 겸손해질 것을 기본적으로 요구한다.  모든 정신적인 문제를 혼자만의 짐으로 안고 가는 일은,  현대와 같이 복잡한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로선 어리석은 일이다.   한 소설가의 정신의 행로가 마치 자신이 여행한 세계의 도시들처럼, 명확히 드러난 책을 읽는 일은 그 호기심에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우울한 일이다. 이 책에서 드러나 김형경의 문체는 정신분석학을 다룬다고 학구적이지도 않으며, 또 지극히 사변적이지도 않았다. 그건 다만 인간적일 뿐이었다.  그같은 사연들은 그만 가진 것이 아니며, 이 책을 읽은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들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다만 `아닌척' 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대중앞에 풀어헤치는 일 자체가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인데,  그것 자체는 감금된 본인의 무의식에게 자유를 주는 일과 같아서, 하나의 치유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다만, 서툰 아마추어리즘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몇 권의 정신분석학 책을 읽었다고 해서, 자신의 정신이 온전히 분석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학문적인 이론들에 자신의 정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문제들을 꿰어 맞춰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여행 에세이라 이름 붙여진 김형경의 이 책은 세계 여행과 심리 여행이라는 두가지 테마를 갖고, 남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만난 길위의 외국인들에게 정신분석을 투사하는 일은, 대단히 특이한 방법이다.  이런 목적으로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투사가 일어나는 가운데, 우리는 작가의 심리안에 내재된, 그리고 우리안에 내재한 정신병의 기제들을 파악하게 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여행기는 흥미로움과 우울함, 그리고 산뜻한 기분으로 끝을 맺는다.  내 기분의 변화도 이 책을 읽는 가운데 그와 같았다.

 

 

 

20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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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 Think Hard! 몰입
황농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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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우리는 어딘가에 몰입하며 살아간다. 어떤 감정에 젖어드는 것도 우리의 생각이 거기에 몰입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슬픈 일을 겪어서 의기소침한 것이나 즐거운 일에 마음이 들뜨는 것도, 모두가 내 마음이 그 순간 거기에 정신을 빼앗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순간이 몰입이며,  몰입의 순간 정신은 우리에게 하나의 감정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한다.  

내가 일상속에서 몰입을 경험하는 순간은 책을 읽을 때이다.  특히 나는 집에선 요즘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오직 출퇴근 길에 기차 안에서 약 40분간 책장을 넘기는 일이 잦다.  내가 하루 중 순수하게 책에 온통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20분 남짓이 전부다.  그러니 정말 그 시간이 짧고 그러기에 더욱 소중하다.  책을 한번 잡기 시작하면,  눈이 책의 행을 따라가며 정신은 온통 저자의 생각과 소통하는데 쓰여진다.  그럴 때면,  저자가 어떤 생각으로 그러한 글들을 쓰고 있는지 글을 쓰는 순간의 저자의 마음 상태까지를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험만큼 내가 몰입에 대해 직접적인 경험을 하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 목적지에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릴 순간이 다가오면, 내 마음은 약간의 아쉬운 감정이 일고, 그러나 발걸음과 기분은 놀랍도록 가볍고 상쾌하다.  나는 내 안으로 깊이 몰입되다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버린 것이다.  이렇게 생활 자체가 몰입과 그리 멀리 있지 않다보니 몰입의 유용성과 그 위력을 설명하는 책을 읽는 순간에도, 그것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부교수로 재직중인 황농문 교수의 이 책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몰입>은 이같은 일상속의 몰입의 중요성을 다루면서 오늘날의 시대를 `WORK HARD'가 아니라 THINK HARD' 의 시대로 설명하는 책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과학자나 예술가들은 몰입을 통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할때나 뉴턴이 중력이론에 도달했을때,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들을 작곡 했을때도, 또 에디슨의 수많은 발견들도 모두 그들이 자신들의 작업에 몰입하며,  세상일을 잊고 그들만의 공간에 틀여박힌 순간에 찾아든 아이디어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문제를 처음 대면했을 때 도무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고 난감하게 느껴지는 경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각하면 고도의 창의적인 두뇌가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두뇌 능력의 한계를 계속 사용하게 된다. 자신이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풀려고 매달릴 때 비로소 자신의 두뇌가 최대로 가동되고 최대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 p.203

그렇다면, 몰입은 위대한 사람들만 하는것인가 ?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마치 몰입 트레이닝 북이나 되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몰입하는 방법을 타전하고 있다. 몰입에 뛰어들기 위해선, 아이큐가 높을 필요도 없고, 거창한 테마를 갖출 필요도 없다.  어떤 주제로도 또 범상한 사람들조차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즐겨 사용했던 몰입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순간 우리도 그들처럼,  몰입 그 자체를 통해 어떤 행복감에 젖어들 수가 있다는 얘기다.  내가 일상속에 독서체험을 통해,  매일 몰입을 체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몰입에 들어가는 5단계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1단계의 생각하기 연습에서 5단계의 가치관의 변화에 이르는 길까지.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도 몰입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부여한다.  이 책에서 설명한 몰입의 방법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매일 일정 시간을 투자해서 오직 한가지 주제로 몰입 연습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시간을 늘려가며,  한달 넘게 한가지 생각만을 하면서 몰입에 완전히 매몰돼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몰입이 성공하기 위해서 저자는 반드시 최상의 몸 컨디션이 필요하므로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 이유로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이 요절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두고 있는데, 장기간 몰입이 건강을 해칠 수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 책의 후반부로 들어서서 몰입을 설명하는 저자의 방법에 모두 찬성할 수가 없었다.  저자는 연구 교수이기 때문에,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한달 넘게 온통 그 문제만을 갖고 몰입할 수 있겠지만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게 가능하겠는가?  또 몰입을 설명하면서 사례로 든, 유대인의 교육방법을 길게 소개한 부분도 몰입이라는 주제와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체적으로 몰입에 대해 한번 `몰입'해 보고자 이 책을 고른 다수의 순진한 독자들은 아마도 제대로 `몰입'에 대해 `몰입'도 해보지 못하고 수박겉핥기 식으로 지식을 얻고 책장을 덮지는 않았을까하는 우려가 들었다.  전체적으로 책의 응집력과 구체성이 부족한 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다. 

이미 세계적으로 몰입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론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책들을 읽어보는 것이 몰입에 대해,  더 많은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그러나 몰입이 행복에 이르는 마법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것은 이 책에서 얻은 소득 가운데 하나다.  종교적 체험이나 학습, 독서 등 일상속에서 우리가 몰입하는 순간들은 많다. 그리고 그 순간이 행복감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몰입에 관심가져볼 이유가 거기에 있진 않을까?  

 

 

 

2008.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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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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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게,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또 되고싶은 사람을 꿈꾸며 미래를 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마음이 그어놓은 선, 혹은 세상이 이것이라고 정해놓은 울타리 안에서만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새장속의 새를 보자.  새를 속박하고 있는 것은 새의 몸에 붙은 어떤 줄이나 장애물이 아니라, 바로 날 수 있는 비좁은 공간이다.  새는 날 수 있지만, 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새는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새장의 굳은 문이 열리는 날에도 새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새는 진짜 자유로운걸까 ?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유를 밥먹듯이 원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삶과 현실안으로 들어와보면,  스스로 그어놓은 선밖을 절대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 소극성이 몸에 배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같은 수동적인 사고틀을 안고 살아간다.  물론 그들의 삶의 폭은 그만큼 좁고,  사고의 깊이는 스스로 쳐놓은 한계로 인해 얇기 마련이다.  이런 인생은 절대로 자유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고 질타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바람의 딸이라 이름붙여진 여인, 한비야의 일곱번째 책,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다.

한비야는 오지 여행가로 이름을 날린 분이다.  이분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신문의 칼럼을 통해서 간간히 몇편의 글을 읽은적은 있다.  언제나 글을 열정적으로 쓰는 사람이다.  칼럼 하나를 쓰기위해 꼬박 밤을 샜다는 얘기를 듣고 꽤나 완벽을 추구하는구나, 생각도 했다.  젊은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어릴적 꿈꾸어왔던 세계 오지를 여행하기 위해, 지구를 세바퀴 반이나 배낭 들고 여행할 수 있는 배포를 가진 여인.  남자인 나로서조차도 그 배포에는 두손 두발 다 들 정도다.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안정을 포기하고 뭔가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한번도 실수한적이 없는 사람은 한번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안정을 얻는다. 우리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만난 한비야는, 나보다 우리보다 몇배는 더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도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진하고 소진했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긴급구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기쁘다. " p.14


오지 여행을 통해서 3권의 책을 집필한 그녀가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 회장의 눈에 들어왔고,  단번에 그는 이 구호단체의 팀장직을 제의 받는다.   아프가니스탄을 비롯, 격전지 이라크, 내전과 기아로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나라들,  네팔,  동남아시아의 쓰나미 현장, 북한 까지. 그녀가 월드비전 팀장을 맡으며 5년간 돌아다닌 세계는 여행을 통해 만난 그 전 세계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 민족를 가리지 않는 구호단체의 업무를 수행했던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지난 5년간 그녀가 발벗고 뛰어다닌 세계 긴급 구호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땀과 열정이 스며나오는 글들로 가득차 있다.  여행을 통해 국경의 벽을 넘어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저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세계인들을 자신의 형제나 친구인냥 스스럼없이 대하며, 열정으로 보살필 수 있는 힘이 돼 준게 아닌가 생각한다.

생각이 곧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긋고 있는 한계가 우리를 새장속의 자유인으로 만들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장애물을 걷어치워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여행자에겐 지도는 그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보증수표다.  그러나 지도안으로만 여행한다면, 그가 볼 수 있는 풍경은 제한돼 있다.   우리는 인생을 시간표대로, 또 이미 성공과 안전이 보장되는 루트를 따라가는 것을 정석으로 알며 살아간다.  이러한 삶에도 미래가 있긴 하다.  또 가장 분명한 선물도 주어진다.  안정이라는 평범함 말이다.  그러나 열정이 넘쳐나는 끼있는 사람들에겐 지도따윈 거추장스러운 여행의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루트밖엔 뭐가 있을까, 역사는 언제나 그러한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보다 진보해 왔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평범하게 사는것이 진정 사는것인가 ? 이 책이 우리에게 묻는다.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면에서 우리가 과감히 버려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안된다는 사고 방식, 안전해야 한다는 소극성이다. 그것을 버릴때,  우리도 한비야처럼 열정을 태울만한 일과 만날 수 있진 않을까?  이 책을 단순히 어느 NGO의 경험담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책에서 한 사람의 열정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그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그 가능성으로 읽었다.  부러워만 하지 말고, 우리도 인생을 자유와 열정으로 가득 채워보자.  행복은 몰입과 열정을 쏟을 만한 일을 발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20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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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죽어라 - 눈 푸른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현각.무량 외 지음, 청아.류시화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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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을 절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 모든 것을 회의하며 모든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두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평범한 삶을 지속시킬 수가 없다.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아무런 불만도 의문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너무나 세상의 이치에 밝고, 총명해서, 삶에서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생 전체의 모습들이 그들에겐  선명하고, 또 그것 자체가 부조리하게 보여서 일까?  그런데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가 또한 그러한 회의에 답을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여기 푸른눈을 가진 이방인 11명이 있다. 그들은 젊은 나이에 불교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고 불교로 귀의한 외국인들이다.   동양인이 서양의 종교(기독교)를 갖는 것은,  동양인에게나 서양인에게나 별 특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서구 사회에서 서양인이 동양의 종교를 갖고 거기에 귀의하는 일은 몹시 낯선 일이다.   동양인이 보기에도 그렇지만,  본인들의 사회에서 기독교라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그들의 눈에, 이것은 불경하기 이를 데 없는 종교적 반역이다.  그러나 이 11명의 불교도는 서양 사회에서 가장 잘 교육받은 엘리트 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이 불교에 귀의해,  부처의 말씀을 스승삼아 불교도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 여정에 동참하게 했을까?

`공부하다 죽어라'  자못 비장한 어투의 이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이 없는가?  붓다는 그의 마지막 가르침에서 `살아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고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해 깨달음에 이르라'고 설법했다 한다.  불교도가 되는 사람은, 그렇게 끝임없이 공부하는 것을 당연지사 생각한다.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공부를 강조하는 것은 잘 보지 못했다.  기독교도는 믿고, 따르면 족하다.  그러나 불교도는 다르다.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무한한 노력과 고통이 뒷따른다.  불교는 각 개인의 깨달음이 구원의 통로다.  그 길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진리가 경전속에 있는게 아니고, 본인의 실천속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불교도로서의 길을 가고 있는 외국인 수행자, 11명의 삶과 깨달음의 설법을 번역해 놓은 것이다.  한 시대의 엘리트에서 지금은 불교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청아 스님이 자신이 주지로 있는 사찰 대전 자광사에 영어 법회를 1년간 열었다.  국내외에서 초청받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영어로 설법을 했고,  많은 청중들이 그들의 법회를 듣고 함께 깨달음을 고민했다.  그것을 번역해서 책으로 출판한 책이 바로 자못 의미심장한 제목을 갖고 있는 `공부하다 죽어라'다.  

 
"스승께서 싱가포르로 가라고 하셨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싱가포르는 불교 국가이지. 불교 국가에서 살게 되어 참 다행이야. 지금까지 불교 국가에서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싱가포르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 싱가포르는 불교국이 아닙니다. 불교는 구식이에요. 기독교가 훨씬 현대적이에요.'  저는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에서는 불교가 훨씬 현대적이고 세련된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많은 지성인들과 앞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불교도가 되고 있습니다."  텐진위용(1960년, 영국 런던 출생. 리즈 대학교 졸업. 1986년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계를 받고 불교도가 되다).p.93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눈에 외국인 출가 불교도를 보는 일은 몹시 낯선 일이다.  서양인으로서 오랜 전통이 담긴 종교를 버리고 굳이 동양의 외진 곳까지 와서, 불자로서 살아가는 그들이 왠지 괴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출가한 이유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깊이 있는 생각들이 넘쳐났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자신의 인생을 불교에 걸지 않았다.  종교적인 신념이 다르고, 종교적 편협함과 배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앞의 싱가포르 사람들처럼 불교와 외국인 수행자들에 대한 오해를 하게 된다.  종교에 세련미가 있을 수가 없고,  진리가 서양에만 있고 동양에는 없다 하는 사고방식을 동양인이 갖고 있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오늘날 서양에서 불교가 서서히 기존종교를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사람들 마음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다.  기독교가 주고 있지 못한 부분들을 동양의 종교가 그들에게 주고 있는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11명의 수행자들은 하나같이 진리에 대한 목마름에 가득차 있었고, 그러한 의문끝에 찾은 답은 곧 불교였다.  불교는 그들에게 진리라는 자유의 샘과 같았다. 불교의 가르침은 깊고, 오묘하며, 그리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다.  우리가 피상적인 지식으로 불교를 판단하고 그 세계를 평가절하 하는 일은 없어야 겠다.   특히 타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불교를 제대로 알고 비판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알지 못한다면, 비판하지 않는 것이 진짜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가끔 불교 서적을 읽으며 또  그것에 거리낌은 없다.  불교는 개인의 변화와 실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종교다.  가혹하리만치 강도높은 수행은 곧 인간의 본성이 올바르게 변화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걸 반증해 주는건 아닐까?  그것에 비하면, 기독교의 신자들은 게으른면이 많다.  불교가 기독교에, 기독교가 불교에 배워야 할 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가르침에 서로 모순되는 점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타종교를 잘 아는 것은 곧 나의 종교에 더 충실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평화를 바란다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책속에서 수행자들의 여정은 길고 멀다.  그러나 그들이 찾고 있는 진리는,  언제나 이 세상속에 있다.  

새봄이 시작되는 3월,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갖고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설법을 듣는 일은 자못 진지한 인생공부를 하는 일이며,  나름 가치가 있었다.

 
 

20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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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고 있는 대통령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 특위 위원장 사공일 씨는 IMF이후의 지난 시절을 한국경제의 잃어버린 10년으로 정의하면서,  "조세들을 그대로 두던, 없애던 간에 상관없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우리에게 안내지침이면서 준거점이 될 것이다"라고 천명했다는 보도를 어제 보았다.  그는 거기에 보태, 앞으로 한국은 투자 환경이 더욱더 좋아져서, 외국 기업이나 한국 기업이나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개방의 폭을 더 넓히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 것이고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10년 안에 연평균 성장률 7%와 GDP 4만 달러 달성, 세계 7대 경제 대국 진입이란 그 유명한 이명박 당선인의 747 정책을 열심히 홍보하며, 그 목표에 달성을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한다. 

국민 모두에게 장밋빛 미래를 선전하는것도 모자라서, 세계 포럼에 나가 이렇게 전세계인을 상대로 한국의 밝은 미래를 홍보하는 일에 열심이니, 그 의욕은 높이 사줄만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 되기 위해 꼭 해야만 한다고 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란 대체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서 부자나라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간 무역에서 완전한 관세철폐를 목적으로 한 국가간 공정경쟁을 말한다. 그러니까,  개발도상국들이나 후진국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관세나, 보조금 혜택, 수많은 외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 등을 완전히 철폐해서 선진국과 공정하게 경쟁하자는 이념인 것이다.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이 `공정'한 룰 속에서 경쟁한다는 관념은 너무도 도덕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것은 아니다.  때로 불공정한것이 공정할때도 있고, 도덕적일 때도 있다.  특히 국가간 무역에선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가 뒤섞여 있는 국제무역에서 공정경쟁은 말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비양심적이고, 사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장하준 씨의 이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부자나라들을 자신이 정상에 올라설 때 쳐놓은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사악한 세력들로 규정하면서, 그 글로벌 스탠다드의 도덕성의 실체를 낫낫히 까발리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부자나라들이 어떻게해서 부자가 되었을까?  궁금할 일이다.  과연 우리 주위의 부자들이 부자가 된 경위도 가끔 궁금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위 부자들이 부자가된 것은 그들이 근면하고, 열심히 일한 경우가 있긴하겠지만, 대게 부동산 투기 아니면 부정한 방법(뇌물)으로 장사를 했거나, 아니면 남의 머리를 밟고 올라선 비양심적이고 부도덕한 경우가 더 많은게 사실이다.  부자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치며 공정하게 경쟁하자고 자못 도덕군자 흉내를 내는 저 부자나라들의 과거를 보면, 부자가 되기 위해 온갖 파렴치한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게 한두번이 아니다.  과거 19세기 영국이 중국과 아편전쟁을 일으켰을때,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아편 수출을 장려했다.  거기에 중국이 저항하자 군대를 이용해 무력으로 진압하고 홍콩을 100년 가까이 할양 받았다.  오늘날 세계 최강국 미국을 보면 어떤가?  오늘날 자유무역의 화신이 되어, 신자유주의를 설파하는 대표적인 이 나라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을때,  영국이 자국 산업의 원료만을 공급하는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다.  그리고 영국과 전쟁에서 승리하자 높은 관세 장벽을 세워서, 자국 유치산업을 장려하며 오늘날 부국의 대열에 올라섰다.  이러한 예는 더이상 열거할 필요조차 없이 많다.  

이러한 부국들이 오늘날 그 자리에 올라서자,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에게 자신의 불온한 과거를 숨긴채, 공정무역을 하자며 관세철폐, 규제철페, 보조금 철페를 외친다. 이렇게 되면, 개도국들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어줄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무역장벽을 완전히 걷어버리고 부국들과 개도국이 같은 룰속에서 경쟁한다면,  부국들의 상품들과 경쟁할 개도국의 상품이란 전무하다시피하고, 오직 개도국들은 부국들의 산업에 원료나 공급해주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오늘날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은 앞으로 영원히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대표기업 삼성은 60,70년대 설탕과 밀가루를 팔아 번 돈으로 전자 산업에 투자해서 세계 유수의 반도체와 휴대폰 생산업체로 발돋음했다.  삼성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된 데는,  높은 관세장벽을 유지하고 보조금을 지원한 국가 정책 덕분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국가 개입을 원천 차단하기를 개도국 정부들에 요구하고, 선진국과 똑같은 관세철폐와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부자나라에 올라서게 해준 그 정책을 개도국은 못하게 방해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이용해 가난한 나라들을 옥죄고 있는 꼴이다.   장하준은 이 책에서 이러한 이중적인 부국들과 이들에게 신자유주의 논리를 제공하고 있는 부국들의 하수인인 경제학자들을 맹비난하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이런 것들이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특별 대우'라고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 대우를 한다는 것은 그 대우를 받는 사람에게 불공정한 우위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한 승강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레일 점자를 `특별 대우'라고 부르던가 ?  마찬가지로 개발 도상국들이 부가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고율의 관세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보호 수단을 `특별 대우'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는 상이한 능력과 필요를 가진 국가들에 대한 차별적인(그리고 공정한) 대우일 뿐이다." 본문 p.332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정책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부국들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부화뇌동하는게 아니길 바란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치며,  개방을 확대하고 무역 장벽을 낮추라고 요구하는 탐욕스런 부자 나라들의 요구가 정답인지 아닌지,  그걸 우리 정부 관리들은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수위가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신자유주의자들의 푸들 강아지가 되겠다고 앞장서는 모습이 역역하니, 앞날이 걱정된다.  세계화의 이면에는 부자 나라들의 이중적인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선진국들의 경제 시스템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그들의 파렴치한 역사까지 본받아야 할 필요가 없고,  무턱대고 그들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들이밀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함정에 속아서도 안 된다.  이 책은 오늘날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경제 노선, 신자유주의에 관한 치밀한 역사적 분석과 실제의 세계 경제를 조망함으로써,  어쩌면 세계화가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장하준의 분석은 철저한 근거 자료와 역사적 사실을 기반에 두고 있기에 신뢰가 가며,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의 허무맹랑함에 일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시원한 느낌마저 든다.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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