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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죽어라 - 눈 푸른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현각.무량 외 지음, 청아.류시화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삶을 절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 모든 것을 회의하며 모든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두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평범한 삶을 지속시킬 수가 없다.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아무런 불만도 의문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너무나 세상의 이치에 밝고, 총명해서, 삶에서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생 전체의 모습들이 그들에겐 선명하고, 또 그것 자체가 부조리하게 보여서 일까? 그런데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가 또한 그러한 회의에 답을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여기 푸른눈을 가진 이방인 11명이 있다. 그들은 젊은 나이에 불교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고 불교로 귀의한 외국인들이다. 동양인이 서양의 종교(기독교)를 갖는 것은, 동양인에게나 서양인에게나 별 특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서구 사회에서 서양인이 동양의 종교를 갖고 거기에 귀의하는 일은 몹시 낯선 일이다. 동양인이 보기에도 그렇지만, 본인들의 사회에서 기독교라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그들의 눈에, 이것은 불경하기 이를 데 없는 종교적 반역이다. 그러나 이 11명의 불교도는 서양 사회에서 가장 잘 교육받은 엘리트 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이 불교에 귀의해, 부처의 말씀을 스승삼아 불교도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 여정에 동참하게 했을까?
`공부하다 죽어라' 자못 비장한 어투의 이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이 없는가? 붓다는 그의 마지막 가르침에서 `살아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고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해 깨달음에 이르라'고 설법했다 한다. 불교도가 되는 사람은, 그렇게 끝임없이 공부하는 것을 당연지사 생각한다.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공부를 강조하는 것은 잘 보지 못했다. 기독교도는 믿고, 따르면 족하다. 그러나 불교도는 다르다.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무한한 노력과 고통이 뒷따른다. 불교는 각 개인의 깨달음이 구원의 통로다. 그 길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진리가 경전속에 있는게 아니고, 본인의 실천속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불교도로서의 길을 가고 있는 외국인 수행자, 11명의 삶과 깨달음의 설법을 번역해 놓은 것이다. 한 시대의 엘리트에서 지금은 불교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청아 스님이 자신이 주지로 있는 사찰 대전 자광사에 영어 법회를 1년간 열었다. 국내외에서 초청받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영어로 설법을 했고, 많은 청중들이 그들의 법회를 듣고 함께 깨달음을 고민했다. 그것을 번역해서 책으로 출판한 책이 바로 자못 의미심장한 제목을 갖고 있는 `공부하다 죽어라'다.
"스승께서 싱가포르로 가라고 하셨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싱가포르는 불교 국가이지. 불교 국가에서 살게 되어 참 다행이야. 지금까지 불교 국가에서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싱가포르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 싱가포르는 불교국이 아닙니다. 불교는 구식이에요. 기독교가 훨씬 현대적이에요.' 저는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에서는 불교가 훨씬 현대적이고 세련된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많은 지성인들과 앞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불교도가 되고 있습니다." 텐진위용(1960년, 영국 런던 출생. 리즈 대학교 졸업. 1986년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계를 받고 불교도가 되다).p.93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눈에 외국인 출가 불교도를 보는 일은 몹시 낯선 일이다. 서양인으로서 오랜 전통이 담긴 종교를 버리고 굳이 동양의 외진 곳까지 와서, 불자로서 살아가는 그들이 왠지 괴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출가한 이유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깊이 있는 생각들이 넘쳐났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자신의 인생을 불교에 걸지 않았다. 종교적인 신념이 다르고, 종교적 편협함과 배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앞의 싱가포르 사람들처럼 불교와 외국인 수행자들에 대한 오해를 하게 된다. 종교에 세련미가 있을 수가 없고, 진리가 서양에만 있고 동양에는 없다 하는 사고방식을 동양인이 갖고 있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오늘날 서양에서 불교가 서서히 기존종교를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사람들 마음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다. 기독교가 주고 있지 못한 부분들을 동양의 종교가 그들에게 주고 있는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11명의 수행자들은 하나같이 진리에 대한 목마름에 가득차 있었고, 그러한 의문끝에 찾은 답은 곧 불교였다. 불교는 그들에게 진리라는 자유의 샘과 같았다. 불교의 가르침은 깊고, 오묘하며, 그리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다. 우리가 피상적인 지식으로 불교를 판단하고 그 세계를 평가절하 하는 일은 없어야 겠다. 특히 타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불교를 제대로 알고 비판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알지 못한다면, 비판하지 않는 것이 진짜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가끔 불교 서적을 읽으며 또 그것에 거리낌은 없다. 불교는 개인의 변화와 실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종교다. 가혹하리만치 강도높은 수행은 곧 인간의 본성이 올바르게 변화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걸 반증해 주는건 아닐까? 그것에 비하면, 기독교의 신자들은 게으른면이 많다. 불교가 기독교에, 기독교가 불교에 배워야 할 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가르침에 서로 모순되는 점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타종교를 잘 아는 것은 곧 나의 종교에 더 충실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평화를 바란다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책속에서 수행자들의 여정은 길고 멀다. 그러나 그들이 찾고 있는 진리는, 언제나 이 세상속에 있다.
새봄이 시작되는 3월,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갖고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설법을 듣는 일은 자못 진지한 인생공부를 하는 일이며, 나름 가치가 있었다.
200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