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0여년이 훨씬 전에 프로이트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 인간에게 정신병이 걸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외상과 달리 정신적으로 어떤 충격이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위력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를 지나오면서, 나는 그러한 생각들을 수정해야 했다.  육체적 외상은 정신적 상처에 비해 치유가 그런대로 쉽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우리 인간에게 존재하며,  그 보이지 않는 세계는 우리 자신조차도 인지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현대를 정신병의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인정하듯이,  평온한듯 보이는 나의 동료, 나의 친구, 나의 이웃 등 모두가 알게 모르게 어떠한 정신적 컴플렉스에 빠져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인정하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가 정신의학에 보탠 공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부분으로 분류하고,  성년에게 나타나는 어떠한 정신적 질환의 기원을 어린시절과 성장기의 부모와 사람들과의 관계로 지목했다.  그 시대 가장 크게 반발을 불러 일으킨 그의 이론은 아이의 성장과정을 성적인 발달과정으로 설명하면서, 지금은 일반화된 유아성욕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무의식의 발견은 정신학계에서 그의 뛰어난 업적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비중을 1대 99로 든 것은,  지금까지도 인정되는 그의 이론이다.  인간 내면을 바닷물의 표층(의식)과 그 밑바닥인 심해(무의식)로 나누었으며, 모든 정신병의 원인이 무의식에 있다고 말한 것은 현대 정신의학의 길을 제시해 준 그의 업적이었다. 

소설가 김형경이 에세이 <사람풍경>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인간 무의식에 내재해 있는 무수한 정신병의 인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헤치는 일이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그는 이 책을 세계여행과 심리여행이라는 두가지 테마로 엮고 있다. 나이 마흔에 자신의 집을 팔아 세계일주를 계획했단다.  9개월간 세계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고 한다.  듣기만해도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한편으론 부럽지만, 또 그건 나에겐 불가능하지, 라는 내면의 울림이 들려온다.  그래서 더 부럽고 근사하고 신나게 보이는건지도 모르겠다. 유럽,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 무수한 나라들을 홀홀단신 여성의 몸으로 9개월간 여행한다는 것은, 보기보다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해외여행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히 세계를 돌아다녔고, 수많은 이방인들과 만났다.  또 무수한 유적들과 박물관들을 견학했단다.  이 책을 보면서,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음을 깨달았고, 해외 여행에 관심갖게 된 것은 덤으로 얻은 소득이다.

이 책을 만나보기 전까지 소설가 김형경은 그 이름과 몇편의 베스트셀러 책 제목으로만 알고 지낸 작가다. 프로필에 나와 있는 그의 책들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그러나 이 에세이의 책장을 다 덮고 난 후에,  이 작가에 대해 몇편의 소설을 읽은 것보다도 더 많이 친숙해졌다.  그건 작가가 스스로 밝혀놓은 친절한 대목들 덕분이다. 작가는 몇해전 정신분석을 받았단다.  어린시절 엄마와의 관계,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홀로 지낸 시간이 많은 어린시절, 20년 넘게 `체인 스모커' 였다고 밝힌 부분 등을 보면,  그가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직감케 한다.  사실 나는 담배피우는 여자는 딱 질색이라서, 적잖이 이 얌전하게 보이는 소설가에게 충격을 받았다. 뭐 그건 이 책을 빌어 설명하자면,  남성우월주의에서 오는 여성에 대한 나의 편견으로 치부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여행기와 심리분석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지만,  여행기는 인간 심리를 설명하기 위한 양념에 지나지 않는단 생각을 했다.  인간 감정을 세 개의 큰틀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30개에 가까운 감정들로 나누어 설명한다.  무의식,우울,의존, 질투, 투사, 회피, 콜플랙스, 나르시즘, 공감, 변화, 자기실현 등이다.  그리고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들이다. 이것은 무의식에 잠재돼 있다가 적절한 상황이 오면, 의식의 전면으로 부상하고 하나의 감정에 과도하게 빠져들어 허우적 거리게 될때, 우리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들을 잘 다스릴줄 알고, 그러한 감정들이 생겨나는 이유를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자신의 어린시절의 경험과 성장기의 기억들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적 문제를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물론 그 모든 심리적인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들으면 분노하는 `남성 콤플렉스'가 있고, 자신이 선하다는 나르시시즘이 있고,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는 영화를 보지 못하는 공포가 있다. 내면에서 맞닥뜨리는 질투나 시기심도 있고, 계속 소설을 쓰는 행위 뒤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이제는 그것들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들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그것들을 조절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 p.359

세상에는 개성이 남다른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획일성이 아니라 사회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인생 역정이 있고, 거기엔 무수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람을 겪어나가는 과정에서 깊은 이해와 동정, 그리고 동지애가 필요한 이유가 거기엔 있진 않을까?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편견이라는 시선을 둘 수밖에 없고, 그 관계에선 갈등과 몰이해만 존재할 뿐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무수한 정신병적 인자들을 무의식속에 감추어 둔다고 한다.  무의식은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일부인가조차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과 이성, 자신의 의식이 허락하지 않은 욕망의 덩어리이며, 감금당한 인간성의 편린이다.  김형경의 이 책은, 우리에게 그같은 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는 모든 감정들과 화해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신이 과거에 받은 상처, 또 어렸을적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해 생긴 무수한 정신적 문제들, 그것은 성년의 인간의 정신속에 남아 아직도 우리를 유아기에서 성장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거기서 자유로워지는 길은,  우리 모두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삶에서 위대한 가치에 의지하는 일이다.

그 위대한 가치가 바로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암시해준다. 종교는 인간이 불완전하며, 그래서 겸손해질 것을 기본적으로 요구한다.  모든 정신적인 문제를 혼자만의 짐으로 안고 가는 일은,  현대와 같이 복잡한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로선 어리석은 일이다.   한 소설가의 정신의 행로가 마치 자신이 여행한 세계의 도시들처럼, 명확히 드러난 책을 읽는 일은 그 호기심에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우울한 일이다. 이 책에서 드러나 김형경의 문체는 정신분석학을 다룬다고 학구적이지도 않으며, 또 지극히 사변적이지도 않았다. 그건 다만 인간적일 뿐이었다.  그같은 사연들은 그만 가진 것이 아니며, 이 책을 읽은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들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다만 `아닌척' 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대중앞에 풀어헤치는 일 자체가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인데,  그것 자체는 감금된 본인의 무의식에게 자유를 주는 일과 같아서, 하나의 치유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다만, 서툰 아마추어리즘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몇 권의 정신분석학 책을 읽었다고 해서, 자신의 정신이 온전히 분석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학문적인 이론들에 자신의 정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문제들을 꿰어 맞춰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여행 에세이라 이름 붙여진 김형경의 이 책은 세계 여행과 심리 여행이라는 두가지 테마를 갖고, 남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만난 길위의 외국인들에게 정신분석을 투사하는 일은, 대단히 특이한 방법이다.  이런 목적으로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투사가 일어나는 가운데, 우리는 작가의 심리안에 내재된, 그리고 우리안에 내재한 정신병의 기제들을 파악하게 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여행기는 흥미로움과 우울함, 그리고 산뜻한 기분으로 끝을 맺는다.  내 기분의 변화도 이 책을 읽는 가운데 그와 같았다.

 

 

 

2008.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