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1
단테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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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의 위대함은 <미메시스>에 쓰여진 아우얼 바하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 신곡에 사용된 문체는 당시 이탈리아의 일상어였으며, 그것으로 숭고한 주제인 지옥,연옥,천국을 다루고 있다. 또한, 지옥이라는 슬픈 출발에서부터 천국이라는 숭고함으로 끝난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이 글엔 희곡 Commedia 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다.

고대적 의미에서 숭고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었던, 일상적이고 기괴하고 불쾌한 것을 직접적으로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단테의 손에 의해 그것들은 숭고함을 획득한다. 지옥,연옥,천국의 물리적 세계상은 또한 도덕적 위치이기도 한데, 그러한 방식으로 도덕적 질서는 물리적 질서와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등장하는 중세형벌의 인과응보적 성격이 지옥편의 묘사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지옥은 현세에서 죄를 범한 자가 그가 범한 죄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그에 대응하는 처벌을 감내하고 있는 곳이다. 이간질을 한 자는 혓바닥이 뽑혀지고, 이간질로 결합되어있던 사람들을 갈라놓은 죄를 범한 자는 동체와 머리가 잘리우는 형벌을 받는다. 건방지게도 너무나 먼 앞을 내다 보려고 했던 '예언자'들은 목이 뒤틀려 등 뒤쪽으로 돌아가는 형벌을 받으며, 교만했던 사람은 목을 무거운 바위에 의해 짓눌려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지상의 것에만 쏠려있던 눈 곧, 탐욕의 죄를 범한 자의 영혼은 자신의 눈을 땅바닥에 못박히는 벌을 받으며, 포식한 자는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을 당한다. 교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탐식, 음란의 7거지악 Peccatum을 저지른 자들은 그 영혼을 지옥에서 그에 상응하는 형벌로서 보복받는다. 그것이 하느님의 율법이다. '인과응보는 여기 지옥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푸코를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러한 형벌 종류의 다채로움에 비하면, 감금이라는 근대형벌의 단순함은 무미건조하게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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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 후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석연 옮김 / 범우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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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신의 부인이 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결국 자살에 가지 이르고만 친구와의 '감정다툼'의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지식인의 이야기.

19세기 프랑스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동일한 생각이 들었지만, <무정>이 등장하기 이미 3년전에 쓰여진 이 소설엔 <무정>에서 보여지듯 소설을 통해 무엇인가를 계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과 근대화에 대한 소설가의 조급한 자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소설을 이미, 계몽이라는 목적지향적 행위의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을 버린지 오래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이라는 영역의 독자성과 가치를 형성하고 존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에고이즘과 자의식의 문제를 이처럼 정밀하게 다룬 소설이 이미 1914년에 신문연재를 시작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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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계명교양총서 18
소포클레스 지음, 김종환 역주 / 계명대학교출판부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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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는 외디프스가 자신의 생모 요카스타와 결혼하여 낳은 딸이다. 크레온은 요카스타의 오빠, 그러니까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삼촌과 조카 관계이면서, 고종 사촌 사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다 크레온은 이 외디프스의 불쌍한 피붙이들을 저주하게 되었을까. 정작 크레온의 아들 헤몬과 안티고네는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그러니까 사촌끼리 결혼을 하는 것이다.

어쨋든 복잡한 집안이다. 외디프스가 이런 비극적 집안 꼴을 만들어낸 근원은 외디프스의 아버지 라이우스왕의 동성 연애 때문이었다. 그녀가 쌍둥이 형제 제토스와 앰피온에 의해 왕위를 빼앗겨 피사로 피신해 있던 때, 그곳 펠롭스 왕의 아들 크리시프스의 미모에 반해 동성연애를 강요하다 실수로 그를 죽여버리고 만다. 그는 죽으면서 라이우스 왕에게 저주를 내렸는바, 그것이 외디프스의 비극으로 실현된 것이다. 동성연애의 댓가가 근친 상간으로 치루어진다. 하나의 극단이 다른 극단으로 메꾸어진다. 프로이드가 이를 알았다면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프로이드의 글을 읽었다. 그리, 동성연애와 근친 상간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그의 대목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原父를 살해한 형제들이, 그 살해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을 통해 만들어내는 형제사회의 기본적인 금기 두 가지에 숨겨져 있었다. 그 하나는 다시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토템도살금지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근친 내의 여성과의 성적교섭에 대한 금지이다. 이는 최초의 원부 살해야말로 종족의 여자들을 소유하려는 충동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집단이 이러한 근친 상간 금지의 타부를 시행한 근저에는 형제집단 사이간의 동성애적 감정과 행위가 전제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종족 내 여성들의 독점을 위해 서로 투쟁하지 않고, 신격화된 원부의 권위에 힘입어 계속 지배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유지해야 했던 그들 사이의 동성애적 감정이, 근친상간 금기의 조항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하는 동성애적 감정은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규제되어지는 이성애,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면, '억압된 이성애'의 형태일것인데, 여기에서 중시되는 것은 리비도를 규제, 콘트롤하는 자아의 기능이다.

외디프스가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규제하지 않은 채 그대로, 충족시키려한 과도함을 범하였다면, 라이우스 왕은 크리시프스에 대한 동성애적 욕망의 과도함을 범했다. 그들 모두에게 결핍되있는 '자아'는, 곧, 그들의 '사회성의 결핍'을 의미하며, 그들이 모두 리비도의존적인 인물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아는 바와 같이 참담하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지식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의 정신분석학적 원인은,'억압된 충동'에 있다고 한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유아의 '최초의 지적 독립의 요구'가 억압됨으로써, 대상에 대해 충동적(감정적) 반응없는 지적 관심만을 가지려는 '탐구적 태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탐구의 대상으로서의 세계는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세계와는 다르다. 그것은 잠자코 바라보고만 있는 세계일 뿐,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든다거나,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 대한 지적태도의 무기력은 기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세계에 대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세계를 들여다보고만 있는 나르시시즘적 자기의식 뿐이다.

외계와의 어떤 관계도 갖지 않으려는, 그래서, 나의 모든 관심을 외계로부터 거두어 들인 상태인 '꿈'또한 그러한 나르시시즘에로의 귀환이라는 의미에서, 이해된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탐구'로 대별되는, 나르시시즘과는 다르게, '자기자신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다. 나르시시즘적 태도에 공통되는 것은 더이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꿈 속에서, 꿈을 통해 내 욕망을 엿볼 수 있음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를 좇는 것.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결핍으로서의 욕망을 따르는 끝없는 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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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밀란 쿤데라 지음 / 하문사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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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법. 서로 다른 직업과 맥락에 있는 여러 등장 인물들은 그러나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으며,가끔씩 서로 마주치기도 한다. 사건들은 늘 그들 각자의 삶의 공간 속에서 발생하지만 그 공간들은 서로 일부분씩 겹쳐져 있다. 교집합적인 소설. 따라서 우린 그의 소설을 읽으며 그 모든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 그들의 공유공간에 대해 둘러가며 입체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모르고 있지만 우린 그들이 서로 모르는 채 스쳐 지나고 있는 광경에 짜릿한 흥분을 맛본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 등장인물들의 서로에 대한 관계의 양상이다. 그들은 서로는 알지 못한 채 우연한 장소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한 인상을 확인하며,(좋든 나쁘든)그들에 대한 입장을 갖는다. 이런 식으로 엮어져 있는 그들 관계의 그물망을 짜는 쿤데라의 솜씨는 정말 놀랄 만하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 주관적 환상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서로에 대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신뢰가 일순간에 다시 증오나 배반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그 변화의 과정은 어쩌면 지극히 사소한 것이기에 희극적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면, 결국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그러한 사소한 환상과 변화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위 심경과 가치관의 변화라는 것에 엄청난 무게감과 존엄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 들에 의해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는 자기 나름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해석에 의거해 자신의 행동과 태도들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각자의 환상들이 부풀어올라 서로 퉁퉁 부딪치며 부유하는 모습과 같았다.

각자는 모두 삶에 대한 각자의 콘텍스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행동은 그 컨텍스트에 의하면 지극히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것이다. 그러나,어느 순간 그 삶들에 작은 균열이 발생하였을 때, 각자의 컨텍스트는 서로 부딪쳐 껄끄러운 소리를 내며 삐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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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되세요 - 아기 탄생을 축하합니다
김혜경 지음 / 다음세대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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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출판되고 있는 육아관련 서적들은 대략 세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하나는 소위 육아 매뉴얼이라 할수있는 실용적인 서적들, 육아법, 응급처치법, 놀이법, 이유식 제조법 등 처음 키우는 아가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 마치 처음 접하는 전자제품 사용설명서처럼 - '실제적인' 책들이다.

두번째는 아이들이 보는책으로 주로 '동화'나 '그림책'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번째가 육아에 관한 철학, 혹은 에세이 등으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커다란 삶의 한 부분인 육아에 대한 철학적, 사색적 성찰들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근래 출판되어 호평받고 있는 <젖병을 든 아빠>같은 책들이 여기에 속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이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버지들도 이젠 육아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 육아에 관심있는 아버지들을 겨냥한 듯한 제목은, 선량한 - 직장과 일 속에 치여살면서도 자식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관련서적들을 찾아 헤매는 - 아버지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정작 그 내용은 어쭙짢은 육아상식 몇개 - 이는 아이를 키우는 집엔 이미 1-2권씩 있기마련인 웬만한 육아법 책에 다 나와있는 - 와 너무나 일반적인 당위론으로 얇은 책자를 메꾸고 있다.

첫아가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그간 구입했던 많은 유아책들중 태반이 사실상 이런 류의 잡동사니에 속한다는걸 깨달았다. 좋은 아빠가 되기위해 이 책을 구입할 마음이 생기는 아버지들에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 정도는 이미 당신이 다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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