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은 내가 입력한 것이 내가 그것을 다시 필요로 할때 온전하게 다시 불러내어질 수 있는 무시간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난 무엇인가를 저장하고, 그렇게 저장된 것은 이후 언제든지 내가 필요한 순간에 저장된 상태 그대로 다시 불러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반면 기억은 내가 그것을 나의 기억 속에 담게된 순간과 그것을 다시 불러내어 상기하는 순간의 시간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나의 기억은, 내가 그것을 불러내는 순간의 나의 현재의 상태, 정체성, 과거에 대한 판단, 기억하는 대상과 얽혀있는 감정상태 등에 의해 그때그때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재조직된다. 말하자면 기억에선 체험과 기억이 하나의 구조로 결합되는 것이다. 여기선 저장에서처럼 저장시킨 내용과 불러낸 내용 사이의 동일성이 문제될 수 없다.

많은 기술적 저장 미디어들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많은 것들을 '저장'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 시대의 저장 미디어들이 저장된 것과 불러내어진 것 사이의 완전한 동일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면, 이제 발달된 저장 미디어들의 저장 기술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린 우리가 그것을 제때에 잊어버리지 않고 저장하기만 했다면, 언제든지 내가 필요할때 그것을 다시 불러내어 활용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우리가 그것의 내용을 내 머리 속에 '저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난 그것을 적절한 순간에 내 머리 속에 '저장'시켰으며, 그를 이제 다시 온전하게 불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이러한 저장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우린 사실상 우리가 활용하는 저장 미디어들, 노트, 컴퓨터, 녹음기 등 보다 훨씬 비효율적이고 작은 용량의 저장 능력만을 가지고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노트나 책, 컴퓨터나 녹음기가 '아는' 것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이제 저장이 아닌 '기억'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우린 지금까지의 그 어떤 저장 매체도 갖지 못했던 인간만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의 기억은 그것이 기억된 시점과 불러내어진 시점에 따라 늘, 새롭고도 변화하는 다채로운 색깔을 띤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가 기억했던 과거의 사건,사람,지식들을 그를 기억해 내는 지금, 현재의 지평에 따라 창조적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다.1

훌륭한 저장 미디어로서의 컴퓨터가 만일 이러한 '기억'의 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1년 전에 써서 컴퓨터 하드 디스크나 디스켓에 기억시켰던 글은 1년 후 내가 그 글을 다시 불러낼 땐 새로운 글로 숙성되어 있을 것이다. 1년 전 내가 기억시켜 놓았던 나의 생각은 1년 동안의 나의 새로운 경험과 성숙 혹은 변화를 반영하여 다른 분위기의 다른 글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 컴퓨터는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을 불러낼 때의 나의 감정상태를 감지하여 그 글을 적절히 변화시키기도 할 것이다. 10년 전에 내가 감동했었던 한장의 그림을 컴퓨터에 기억시켜 놓은 나는 1년 후 역시, 그 그림이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과 분위기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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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는 Nationalsozialism , 민족 사회주의의 약자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국가는 독일인들에겐 그야말로 인민의 국가였다. 나찌는 국민들이 국가가 바로 그들 물론 아리안 인종의 독일인들! – 위해 존재한다는 실물적으로 느낄 있도록 국가 시스템을 조직하고 운영했고 이를통해 대다수 독일 인들의 자발적인 충성과 지지를 얻어낼 있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에게 히틀러의 국가는 평상시 그들 봉급의 73 퍼센트를 지급했다. 그건 당시 영국이나 미국 군인들에 비해 두배가 많은 수치였다. 나찌 국가는 군인과 그들 가족으로 하여금 오히려 평시보다 실물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있도록 배려했으며, 모두를 점령국과 유대인으로부터의 효과적인 착취를 통해 충당했다. 전쟁에 참여한 독일 군인들은 공식적으로 한달에 100 마르크, 크리스마스 200 마르크까지를 고향으로 송금할 있었다.

나아가 그들은 점령지에서 월등한 환율가치를 갖게된 독일 마르크화로 그곳의 모든 물건들을 그야말로 똥값 구입할 있었고, 그를 특별히 독일 군인들을 위해 마련된 소포 열차를 통해 한달에 2,5 Kg까지 독일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낼 있었다. 1941 1월부터 독일 관세청은 군인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소포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주었다. 이를통해 남아프리카의 신발, 프랑스의 실크, 주류와 커피, 그리이스의 담배, 러시아의 꿀과 , 노르웨이의 청어, 루마니아, 헝가리 등의 특산품들이 수없이 전쟁 중인 국경을 넘어 독일에 있는 군인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고향에 남아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전쟁 전엔 오히려 접해보기 힘들던 장난감, , 유럽 각국의 특산품과 생필품 등을 손쉽게 보낼 있다면 어느 아버지가 그를 마다하겠는가. 당시 군인으로 참전했던 작가 하인리히 뵐은 독일에 있는 아내에게 보내는 소포에 당신에게 무엇인가 보낼 있게 되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거요라고 썼다. 이를통해 군인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배려해주는 고마운 국가에 대해 마음 속으로부터의 충성을 다짐했다. 그리고 나찌 점령지의 국민들은 부족해진 생필품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독일에 남아있는 군인 가족들을 위해서도 나찌국가 독일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미 남편과 아버지가 매달 전선에서 부쳐주는, 평시엔 접해보기 힘든 물건들로 기뻐하고 있던 이들에게 나찌 국가는 폭격으로 파괴되거나 부서진 집과 가구, 그외 다양한 생활용품 등을 거의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1943 점령지였던 프라하엔 독일인들에게 폭격으로 상실한 가구와 생활 용품들을 재충당 해주기 위한 폭격피해 복구를 위한 저장창고가 설치되는데, 여기엔 4,817 개의 침실가구, 3,907개의 부엌가구, 18,267개의 옷장, 25,640개의 소파, 1,321,741 개의 부엌과 가정용품, 1,264,999 개의 침대보와 , 밖의 물건들이 있었고, 이는 전쟁 독일 도시의 관청들이 개최했던 경매를 통해 헐값에 독일인에게 분배되었다.

모든 물건들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예측할 있듯 이것들은 독일과 다른 유럽국가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의 것이었다. 살고있던 집을 떠나 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에겐 일인당 50 킬로그램까지의 짐만 허용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집과 가구, 나머지 살림들을 모두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민족 사회주의, 나찌 국가는 1941 8 베를린, 쾰른, 프랑크프르트, 함부르크 등에서 수용소로 이송된 8천명의 유대인과 열흘 브레멘, 빌레펠트, 뮌스터, 하노버 에서 이송된 13,000명의 유대인들의 남은 재산을 몰수하여 소위 폭격피해를 입은 독일인민의 소유 만들었다. 그나마 급히 짐가방에 넣고 갖던 나머지 물건들도 주인들이 수용소 가스실로 사라지고 후엔 독일인들에게 귀속되었다. 그리하여, 붕대, 가루 액체 비누, 면도칼, 면도크림, 샴푸, 머리기름, 성냥, 향수, 구두약, 칫솔, 담배, , 커피, 카카오, 쏘세지, 초코렛 등의 물건들은  당시 독일 적십자가 운영하던 군인 기숙사와 군대용품 저장고로 이송되었다. 죽은 유대인들의 물건들이 전시 독일인들의 편안함 삶과 그를통한 나찌 국가의 공고화를 위해 활용되었던 것이다.            

역사학자 알리의 책은 나찌 독일을 겪은 독일인들의 전후 책임문제에 대한 공방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전후 독일인들은 자신들 역시 히틀러 독재의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인류사에 유래가 없는 나찌 전범의 도덕적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는 또한 , , , 소련 연합군을 나찌 독재로 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해방군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전후에 이루어진 전범 재판은, 한나 아렌트가 표현하듯 전체는 유죄이나 개인들은 무죄라는, 새로운 차원의 윤리적 상황을 만들어내었고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독일인들 스스로를 전체로서의 나찌와는 무관한, 개인적 희생자로 규정하려 했다.

그러나, 알리가 책을 통해 보여주듯, 나찌 국가의 독일인들이, 피점령지 국민들과 유대인들의 희생으로부터 생겨난 사회적 이익의 긍정적 수혜자였다면, 그리하여 나찌와 히틀러에 대한 그들이 지지와 봉사가 단지, „국가 조직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한 것일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만족과 편안함의 긍정 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제 전쟁책임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는 새로운 차원에서 제기되어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부터는 전선에서 배달되는 아버지의 소포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전후세대들도 그렇게 많이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나아가 책은 민족주의와 결합한 독재를 바라보는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자국 국민의 안녕과 삶의 만족을 보장해 주었던 독재자는, 타국 국민들과 자국내 소수 인종의 희생이 있긴 했어도, 국민들에겐 훌륭한통치자이지 않을까. 오늘날 독일인들 사이에 적지않게 잠재되어 있는 나찌 시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적 실용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어쩌면 그건 또한 부시를 재선시킨 대다수 미국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인지도 모른다.     

 Götz Aly : Hitlers Volksstaat. Raub, Rassenkrieg und nationaler Sozialismus, S. Fischer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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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식인들은 나르시스트다. 아니, 나르시스트가 되지 않고서는 자신의 자아감정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오늘날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나르시즘을 받아들이지 않은 지식인들은 일찌감치 지식인이기를 그만두고 자신의 상상적 자아를 현실적 자아와 공존할 있게 주는 다른 직업들을 찾아 정치가 아니면 사업가가 되었다. 그렇지 못한 지식인들은 여전히 나르시즘을 동력으로 살아나간다. 나르시즘은 책을 쓰고 출판하면서 자신의 자아 대상물 만들고, 다른 이들에 대해 부러움과 경멸이 섞인 시선을 던지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연민하는 숭고한 감정속에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Thomas Ziehe 나르시즘 다음과 같이 네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1]  

첫째, 유아의 심리 발전과정의 단계

둘째,  대상에 대한 인간의 특정한 관계맺음의 양상

세째,  개인들의 특정한 신경증적 특징들을 지칭

네째,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사회변동의 조건들에 의해 야기되는 특정한 심리적 주관성의 특징을 지칭하는 개념

 

주지하듯 인간 심리발달의 중요한 첫단계를 이루고 있는 나르시즘적 시기 유아는 자기 자신을 대상인 엄마로부터 객관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지각하거나 체험하지 못한다. 아이는 자기 자신을 따뜻함과 만족을 주는 어머니의 육체와 자신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 “(708)으로, 그와 하나의 존재인 Eins-Seins것으로 체험한다. 말하자면 아이는 실제로 엄마의 육체와 결합되어 있던 출생 모체 내에서의 감정상태에 아직 머물러 있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적 단계는 이후 정상적인 심리적 발전 과정을 거치게 되었을 획득하게 주체와 객체의 분리, 자신의 심리적 내부psychisches Innen 사회적 외부 soziales Aussen“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 

 

자신의 육체의 독립성을 자각하면서 동시에 어떤 트라우마적인 좌절과 실망의 체험없이“(708) 어머니라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내는데 성공한 아이는 정상적인, 말하자면 병리적이지 않은 심리적 발달 단계를 밟아 나갈 것이다. 그는 이제, 울음, 행동, 나아가 말이라는 소통적이고 상징적 질서를 매개로 자신의 욕구를 사회적으로충족시키는 방법을 배워 나갈 것이고, 나아가 사회의 상징적 질서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욕구들을 그러한 사회적 질서에 따라 규제하고 변화, 승화시키는 방법 또한 배워나갈 것이다. 

               

모체로부터의 심리적 분리의 과정이 이처럼 말끔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면 바로 두번째의 나르시즘적 문제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심리적 구조의 발전과정 속에 이전의 (모태와의) 융합과 속에서 느끼던 전능함 Allmacht 계속 유지하려하거나 반복하고자 하는 총족되지 않는 갈망이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갈망은 그러나 무의식적인 기억의 침전물에 들러붙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되어 없고 다만 내적인 불안감, 공허함 그리고 우울증의 감정으로 출현하게 된다.“(708) 프로이드는 이러한 상태를 리비도가 대상으로부터 물러나 자아로 회귀하는 Abzug der Libido von den Objekten und als Rückzug ins Ich“ 이라고 특징지운 있다.

 

                자기가 원하던 , 자신의 욕구와 욕망이, 좌절과 오해와 그로인한 트라우마의 위험부담이 가득한, 귀찮고도 힘든 사회적, 상징적 소통의 개입 없이도 충족되던 원초적 대상 (어머니의 육체) 계속 들러붙어있고 싶어하는 심리, 나아가 그것과 분리되지 않으려는 최초의 나르시즘적 경향은, 어쩌면 우리 지식인들에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업 등을 통해 사회 삭막한 현실세계’ - 진출하기 보다 대학원에 남아있기  원했을때 부터 작용하고 있었다. 우린, 그래도 속에선 젊음의 에너지와 욕망이 실험되고 실수가 용인되던, 어떤 이에게는, 현실적 부담감이 적은 연애와 낭만이 존재했었던 모체 같던 캠퍼스와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했고 거기에 계속 들러붙어있길 선택했던 것이다.   

 

                위의 <심리학의 근본개념들> 의하면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러한 고전적 정신분석학적 이해는 Jacobson 비롯한 이후 연구가들에 의해 새롭게 정식화되게 된다. 이에 의하면, 이제 리비도적으로 점유된 besetzen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우리가 내적-심리적으로 만들어 내는 대상에 대한 표상 Repraesentanzen’ 것으로 이해되고, 이는 우리 스스로가 심리적이고 육체적으로 체험하는자기자신에 대한 자아표상 Selbstrepraesentanzen’ 결합하여 나르시즘을 만들어낸다. 대상 표상과 자아 표상이 나르시즘적 리비도에 의해 점유된 사람들은 이제 고양된 자아 가치 감정을 체험하는 심리적 목표로 삼게된다. (709) 그리고 이것은 최초의 나르시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억 침전물들에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초기 나르시즘 단계의 특징인 대상과 주체의 분리되지 않은 융합의 상태 대한 갈망이 영향을 발휘하여, 대상에 대한 표상 자아 표상 분리될 없게 결합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증상이 생겨나는가? 대상 표상을 자신의 자아표상과 분리될 없이 결합시켜 버린 나르시즘적 환자들 가장 커다란 특징은 대상들에 대한 평가를 곧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는데에 있다. 태극기라는 대상을 자신의 자아표상과 나르시즘적으로 결합시킨 사람은, 누군가 태극기를 훼손하는 것을 자신을 모욕하는 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신의 자아표상을 자기가 졸업한 학교와 결합시킨 사람은, 학교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신의 자아표상이 민족주의적으로 각인된 국가에 대한 표상과 결합되어 버린 사람들은, 미국에 진출한 포르노 배우가 나라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고양된 자아감정 느낄 것이다. 자기가 전공하는 사상가, 문학자와 자신의 자아표상을 결합시켜 버린 나르시즘 환자 지식인들은 사상가의 이론을 마치 훼손될 없는 자신의 존엄성처럼 다룰 것이다. („니체는 그렇게 했을리가 없어“ – „니체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아니라! – 라며 니체 이론에 대한 비판적 코멘트를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으로 받아들여 기분 나빠하던 니체 전공자도 있었다.)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으로서의 이론 자신의 자아표상과 나르시즘적으로 결합시켜 버린 지식인들은, 외부의 모든 위협과 비판들과 맞서기를 유아적으로 거부하며 이론의 안락한 모태 Mutterleib’속에 언제까지나 머무르고 싶어한다. 그들은 이론의 사회적 흥망을 자신 자아의 고양과 몰락으로 체험하며, 이론들 간의 이론적논쟁을 개인들 사이의 인격적 싸움으로 받아들인다.  

 

    개인들의 특정한 신경증적 특징으로서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자아상 문제가 생김으로써 발생한다. 그리고 문제는 현실적으로 부풀려진 거대자아 Groessen-Selbst’ 자신이 체험하는 실제적 자아 Real Selbst“ 사이의 간극에서부터 생겨난다.(709) 현실적 조건들과 실제적 자아에 대한 실제적 평가에 근거해 있지 않은 거대자아 요구로부터 자신의 실제적 자아가 위축되고 비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실제적 자아 외부로 부터의어떤 지지대를, , „자기체험의 부분으로써 자아 표상을 고양시켜줄 나르시즘적인 대상“(710) 요구하게 된다. 실제적 자아는 그러한 나르시즘적인 자아 대상물 Selbstobjekte“ 거대자아의 요구에 상응할 만한 상상적 자아를 투사하고, 이를 자기 체험과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심리적 위기를 빠져 나가려 하는 것이다. 이때 나르시즘적 자아 대상물 단지 상상 속의 산물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누구나 현실적으로 지각할 있는, 그리하여 나르시즘적 개인 또한 그를 자신의 외부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으로, 그리하여 자신의 나르시즘적 환상이 실지로 현실적으로 실제하는 으로 체험하고, 나아가 그를통해 자신의 실제적 자아의 고양을 체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 그건 외제 승용차나 나이키 운동화, 리바이스 청바지나 모피 코트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겐 섹시한 애인이나 클래식 음반 컬렉션,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멋진 서가일 수도 있다. 나르시즘적 지식인들의 자아 대상물은 그가 쓰는 글과 책이다. 글과 책은, 현실 속에선 초라하고 별볼일 없으며 무능한 실제적 자아를,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유난히도 이상적으로 부풀어진 거대자아와의 위협적인 대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아 대상물들이다. 글과 책은 단지 우리의 심리적 내면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적 산물이 아니라, ‚외부에실제적이고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우린 책을 보고, 만지며, 들고 다닐 수도 있다!) 자신의 체험, 생각, 감정들을 글을 통해 외화시키면서 지식인들은 동시에 거기에 자신을 나르시즘적으로 투사시킨다. 그렇게 외화되고 물질화된 내면으로서의 글과 책은 그리하여 지식인들의 자아표상 쉽게 동일시되고,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자아 대상물 통해 자신의 자아 감정을  나르시즘적으로 고양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가, 특히 근대 이후 자본주의적 사회화 속에서, 이전의 전승된 문화적 가치, 정체성, 집단들을 해체시키고 재구성하며 그를통해 이전까지의 의미 연관들을 파괴시킴에 따라 이러한 나르시즘적 자아 대상물에 대한 의존은 강화된다. 이것이 네번째로 언급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생겨나는 주관성의 특징을 지칭하는 나르시즘의  의미이다. 이전까지 안정되어 있었던 사회적 계급, 집단, 종교, 혹은 확립되어 있던 사회 문화적 담론에 의거해 있었던 사람들의 자아표상은 급격하게 붕괴되어 버렸다. 급격한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많은 이들에겐, 다만 나르시즘적으로, , 특정한 자아 대상물들을 만들어 그를 자신의 자아표상과 동일시함으로써 정체성의 심리적 위기를 피해갈 방법 밖에는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자신만의 취미와 선호의 대상들을 만들고 [2], 다른 모든 이들로부터 구별되는 개인을 모든 사회적 실천의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특히 변화가 지식과 지식인 자체의 사회적 위상을 급격하게 변화시킴으로써 지식인들의 심리적 위기를 가중시키는 것이었을때는 더욱, 지식인들을 중증 나르시스트로 만든다.

 

우리는 로버트 버튼과 그의 주저 멜랑코리의 해부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생겨난 지식인의 자아 심리적 위기를 나르시즘적 방법으로 극복하려했던 시도라고 이해할 있다.

 

버튼이 책을 출판했던 1621년은 유럽사회가 사회, 정치, 역사, 문화, 사상 등의 영역에서 커다란 이행과 변화를 맞이하던 시기였다. 종교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적 개혁이 사회, 정치적 세력을 확장해가며 카톨릭과 대립하고 있었고, 놀랄만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던 천문학, 역학, 의학(1618 하비의 혈액순환 발견) 등의 자연 과학은 이전의 신학적 믿음들에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갈릴레이는 자신이 발명한 망원경(1609) 으로 중세를 지배했던 아리스트텔레스 우주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견(1610 달의 산과 계곡, 태양의 흑점) 거듭하고 있었고, 베이컨은 Novum Organum(1620) 에서 이러한 자연과학의 경험적 방법들을 철학적 방법론으로 수용할 것을 주장했다. 정치, 경제적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은 이미 1600년대 초부터 인도(1605), 북아메리카(1607), 카나다와 파라구아이(1608), 남아프리카 (1618)등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고, 식민지 특산품들을 위주로한 국가간 교역을 위해 최초의 은행이 설립되기도(1609) 했다.

 

 말하자면 사회의 구조는 경쟁적인 부의 축적이라는 실천적 과제로 집중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까지의 중세적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자연과학적 지식에 의해 흔들리고 (1613 갈릴레이는 성경이 자연과학의 문제들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 1615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있던 상황 속에서  이상 이전의 안락한 신학적 믿음 속에 자신의 이론을 쌓을 없었던 지식인들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었다. 사회적 부를 향한 실용적, 실천적 과제에 몰두하던 국가와 새로운 자연과학적 인식들에 자극받은 사람들은 어떤 현실적 이익도 가져다 주지 않고, 다만 이전시대의 구태한 신학원론만을 반복하는 듯한 인문학적 탐구를 불신하게 되었고, 속에서 인문학적 지식인들은, 마치 오늘날의 인문학자들처럼 지식과 실존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버튼은 지식인들의 이러한 심리적 위기를 책이라는 나르시즘적 자아 대상물 통해 극복해 보고자 했다. 그의 책의 나르시즘적 경향은 이미 구조와 형식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옥타브 판으로 페이지가 넘는 두께,  라틴어 이름으로 - Democritus Junior ! -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 그의 논지 파악하기를 힘들게 만들 정도로 텍스트 전체에 가득 있는 수많은 라틴어, 희랍어 인용문과 각주, 수많은 고전 고대 시대의 일화들[3] 그가 고대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적 지식과 지식인들을 자신의 전범으로 삼고 있었음을 있게 해준다. 모든 학문들이 인문학을 기본으로 삼고, 모든 사회적 실천들이 인문학적 원천에 의거하며, 그리하여 모든 사회, 정치적 기구들이 인문학과 인문학자들을  떠받들던 인문학의 최전성기에 대한 향수는 인문학자로서 버튼의 자아 이상이었다.    

 

그와 비교해 본다면 버튼의 시대는 얼마나 학자와 지식인들을 푸대접하고 있는지. 세상은 모두 세속적 이익만을 쫓고, 인문학자들은 실용적인 이익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천대 받으며 가난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버튼은 불평한다. 버튼에게 그건 한번도,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회, 역사적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문학의 무능함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버튼은 지식인 특유의 나르시즘을 발휘, 그를 자신의 시대가 앓고 있는 질병 (멜랑코리!) 탓으로 돌렸다. 그리곤 바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 자신의 책을 시대에 인기없고, 쓸모없는 것으로 비난 받으며, 사라져가고 있던 바로 인문학 전성시대의 형식을 빌어 만들어 냈다. 그리고 책은 바로 시대적 질병을 해부 Anatomy’[4]하고 궁극적으로는 치유할 것을 암묵적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전까지 인간의 인상학적 유형과 체질들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던 멜랑코리개념은 버튼을 통해 처음으로 시대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역사적 준거로까지 확장된다. „불만족과 일반적인 분노, 불평, 가난과 야만, 구걸, 전쟁, 난동..들을 있는 ...시골엔 인구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지저분하고, 추하며 문명적인 , 이러한 왕국, 이러한 나라는 필연적으로 불만족스럽고 멜랑코리적이며 병든 육체를 가지고 있을 밖에 없고 시급하게 개혁되어야만 한다.“[5] 버튼은 그의 시대가 멜랑코리라는 질병을 앓고있는 시대며, 이는 시급히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19세기의 마르크스와 같은 비판적 사회개혁가였을까.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우리가 버튼에게 멜랑코리라는 질병으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면 금새 무너지고 만다. 그에게, 시대의 질병을 통해 누구보다 고통받는 이들은 바로 (인문)학자들이기 때문이다.[6] 그리고 여기엔 아리스토텔레스가 멜랑코리를 특출난 사람들 특성과 관련시킨 이후 19세기 낭만주의에까지 함축되어왔던 소위 천재와의 연관성[7] 암시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버튼이 진단하는 시대의 질병은 시대가 자신의 천재들(인문학자들!)’ 알아차리지도, 그에 맞게 대접해 주지도 못하고, 도리어 그들을 고통 속에서 살도록 만들고 있다는데 핵심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 질병으로서의 멜랑코리는 이를통해 그를 낳게하는 사회의 질병으로 확장되고, 그를통해 지식인들 개인의 멜랑코리는 미학적 정당성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당성까지 얻는다!

 

버튼의 나르시즘은 바로 지점에서 이후 모든 시대, 모든 지식인들의 보편적 나르시즘의 공식과 연결된다. 천재로서의 지식인은 어느 시대나 힘겹고도 힘들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의 원인은 지식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천재들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하고, 그에 맞게 대접해 주지도 못하는 외부, 사회와 시대에 있다. 지식인들은 질병을 앓고 있는시대 속에서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천재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지식인들의 개인적 질병, 멜랑코리의 원인이기도 하다!) 지식인들이여, 당신들이 겪는 멜랑코리는, 당신들 탓이 아니라, 다만 시대가 앓고 있는 질병 탓이다. 그건 지식인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져야만 치유될 있다!  

 

버튼은 변화하는 시대와 상황의 조건을 생산적으로 수용해, 그에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동적 지식인이 되지못했다. 그가 진단한 시대적 질병으로서의 멜랑코리는 다만, 그를 포함한 당시 인문학자들의 심리적 위기감을 보상해보려던 나르시즘적 자기투사에 다름 아니었다. 치유되어야 멜랑코리의 대안으로 제시된 그의 유토피아 적지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률을 가진 군주제 국가, 거기선 재판관, 검사, 변호사, 의사들의 수가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많은 법률과 재판이 존재하고, 많은 검사, 변호사 의사들이 존재하는 곳은 그곳이 멜랑코리적 국가라는 지표[8]이기 때문이다. – 역시 의사, 검사, 변호사들을 인문학자 보다 선호하는 현실에 대한 그의 불만의 표현으로 읽힌다. 이후 그의 책이 여러 판본을 거듭하면서(1624, 1628, 1632, 1638, 1652, 1660, 1676) 동시대와 이후 지식인들의 나르시즘적 자아고양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유토피아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9] 바로 때문이다. 버튼의 독자들이었던 지식인들   어떤 일반인들이 책을 읽었겠는가! – 원했던 것은 자신의 자아감정의 위기를 모면케 나르시즘적 자아 대상물이지 어설픈  사회적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날의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2005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판된 <우울증의 해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도대체 정신나간 출판사는 어떤 생각으로 돈벌이가 되지 않을 것이 뻔한 두껍고도 재미없는 고전 인문학 책을 출판했을까. 한국사회가 모든 대학들을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재편하려고 하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거대담론 협박의 수단으로 삼아 이미 많은 인문학과들을 대학내 교양수업만을 제공하는 서비스 학과로 만들어버린 시점에서 책은 어떤 의미와 효과를 지닐까. 17세기, 인문주의자였던 지식인들의 사회적 위상이 서서히 붕괴하던 시기, 지식인과 학자들이 실용적인 사회 속에서 실용적인 공론을 떠벌리던 기생계급으로 간주되어 가던 시기에 쓰여진 책이 그를통해 지식인들의 나르시즘적 자기 방어라는 심리적 효과를 가졌었다면,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책은, 시장경제의 써비스맨으로 업종전환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한국의 인문학 지식인들의 심리적 위기를 위로해주는 나르시즘적 자아 대상물Selbstobjekt’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어느 시대나 인문학자들은 속세적 이익과 실용적 논리만을 쫓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와 사회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으며, 그럴수 밖에 없다 낡은 멜랑코리적-나르시즘적 지식인의 구호를 확인해주면서 책은, 사회적 변화에 무능한 인문학의 자기 한계를 합리화하는 자위수단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나르시스트일 밖에 없는, 더구나 더욱더 그들을 나르시즘적 도피로 몰아대는 광포한 한국사회의 변화 속에서, 17세기의 나르시스트 버튼의 멜랑코리는 몰락해가는 현실적 자아가치를  나르시즘적 자기 합리화를 통해 구제해보려는 21세기 한국 지식인들의 멜랑코리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1] Thomas Ziehe, Narzissmus, in Psychologische Grundbegriffe : Mensch und Gesellschaft in der Psychologie, Ein Handbuch, (Hg. Von Siegfried Grubitzsch & Günter Rexilius, Hamburg 1991, S.708-713

[2] 이전의 어떤 규범적인 판단과 담론들에도 의존하지 않고 전적으로 주체의 자유로운 취미 기준에 의해 자신의 선호를 드러내는 <판단력 비판> 근대적 주체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나아가 유럽에서 18세기부터 급격히 증가한 소위 아마추어 예술가, 과학자들역시 이러한 사회, 역사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선 Hans Rudolf Vaget, Dilettantismus und Meisterschaft. Zum Problem des Dilettantismus bei Goethe. München 1971. 참조.

[3] Wolf Lepenies, Melancholie und Gesellschaft, 1998 Frankfurt am Main, S.22

[4]  해부 Anatomy“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채택함으로써 버튼은 당시부터, 본격적으로는 18세기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한 대상의 시각화에 대한 특정한 자연 과학적 태도를 일지찌감치 인문학적 논의에 적용시켰다.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해부학적 관심은 보이지 않던 육체의 내부를 절개해 시각화시키려는 근대적 에피스테메를 반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Philipp Sarasin, Der öffentlich sichtbare Körper : Vom Spektakel der Anatomie zu den curiosites physiologiques in Physiologie und industrielle Gesellschaft, Studien zur Verwissenschaftlichung des Körpers im 19. und 20. Jahrhundert, (Hg.) Philipp Sarasin & Jakob Tenner, Shurkamp 1998 참조

[5] Wolf Lepenies, S.23

[6] 버튼 이전부터 오랫동안 멜랑코리는 학자나 지식인의 질병으로 이해되어왔다. Melancholie, in Historisches Wörterbuch der Philisophie, Basel/Stuttgart 1980.  

[7] Wolf Lepenies, S.24

[8] Wolf Lepenies, S.28

[9] Wolf Lepenies, 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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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과 발표, 논문쓰기 등으로 계속 독일어로 말하고 글쓰기에만 매달리다가 간혹 한국어로 글을 쓰려면 난 커다란 내적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단어는 떠오르지 않고, 문장은 역겨운 약을 집어 삼킬 때처럼 한참을 억지로 쥐어 짜고서야 겨우 튀어나온다. 이러한 증상은 그러나, 번역 등으로 인해 한동안 한국어로 글을 쓰다가 수업시간에 혹은 교수를 만나 독일어로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생겨난다. 독일어 단어들은 조각 조각 깨어져 맥락없이 뒤섞이고, 문장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해 허공으로 빙빙 헤메 다닌다.

왜, 한국어와 독일어는 내 속에서 이렇게 갈등하는 것일까. 왜 이 두 언어는 내 속에서 항상 투덕거리며 서로 자리 다툼을 벌이는 것일까. 왜 이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결국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기의’를 공유하는 다만 서로 다른 모습의 ‚기표’로 사이좋게 공존하지 못할까. 그건 한국어와 독일어 이 두 언어가 단지 내 머리 속에서 분명하게 현전하는 듯 보이는 말의 ‚의미’를 그저 서로 다른 형태와 형식으로 표현해 내는 ‚외적 표현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사유체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말할 때, 또 그를 위해 독일어로 생각해야 할 때 생각은 내게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그 생각에로 다가가 (Ich komme auf die Gedanke) 그를 붙들어야만 (ergreifen)한다. 사유와 글쓰기의 독일어 모드에서는 기억 또한 내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속의 어딘가 그 기억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 그를 상기시켜야 (ich erinnere mich an)만 한다. 독일어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 – 물건, 생각, 문장 들 - 은 스스로가 자신을 드러내거나 표현하는(sich zeigen, sich aeussern) 행위의 주체로써, 다른 모든 것들을 지시하고, 가리키며, 관계시키는 주어로 등장한다. 하나의 사태는 다른 의미를, 하나의 사건은 다른 맥락을, 하나의 주장은 그것에 함축되어 있을 다른 배경 사상을 지시하고(hinweisen), 드러내고 (zeigen), 관계맺게(beziehen)한다.

독일어는 그를 누가 (Subjekt) 수행하느냐에 따라 항상 다른 형태로 변화되어 표현되는 모든 행위들이, 그 모든 인칭과 격과 단수 혹은 복수의 다양한 조건들을 초월해 그 행위 자체를 표현하는 ‚원형’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누가 그 행위의 주체인지에 따라, 곧 나 (denke) 혹은 너 (denkst), 그 (denkt), 너희들 (denkt), 아니면 우리 (denken) 냐에 따라 그 형태는 수시로 변화하지만, 저 ‚생각한다 Denken’는 행위 자체의 이념은 그 모든 변화들의 ‚원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독일어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속성 (Akzidenz)들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선 변화하지 않는 실체(Substanz)를 생각하게 한다.

나아가 독일어의 세계 속에서 사물들은 한국어에서와는 다른 질서와 범주로 이루어져 있다. 장갑과 신발, 바지와 팬티, 책상과 식탁 등 한국어의 세계 속에선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물건들이 독일어에선 동일한 카테고리로 묶인다. 개와 물개, 소와 코뿔소, 말과 얼룩말, 쥐와 다람쥐 등 한국어에선 같은 범주에 속하는 동물들이 독일어에선 서로 다른 종류인 것으로 분류된다. 독일어에서 ‚경험’은 우표나 동전을 모으듯 „수집sammeln“되고, 결정은 화살이나 돌멩이로 과녁을 맞추든 „겨냥 treffen“되며, ‚시간’은 흐르지 않고 „달리고laufen“, 배가, 머리가, 이빨이 아픈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아프게“ 하며 es tut mir weh, 내가 진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진정시켜야’ ich beruhige mich 한다.


말하자면, 독일어로 말하거나 글을 쓰기위해 나는 한국어가 내게 열어주는 사물들과 그 사물들 사이의 관계, 그것들이 움직이고 생겨나며 이루어지는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 속으로 날 밀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독일어의 세계의 게임규칙을 익히고, 그 속의 사물들의 질서와 체계에 익숙해지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동안 나는 이전에 내게 익숙해 있던 한국어의 그것들로부터 조금씩 낯설어 졌으며 이는 한국어의 물리적 공간을 떠나, 독일어의 공간 속에서 살고 있는 나의 현 삶의 방식으로 인해 더 가속화되었을 터이다. 고양이와 닭, 개와 버스, 발자국과 녹슨 대문이 한국어에서와는 다른 소리를 내는 독일어의 세계 속에서 한국어로 사유하고 글을 쓰기 위해선 내겐 그렇게 낯설어진 한국어의 세계에 다시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한 거다.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이행하는 건, 그리하여 내가 알고있는 하나의 세계를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에서 그와는 완전히 다른 법칙과 삶의 형식을 지니는 다른 세계로 발을 디디는 것이며, 그를 위해선 늘 일정기간의 적응훈련이 필요하다. 이 두 언어 사이를 어려움없이 왕복하기 위해선 내 속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확고하게 세워져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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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
히라카와 스케히로 지음, 노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동서양 문화 교류사를 언급할 때 마테오리치는 빠질 없는 인물이다. 그는 유럽사회에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사실을 근거로 이전의 마르코 폴로의 동방여행기 마르코 폴로의 상상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에 반해 중국을 소개했던 인물이었다. 그를 통하여 비로소 유럽엔 물론 많은 부분 유럽인들의 오리엔탈 에피스테메를 통해 변형된 형태로 - 중국의 문화와 역사, 문자와 철학, 문명들에 대해 알게되었고 이러한 유럽의 중국에 대한 인상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유럽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또한 유럽의 문명과 사상을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함으로써 이후 동양사회에서 서양문명에 대한 이해의 첫발을 만들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으로 중국에 지리학적으로 제작된 세계지도를 선보였고, 기하학과 수학을 소개했으며, 천주교를 전파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사적으로 커다란 의의를 지니는 리치에 대해 서구사회는 이미 활발하게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그가 중국에 머무는 동안 모국어인 이태리어로 선교 보고서 이미 1600년대에 라틴어로, 나아가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었을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에 대한 수많은 연구서와 논문들이 존재하고 여전히 그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도 있다. 독일어권에만 해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의 전기 다섯 종류 이상이 출판되어 있다.  이에반해 오히려 아시아권에선 그에대한 연구가 지금껏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는데, 이러한 점에서 비교문화사가인 히라카와 교수의 책은  동서문화교류사의 획을 이루는 중요한 연구가 아닐 없다.

 

그러나 동서 비교문화사의 세계적 석학인 히라카와 교수가 30년간에 걸쳐 집필한 이라는 출판사의 선전을 무색하게도, 책에서 마테오 리치에 대한 동양인의 시각에서 깊이있는 연구를 기대한 내게 책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책의 절반 (5부까지) 차지하고 있는 마테오 리치의 삶과 그의 중국에서의 행적들에 대한 소개는 사실상 독일에 출판되어 있는 두권의 마테오 리치 전기만 읽어보면 알수있는 것을, 그것도 일본 학자답게, 간략하고도 에피소드 중심으로만 소개하고 있다.

 

물론 책의 후반부에선 동서 사상사의 입장에서 리치의 저작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그것들이 일본과 조선 사회에 미친영향, 그리고 리치를 매개로 이루어진 최초의 본격적인 동서양의 만남에 대해 유럽사회가 보여준 다양한 반향들을 아시아인의 시각에서 연구한 부분에선 비교 문화사라로서의 저자의 역량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에서도, 관점으로는, 중요한 마테오 리치의 저작에 대한  연구가 빠져있다. 바로 그의 저술 西國記法 그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과거시험을 앞에두고 있던 중국인 학생들을 위해 저술한 책은 서양의 기억술 중국의 한자에 적용한 책으로, 유럽의 기억술에 내재하고 있는 서양의 형이상학적 세계이해가 서양 알파벳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를 지닌 한자에 적용됨으로써, 데리다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음성중심주의 그와는 전혀다른 문자, 한자간의 충돌에서 생겨나는 중요한 문제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라카와 교수는 중요한 리치의 저작 내용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은채 다만 간략한 문헌학적 서술만 남기고 있다.

 

리치 자신도, 그리고 그의 보고서 통해 중국의 한자에 대해 알게된 많은 유럽인들은, 오늘날까지도 한자를 자신들의 알파벳 문자의 정반대의 극을 이루는 순수 표의문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데리다가 지적했던 것처럼 사실 유럽인들의 현존에 대한 형이상학의 뿌리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나아가 유럽인들은 이러한 한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하여, 한자는 알파벳 표음문자에 비해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사유에 부적합하며, 그로인해 권위적이고 문맹률이 높은 사회를 만들어낼수 밖에 없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Havellock, Jack Goody  )

 

이러한 유럽인들의 한자에 대한 이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마테오 리치의 서국기법, 동서 비교문화사를 연구하는 히라카와 교수 같은 사람이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척이나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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